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20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20화
루카는 뭔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올려보았다.
엠덴으로 가라 했더니 뜬금없이 엄마가 되겠다 하니 종잡을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루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루카의 이모가 아닌 엄마로 갈 때의 이점에 대해 하나하나 진지하게 꼽아보았다.
“빈터발트에 가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아무래도 내가 권한을 가지는 쪽이 움직이기 편할 테니까. 이모로는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이모로 따라가면 다들 저 여자는 뭔가 싶을 거다.
뤼디거야 괜찮다 했지만, 보통은 빈터발트의 돈을 뜯어먹으려는 승냥이 취급하는 게 정상이니까.
그렇게 남들 눈총만 사고, 그렇다 해서 프란츠의 음모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에서 프란츠의 음모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엄마로 가게 되면…….
위험에야 좀 더 쉽게 노출되겠지만, 그만큼 움직일 명분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소설 속 위협 요소와 적대하는 상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만큼 방비도 가능할 테고.
나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카는 정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만큼 더 위험해.”
“너랑 뤼디거 씨가 지켜주면 되지.”
“그걸 말이라고 해?”
루카가 버럭 성을 내었다.
“삼……. 아저씨. 아저씨도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방금 삼촌이라고 하려고 했던 거 맞지? 아니, 삼촌을 삼촌이라고 부르면 되지, 뭘 또 황급히 말을 바꿔.
하지만 루카는 절대 뤼디거를 삼촌이라 부를 생각이 없는 듯, 아저씨라는 단어를 힘주어 반복했다.
재촉하는 루카의 말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뤼디거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무덤덤한 눈길에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내가 위험에 처해도 안 구해줄 생각인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건 아닌 듯, 뤼디거는 나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뭐…….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만.”
뤼디거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어딘지 모르게 안심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이번 암살자의 일로 루카를 데리고 엠덴으로 간다고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던 모양이다.
그랬는데 되레 빈터발트로 갈 의욕을 드러내니 한시름 놓았겠지.
반면 루카는 뤼디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홉떴다. 그리고는 쏘아붙이듯 몇 차례나 되물었다.
“……그렇게 되면 이모가 진짜 제 엄마가 되는 건데요? 아저씨 형이랑 얽히게 된다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니, 뭐…… 그게 뤼디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루카의 말은 마치 뤼디거가 나와의 관계에서 뭔가 기대하는 게 있는 것처럼 들렸다.
하하. 그럴 리가.
나는 흘끔 뤼디거를 곁눈질해 보았다. 뤼디거로서는 그저 루카의 이모라고 친절하게 대했을 뿐인데, 괜한 오해를 사게 한 것 같아 좀 미안했다.
“형의 여자인 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무, 물론 나도 뤼디거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새, 생각했지만!
본인 입으로 직접 듣는 건 또 파급력이 달랐다. 그것도 어찌나 칼같이 잘라 말하는지, 뤼디거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떨떠름한 심정이 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루카…… 봤니? 네 말 덕분에 이모는 안 맞아도 되는 뼈를 맞았단다…….
하지만 루카는 정말 진심으로 뤼디거가 나에게 무슨 감정을 품었다 생각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뤼디거는 진심 모르겠다는 듯, 청회색 눈동자로 물끄러미 루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이야 유디트 씨 말대로 우리가 지켜주면 되는 일이란다, 루카. 물론 위험에 빠트리는 게 아니라 말이지.”
뤼디거는 내 뼈뿐만 아니라 루카의 뼈도 때렸다.
내 부상과 관련된 화제가 떠오르기가 무섭게 루카의 입이 딱 다물렸다.
하여튼 뤼디거의 지원 사격이 있으니 든든하다.
나는 그것 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하여간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기는. 얘가 뭘 봐서 이러나 몰라. 루카 너, 앞으로도 사교계 루머 같은 신문은 볼 생각도 하지 마. 지금도 이런데 그런 걸 또 봐봐. 어휴.”
루카가 무어라 반발하려 했지만, 이미 승기는 이쪽으로 넘어온 뒤였다.
그렇게 나는 뤼디거의 묵인 아래, 루카의 엄마로 가장하여 빈터발트에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빈터발트 가를 상대로 한, 대사기극의 막이 올라버린 것이다.
복수극이 사기극으로……. 과연 성장물로 변할 날이 오긴 할 것인가…….
나는 아련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을 타고 들어오는 햇빛의 번쩍임에 유난히 눈이 시렸다.
CHAPTER3.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요, 다들
“엄마라고 불러봐, 루카. 엄, 마!”
“아, 그만 좀 해!”
나는 아직 말문도 열지 못한 갓난애에게 엄마 소리를 갈구하듯 루카를 재촉했다.
루카는 질색하며 진저리쳤지만, 난 물러서지 않았다. 되레 팔짱을 낀 채 엄격하게 일렀다.
“지금부터 입에 붙여놔야 가서 실수 안 하지.”
물론 진심 어린 걱정의 이면에는 루카를 놀리는 심정도 조금 있었다.
루카는 이런 식으로 놀림받는 것이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꼬았다. 시뻘게진 얼굴이 뜨끈뜨끈해 보였다.
“알아서 잘해! 저번에도 잘했잖아!”
“그래, 말 잘했다. 그때는 쉽게도 말하더니 왜 지금은 또 입 다물고 있어? 한 번 해봐. 엄, 마!”
“아, 진짜!”
루카는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바락 성을 냈다. 그러고는 나에게서 멀찍이 달아나, 객실에 딸린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잠갔다.
“루카!”
내가 연신 루카를 불렀지만, 방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참 나. 그렇게 질색할 건 없잖아.
그렇게 루카에게 엄마 소리를 들으려는 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한숨과 함께 어깨를 늘어트렸다.
다시 소파로 돌아와 털퍼덕 주저앉았다. 루카도 그렇게 떠나가고, 이제 객실 응접실에는 나와 뤼디거만이 남았다.
뤼디거와 좀 친해졌다고는 하나, 살갑게 수다를 떨 만한 사이까지는 아니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친했다면 카드게임이나 한 판 하자며 꼬드겨보는 건데.
아니야. 뤼디거는 카드게임 같은 건 도박 같아서 별로 안 좋아할 거야…….
나는 한숨과 함께 객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지난 암살 사건 이후, 객실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하지만 이 객실과 같은 등급의 VVIP 객실은 따로 없는지라, 결국 가구만 싹 바꾸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벽지를 비롯한 곳곳에 총격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심심했던 나는 벽에 그을린 총탄 자국이 몇 개인지 세어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어. 저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기차가 넓으니 이것저것 구경할 것도 많겠지. 식당 칸에 가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별생각 없이 객실을 나서려 했지만, 돌연 뤼디거가 나를 붙들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외출은 자제하십시오.”
“무슨 일이요?”
“암살자가 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아…….”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말문이 막혔다.
뤼디거의 우려와 달리, 기차에서 등장하는 암살자는 그자뿐이기 때문이었다.
프란츠라 하여 제 가문의 통솔권을 쥐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직 작위를 갖지 않은 백작가 자제가 부릴 수 있는 권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프란츠의 아버지이자 뤼디거의 첫째 숙부인 알베르가 프란츠의 편을 들어줬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는 딱히 야망에 찬 인물이 아니었다.
제 아들이 공작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 하는, 자신의 작위에 만족하는 그런 존재.
하지만 아들을 휘어잡을 정도로 강인한 것도 아니기에, 결국은 프란츠에게 질질 끌려가게 되지만…….
하여튼 지금은 프란츠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간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기차 암살 또한 그저 찔러보기에 가까웠고.
그러니 빈터발트에 도착할 때까지는 별로 신경 쓸 게 없었다. 다음 위협은 방계 모임이 있고 나서야 벌어지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그대로 밝힐 수 없는 만큼, 나는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다.
“뭐……. 암살자가 두 번 나타날 것 같지는 않은데요.”
“확신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하십시오. 그러면 바로 구해다 줄 테니까.”
암살자가 문제라면 자기도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냐? 솔직히 말해서 암살자가 노린 건 뤼디거와 루카였지, 내가 아니지 않나?
“멀리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식당 칸에만 다녀오는 건데요?”
“정 가고 싶다면 저와 함께 갑시다.”
“그러면 루카가 혼자 있잖아요.”
어린애를 혼자 두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나는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꾹꾹 누른 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간절함을 담아 뤼디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뤼디거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조금의 흔들림 없이 대꾸했다.
“그러면 방 안에 계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