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8화
루카의 얼굴은 창백히 질려 있었다.
마치 내가 죽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의연한 척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모가……. 위험하다고, 했, 잖아.”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 끝이 떨렸다.
이래서야 태연한 척하려는 시도가 의미가 없겠는걸.
아니나 다를까, 루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울고 싶으면 차라리 울든가.
어린애가 울지도 못하고 소리 죽여 오열하는 듯한 낯이 보기 좋을 리 없다.
“왜 이모가……. 원래는 안 이랬잖아…….”
물론 원래의 유디트는 루카가 죽든 말든 크게 신경 안 썼을 테지만…….
나는 쓰게 웃으며 멀쩡한 오른손으로 루카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 순간, 뤼디거와 눈이 마주쳤다.
덩치가 큰 만큼 산탄총에 스치기라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용케도 멀끔했다. 총알이 그를 피해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내가 뤼디거를 이곳저곳 살핀 것과 달리, 그는 내 왼팔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돌조각처럼 딱딱해진 낯이 마치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있었으면 별일 없었을 텐데, 괜히 나서서 칼에 팔을 들이밀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젠장, 나라고 해서 다치고 싶어서 다쳤겠어? 애가 그러고 있는데 그 꼴을 그냥 보고 있을 순 없으니까…….
……됐다. 그냥 구구절절한 변명일 뿐이라는 걸 나도 알았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내 부상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 사이, 암살자가 객실 밖으로 도망쳤다.
총탄도 떨어졌겠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뤼디거와 멀찍이서 총격전이면 모를까, 일대일로 붙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는 총싸움만큼이나 칼싸움, 주먹 싸움 또한 능숙하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툭툭 뱉는 걸 볼 때 말싸움도 만만치는 않은 것 같았지만.’
뤼디거는 암살자의 도주를 바로 눈치채고는 그의 뒤를 쫓아 복도로 나갔다.
언뜻 스친 표정만 봐서는 당장에라도 암살자를 죽일 기세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내가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나는 팔의 고통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프지 않다며 자기 세뇌를 계속하니 좀 견딜 만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혹시나 싶어 루카에게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게 다친 건 아니니까 걱정 마. 얌전히…… 얌전히 있어. 알았지?”
그러고는 비척비척 뤼디거의 뒤를 쫓았다.
거의 좀비나 다름없는 몸짓이었다.
“이모, 어디 가! 위험해!”
루카가 황급히 나를 잡으려 했다.
잡힐 수 없었던 나는 있는 기력을 전부 끌어모아 루카의 손을 피했다.
그렇게 내가 객실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아수라장이 된 복도가 나를 반겼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창문 쪽에 최대한 웅크려 있었다.
혹여나 총탄이 날아올까 봐 바닥을 기어서 도망치는 이들도 있었고, 암살자를 막으려다 다쳤는지 피를 흘리는 승무원도 있었다.
뤼디거와 암살자가 어디로 향했는지는 명백했다.
나는 사람들이 도망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객차에 도착하니 뤼디거의 너른 등이 보였다.
그는 암살자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뤼디거의 사격 실력이라면 바로 명중시킬 게 분명했다.
나는 있는 힘껏 목청을 돋웠다.
“뤼디거 씨! 죽이면 안 돼요! 사로잡아서 배후를 캐야 해요!”
갑작스러운 내 외침에 깜짝 놀란 뤼디거가 나를 돌아보았다.
“왜 여기에……! 들어가 있으십시오!”
“지금 그게 중요해요? 저기 도망가고 있잖아요!”
내 다그침에 뤼디거는 무어라 하고 싶은 표정으로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더니, 이내 암살자를 보지 않은 채 그대로 총을 왔다.
위험하게 무슨 짓인가 했더니 총알이 그대로 암살자의 다리에 명중했다.
기인열전 같은 묘기에 나는 입을 딱 벌린 채 뤼디거를 바라보았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나…….
하여튼 암살자를 죽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음을 놓기엔 아직 일렀다.
그대로 쓰러질 줄 알았던 암살자가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계속해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 불굴의 의지에 감탄마저 나왔다.
뤼디거는 방아쇠를 한 번 더 눌렀지만, 총탄이 발사되는 일은 없었다. 아까 쏜 총알이 마지막인 모양이었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 총알을 그렇게 보지도 않고 쏜 거였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이 사람.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는 사이에 암살자는 객실 문을 열고, 다음 객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안 돼! 이대로 놓쳐버리면……!’
마음이 급해진 나는 암살자를 멈추게 할 무언가가 없나 찾기 위해 이를 악물고 주변을 훑어 보았다.
내 눈에 근처에 세워진 웨건이 잡혔다.
식당 칸으로 옮기려는 와중에 암살자가 들이닥쳐 방치된 듯, 이리저리 흐트러진 모양새였다.
엉망이 된 음식 접시 사이로, 나는 후추통을 발견했다.
좋아, 바로 저거다!
나는 그대로 후추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칼에 스친 팔이 왼팔인 게 이렇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후추통을 가볍게 쥐어보았다. 둥글진 않지만, 손에 느껴지는 그립감이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
나는 후추통을 몇 번 허공으로 던졌다 받은 뒤, 제대로 자세를 취했다.
왼팔도 같이 흔들리며 찌르는 듯한 고통이 다시 엄습했지만, 당장 암살자가 도망치는 걸 보아하니 고통조차 잊혔다.
나는 그대로 암살자의 뒤통수를 향해 후추통을 던졌다.
매끄럽게 손끝을 타고 가는 느낌.
내가 이래 봬도 중학교 때 소프트볼로 전국체전까지 나갔다고!
몸이 바뀌었다 해서 시속 110km를 던져대던 실력이 죽진 않았는지, 후추통은 그대로 암살자의 뒤통수에 명중했다.
“크억!”
암살자는 단말마의 비명을 꼭 내지르더니,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좋았어!
내 얼굴에 화색이 번졌다.
하지만, 이내 문제를 깨달았다.
하필이면 암살자가 차량 연결 통로를 넘어가고 있는 찰나, 후추통이 그의 뒤통수에 맞은 것이다.
당연지사 이 세계의 기차는 KTX나 무궁화처럼 객차 사이가 통로막으로 가로막혀 있지 않았다.
암살자는 그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더니, 바로 기차 밖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 안 돼……!”
“이런…….”
기차 밖으로 떨어지는 암살자를 보며, 나는 비명을 질렀다. 뤼디거 또한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나와 뤼디거는 황급히 암살자가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암살자가 떨어졌다 해서 기차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당연지사 철로 밖으로 떨어진 암살자의 행방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죽었…….”
“……겠죠.”
뤼디거가 담담히 말을 받았다.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는 홀린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뤼디거 또한 나와 고개를 마주했다. 그도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한참을 그렇게 마주하고 있었다.
* * *
‘내가 살인을 하게 되다니…….’
나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었다.
맘만 같아선 양손으로 머리를 쥐고 흔들고 싶었지만, 왼팔에 칭칭 감긴 붕대가 거추장스러웠다.
하여튼, 나는 때 아닌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어차피 죽을 놈이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보려 해도, 그렇게 가벼운 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땅을 파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암살자의 죽음과는 별개로, 나에게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알겠어, 루카? 그런 상황에서는 함부로 덤벼드는 거 아니야. 만약 그놈이 칼이 아니라 소형 피스톨이라도 갖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두 번 다시 그러기만 해봐. 응?”
“…….”
나는 루카를 앉혀놓고 주야장천 잔소리를 했다. 뤼디거에게도 한차례 혼난 뒤였다.
루카의 딱 다물린 입술이 불만스레 움찔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루카는 묵묵히 꾸중을 감내했다.
종종 루카의 시선이 내 팔에 닿을 때마다 고개를 바닥으로 고꾸라트리는 걸 보아하니, 나름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두 번 다시 안 하겠다 답이라도 해야지! 고집은 얼마나 또 센지, 안 하겠다는 말은 절대 안 해요.’
나도 긴 잔소리가 썩 효과적이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되레 지루함과 반항만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하지만 말하면 말할수록 끊임없이 말이 솟아났다. 어쩌면 불안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루카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것들이 모이고 모여 나를 뒤흔들었다.
루카에게 대답을 갈구하는 것은, 그저 앞으로의 일에 대한 확실한 안전장치를 채우고 싶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