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8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 외전 5화
특별 외전 2. 루도비카 빈터발트
루도비카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얻게 된 늦둥이였다.
나와 뤼디거 사이의 금슬이 좋은 데다 딱히 피임하지 않은 걸 생각하면 참으로 힘들게 들어선 아이였다.
7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딱히 초조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루카가 있으니까.
나와 뤼디거 둘 다 루카를 친자식처럼 생각했고, 여차하면 작위도 루카에게 물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혹여 나 혼자 그리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뤼디거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저는 지금도 좋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저에 대한 유디트 씨의 관심이 더 적어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지금도 부족한데…….”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필수적인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 모두를 내 곁에서 보내는 남자가 할 법한 말은 아니었다.
하여튼 뤼디거의 의사가 그러하다는 걸 확인받고 나니 나 또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요, 애는 하늘의 뜻에 맡겨보자고요.”
그래. 생기면 좋고, 아니면 말고.
부부인 우리가 그런 느긋한 결정을 내린 것과 달리, 오히려 루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더 초조해했다.
“이제 진지하게 후계자 문제를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어? 도대체 애는 언제쯤 가질 거야?”
“어머, 루카. 아무리 너라고 해도 자식 계획에 왈가왈부하는 건 실례야. 이 이모는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내가 짐짓 엄한 척 눈을 깔고 톡 쏘아붙이자, 루카는 발끈하여 외쳤다.
“애초에 조카가 그런 걸 물어보게 하지 마! 이러다가 내가 빈터발트까지 물려받게 될까 봐 걱정돼서 그렇지!”
“걱정할 것까지야…….”
뤼디거를 쏙 빼닮은 루카는 고집이 셌다.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빈터발트를 잇지 않겠다 퍼드득 떠는 것이 그러했다.
하지만 본인의 신념이 그렇게 강경하다면야 강요하기도 좀 그랬다.
마이바움가는 몰라도 빈터발트가는 대영지다. 물려받을 누군가를 미리 정해 않으면 나중에 곤란해지기 십상이다.
지금은 뤼디거나 나나 건강하고 젊다지만, 사람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법 아니겠는가.
정작 뤼디거는 어떻게든 될 거라며 심드렁했지만.
루카가 싫다고 하니 역시 방계인 다비에게 물려줘야 할까……. 하지만 넌지시 그 이야기를 흘려보니, 다비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저, 저는 그거 감당 못 해요. 제발 저는 생각도 말아주세요, 부인.”
“하지만 다비, 루카가 싫다 하니 너밖에 없어. 빈터발트를 잇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야.”
“저는 자신 없어요. 전 버켄레이스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요. 게다가 원래 루카의 것이었잖아요. 분명 비교될 거예요. 으으, 생각만 해도 위장이, 으으…….”
다비는 그리 말하며 배를 움켜잡고 쓰러졌다. 처음에는 말을 피하기 위한 꾀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위경련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이사벨라가 묘하게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나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니, 나라고 해서 그렇게까지 싫어할 줄 알았나…….
하여튼 루카도 패스, 다비도 패스. 그렇다면 또 누가 있을까?
천하의 빈터발트가가 무슨 배구공이라도 된 것처럼 이리저리 토스 당한다니, 남들은 전혀 이해 못 할 일이었다.
그렇게 빈터발트가의 후계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즈음, 귀신같이 배 속에 루도비카가 들어섰다. 더 이상 후계자 자리를 배구공처럼 이리저리 떠넘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어쩌면 내 고민을 읽은 게 아닐까. 벌써 엄마의 고민을 덜어 주다니,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모두에게 소식을 전했다.
뜻밖의 임신 소식에 모두가 환호했다.
내 관심 운운하며 딱히 자식이 없어도 된다고 한 뤼디거는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감격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고, 노환으로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던 선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침실을 방방 뛰어다녔다.
임신 소식을 전해 들은 날, 소피아는 나이프를 다섯 번이나 바닥에 떨구었다고 했다. ‘그’ 소피아가!
그렇게 주변 모두가 격하게 새 생명을 환영하는 것과 달리, 정작 언제쯤 사촌 동생을 낳아줄 거냐 나를 달달 볶던 루카는 막상 임신 소식을 듣자 초조한 듯 둥글고 가지런한 손톱 끝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루카. 별로 안 기뻐?”
“기쁘긴 기쁜데…….”
그리 말하는 푸른 눈동자가 풍랑 치는 바다처럼 일렁였다.
“안 그래도 노산인데, 잘못되기라도 하면…….”
“노산은 무슨! 아직 팔팔하다고!”
노산이라는 단어에 발끈한 나는 루카의 허리를 꼬집었다.
옛날이었으면 머리를 쥐어박았을 텐데, 열일곱 살이 되어 훌쩍 자란 탓에 허리로 노선을 변경했다.
“하여튼 조심해. 안정, 또 안정이야. 괜히 운동한다고 뛰어다니지 말고, 자질구레한 건 로라 시키고. 손 하나 까닥이지 마. 알았지?”
“말도 마. 벌써 뤼디거 씨가 얼마나 유난인데.”
“하긴, 삼촌이 있으니까 그래도 한시름 놓이네.”
루카는 자신이 내 보호자라도 된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꼴을 보니 괜스레 빈정 상했던 나는 루카의 허리를 한 번 더 꼬집었다.
루카는 괜스레 꼬집힌 허리를 매만지며 허리 숙여 내 배에 대고 말했다.
“엄마 괴롭히지 마라, 꼬맹아.”
루카의 속삭임을 들은 것일까, 다행히 배 속의 아이는 무척이나 얌전했다. 입덧도, 별다른 복통도 없어 내심 안도했다.
내가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그랬을 때 뤼디거가 벌일 참사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예정일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렇게 많은 사람의 축복 아래 태어난 루도비카는 모두의 사랑을 머금고 무럭무럭 건강하고 튼실하게 자라났다.
다만 부모로서 걱정이 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게 아니라, 모두가 루도비카를 좋아하는 나머지 지나치게 오냐오냐하는 바람에 아이가 버르장머리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선왕은 물론이거니와 소피아도, 말리나 왕녀도, 다른 왕족들도 모두 루도비카를 둥기둥기했다.
애가 원하는 걸 말하기도 전에 손에 쥐여주는 건 예사요, 물놀이를 가고 싶다고 말하면 그대로 호수를 떠올 인간들이었다.
그나마 냉소적이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루카마저도 루도비카와 관련된 일에서는 뤼디거 뺨칠 정도로 주관적인 인간이 되곤 했다.
그리고 그 뒤처리는 결국 내 일이었고.
“루도비카 빈터발트!”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엄하게 루도비카를 불렀다.
“엄마가 초콜릿은 하루에 한 번, 착한 일 했을 때만 먹을 수 있다고 했잖아!”
“루비는 착한 일 했어.”
이제 일곱 살이 된 루도비카는 입 주변에 까만 초콜릿을 잔뜩 묻힌 채 웅얼거렸다.
혀까지 까만 것이, 어딜 봐도 하루에 허용된 초콜릿 그 이상을 섭취한 몰골이었다.
“루카 오빠가 자허토르테 한 판을 다 먹으려고 하기에 도와준 것뿐이야. 혼자서 초콜릿을 그렇게 많이 먹으면 안 되잖아.”
자허토르테는 살구잼을 넣은 초콜릿 스펀지케이크를 진한 초콜릿으로 덮어 만든 케이크로, 루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천연덕스러운 루도비카의 대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변명이나 거짓말이 아니라, 나름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말이라서 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애초에 루카가 문제다. 왜 초콜릿 케이크를 가져와서 애를 홀리느냔 말이야!
‘보나 마나 일부러 가져왔겠지.’
루도비카가 초콜릿이라면 눈이 돌아가는 걸 알고, 일부러 눈에 띄게 큰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온 게 분명했다.
루카가 이런 복병이 될 줄이야……. 요즘 루카는 루도비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최근, 루도비카는 루카의 금빛 머리카락을 보기만 해도 복도 끝까지 꽁무니 빠져라 달아나곤 했기 때문이다.
‘루도비카를 만날 때마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그렇지.’
그러니 이런 뇌물을 택한 모양인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모로서 이 일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강경하게 의지를 다잡은 나는 잠시 흐트러진 눈가에 힘을 준 채 엄히 일렀다.
“그러면 한 번에 다 먹으면 안 돼요, 남겨뒀다. 나중에 먹어야 해요, 했어야지!”
혼내지 않고 응석을 전부 받아주었다가는 나중에 아이가 폭군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절대 막아야 했던 나는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충치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이빨 아야 해봐야 그때 초콜릿 먹지 말걸, 하지!”
“힝.”
할 말이 없는지, 루도비카는 눈물을 글썽하며 내 뒤에 있는 뤼디거를 바라보았다. 나를 말려 주고 자신을 이 잔소리 지옥에서 꺼내주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뤼디거는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릴 뿐이었다. 아빠의 외면에 루도비카의 둥글고 뽀얀 얼굴에 쿠궁, 충격이 내려앉았다.
뤼디거의 짙은 눈썹은 잔뜩 찡그려진 채였고, 청회색 눈은 얼핏 보면 불쾌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히 사교계의 폭약다운 면상이다.
하지만 결혼 십여 년 차가 넘은 나는 그의 표정이 갖는 진의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네, 몰라 해.’
뤼디거는 루도비카한테 뭐라 말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루도비카의 편을 들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을 내고 싶지도 않은 거지.
그나마 뤼디거가 내가 입력한 명령어대로 행동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항상 아빠는 엄마 편이라며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뤼디거마저 루도비카의 떼를 받아주었다가는……. 어휴, 생각하기도 싫다.
서러운 듯 훌쩍훌쩍 우는 루도비카의 모습에 마음이 살짝 흔들렸지만, 부모로서 자식 교육을 위해 마음을 꾹 다잡은 나는 엄히 외쳤다.
“얼른 양치부터 해!”
“네에에에…….”
* * *
럼가트의 젊은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사교 클럽.
평소에는 아직 작위를 물려받지 않은 미숙한 어린 귀족들이 젠체하며 서로를 탐색하곤 했지만, 오늘 사교 클럽의 풍경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바로 사교계의 총아, 루카 마이바움이 간만에 사교 클럽에 행차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