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2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25화
“아뇨. 그게 아닙니다.”
뤼디거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제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말씀하셨던 것도 있고 해서 일찍이 챙겼어야 했는데…….”
“……네? 무슨…….”
예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거지. 나는 의아히 그를 바라보았다.
“양 손가락 모두 반지를 끼고 싶다 그러셨지 않습니까. 혹시 세트가 좋으십니까?”
이 미친 사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했다.
아니,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해? 루카도 이러지는 않겠다.
나는 곤혹을 누른 채, 최대한 의연히 대답했다.
“무슨 소리예요? 괜찮아요. 마님께서 선물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어머니 성정으로 미루어, 크고 귀한 것으로 준비해 주실 겁니다. 아마 혼수 대용이겠지요. 그럼 자잘한 걸 채우는 것이 제가 할 일 아니겠습니까.”
잠깐,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시작했어…….
소피아가 준비해 준다는, ‘가문의 격에 맞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나는 현기증으로 핑 도는 머리를 한쪽 손으로 부여잡고, 다른 손으로는 뤼디거를 진정시키듯 내저으며 말했다.
“저…… 진심으로 그 한 세트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빈터발트는 광산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빈터발트 사람이 보석을 한 세트만 갖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제가 사교계에 나갈 것도 아니고 한동안 이 성에만 있을 건데요, 뭐. 전 정말! 정말 괜찮습니다!”
“유디트 씨가 괜찮아도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만.”
뤼디거는 강경했다.
뤼디거와 공작 부인 둘 다 보석은 있어야 한다 주장하는 걸 보니, 귀족들은 옷을 입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액세서리까지 신경 쓰는 것이 관례인 모양이었다.
‘정말 귀족의 삶이란…….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은데…….’
전생에서는 하고 다니는 액세서리라고 해봐야 피어싱과 시계 정도가 다였다.
혹시라도 반지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귀걸이는 특히나 잘 없어지던데.
14k 귀걸이 한 짝이 없어졌을 때도 난리에 난리를 피웠다.
운이 좋아 가까스로 찾을 수 있었지만, 그때의 철렁이던 심정을 두 번 겪고 싶진 않았다.
하물며 공작가에서 자신하는 혼수용 보석이라니.
아무리 빈터발트에 적을 두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지만…….
‘으으, 귀찮고 부담스러워.’
하지만 선물을 주겠다는 당사자에게 그리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좋아. 소피아에게 한 세트, 뤼디거에게 한 세트…….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 정도면 괜찮겠지.
나는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가슴 근처로 들며 말했다.
“……그러면 뤼디거 씨에게 맡길게요.”
“걱정 마십시오. 제가 보석 보는 눈이 다른 가족들에 비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빈터발트로서 최소한의 눈썰미는 있습니다. 색별로 제일 괜찮은 것들을 골라오겠습니다.”
“자, 잠깐, 뭐라구요?”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작스레 튀어나온 청천벽력 같은 단어에 나는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뤼디거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천연덕스레 날 바라보았다.
“뭐가 말입니까?”
“왜 갑자기 ‘색별로’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냥 한 세트면 충분해요!”
“그러면 어머니가 준비한 한 세트를 더해봐야 두 세트가 아닙니까. 빈터발트 사람이 보석을 두 세트만 갖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요!”
아까는 한 세트 운운하더니, 그사이 말을 두 세트로 바꿨다.
이대로는 끝도 없이 증식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결론을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빈터발트 사람이 보석을 얼마나 갖고 있어야 하는 건데요?”
“음…….”
뤼디거가 진중히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골몰했다.
그는 무언가를 가늠하듯 검지 끝으로 팔걸이를 툭툭 치더니, 한참 끝에 진지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매일매일 돌아가며 해야 하니, 적어도 하루에 세 개씩, 백여 개는 기본으로 있어야 할 겁니다.”
“백 개요?!”
나는 펄쩍 뛰었다.
내가 질색을 하며 기겁을 하자, 그제야 뤼디거는 백 개를 한 번에 다 사는 것은 아니라고 우물쭈물 덧붙였다.
하지만 별로 효과적이진 못했다. 그는 약간 기가 죽은 목소리로 변명했다.
“유행을 따지면 좀 더 필요하긴 합니다만……. 일단은 말입니다. 일단은.”
“도대체 그 많은 보석을 언제 다 써요?”
“수도에서 열리는 파티 같은 경우는 한 달 이상 진행되기도 하니까요. 저희 가문 정도 되면 모두의 시선이 쏠리게 되고, 무슨 옷과 드레스를 입었는지 낱낱이 분석되기 마련입니다.”
“한 번 했던 걸 또 하면 되잖아요.”
“네? 물론 안 되는 건 아닙니다만……. 절대적으로 뒷말이 돌 겁니다. 저희 가문에서 유디트 씨를 홀대한다던가 하는.”
“그럼 보석을 한 번 쓰고 말아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갖고 있어 나쁠 건 없습니다. 나중에 비상금으로도 쓸 수 있을 테니,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두십시오.”
선물을 팔라고 주는 게 어디 있어? 무슨 상품권이냐?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는 뤼디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왜 당신이 선물한 걸 비상금으로 써요?”
“…….”
뤼디거의 입이 딱 다물렸다. 한 방 맞은 표정이었다.
그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당황한 뤼디거의 낯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답을 듣고자 한 말은 아니었다.
“됐어요. 그리 많이 있어 봐야 쓰지도 않는 걸. 전 안 쓰는 물건은 안 받아요. 그리고 받은 물건을 팔아서 돈 보태는 취미도 없고.”
이번엔 뤼디거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뤼디거의 얼굴은 다 좋은데, 표정 변화가 너무 미미했다.
조금만 더 노골적이었다면 참고가 많이 될 텐데. 나는 안타까이 혀를 찼다.
“……제 선물을 계속 갖고 있으실 생각입니까?”
“그럼 갖고 있지, 남 줘요?”
“아뇨, 그런 말이 아니라……. 조금 기뻐서 말입니다.”
“기뻐요? 뭐가요?”
기쁜 건 보통 선물을 받는 쪽 아닌가……. 물론 주는 쪽도 받는 쪽이 기뻐하면 기쁘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반응은 선물 주는 사람이 기뻐할 만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김이 빠지면 빠졌지.
영문을 알 수 없던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뤼디거는 고해하는 신자처럼 담담히 말을 이었다.
“사실 전 물건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는 편인지라……. 선물을 주고받는 것 또한 관습적인, 의무에 가까운 행위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의 동료들이 구애하는 여자에게 고심해서 선물을 고르는 것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입을 지금에라도 막아야 할 것 같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치솟았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뤼디거가 조금 수줍은 듯 덧붙였다.
“유디트 씨가 제가 선물한 물건을 계속 지니고 있어주겠다니 무척 고양되는군요. 다들 이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구애하는 여자에게 선물하는 건가 봅니다.”
아냐, 그거 아냐. 뭔가 당신 단단히 착각하고 있어.
나는 기겁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뤼디거와 여행할 때는 듣는 이라 해봐야 루카가 전부였지만, 이곳은 빈터발트였다.
듣는 귀가 많은 곳일뿐더러, 지금 이 방에는 수발드는 하녀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뤼디거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뒤에 기립해 있던 하녀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아……. 망했다…….
저기, 이 사람 말버릇이에요, 이거.
아주 고약한 말버릇. 사람 괜히 설레게 하는데 진심 하나도 없다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변명을 해도 누가 믿을까.
나만 해도 이 남자가 비혼주의자인 걸 몰랐더라면 홀라당 넘어갔을 텐데.
이 플러팅 머신 같으니…….
로봇 같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버튼이 눌릴 때마다 숨 쉬듯 플러팅을 하는 게, 플러팅 머신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빈터발트 공작가에 무슨 소문이 돌지 눈앞에 훤했다.
뤼디거랑 이상하게 엮이겠지, 분명……. 요나스도 모자라서 뤼디거도 꼬셨다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내 목소리에 짜증이 서리는 것도 당연했다.
“됐어요, 됐어. 또 이상한 말 한다. 그럴 거면 필요 없어요. 어차피 몇 개가 있어도 부족할 바에야, 그냥 공작 부인께서 선물해 주시는 하나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네요.”
내 으름장에 뤼디거는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각오한 듯, 결연히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두 세트, 두 세트만 받으십시오.”
“하지만.”
“더는 늘리지 않겠습니다. 정말, 숙녀라면 적어도 패물 세 세트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왕실 연회가 아닌 일반 가문의 연회도 최저 사흘은 여니까요.”
애초에 그런 연회에 갈 일이 없을 거 같은데…….
뤼디거의 열기 띤 항변은 계속 되었다.
나는 그런 뤼디거를 떨떠름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좀 낯설다, 너…….
어찌나 필사적인지, 내가 지금껏 본 그의 모습 중 제일 처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