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3화
뺨이라도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떨떨했던 나는 멍하니 루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유디트’의 기억을 떠올리며 익히 유디트와 루카의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충격적인 건 충격적인 것이었다.
물론 평소 두 사람의 대화는…….
‘루카, 이 밥버러지 같은 것 같으니. 그만 처먹고 가서 돈이나 벌어와!’
‘이 빵 벌어온 건 나야. 밥버러지는 이모라고!’
……이런 식이었다.
그래. 평소엔 가시 돋친 말로 쏘아붙이다가 갑자기 살갑게 대하면 수상쩍지, 수상쩍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유디트의 말투가 저 지경인데 루카의 말투가 얌전한 것도 이상했다.
‘유디트 잘못이네, 유디트 잘못이야.’
나는 전지적 루카 엄마의 입장이 되어 루카의 편을 들었다.
나 자신의 편을 차마 들지 못할 이유가 너무나 많았기도 했고…….
애초에 루카는 소설 속 주인공이었던지라 애정이 가는 상대였다.
‘좋아하던 소설 주인공이니까 당연하지.’
좋아. 한 번 요리를 해주는 거로 단번에 마음을 열 수 있을 거라곤 기대도 안 했다.
루카의 엄마, 라리사가 죽고 무려 5년이나 지났다.
물론 유디트가 루카를 5년 전부터 심하게 학대한 건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루카를 귀찮아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방치가 점점 에스컬레이터를 탔을 뿐.
하지만 근 3년 사이에는 방치를 넘어 학대에 가까워져 있었다.
딱 루카의 외모가 피어오른 시기부터였다.
3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특히나 어린 시절의 3년은 유난히 긴 법이었다.
루카가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 충분히 각오했다.
시간 여유도 있고…….
루카의 숙부인 뤼디거 빈터발트가 루카를 데리러 오는 건 루카의 열 살 오월제 때니까…….
딱 일 년 남았다.
그러고 보니 루카, 얘는 오월제 때마다 매번 아프나? 원작에서 뤼디거가 찾아왔을 때도 아프더니.
뤼디거는 지금으로부터 일 년 뒤, 루카의 아빠 요나스가 낙마로 죽고 난 뒤에야 루카의 존재를 알게 되어 부랴부랴 마이바움 저택을 찾아오게 된다.
그런데 웬걸. 집에는 불덩이처럼 열이 오른 루카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유디트는 루카가 앓든 말든 상관하지 않은 채 오월제를 즐기고 있던 도중이었다.
뤼디거는 밤늦게 집에 돌아온 유디트와 마주하고야 루카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는 길길이 화를 내며 외친다.
뤼디거는 조카인 루카를 돈 받고 팔아먹으려는 그녀의 모습을 경멸한다.
결국 뤼디거는 유디트가 원하는 대로 돈을 치르는 대신, 그녀를 루카의 인생에서 아주 끊어내기로 결심한다.
유디트는 한 움큼 쥐어지는 돈다발에 희희낙락한다. 거추장스러운 눈엣가시를 치우고 거금까지 얻게 되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그렇게 루카를 팔아치운 유디트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시원해한다.
하지만 거금은 쉽게 들어온 것만큼이나 쉽게 나갔다.
금세 그 돈을 탕진한 유디트는 빈터발트에서 더욱 돈을 받아내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루카의 주변을 맴돌다 사고를 치게 되는데…….
하여튼 그 일로 루카는 자신을 위해 화를 내준 뤼디거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따르게 되지만, 유디트에게는 완전히 기대를 접고 포기하게 된다.
뭐……. 이제 내가 유디트니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하여튼 루카가 빈터발트에 갈 때, 적어도 팔려갔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원작에서 루카에게 그 부분이 큰 상처로 남았으니까.
안 그래도 앞으로 역경이 눈앞에 첩첩이 펼쳐진 애인데 굳이 그런 안 좋은 기억을 하나 더 얹어주고 싶진 않았다.
루카의 미래를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맺힌다. 나는 손으로 눈가를 콕콕 찍어 눌렀다.
소설로 볼 때야 재밌다! 카타르시스 넘친다! 외치며 봤지만, 막상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어린아이의 앞에 그런 인생이 펼쳐진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루카는 결국 승리자로서 인생의 결말을 맞이하지만, 인생이 딱히 행복했느냐 묻는다면…….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어린애다운 일말의 여유도 없이 이리저리 치여 살아온, 안타까운 인생이었다.
그 박복한 인생에 적어도 일 년 정도는 나쁘지 않은 기억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앞으로 일 년 남짓.
그동안 루카의 마음을 전부 돌리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셈이었다.
밥도 챙겨주고, 말 한마디라도 더 붙여보려고 하고, 같이 산책도 하고…….
한 달 동안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루카의 닫힌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경계하며 달아나기가 일쑤다 보니, 되레 더 얼굴 마주치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아픈 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제저녁 루카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밤새 앓았다.
피하던 내 손길도 가만히 누운 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몸이 아프면 마음도 느슨해진다고, 루카의 경계심이 점점 허물어지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끙끙 앓으면서도 곁에 있는 나를 확인하고 안도하는 루카의 숨결.
그래도 유일한 혈육이라고 끝내 미워하지 못하는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찡하니 아려왔다.
집에서 앓고 있을 루카를 생각하니, 약초를 채집하는 손끝이 매서워졌다.
“좋아, 어차피 약초 뜯으러 나온 김이니까……. 좀만 더 뜯어서 소시지 사는 데 보태야지.”
역시 아플 땐 고기가 최고다.
어린아이면 더더욱.
나는 의욕적으로 약초를 채집했다.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새벽의 어스름한 시간이 지나고 해가 서서히 나뭇잎 사이를 가르고 내리쬐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해서 굽히고 있던 허리를 폈다.
“아구구구.”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한 번도 펴지 않은 척추 뼈가 바로 서며 뚜두둑 소리가 났다.
나는 허리를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바구니 가득 찬 약초 더미를 흡족히 내려다보았다.
“이제 슬슬 마을로 돌아갈까.”
성과가 제법 뿌듯했던지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다져진 흙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도중, 갑자기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마차가 지척까지 온 뒤였다.
“뭐, 뭐야!”
스치고 지나갈 듯 가까운 마차의 모습에 뒷걸음질 치다 발이 꼬였다.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야야야…….”
하필이면 넘어진 곳이 진창이다. 옷이 완전 엉망이 되었다.
사람이 쓰러진 걸 모른 건지, 아니면 알 필요가 없는 건지. 마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언뜻 본 마차는 무척 휘황찬란했다.
아마 축제를 보기 위해 놀러 온 귀족 나으리 같은데.
“하여간 여기나 저기나, 비싼 차 끄는 놈들 매너가 똥매너야, 진짜.”
대놓고 욕을 해주고 싶어도 상대가 없다.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것으로나마 속을 달랬다.
나는 더러워진 옷을 툭툭 털고 터덜터덜 마을로 향했다.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갈까 싶었지만, 그 시간이 아까웠다.
오월제 당일이라 그런지 마을 광장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북적북적했다.
악기를 꺼내 정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급하게 울타리의 보수 공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이를 광주리를 든 여인네들이 오가며 식사하라 외치고 있었다.
다들 축제로 바쁜 와중, 나는 어깨를 움츠러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약재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유디트의 기억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마을 사람들과 만나는 게 썩 편하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생각하는 유디트의 모습에 맞춰줄 자신도 없었고.
그렇게 남들 눈을 피한다고 피했지만, 아주 눈에 띄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여, 유디트. 오늘도 남자 찾으러 왔어? 근데 꼴이 왜 그래? 새로운 전략이야?”
킬킬거리며 묻는 목소리엔 호기심과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유디트’는 엠덴 마을에서 그쪽으로 엄청 유명했다.
그러니까 남자 잘 물어서 편하게 살려는, 그런 부류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모만 믿고 조건 재가면서 뻗대다가 정작 혼기는 다 지나가고 노처녀를 코앞에 두게 되었다 말할 때, ‘유디트 꼴 났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유명했다.
아니, 스물일곱이 어때서? 아직 어리기만 하구만, 참 나.
나는 한숨과 함께 상대를 돌아 보았다. 빚다 만 반죽 같은 사내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