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2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28화
뜬금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소피아는 나에게 대답해 주는 대신, 빈센트에게 눈짓했다.
소피아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빈센트는 바로 내 앞에 상자를 하나 가져다주었다.
납작한 상자는 제법 컸다. 섬세한 조각이 새겨진 표면은 은으로 도금되어, 사방이 진주와 작은 크리스털로 장식되어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땐 상자라기보다는 벽에 거는 부조로 착각했을 정도로 화려했다.
이런 상자 안에는 뭘 담아두는 걸까.
보석이라도 담아두지 않으면 격이 맞지 않겠는걸.
‘아…….’
그제야 나는 소피아가 지난번에 말했던 보석을 주기 위해 불렀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소피아가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열어보렴.”
나는 조심스레 상자의 잠금쇠를 풀었다.
혹여나 손톱에 상자가 긁힐까 조마조마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고, 나는 묵직한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치 방 안에 갑자기 태양이 떠오른 듯, 여러 갈래의 빛이 내 눈을 찔렀다.
물론 나도 소피아가 보석을 선물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각오를 하긴 했다.
빈터발트의 안주인이 가문의 격을 운운했으니, 상당히 화려한 것이 오리라는 것은 자명했으니까.
하지만 내 눈앞에 들이밀어진 소피아의 선물은, 내가 어떤 각오를 해도 이 빈터발트 가 사람들의 스케일에는 평생 못 미치리라는 것을 확신케 해주었다.
보석이 주렁주렁 매달린 목걸이라니?
게다가 하나하나의 크기가 내 손톱만 했다. 보석의 무게를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뻐근해져 왔다.
영롱하기는 또 어찌나 영롱한지, 차마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보석의 환한 빛에 내 앞에 앉은 소피아의 검은 상복이 반짝이는 연회용 드레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소피아의 선물은 내 상상을 그대로 파괴했다.
다른 집안의 가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보석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뤼디거의 그런 소비 습관이 어디서 나온 건지 미리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래도 뤼디거에게는 이런 것은 못 받는다 면박을 주기라도 할 수 있지, 소피아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목걸이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한 발짝 물러서 있던 집사 빈센트가 흠흠,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빈터발트 광산에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는 무척 유명합니다. 5캐럿을 넘어가는 건 얼음 요정의 눈물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물론 요정의 눈물이라 불리기엔 크기가 다소 크지만요.”
“그러니까……?”
“그게 바로 이거란 거지.”
소피아는 다이아몬드 패물 세트를 가리키며 새침하게 말했다.
나로서는 보는 것만으로도 현실성이 사라지는 보석을 바라보는 소피아의 눈빛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뭐, 기간이 촉박했는데 집사가 나쁘지 않은 걸 잘 찾아내서 다행이로구나.”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만약 이 목걸이를 하고 파티에 나간다면, 연회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로서는 그런 상황이 정말 질색이었다.
‘그렇게까지 눈에 띄고 싶진 않은데…….’
내가 눈에 띄면 띌수록 알고 있는 미래에 관한 변수가 많아 진다. 그런 일은 사양이었다.
게다가 이런 목걸이를 사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아니, 애초에 살 수 있는 물건이기나 한 걸까?
전생의 재산을 탈탈 털어도 이 목걸이의 다이아몬드 하나도 사지 못할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잃어버리는 게 부담스럽고의 영역을 넘었다.
나는 부담스러움이 역력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저…… 부인. 이건 너무 과하지 않은지…….”
“과하다니? 네가 비록 가문에 입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빈터발트 가의 사람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게, 대령님도 보석을 선물해 주겠다 하셔서요. 이렇게까지 좋은 건 괜찮아요.”
“……뤼디거가? 하긴, 걔도 생각이 있으면 옷만 선물한 게 멍청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겠지.”
소피아는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선물을 물러달라는 내 의도와는 백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대답이었다.
그녀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자기 아들 흉을 보며 덧붙였다.
“솔직히 뤼디거 걔는 보석 보는 눈이 좀 떨어져서 말이야. 그럴듯한 거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해.”
이 겨울의 성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그녀의 나긋하고 침착한 목소리에서 쉽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그냥 그럴듯한 게 아닌 것 같아서 문제인데요……!’
소피아는 별것 아닌 듯 말했지만, 나는 옆에 서 있는 빈센트의 동공이 작게 흔들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내가 말문이 막힌 채 멍하니 있자, 소피아가 나를 재촉했다.
“한 번 차보렴. 캐시, 도와주려무나.”
“자, 잠깐.”
나는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지만, 캐시라는 하녀가 움직이는 게 먼저였다.
캐시는 내 저항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은 채 내 목에 목걸이를 걸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도 뤼디거가 양장점에서 맞춘 고급이었지만, 수십 개가 넘는 다이아몬드의 광채 앞에선 빛이 바랬다.
“역시 젊고 예뻐서 그런가 화사하니 보기 좋구나. 잘 어울려. 옷이 좀 죽는 느낌이긴 하지만, 어차피 드레스를 맞춰야 하니까.”
소피아는 내 모습을 눈으로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썹이 미미하게 들썩이는 것을 제외하곤 미동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은 마치 얼음조각 같았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목걸이의 무게 때문에 목이 조금 앞으로 기운 것 같았다.
이런 걸 귀와 손에도 얹을 생각을 하니 벌써 막막함이 몰려 왔다.
나는 해쓱해진 안색으로 목걸이가 없어졌음에도 영롱한 빛을 뿌리는, 보석함 속에 남은 보석들을 바라보았다.
* * *
단지 선물을 받았을 뿐인데 기력이 쪽 빠졌다.
그날 종일 나는 보석이 있는 곳을 왔다 갔다 했다. 혹시라도 그사이에 없어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좌불안석인 와중, 그날 저녁, 뤼디거가 돌아왔다.
막 밖에서 돌아왔는지 검은 코트를 펄럭이며 거침없이 내 방 안으로 들이닥친 그는 겨울과 죽음의 신처럼 보였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그의 코트 자락에선 바깥바람 냄새가 났다.
괜히 나까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그에게 찬물을 건넸다.
그는 흔쾌히 물을 받아 바로 목을 축였다.
나도 모르게 그의 목울대가 거칠게 움직이며 물을 넘기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아, 맞아. 이럴 때가 아니지.
안 그래도 뤼디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일이 많았다 보니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나는 다급히 소피아가 건넨 보석에 대해 말했다.
“너무 크고 부담스럽던데, 이걸 어떻게 해요? 공작 부인께서는 이번 방계 모임에서 그 목걸이를 하길 바라시던데.”
소피아에게 선물을 받았다 말하기가 무섭게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한발 늦었군요.”
“뭐가요?”
“제가 먼저 챙겨주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뤼디거는 그리 말하며 품을 뒤적였다. 벨벳으로 싸인 고급 보석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나는 뤼디거가 나에게 줄 보석을 위해 외출했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심장에 무언가가 훅 하고 들어왔다.
괜스레 숨이 가빠오고, 얼굴이 뜨거웠다. 뤼디거가 마시던 찬물을 빼앗아 내가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 하지만 목이 메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뭐……. 저로선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걸요.”
“그래도 첫 보석 선물은 각별한 법 아니겠습니까.”
의미심장한 말에 다시 한 번 심장이 뛰었다.
이 미친 플러팅쟁이……!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얘도 만만찮은 꾼이다. 선량한 나라는 여자를 쥐고 흔들려는 꾼이다…….
나는 애써 마음을 차게 가라앉 히기 위해 노력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최대한 그에게 휘둘리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긴 한데, 결혼반지도 아니고요. 선물에 순서가 어디 있어요.”
그리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나로서는 그냥 그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별것 아닌 발언이었다.
“……그렇지요. 결혼반지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걸 잠시 잊었네요.”
뤼디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원체 무뚝뚝하니 표정 변화가 없는 사내였던 만큼, 드물게 웃는 모습이 눈에 선명히 띄었다.
당황한 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만 깜빡였다.
도대체 내 말의 어느 부분이 그를 기껍게 만든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여튼 늦었습니다만……. 받아주십시오.”
그러면서 들이민 보석함을 나는 얼떨떨해하며 받았다.
그래도 보석함이 하나뿐인 걸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색별로’라느니, ‘서른 개는 되어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에 지레 놀랐었는데…….
소피아가 건넨 보석함에 비하면 훨씬 친숙하다.
원래라면 이 보석함의 보석도 낯설고 어색한 것이었을 테지만, 소피아의 다이아몬드에 비하면 엄청난 심리적 안도감이 들었다.
과연 뤼디거가 어떤 걸 골라왔을까 기대되기까지 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때, 하인 두셋이 줄줄이 내 방에 찾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뤼디거가 들고 온 보석함과 같은 것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