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32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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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와의 대화를 통해 뤼디거와의 사이에 관한 말이 돌 거라는 걸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그걸 굳이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복도를 지나던 중,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하녀들의 뒷말을 들어버렸다.
모르는 척 지나쳐야 하나 싶었지만, 뭐라고 말하나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들어봤자 내 욕이 뻔할 텐데도 그놈의 호기심이 뭔지.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번에 둘째 도련님이 그 여자한테 보석을 몇십 상자나 선물했다는 이야기 들었어?”
“장난 아니라는데. 일부러 수도에 가서 엄선해 온 거라고 들었어.”
뭔가 과장된 거 같은데.
몇십 상자가 아니라 열 몇 상자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 상자만 고르고 돌려줄 거라고!
“게다가 그 여자가 마님께 선물 받은 목걸이, 들었어?”
“마님도 부담스럽다며 잘 쓰지 않는 크기의 보석을 턱턱 안겼다며?”
“얼음요정의 눈물이 무려 수십 개나 달린 목걸이야. 그거 하나만 팔아도 목 좋은 곳의 저택을 몇 채나 살 수 있을걸?”
헉, 그 정도였나.
비쌀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어림잡았던 것 이상이었다.
혹여 흠이 나기라도 하거나 보석 하나라도 탈주하면 얼마나 속이 쓰릴까…….
생각만 해도 속상했다.
최, 최대한 안 차는 쪽으로…….
착용하더라도 정말 조심하도록 하고…….
“그 여자가 뭐가 예쁘다고 다들 그러는 거지? 원래 그렇게 누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맞아. 나 여기서 5년 동안 일했는데 그런 모습 처음 봤어.”
그러게…….
소피아가 나를 맘에 들어하는 건 바네사 왕녀가 생각나서가 맞는 것 같은데, 뤼디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모르겠네…….
나한테 특별히 대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로라가 생각하는 것처럼 날 좋아해서는 아닌 거 같고.
정말 내가 루카 이모라는 이유 때문일까?
뤼디거의 생각만큼은 저도 의문이니 답을 알면 알려주십시오, 하녀님들…….
“마님이야 뭐……. 요나스 도련님이 그렇게 세상을 뜨고 상심이 크셨는데 요나스 도련님을 똑 닮은 아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꼴이잖아. 예쁠 만도 하지.”
“하지만 신분도 제대로 모르는 여자를? 몰락 귀족이라던데.”
“몰락 귀족이 뭐야. 그냥 평민이었어도 반겼을걸? 사실 그 여자의 핏줄이 중요한 게 아니지.”
“뤼디거 도련님은 또 왜 그 여자에게 잘해주는 거야?”
“어찌 됐든 요나스 도련님 때문에 미혼모로 십 년이나 산 거 아냐. 그게 안쓰러워서 더 챙겨주는 거 아냐?”
“‘그’ 뤼디거 도련님이?”
“하긴 그건 그렇네. 아니면, 정말로 그 여자한테 반한 거 아냐?”
“꺅, 싫어!”
“본심 나왔네. 너, 은근히 뤼디거 도련님 마음에 두고 있어서 그렇지?”
“아니, 뭐……. 멀리서 보고 좋아하는 것 정도는 자유잖아.”
투덜거리는 하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뤼디거가 잘생기긴 잘생겼다니까…….’
취향이 비슷해서 그런가.
방금까지 내 욕을 하고 있던이라는 것도 잊은 채 왠지 모를 동질감이 치밀었다.
좋아. 이쯤 들었으면 됐다.
욕도 배부를 만큼 먹었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았다.
오늘 먹은 욕 덕분에, 암살자의 위협으로 가슴 철렁이면서 줄어버린 수명이 고스란히 되돌아온 것 같았다.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뜨려던 순간, 돌아서는 나를 붙드는 목소리에 절로 귀가 쫑긋거렸다.
“그게 아니면, 그 여자가 작정하고 꼬신 거 아냐?”
“뭐? 어떻게?”
“뻔하지, 뭐.”
하녀들이 말도 안 된다며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흘러가는 대화의 양상에, 내 등 뒤로 식은땀이 또록 흘렀다.
내가 듣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하녀들은 분위기에 취해 말의 수위를 점점 높여갔다.
“솔직히 요나스 도련님하고 하룻밤 보내서 애를 가졌을 정도면 그 여자도 장난 아닐걸? 요나스 도련님이 아무하고나 어울리던 거 아니잖아. 손이 빠르긴 하지만 그만큼 눈도 높다고.”
“그럴 만큼 예쁜 얼굴은 아닌 거 같은데. 성깔도 장난 아닌 것 같고.”
“그러니까 그걸 죽여주게 잘 하는 게 분명하다고.”
실제로 요나스와 하룻밤을 지새운 건 내가 아니라 나보다. 훨씬 예쁜 라리사였다.
그랬으니 요나스가 택했을 테지만…….
아니, 이 외모가 어때서?
이 정도면 진짜 미인이라고!
남들이 보기에 유디트의 얼굴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유디트도 라리사와 루카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가 심해진 걸 생각하면…….
참 나,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물론 성격 나빠 보인다는 건 나도 이의가 없었다.
내가 유디트의 얼굴을 봤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마부와 만났을 때도 애써 상냥한 척한 거였는데.
성에 들어와서도 최대한 조곤조곤 말하려고 했고…….
하, 하여튼 죽여주게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데요!
하지만 내 외침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불쑥 밖으로 뛰쳐나가 전부 허황한 거짓말이라 외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랬다가는 되레 남의 말을 엿듣다니, 예의 없는 인간이라는 평판만 얹어질 게 분명했으니까.
어쩌다 보니 별로인 얼굴로 요나스를 꼬실 만큼 가볍고 음탕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아, 이건 좀 최악인데.
생각했던 것 중 제일 좋지 않은 경우의 수가 뽑혀버렸다.
“그래도 형의 여자인데?”
“뭐, 개족보가 드문 것도 아니고. 귀족 나으리들 사이에선 왕왕 있잖아.”
“그래도 그렇지. 설마 뤼디거 도련님이……. 마님은 그 꼴을 알고 계시려나? 모르시니까 그 여자를 예쁘다 하며 두고 보는 거겠지?”
“그렇겠지.”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리네, 아주. 애를 핑계로 가문에 들어서서 분탕질 칠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 왜 마님과 도련님은 그걸 모르나 몰라.”
“나중엔 이 공작가가 전부 그 여자 손에 떨어지는 거 아냐? 공작가의 앞날이 깜깜하다, 깜깜해.”
그러더니 시간 되었다며 저들끼리 도란대며 복도 너머로 사라져 갔다.
복도에 홀로 남은 나는 한동안 그대로 멀거니 서 있었다.
정신적 타격을 너무 받아 한숨을 내쉴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종합해 보자면 내가 요나스도 꼬셨고, 뤼디거도 꼬셨다?
형제를 두 손에 쥐락펴락했다, 이거 아냐.
그들의 대화 속 나는 완전히 희대의 요부였다.
허, 참.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나마 여자들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들어서 다행이다.
남자들 사이에선 더했으면 더했지 덜한 말이 오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요나스와의 관계야 그들 좋을 대로 떠들어도 상관없지만, 문제는 뤼디거였다.
벌써 이런 소문이 도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문의 내용은 점점 심각해질 것이다.
그나마 뤼디거와 요나스가 전혀 닮은 데가 없고, 루카가 요나스 판박이인 게 다행일까…….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루카가 뤼디거의 아이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으리라는 것에 예전 집 보증금도 걸 수 있다.
혹여나 소문이 다른 사람들 귀에도 들어가면…….
물론 소피아도, 뤼디거도 하녀들의 소문에 휘둘릴 사람들 같지는 않았지만, 루카가 듣게 될 때가 문제였다.
어른스러운 척해도 아이인데, 제 이모가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정말 뤼디거와의 관계를 오해해도 곤란했다.
게다가 방계 모임도 곧이었고.
소문을 어떻게 잡긴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나는 막막함에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이렇게 의기소침해질 수는 없지.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좋아. 통제를 벗어난 문제일수록 차근차근 처리하면 의외로 일이 쉽게 처리되기 마련이다.
일단 내부를 점검하고, 외부에서 한 번에 일망타진하면 되겠지.
우선은 소문의 근원인 뤼디거의 행실부터다.
적어도 그가 수시로 플러팅해 대는 것만 멈춰도, 로라에게 말한 대로 루카의 엄마에 대한 책임 정도로 포장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결연히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