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8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 외전 10화
보통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 ‘그’ 막시밀리안의 손을 거치면 천지개벽할 일로 뒤바뀌곤 했다.
손녀 선물로 케이크를 가져오는 평범한 발상이라니! 애초에 손녀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생각부터가 놀라웠다!
‘루카 때는 선물을 준다기보다는 필요한 물건을 보급해 주는 것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하긴, 뤼디거도 처음에 비하면 매우 유들유들해졌는데, 막시밀리안이라고 하여 변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유디트는 변화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뤼디거는 그러지 못하는 모양이다. 유디트는 뤼디거를 달랬다.
“그런데 루도비카가 아버님을 싫어하지 않는 게 왜 그리 억울해요. 따지고 보면 루도비카가 당신을 좋아해서 당신 얼굴을 닮은 아버님도 좋아하는 건데.”
“그게 문젭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 덕을 보는 게 싫습니다. 아니꼬워요.”
뤼디거는 미간을 찡그리며 진심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부자 관계가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 해서 평범하게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 만큼 이런 문제에서는 미묘한 알력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유디트는 기가 찼다. 자신이 막시밀리안이었으면 어이가 없었을 것 같았다. 아니, 자식이 부모를 닮지 부모가 자식을 닮는단 말인가?
하지만 정작 막시밀리안 본인은 별생각이 없을뿐더러 그가 뤼디거와의 관계에 있어 결백한 것도 아니기에, 유디트는 애써 뤼디거를 달랬다.
“그래도 아버님을 닮아서 이렇게 제 취향으로 태어난 거잖아요. 당신도 아버님 덕을 봤는걸요.”
“흠……. 그렇게 생각하니 봐드릴 수도 있겠군요.”
뤼디거는 그제야 유디트의 말이 옳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온 가족이 루도비카의 시합을 보기 위해 블루옌으로 모였다.
럼가트 전역에는 최근 구기 경 기의 인기가 드높았다.
뤼디거가 선왕, 이제는 선선왕이 된 유겐의 반대를 뚫고 유디트를 보기 위해 크로켓 경기에 나선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 사건 이후 크로켓에 관심이 확 쏠렸다. ‘그’ 뤼디거가 했다는 것과 더불어 흥미진진한 연애 스토리까지 곁들여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귀족들은 그런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뤼디거 이후로 슬금슬금 한두 명씩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운동하는 남자는 여러모로 인기가 많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초콜릿 케이크를 선물하는 것만큼이나, 여자들에게 있어 불패의 요소였다.
그렇게 크로켓이 신사적인 스포츠로 대두되자, 은근슬쩍 눈치를 보고 있던 유디트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를 저었다.
바로 여성 소프트볼을 전파한 것이다.
유디트는 돈도 많았고, 시간도 많았으며, 권력도 있었다. 그리고 소프트볼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집요했다.
처음 시작은 선수단을 꾸리는 것부터였다.
그녀가 주로 거주하는 세 곳, 블루옌과 빈터발트, 릴라니벨에 각각 구단을 만들어 아이들을 모았다.
공을 던지고 뜀박질만 해도 돈을 주고 밥을 먹여준다 하니, 근방의 돌 좀 던진다고 하는 여자 아이들이 싹 모였다.
유디트는 각각 3개월씩 돌아가며 규칙과 훈련을 시켰고, 그렇게 3년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3개의 구단을 이용하여 시합을 열었다.
우승팀과 MVP에게는 빵빵한 상금도 걸었다.
사람들은 소프트볼에 대한 흥미 자체보다도, 마이바움의 이름과 수도에 그럴듯한 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인 상금의 액수에 더 관심을 가졌다.
“소프트볼이라는 거, 돈이 꽤 되겠는데?”
“귀족 나으리 취미 사업이니, 흥미가 떨어지면 팽 당할걸요?”
“그래도 말이지…….”
우려 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꿀이 달아 보이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이왕 한 발 걸칠 거라면 남들보다 먼저 걸치는 게 이득이었다.
몇몇 이들은 본격적으로 소프트볼에 뛰어들었고, 그건 꽤 옳은 선택이었다.
소프트볼 스타, 클로이 해터의 등장으로 소프트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된 것이었다.
클로이에게서 재능을 본 유디트는 그녀를 본격적으로 육성했고, 클로이 또한 소프트볼에 전력을 다했다.
그녀의 뛰어난 활약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크나큰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클로이의 경기 장악력과 실력에 감탄했고, 뒤늦게 알게 된 그녀의 성장 스토리에 감동했다.
한때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던 그녀가 건강해져 남들보다 더 멋있는 활약을 한다. 클로이 해터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제2의 클로이가 되고 싶어 했고, 소프트볼을 하려고 몰려들었다. 그녀가 유년기를 보낸 크라벳가 27번지는 그녀의 팬이라면 응당 들러야 하는 성지 순례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이제는 유소년부까지 생길 정도로 소프트볼의 인기는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아 럼가트의 국민 스포츠가 될 정도였다.
거기에 왕가의 지원도 한몫했는데, 왕가에서 본격적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 유디트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클로이와 페어인 또 다른 스포츠 스타, 샤를로트 럼가트 때문이었다.
현왕 빅토리아 럼가트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동생인 그녀는 클로이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클로이가 소프트볼을 하기 시작한 걸 계기로 샤를로트 또한 소프트볼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 왕실에서는 연약한 샤를로트에게 너무 힘든 운동이 아니냐며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정말 병약했던 클로이가 소프트볼을 하며 점점 건강해지는 것을 보니 ‘그렇다면 해도 좋지 않을까……’ 정도로 의견의 추가 옮겨졌다.
고상한 왕녀가 운동을 한다!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높게 묶은 그녀의 다갈색 생머리가 휘날릴 때마다, 그녀의 타격이 쭉쭉 뻗어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소프트볼 스포츠 스타인 두 사람이 럼가트와 보아통의 국제 친선대회에 얼굴을 비치지 않을 리 없다.
특히나 친조카처럼 여기는 루도비카의 데뷔전이라면 더더욱.
두 사람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들을 알아본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아!”
“클로이! 여기 봐줘요!”
“샤를로트 님!”
두 사람은 익숙하게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며 내정된 특등석으로 향했다. 특등석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선선왕 전하와 왕녀 엘리자베스, 그리고 선대 빈터발트 공작 내외, 현 빈터발트 공작 뤼디거 등등…….
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를 하며 구석으로 향했다.
“저리 가.”
구석에서 카메라에 눈을 바짝 들이대고 있던 루카가 두 사람을 보지도 않고 툭 던졌다.
“왜? 남의 눈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잖아?”
“너희들이 오면 시끄러워져서 집중 안 돼. 이게 얼마나 집중을 요하는 줄 알아?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란 말이야.”
“루카 너는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지는 거 같아.”
“정확히 그때부터 하나도 변함이 없지.”
루카의 뒤에 조용히 앉아 있던 다비가 말을 받았다. 그렇게 클로이와 다비가 주거니 받거니 하거나 말거나, 루카는 카메라에서 시선을 뗀 사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클로이와 샤를로트, 다비는 그런 루카는 내버려 둔 채, 서로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번 시합 잘 봤어, 샤를로트, 클로이. 완봉승 축하해.”
“고마워.”
클로이는 이를 드러내며 호쾌하게 웃었다. 다비는 그 모습이 묘하게 유디트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너희 둘 다 인기가 장난 아니야. 그러고 보니 클로이, 너한테 최근 누가 고백하지 않았어?”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네.”
“윈터그린 오일.”
“아아, 그거 유용했지. 기억난다. 네가 조언해 준 거야?”
“아니, 루카가.”
“어쩐지. 간만에 쓸모 있는 선물이다 싶었거든.”
클로이가 손목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근육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니만큼 기꺼운 선물이었다.
“드레스니, 구두니, 보석이니, 그런 걸 선물하는 저의가 뭐야? 그걸 입고 어딜 가라고? 나는 평민이라고!”
클로이는 분통을 터트렸다. 슈퍼스타의 비애라고 해야 할지, 추종자가 많은 만큼 그녀는 구애도 많이 받았다. 그녀는 진절머리를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평민인 내가 자기들 청혼을 기꺼이 반길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싫어. 스물둘 넘어간 시점부터 진짜 지긋지긋해. 그럴 줄 알았으면 그냥 너희랑 사귀는 척하는 건데.”
그전까지는 루카와 다비, 두 사람 중 한 명이 클로이의 연인인 줄 알고 감히 고백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클로이가 몸서리치며 부인한 이후, 구혼서와 고백 편지가 물밀 듯 밀려들었다.
저 두 사람과 연인이라는 착각을 받는 건 끔찍했지만, 적어도 귀찮지는 않았을 것이다. 클로이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고생이 많네, 클로이.”
“샤를로트, 너는 자기 일 아니라고.”
“왕족이라 좋은 건 이런 점이라니까, 역시.”
샤를로트가 조용히 웃었다. 같은 스포츠 스타지만 왕족인 샤를로트에게 구혼하려면 더 까다롭고 어려운 절차가 있는 만큼, 샤를로트는 고백으로부터 퍽 자유로운 편이었다.
데이비드가 걱정스레 덧붙였다.
“여차하면 나나 루카 핑계를 대.”
“너희가 결혼 안 할 것도 아니잖아. 정작 너희 연애할 때 나 때문에 귀찮게 되는 게 더 싫어. 그러고 보니 샤를로트, 너는 아직 약혼 이야기 없어? 왕족은 약혼 같은 거 더 일찍 하지 않나?”
“나는 뭐……. 어린 시절부터 아바마마께서 나는 결혼 안 시킬 거라고 말씀하셨기도 하고.”
클로이는 다시 저에게로 돌아온 화살을 샤를로트에게 돌렸다. 샤를로트는 뭇 소녀들이 좋아하는 시원시원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
“전하와 마이바움 백작님도 결혼을 늦게 하셨잖아. 말리나 고모님이랑 죠세핀 언니는 미혼이고. 덕분에 좋은 핑계가 되기도 했지.”
현 황제인 빅토리아나 유디트나 결혼을 빨리한 편은 아니었다. 죠세핀은 페터 저머밀과 계 속해서 사귀고 있었지만 결혼을 한 건 아니었고.
클로이는 왕가의 저 자유분방한 결혼관이 사교계의 귀감이 되어 좀 더 널리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중얼거렸다.
“이래서 선례가 중요해, 선례가.”
“그만 떠들어, 이제 시합 시작한다.”
떠드는 사이 이런저런 개회식이 끝나고 경기 시간이 되었다. 양 팀이 경기장 가운데에 도열 했다.
루도비카도 그 사이에 있었다. 또래치고 키가 크다고는 하나 나이 많은 언니들과 함께 있으니 가운데 루도비카 쪽만 쑥 들어가 있었다.
보아통 쪽 감독은 유디트의 고향 친구이자 보아통의 왕비인 레아였다.
“유디트, 이번에는 기필코 우리가 이기고 말겠어!”
그녀는 허리에 팔을 얹고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소프트볼의 인기가 점점 퍼져 나가게 되자, 유디트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경쟁심을 불태우는 레아 또한 보아통에 소프트 볼부를 만들고 후원하기 시작했다.
원래 경기라는 건 독주 체재로 가기보단 라이벌이 있는 쪽이 더 재미있으므로 유디트로서는 쌍수 들고 반길 일이었다.
그렇게 양국 간 원정 경기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곤 했다.
선공은 럼가트였다.
보아통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서고, 럼가트의 1번 타자가 타자석에 섰다.
보아통 측에서도 유소년 부에 많은 투자를 했는지 1회 초에는 맥없이 아웃카운트를 내주었다.
한 명만 더 아웃되면 공수 교대가 되는 찰나, 홈팀 벤치에서 검은 머리를 동그랗게 틀어 올린 여자아이가 배트를 들고 타 자석으로 올라왔다.
아이의 모습이 드러나기가 무섭게 특등석에 있던 이들이 시끄럽게 외쳤다.
“멋지다, 루도비카!”
“루도비카, 힘내렴!”
“때려내면 초콜릿 하나야!”
엄숙하기로는 럼가트에서 1, 2위를 다투는 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응원하는 모습이 낯설기 짝이 없다.
그들의 응원만 보면 마치 엎치락뒤치락하는 7이닝 말에 등장한 구원 타자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응원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투수를 노려보는 어린 루도비카의 표정이 진지하기 짝이 없다.
반면 경기장의 다른 이들은 심드렁했다. 솔직히 루도비카 빈터발트는 감독의 연줄로 참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일 어린 선수가 아니던가. 다들 내심 1회는 이렇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런 관중들의 기세를 유디트가 모를 리 없었다. 감독 벤치에 있던 유디트가 외쳤다.
“할 수 있어, 루도비카!”
보아통의 투수가 공을 던졌다. 그리고 루도비카의 배트가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푸른 하늘에 하얀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구름을 가르고 지나갔다.
“우와아아아아!”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소년부에서 생각지도 못한 홈런이 튀어나왔는데, 그게 제일 어린 선수가 친 것이라니!
찰칵.
사진을 찍은 루카가 뒤늦게 일어서서 포효하듯 외쳤다.
“잘했어, 루도비카! 최고야!”
루도비카는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환호 소리 속에서, 활짝 웃으며 경기장을 뛰었다.
청명한 어느 봄날.
루도비카 빈터발트가 소프트볼 역사에 처음으로 그 이름을 기록한 날이었다.
-특별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