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34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34화
그는 나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아까는 내 기색이 어떠한지 탐색했다고 한다면, 이번엔 내 낯에서 무언가 찾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찾았는지에 관해선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한참 끝에 뤼디거가 입을 열었다.
“하긴 저도 유디트 씨가 절 싫어하는 건 신경 쓰일 것 같군요.”
아……. 그래? 그 정도 공감은 돼서 다행이네.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덕목이긴 하지.
소설 속 뤼디거는 반사회적 인간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고.
어떻게 생각하면, 공감은 감정의 전이다.
뤼디거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유리한 것은, 자신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가 그런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아, 그렇게 생각하니 동정심이 또…….
게다가 그런 내 가설을 지지하기라도 하듯, 뤼디거가 생각지 못한 말을 꺼냈다.
“좋습니다. 유디트 씨가 하녀들의 발언이 신경 쓰인다 하니…….”
뤼디거의 절충적 발언에 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금껏 벽 보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 노력이 보답받은 기분이었다.
뤼디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러면 하녀를 다 내쫓는 건 어떻습니까? 그리고 새로 뽑는 겁니다.”
아, 맞아. 얘 프로 하녀 해고러였지……. 만약 원래 세계였다면 고용노동부 감시대상자였을 게 분명했다.
잠깐이나마 나한테 감화된 줄 알고 얼마나 감동했는데……. 내 감동 돌려줘!
허무하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하녀들을 해고하려는 뤼디거를 말리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황급히 뤼디거를 붙들었다.
“아, 아뇨. 그렇게까진.”
“아닙니다. 되레 제가 신경 쓰이는군요. 역시 한 번 물갈이하는 게 좋겠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 아니겠습니까. 군대에서도 상관이 새로 배치될 때, 고참 부관이 있는 경우 가끔 텃세를 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 역시 군법대로 처리합니다만…….”
“아뇨, 아뇨. 괜찮아요.”
나는 뤼디거의 말을 잘랐다. 그대로 뒀다가는 더 무슨 말을 할지 무서웠다.
격렬히 당황해하는 내 기색에 뤼디거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히 그는 내가 하녀들을 신경 쓰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제가 하녀를 해고하는 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당연하죠!”
“하지만 유디트 씨에 대해 입을 가벼이 놀린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그냥 두면 계속 유디트 씨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입을 댈 겁니다. 그런데도 말입니까?”
없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뭐, 그 정도쯤이야…….
실질적으로 그 사람들 뒷담 때문에 아직 피해 본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나도 사람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겨우 그 일로 일자리에서 잘리는 건 너무 냉혹한 처사가 아닐까.
잘은 몰라도 빈터발트 성의 하녀로 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엠덴 마을 근처 그린할텐 백작가에서도 가끔 하녀를 뽑곤 했는데, 거기에 지원하기 위해선 귀족의 추천장이 필요했다.
하녀 일은 상당히 괜찮았다.
봉급도 나쁘지 않고, 귀족들의 생활을 곁에서 지키는 만큼 본인이 똑똑하기만 하다면야 반사 이익을 얻을 수도 있는 위치였다.
물론 다른 속셈이 있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그 ‘다른 속셈’이 있는 부류에는 원래의 유디트 또한 포함되었다.
몰락 귀족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친까지는 귀족이었던 만큼, 귀족의 추천장 정도야 충분히 얻을 수 있었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유디트는 하녀 일에 지원하지 않았다.
물론, 루카를 보육원에 보내야 한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고…….
언니, 라리사는 사교계 데뷔를 했는데, 저는 미처 못 했다는 아쉬움과 미련 때문이었다.
유디트는 자신 또한 언젠가 라리사처럼 사교계에 나가서, 자신에게 반한 귀족 사내와 제대로 된 결혼에 성공하리라는 꿈과 야망이 있었다.
하지만 사교계에 나섰을 때, 귀족의 하녀로 일했다는 경력은 독이었다.
귀족들과 얼굴을 마주치며 일했던 만큼, 하녀 시절의 일이 수면으로 수시로 끌려 나온다.
차라리 평민처럼 살았던 삶이 더 포장하기 쉬울 정도였다.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지금 내가 되짚어 보면 현실감 없는 선택이기는 했다.
뭐, 그 덕에 지금 내가 빈터발트에 와 있는 것이긴 할 테지만.
좌우지간, 백작가도 그리 까다롭게 사람을 뽑는데, 공작가인 빈터발트 가는 더할 것이다.
힘들게 취직했는데 갑자기 일자리에서 잘리면 곤란하지 않을까.
취직난을 몸소 겪었던 사람으로서, 그녀들에게 선처하고자 하는 측은지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 내 사정일 뿐이고.
태어나기를 갑에서 태어나 갑으로 살아온 뤼디거는 그런 아랫사람들의 사정은 전혀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냉정히 덧붙였다.
“솔직히 전 하녀 같은 것 때문에 제 행동을 자제한다거나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할 필요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그러니 원래 하던 대로 합시다.”
“원래…… 하던 대로요?”
“예. 당신과 나, 원래 사이 대로. 그러면 하녀를 해고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뤼디거 이 자식…….
말투만 듣고 있으면 엄청 내 편의를 봐주는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그가 양보한 건 하나도 없었다.
은근히 약삭빠르단 말이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뤼디거를 바라보았다. 멀끔한 얼굴은 뻔뻔할 정도로 천연덕스러웠다.
만약 내가 그래도 거리를 두는 게 낫겠다 주장하면, ‘그렇습니까? 그럼.’ 하고는 바로 빈센트를 찾아가 하녀를 해고할 것 같았다.
내 마음을 돌릴 만한 다른 시도가 존재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마치 방해물을 제거하듯이.
그렇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뤼디거의 말대로 하겠다 답할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약점 잡힌 기분인데, 뤼디거는 그것이 내 약점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결국 오늘의 대화는 아무런 소득 없이, 피로감만을 남기고 끝이 났다.
아니, 뤼디거의 이상한 면을 확신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랄까…….
나는 뤼디거와 저녁 식사까지 함께한 뒤에야,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착잡함에 입이 썼다.
* * *
그 뒤, 나는 어떻게 해야 뤼디거의 시도 때도 없는 플러팅을 별것 아닌 일처럼 포장할 수 있는지 골몰했다.
‘소피아에게 말해서 통제하는 건 어떨까……. 아니야. 소피아도 뤼디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모자가 나란히 앉아 특유의 무덤덤한 낯으로 ‘하녀들을 싹 물갈이하는 건 어때?’ 하고 묻는 모습을 떠올리니 속이 탁 틀어 막힌 듯 답답했다.
나는 산책길 중간에 있는 정자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평소였다면 로라와 함께 산책할 시간이었지만, 머리가 복잡해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 흘러가는 구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
그렇게 내가 푸른 하늘에 흩어진 흰 뭉게구름이 바람 움직이는 대로 흘러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도중, 정원 저 끝에서 하녀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관과 서관 사이에 놓인 정원은 하녀들도 종종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정원 중에서도 조금 으슥한 곳이니만큼, 눈에 잘 띄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한 나는 잔뜩 흐트러진 방만한 자세 그대로 빈둥거렸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하녀들의 목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당황한 나는 허겁지겁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하녀들 모습이 내 시야에 잡혔다.
가까스로 품위를 챙길 수 있었던 나는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깜짝 놀랐, 아, 왜 찔러?”
“저기…….”
“헉.”
뒤늦게 나를 발견한 하녀들이 숨을 들이켰다. 가까이서 들은 하녀들의 목소리가 낯이 익었다.
뤼디거와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냐는 뒷담을 하던 하녀들이었다.
‘얘들아……. 내가 그래도 너희가 해고당하지 않게 노력했단다. 너네는 모르겠지만…….’
그때 뤼디거와의 대화를 떠올리니 갑자기 아련함이 치밀었다.
막막하고, 답답하고……. 고생했다, 나…….
물론 내가 그런 일을 했다고 저들이 알아주길 바란 건 아니었다.
딱히 알아달라 한 일도 아니거니와, 내가 너희를 위해 이러이러했다며 으스대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들이 나를 여전히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것에 딱히 배신감을 느끼거나 분노하진 않았다.
그저 피차 편한 사이가 아닌 만큼, 그녀들이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고 그대로 나를 스쳐 지나가거나, 혹은 보지 못한 척 다른 길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웬걸. 하녀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나에게 쪼르르 달려오는 게 아닌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하녀 무리의 기세가 마치 내달리는 토끼 떼 같아서,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저……. 마, 마님!”
“……응? 무, 무슨 일이니?”
저쪽도 말을 더듬고, 나도 말을 더듬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양쪽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막상 기세 좋게 달려와 놓고선, 하녀들은 서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서로를 떠밀더니, 그렇게 하녀 하나가 불쑥 앞으로 튀어나왔다.
어쩔 수 없이 앞에 나선 하녀는 손을 치마에 쓱쓱 문지르더니, 힘껏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그…….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