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2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29화
하나, 둘, 셋……. 저게 다 몇 개야. 어처구니가 없어진 난 황당하게 되물었다.
“잠깐, 분명 두 세트로 합의했잖아요?”
“네, 그런데 제가 생각해 보니 유디트 씨의 취향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일단 제가 추려 왔으니, 한 번 보십시오.”
하인들이 탁자 위에 보석상자를 하나씩 늘어놓았다.
뚜껑을 열어놓고 나니, 각양각색의 보석들이 빛을 발했다.
다양한 보석이 이렇게까지 늘어져 있는 걸 본 적은 귀금속 집에서, 그것도 시계 줄을 맞추러 갔을 때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중에서 두 개를 고르라?
“차라리 보석상을 부르지 그랬어요?”
“보석상이 오는데도 시간이 걸리니까요. 제 눈에 차는 것이나 원하는 게 없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보석상 부르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랬단 말이렷다.
당장 내일 사교계 데뷔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급한 일도 아닌데.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는 뤼디거가 고이 품에 안고 왔고, 이제는 내 품에 안긴 보석함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면 이거 하나는 왜 따로 들고 온 거예요? 영락없이 속았네.”
“아……. 그건 제가 꼭 유디트 씨에게 드리고 싶은 거라.”
뤼디거가 덤덤히 답했다.
그가 뭘 골랐는지 괜스레 궁금해지는 마음이 반절, 그러면 남은 하나를 고르게 하고자 저 많은 보석을 사 왔다는 말인가 싶은 황당함이 반절이었다.
하여튼 확인이나 해보자 싶었던 나는 내 품에 들린 상자를 열었다.
맑고 투명한 연보랏빛 보석이 내 눈빛 아래 말갛게 빛났다.
“라벤더 다이아몬드입니다. 유디트 씨의 눈동자 색과 닮은 색이라, 어렵게 구해봤습니다.”
“음……. 어……. 고마워요.”
뤼디거가 특별히 골랐다는 그 보석은 내 마음에도 쏙 들어버렸던지라, 다른 보석들에 대해 캐물을 생각이 일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 틈을 타 뤼디거가 날 달래듯 나직한 목소리로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다른 보석은 나중에 시간 되실 때 천천히 고르시고, 한 번 차보시겠습니까? 유디트 씨가 보석을 찬 모습을 생각하며 열심히 말을 몰았습니다.”
“뭐……. 그럴까요.”
뤼디거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단호하게 내치기도 뭐하다.
무엇보다도 나 주겠다고 이렇게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정성이 있는데…….
게다가 최근 계속 붙어 다니느라 잠시 잊었는데, 난 이 남자 목소리에 약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들으니까 파괴력이 세네.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내가 누그러진 걸 눈치챘는지, 뤼디거가 성큼 거리를 좁혀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그의 눈에 맞추고 있던 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내가 턱 끝을 치켜든 채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사이, 그의 손이 내 품에 있던 보석함을 자연스레 가져갔다.
그러고는 로라에게 보석함을 건네고는, 능숙한 손짓으로 검은 장갑을 벗었다.
그의 마디진 커다란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거절할 수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채워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물론이죠.”
나는 뤼디거에게 목을 내어준 채 뒤돌아섰다.
머리는 항시 틀어 올리고 있으니, 머리를 걷어 올리고 뭐고 할 것 없이 그냥 채우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곧 목걸이를 쥔 뤼디거의 손이 내 시야에 얼핏 비쳤다, 이내 사라졌다.
금방 목걸이를 채워줄 거라는 생각과 달리, 뤼디거는 한참을 내 뒤에서 머물렀다.
목 뒤로 이어지는 손길이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나도 목걸이 고리를 여닫는 게 익숙지 않으니까. 뤼디거의 커다란 손이면 더 힘들겠지.
나는 별생각 없이 제안했다.
“그냥 제가 할까요?”
“네?”
“앞으로 채워서 뒤로 돌리면 되니까요. 아니면 로라도 있고.”
“아, 아닙니다. 다 했습니다.”
뤼디거는 허겁지겁 부산을 떨었다.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보이는 건 딱히 없었지만, 커다란 덩치가 움직이는 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다 했다는 말이 우습게도, 뤼디거는 오 분가량을 더 목걸이와 씨름했다.
간신히 목걸이를 채운 그는 뿌듯함 반, 면구스러움 반인 얼굴로 머쓱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에 익숙지 않아서. 연습하겠습니다.”
연습은 무슨……. 이런 일이 앞으로도 종종 있을 것처럼 말 한다.
픽 웃은 나는 목걸이의 보석이 놓여 있을 가슴팍을 손으로 매만지며 물었다.
“어때요? 괜찮아요?”
“예. 상상 이상입니다.”
뤼디거는 그리 말하며 로라에게 손짓했다. 무슨 뜻인가 했더니, 거울을 가져오란 말이었나 보다.
로라가 바로 내 앞에 거울을 들이밀었다. 연보라색 목걸이가 내 가슴팍 사이에서 영롱히 빛났다.
머리색이 엷어서 그런지, 색이 강한 보석도 나쁘진 않지만 이런 것도 은은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활짝 웃으며 로라에게 물었다.
“로라, 네가 보기엔 어때?”
“자, 잘 어울리세요, 마님.”
로라는 저한테 물을 줄은 몰랐다는 듯, 떨떠름히 답했다. 어색 한 대답은 어떻게 들어도 진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별로 안 어울리나…….
조금 시무룩해진 나는 다시 거울을 보았다. 하지만 다시 봐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내가 맘에 들면 그만이지! 선물을 사준 당사자도 마음에 든다 하고 말이야.
금방 기운을 차린 나는 흡족히 웃으며 뤼디거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제가 팔찌도 도와드려도 될까요?”
“팔찌 정도는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그리 말하며 팔찌도 집어 드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의 손에서 팔찌가 유난히도 가늘어 보였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끊어질 것 같은 아스라함이, 거미줄에 아침 이슬을 낱낱이 꿴 듯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왼팔을 건넸다. 오른팔을 자주 쓰다 보니 거추장스러운 시계나 액세서리는 항상 왼팔에 차곤 했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소매가 거추장스러운 위치인지라, 나는 팔찌를 채우기 쉽게 소매를 걷어 올렸다.
하지만 뤼디거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오도카니 내 팔을 바라보았다.
뤼디거의 이상한 행동이 의아했던 나는 그를 재촉했다.
“뤼디거 씨?”
“팔이.”
“네?”
그는 답 대신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팔에 뭐라도 묻었나 싶었던 나는 팔을 들어보았다. 옷소매 사이로 드러난 팔에 상처가 불그스레하니 남아 있었다.
“아…….”
붕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처가 아물어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뤼디거의 입술이 못마땅하게 비틀렸다.
“팔에 흉이 지겠군요.”
“뭘요. 긁힌 상처 많아요. 이렇게 흠집 좀 난다고 해서 문제없어요.”
실제로 예전 내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여기저기 부딪혀서 멍 자국도 많았고, 소프트볼부였을 때 생긴 상처들로 무릎이 엉망이기도 했다.
물론 자상은 처음이었지만……. 팔이 잘린 것도 아니고, 흉 정도야. 이전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하지만 뤼디거는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마치 제 심장의 표피가 갈라진 듯한 낯으로 내 상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전부 제가 미숙하게 대처한 탓입니다.”
“이게 왜 뤼디거 씨 탓이에요?”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시시비비를 가리자면야 열 살짜리 애가 튀어나가는 걸 방관한 데다 멍청하게 팔을 들어 막은 내 탓이겠지.
뤼디거가 어느 부분에서 죄책감을 느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아닙니다. 제가 진즉 그자를 처리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화력이 떨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견제하느라 바로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뤼디거는 한숨과 함께 내 팔에 팔찌를 걸었다. 목걸이는 한참 헤매더니, 이번엔 좀 더 능숙하게 채워주었다.
그는 눈을 내리깐 채, 흉터 위로 가로지르듯 늘어트린 라벤더 다이아 팔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시선을 들어, 나와 눈을 맞추며 결연히 말했다.
“제가 책임 지겠습니다.”
……네?
언뜻 들으면 고백이라 착각할 법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나도 이제 뤼디거와 만난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그사이 들은 의미가 모호한 발언만 해도 셀 수가 없었다.
절대! 착각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뭐, 흔히들 착각할 만한 의미가 아니라 상처가 나을 때까지 책임지고 도와주겠단 뜻이겠지, 뭐.
하지만 처음 듣는 사람들은 경악해 마지않을 것이다. 애초에 뤼디거가 아무에게나 이런 발언을 흩뿌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면야.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듣고 있던 로라의 얼굴은 마치 선 채로 기절할 것처럼 질려 있었다.
하긴, 로라의 입장에서는 뤼디거가 형수한테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보일 테니 충격이 더 클 것이다.
지난번에는 구애하는 여자 운운해서 하녀들을 경악하게 만들더니…….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야 나도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다 보니 그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흘러가 버렸지만, 로라는 앞으로도 자주 부딪혀야 하는 사이였다.
나는 변명 반, 해명 반의 심정으로 또박또박 대꾸했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 책임지고 의료지원을 해주시겠다는 뜻인 거 다 알아요. 책임감도 강하셔라.”
“그게 아니라.”
“아, 책임지고 암살자의 배후도 찾아내 주신다고요? 역시 믿음직스러우시네요. 그럼, 대령님만 믿을게요!”
나는 뤼디거가 절대 ‘그런’, 남자가 여자를 책임지는 의미로 책임진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피력했다.
강경한 내 반박에 번번이 말문이 막히자, 뤼디거는 드물게 당황한 낯이었다.
하지만 뤼디거가 아무리 당황해 봐야 로라와 내가 당황한 것만 못 할 것이다.
나는 뤼디거가 괜한 헛소리로 분위기를 또 이상하게 만들까 서둘러 그의 등을 떠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뤼디거 씨도 오늘 오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아뇨,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알아듣지 못한 건지, 일부러 저러는 건지.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목소리와 함께 이마에 손을 내 짚었다.
“아, 그래요? 군인이라 그런지 체력이 정말 좋으시네요. 근데 전 오늘 너무 피곤해서요. 보석을 너무 많이 봤더니 눈앞이 반짝반짝 현기증이 나네요.”
“아……. 그러면 쉬셔야겠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제야 뤼디거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에 수많은 보석 세트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