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3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33화
* * *
“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씀입니다.”
뤼디거의 표정은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와 같은 무덤덤한 낯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건지, 아니면 다 알면서 나를 엿 먹이려고 묻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애초에 대화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던 걸까?
나는 그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한 번 곰곰이 되짚어봤다.
“저기, 뤼디거 씨. 선물을 받고 바로 이런 말씀 드리기가 참 죄송스럽긴 한데…….”
“편히 말씀 주십시오.”
“선물도 정말 감사드리고, 저에게 잘해주시는 것도 참 고마워요. 뤼디거 씨가 아니었다면 빈터발트까지 이렇게 편히 오진 못했을 것 같아요.”
“아닙니다. 유디트 씨께서 기뻐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그래.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열심히 쿠션을 깔았고…….
그 당시만 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에 용기를 얻어, 나는 조심스레 화두를 꺼냈다.
“그런데……. 저희, 잠시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입니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돌연 뤼디거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이유를 추궁하듯 나를 내려다보는 청회색 눈빛은 석영 조각처럼 무기질적이었다.
뤼디거의 표정 자체는 변함이 없었지만, 분위기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다.
왠지 모를 한기 같은 것이 피부에 스며들어 오한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물러설 수는 없는 법. 나는 목적했던 바를 위해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생각해 보니, 저희가 일단은 지금, 형수랑 시동생이잖아요? 아, 물론 제가 형수랍시고 나서려는 건 아니구요. 일단, 관계만 따지면.”
“그렇지요.”
“그러다 보니, 그, 뤼디거 씨의 친절함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색하다니요?”
“보통은……. 형수에게 그렇게까지 하진 않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남편도 없고, 현재는 과부나 다름없는 상태잖아요. 그래서 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디트 씨가 말씀하시는 그 다른 사람이 누굽니까?”
누구냐니. 물어서 뭘 어쩌려고. 차마 그리 물을 용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뤼디거의 안색에는 북풍이 쌩쌩 불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스래 주눅이 들 정도였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저택이 뒤집힐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어물어물 말을 흐렸다.
“어, 다들……. 그, 저택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빈센트가 뭐라 했습니까?”
“네? 집사님이요? 아뇨.”
집사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부정했다.
뤼디거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별반 변명하지 않았음에도 저 홀로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집사는 어머니의 수족이니 당연하겠군요. 그러면 당신을 신경 쓰게 한 것이 도대체 누굽니까?”
“어……. 하녀들이라든가…….”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보통 뒷말이 나온다고 하면 하녀들을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뤼디거는 전혀 영문을 모르겠는 모양이다. 하녀들이라는 말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라고 말해버린 것이었다. 그게 지금 현재 상황이었다.
아니, 무슨 상관이냐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지.
당연히 단박에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나서부터 열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트리니 말문이 막혔다.
나는 떨떠름함을 미처 숨기지 못한 채, 차근히 말했다.
“당연히 상관이 있죠. 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 생각을 어떻게 신경 안 써요?”
“유디트 씨는 그런 게 신경 쓰이십니까? 그럼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뤼디거의 말에서는 그런 것들의 시선을 왜 신경 쓰느냐는 어조가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처리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묘하게 거슬리는 단어들이 많은데…….
물론 뤼디거가 호텔 벨보이나 승무원, 가게 직원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비롯하여 하녀들이 두려워하는 걸로 미루어, 그의 성격이 소설에 기술된 것 이상으로 만만치는 않으리라는 걸 짐작했다.
그래도 첫인상이 원체 좋았다 보니, 어느 정도 상식인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물론 귀족이니 어느 정도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고집이 센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지금 뤼디거의 발언은 거만을 넘어 좀 싸한 구석이 있었다.
설마…….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겠지.
나는 치미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며, 뤼디거에게 보다 친화적인 소재를 이용해 그의 공감을 이끌어내려 했다.
“처리까진 아니고……. 아니, 오히려 그러면 더 말이 나오지 않아요? 그, 뤼디거 씨도 군대에 계시면서 병사들 사기라든가, 부대 분위기 같은 걸 신경…….”
“신경 안 씁니다. 분란을 일으키는 대원은 군법대로 처리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아, 네…….”
군법……. 군법이란 말이지요……. 다들 말을 아주 잘 듣겠네요…….
딱 자르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분란은 군법으로 처리한다는데, 그에 뭐라 대꾸하겠는가?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여기서도 군법대로 처리하겠다. 말할 것 같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뤼디거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애초에 태어나길 다르게 태어난 사람을 보듯이. 마치 개가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듯 내 면면을 살피던 그가 돌연 물었다.
“유디트 씨는 왜 그렇게까지 하녀들을 신경 씁니까?”
“네?”
뤼디거의 발언에 더욱 영문을 알 수 없어져 버렸다.
내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자, 뤼디거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하녀들의 발언에 대해 걱정하시는 것도 그렇고, 평소 하녀에게 자주 웃어주시더군요. 왜 그러신 겁니까?”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아니……. 웃을 수도 있지. 웃으면 안 되는 건가?
원래 하녀와는 거리를 둬야 하는 건가? 내가 너무 격식 없이 대했나?
설마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싶었던 나는 조심스레 뤼디거를 떠보았다.
“보통…… 이 정도는 다들 신경 쓰지 않나요? 그래도 더불어 사는 세상인데…….”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뤼디거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모래성의 모래를 긁어내는 것처럼 조심조심 접근했다.
“그, 상대가 절 싫어하면 신경 쓰이잖아요. 그러니까 서로서로 배려하는…….”
“타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왜 신경 쓰입니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아닙니까?”
헐……. 육성으로 헐이라고 할 뻔했다, 지금.
지금까지는 무언가 뤼디거와 가치관이 거하게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싶어 전전긍긍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내가 유디트의 기억이 있다 해도 결국은 빙의자고, 뤼디거는 이 세계에서 삼십여 년간 살아온 사람이니까.
게다가 신분 차에 의한 차이도 있으니만큼 대부분의 괴리감은 내 문제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건 아냐. 얘 이상해. 이건 얘가 이상한 거 맞는 거 같아!
애초에 내가 격식이 없었으면 다른 사람에게서 진즉 그런 기색이 느껴졌을 거야.
로라라든가, 소피아라든가…….
하다못해 하녀들이 뒷담을 할 때라도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뤼디거가 소피아의 매정함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건…….’
소피아의 사랑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었을까.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사내라면, 모친의 사랑 또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래도 엄마잖아.’
물론 과거에도 그랬을 리는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 생각에 점점 확신의 무게가 실렸다.
‘이 사람한테는 그냥 타인 대부분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존재가 아닐까.’
가문으로 얽힌 책임감 정도가 그를 붙들고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작중에서 루카를 성심성의껏 돌본 것도 책임감 때문이었지.
입이 바싹 말랐다. 지금껏 공감할 수 있다 당연스레 여겼던 상대가 갑자기 이질적인 무언가로 돌변한 기분이었다.
저런 사람을 보고 속세에서 벗어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니, 이럴 수가…….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려다 숨을 들이켰다. 본인을 앞에 두고 한숨 쉬는 건 좀 그렇지.
하지만 마땅히 대꾸할 말도 없었다.
모친이 본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신경 안 쓰인다는 사람인데, 타인의 호불호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에휴. 포기다, 포기.
뤼디거는 뤼디거 나름의 가치관 아래 삼십여 년을 살아왔을 텐데, 거기에 고작 한 달 만난 내가 뭐라 입을 댄다 해서 생각을 바꿀 리가 없다.
뤼디거에게 공동체 사회의 까다로움에 관해 설명하는 걸 단념한 나는 씁쓰레 웃으며 덧붙였다.
“음……. 전 뤼디거 씨가 절 싫어하면 신경 쓰일 것 같아요.”
“…….”
그냥 별생각 없이, 대화 사이의 가교로 던진 발언이었지만 뤼디거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