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9화
원작의 루카는 이렇게까지 막무가내에 고집불통인 성격이 아니었다.
뒤바뀌는 환경의 변화에 가만히 숨죽인 채 주변의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성격에 더 가까웠다.
지금 루카는 마치 원작의 후반부, 복수하는 때의 모습에 가까웠다.
호전적이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참 나.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거야, 나.’
나는 피식 웃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헛된 망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후반부의 성격 또한 루카의 본질에 숨어 있던 기질이었다.
원작과 다르게 환경이 바뀌면서 그런 성격이 일찍 드러났다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진 않다.
다만 바뀐 루카의 환경적 요소라고 해봐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밖에 없는 게 문제라고나 할까…….
그 이야기인즉슨,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서야 발현되었던 성격이 단지 나 하나 때문에 이르게 발현되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리 생각하면 내가 루카에게 미치는 영향이 썩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아 입맛이 썼다.
빙의한 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하나하나 곱씹고 있는데, 한참의 침묵 끝에 루카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이모.”
장장 3시간의 설교 끝에 얻어낸 쾌거에 나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보호자로서 체통을 지켜야 하는 법.
나는 성난 목소리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큼큼, 작게 헛기침을 하며 짐짓 다정한 척 덧붙였다.
“그래. 다신 그러지 마. 얼마나 깜짝 놀란 줄 알아? 그런 상황이 되면 뤼디거 삼촌이랑 이모한테 맡겨. 알았지?”
원작에서처럼 암살 시도에 루카 홀로 두려워하며 몸을 웅크리고 떠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이 이모가 어떻게 해서든 널 복수물이 아닌 성장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이번에야 조금 실수가 있었다지만…….
아, 또 갑자기 생각하니 우울해지네.
그렇게 내가 속으로 결연히 다짐하고 있을 때, 루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과 마주친 순간, 루카가 덤덤히 중얼거렸다.
“……역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이모.”
“뭘? 어딜?”
맥락과는 이어지지 않는, 전혀 뜬금없는 발언에 나는 의아히 되물었다.
루카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을 또박또박 말했다.
“엠덴 말이야. 이모는 빈터발트 가기 싫어했으니까.”
아니, 물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뜬금없는 루카의 말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루카를 혼내는 동안 잠시 빠져 있던 뤼디거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나와 루카에게 꽂혔다.
혹여나 루카가 나를 따라 엠덴으로 돌아간다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 게 분명했다.
‘그전까지는 내가 가기 싫다 해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엄마라고 사기까지 쳐가면서 말이야.’
그랬던 루카가 돌연 말을 바꾼 까닭이야 뻔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장에 나는 기가 찬 웃음을 지었다.
“루카, 너는 어쩌고.”
“……난 가야지. 할아버지랑 할머니 만나야 한다며. 하지만 이모랑은 상관없는 사람들이니까.”
참 나. 그 전에는 제 할머니 할아버지니 나한테는 엄마 아빠나 다름없다 그러더니?
말을 이렇게 쉽게 바꿀 수가. 이 이모는 루카를 그렇게 키운 적 없다. 비단 한 달뿐인 양육이었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는 슬쩍 떠보듯 물었다.
“왜 갑자기 엠덴으로 가도 된다 그래? 지금까지는 같이 빈터발트에 가자 그러더니.”
“생각이 바뀌었어.”
“이를 어쩌나. 이모 생각도 바뀌었는데.”
“뭐?”
심드렁한 내 대꾸에 루카가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마치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것 같은 낯에 내 입꼬리 한 쪽이 씰룩이며 올라갔다.
안 돼. 애를 놀리면서 좋아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지.
나는 바로 표정을 가다듬고는, 짐짓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빈터발트, 가고 싶어졌다고. 야, 이렇게 호화로운 기차며 드레스며 누릴 기회가 얼마나 될 것 같아?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칼에 베이는 와중에 무슨 드레스야?”
“그러게 겁도 없이 암살자한테 왜 덤볐어?”
내 말에 루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화를 참는 듯 씨근덕거리더니, 곧 나의 예전 발언을 들추어냈다.
“목가적이고 소박한 삶이 좋다면서.”
“성에서 공주님처럼 열 손가락 가득 반지 끼고, 송아지 스테이크 썰면서도 한 번 지내보고, 그러고 목가적이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이게 과연 어른스러운 대처인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지금 논리로 밀릴 순 없었다.
내가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루카는 심각한 낯으로 무언가에 골몰했다.
날 설득할 방법을 떠올리려 애쓰는 게 빤히 보였다.
루카가 어물어물 중얼거렸다.
“난 진짜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이모한테 같이 가자고 한 거란 말이야. 이모가 혹시라도 이상한 짓 할까 봐 데려온 건데…….”
“뭐라는 거야. 야, 내가 스물일곱이고 네가 열 살이야. 네가 스물일곱 살이 아니라!”
어처구니없었던 나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이상한 짓을 할까 봐 데려왔다니, 제가 무슨 내 보호자인가?
물론 원작의 유디트였다면 루카가 걱정하는 것도 익히 이해 가지만…….
그래도 그렇지, 루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내가 말한 대로 루카는 이제 고작 열 살이니까.
스물일곱 먹은 이모의 보호자인 척 굴기엔 루카는 너무 어렸다.
나를 책임질 필요도 없고,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 그런 나이.
나는 심란한 눈으로 루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카는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짐짓 단호하게 말했다.
“하여튼 나는 이모 호강시켜 주려고 데려온 거지,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하려고 데려온 거 아니라고. 그러니까 돌아가.”
“뭐래. 누가 들으면 네가 날 데려온 줄 알겠다. 아니거든? 내가 가고 싶어서 온 거거든?”
굳이 시시비비를 따지자면야 루카가 날 데려온 게 맞긴 하지만, 굳이 그렇다고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모르는 척 우겼다.
여행의 초반이었다면, 엠덴으로 돌려보내 준다는 말에 반색하고 기꺼워했을 터였다.
호화로운 기차니 드레스니, 사실 다 입에 발린 핑계라는 걸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았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들이 마냥 좋은 것만 있지는 않았다.
부상도 얻었고, 의도치 않은 살인에 대한 죄악감도 얻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루카와 엮이면 안 됐을지도…….’
내가 빙의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 길로 루카를 버리고 도망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소설의 굴레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모두 가정일 뿐이다.
결국, 나는 남았으니까.
혼자 남을 루카가 안쓰러웠고, 마찬가지로 홀로 떨어진 이 세상에 아는 이 하나 없는 나 자신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미련이 남아 엠덴에 남았다가, 그사이 붙어버린 정이 이제는 내 발목을 붙들었다.
그래, 정.
내가 이번 여행에서 얻어낸, 제일 무겁고도 버거운 것.
내가 지금, 엠덴으로 돌아가겠다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유일한 것.
‘지금 만약 내가 엠덴으로 돌아간다면……. 그래. 나는 별일 없을 거야. 하지만…….’
나는 흘끗, 우리 쪽으로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뤼디거를 곁눈질했다.
곧은 콧대와 깊은 눈두덩이 아래 그늘진 옆모습.
처음 봤을 때 감탄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별다른 일 없이 원작대로 흘러간다면 결국 뤼디거는 죽게 된단 말이지…….’
그리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비혼주의자인 것만으로도 인류의 상실인 남자다.
그가 만약 죽게 되면, 이 세상의 미남 농도가 유의미한 수치로 줄어들 게 분명했다.
아니, 이런 농담 어린 말은 전부 내 진심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다.
나는 그냥…….
‘적어도 그가 원작에서처럼 죽진 않았으면 좋겠어.’
게다가 루카도 마찬가지다.
이 시건방진 꼬맹이가 원작의 상황을 그대로 밟아가며, 상처받고 좌절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물론 내가 개입한다 해서 미래가 바뀌리란 보장은 없었다.
운명의 인과율이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을 테니까.
이번에 등장한 암살자 또한 결국 원작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내 목숨만 위험해지는 결과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으니까.’
그 일말의 가능성이 나를 충동질했다.
그래.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앞으로의 미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각오를 다진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해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나는 이모가 무슨 답을 내릴지 노심초사하는 루카를 빤히 보며 말했다.
“그런데 역시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뭐가. 엠덴에 돌아가는 거?”
“아니. 네 엄마로 가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