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3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35화
“으응? 뭘?”
영문을 알 수 없던 나는 얼떨떨해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그게 겸손으로 비쳤는지, 하녀들은 더욱 감격한 낯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집사장님께 들었어요. 저희가 입을 가볍게 놀린 게 큰 마님 귀에 들어갔다면서요. 입 가벼운 것들을 어떻게 쓰느냐 노발대발하셨다고……. 큰 마님께서는 왕족 시녀 출신이라 하녀들의 몸가짐에 더욱 까다로우시거든요.”
“당장 소개장 없이 자르고, 사교계에 소문내서 두 번 다시 귀족가에서는 일 못 하게 하려고 하셨다면서요?”
총대를 멘 하녀의 설명이 부족했다 여겼는지, 뒤에 있던 다른 하녀가 말을 보탰다.
그, 그새 그런 일이 있었나……?
하긴, 하녀들의 뒷말이 내 귀에 들어올 정도면 소피아의 귀에 들어간 것도 이상치는 않았다.
그런데 그게 왜 나한테 감사할 일이 되는지 여전히 모르겠네.
일단 분위기를 살피자. 나는 되묻는 대신 입을 딱 다물고 하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빈터발트에서 잘리면 럼가트 어느 귀족가에서도 일을 못 해요. 하녀 일은 못 한다고 보면 돼요.”
“게다가 큰 마님은 강경하셔서……. 한 번 정한 마음을 아랫것들 간청에 바꾸고 그러시는 분이 아니거든요.”
“공작님과 둘째 도련님도 그렇고……. 두 분 다 더할 나위 없이 귀족다운 분들이라 사사로운 것들은 개의치 않으시거든요.”
그래그래. 이 집안사람들이 좀 그렇지.
특히나 뤼디거 말이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하녀들을 전부 내쫓으면 되겠느냐 묻던 그의 평온한 표정을 떠올리니, 다시 속이 답답해져 왔다.
“그런데 작은 마님께서 큰 마님을 말려주셨다면서요? 작은 마님께서 막아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네?
큰 마님이 어쩌고 한 이야기도 지금 처음 듣는데요?
아까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면, 지금은 할 말을 잃어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 와중, 하녀들은 감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희가 마님에 대해 그런 말을 했는데도 저희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저희가 마님을 오해했었어요.”
“그래서 마님을 뵈면 꼭 사과 드리고 싶었어요. 죄송합니다. 두 번 다시 안 그럴 거예요.”
“다른 하녀들에게도 마님의 상냥한 마음에 대해 전해서, 그런 오해하지 않도록 할게요. 마님도 속 많이 상하셨죠?”
하녀들이 우르르 머리를 숙였다. 내가 그녀들을 위해 나섰다 믿어 의심치 않는 기색이었다.
물론 그녀들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아니었는데…….
하지도 않은 일로 갑작스레 감사 인사와 사과를 받게 된 나는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괜찮아. 그렇게 신경 쓰지 말렴.”
“마님……!”
하녀들은 감격이 벅차오른 듯,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짖었다.
그들의 반응만 보자 하면, 마치 내가 선행을 숨기는 성인이 된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빈센트는 내 이름을 댄 거지? 소피아가 그러라고 시켰나?
하지만 소피아가 그리 시켰더라면 나에게 무언가 언질을 줬을 것 같긴 한데…….
생각해 보니 소피아 말고 빈센트를 움직일 만한 이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판을 이렇게 짠 게 누구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아……. 뤼디거로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뤼디거밖에 없었다.
소피아와 합의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 설마. 그래도 말씀은 드렸겠지.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타인에게는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는 그가 이렇게까지 날 챙겨줬다는 게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때, 그 대화를 끝으로 뤼디거는 내가 하녀들 뒷담화를 신경 쓰는 걸 기억 속에서 지웠을 거라 생각했다.
그로서는 해결한 일이니까. 더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더 얼떨떨했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평범한 배려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가 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니 되레 수상쩍단 말이지.’
나는 쩝,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하녀들 몇이 뒷말하는 게 싫다면 전부 갈아치우면 된다는 말을 꺼낸 그답지 않은 해결 방법이기는 했다.
‘뭐지. 설마 그때 내 열변에서 뭔가 느끼는 거라도 있었던 걸까…….’
하지만 딱히 그런 기색은 아니었는데.
하긴, 그의 기색만 보고 의중을 판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 웠다.
아무리 생각해 봐야 답이 안 나올 문제다.
그렇다고 뤼디거에게 왜 그랬냐 물어봤자 속이 답답해질 대답만 잔뜩 들을 것 같았다.
손 안 대고 코 푼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찝찝한지 모르겠다.
남이 떠먹여주는 것도 평소에 잘 받아먹던 사람이나 쉽게 받아먹지, 아닌 사람은 다 흘리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이렇게까지 하는 일이 드물었던 만큼, 기쁨보다는 얼떨떨함이 더 강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떻게든 해결되었으니 이 일은 그냥 넘기자.
거듭 사죄하는 하녀들을 다독여 돌려보낸 나는 그래도 신경 쓰였던 일을 해결했다는 개운함에 흡족히 미소 지었다.
뤼디거 덕분이니, 그에게 고맙다 말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언질 주지 않은 채 비밀로 한 걸 보니, 자신이 이런 일을 했다 티 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가 부끄럼을 타는 사람인가는 의문이지만.
하여튼 나에 관한 소문은 그렇게 끝이 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뒤로 하녀들 사이에서 새로운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내가 암살자로부터 뤼디거와 루카를 구하려다가 큰 상처를 입어서, 뤼디거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나에게 잘 대해주는 거라는 소문이었다.
아니, 암살자 얘기는 어디서 들었대? 그건 루카와 뤼디거밖에 모르는 이야기인데…….
혹시 기차에 있던 관계자들을 통해 이야기가 샜나.
그쪽 사람들도 빈터발트 사람들 같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하여튼 세부사항이 과장되고 틀린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소문과 맞닥트린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에게 소문을 전해준 당사자, 로라는 눈을 빛내며 소문의 진실 여부에 관해 물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어? 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떨떠름히 말을 흐렸다.
그나마 나쁜 소문이 아닌 게 다행일까. 하지만 마냥 맞다 넘기기엔 틀린 부분이 걸렸다.
내가 한 일이 과소평가 당해도 기분이 나쁘지만, 그렇다고 과대평가 당하는 것도 불편하다.
나는 조심스레 소문의 틀린 점을 정정했다.
“그, 암살자 때문에 다친 건 맞는데, 그게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야.”
“암살자는 산탄총도 갖고 있었다면서요? 그 앞을 막아서면서도 두렵지 않으셨어요?”
산탄총 들고 온 것도 알아?!
“그 산탄총이…… 총알이 다 떨어진 상태였거든?”
“헉, 마님은 산탄총에 총알이 다 떨어진 것도 아세요? 정말 대단하세요!”
나는 나름대로 해명한다고 해명을 했는데, 뭔가 점점 이상해져 가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해서 그런지, 로라는 아까보다 더 의욕적으로 물었다.
“결국, 암살자를 해치운 것도 마님이라면서요. 그것도 사실이에요?”
“……그게 틀린 건 아닌데.”
막타는 내가 쳤으니, 그 말이 맞긴 맞는데…….
그전까지 암살자를 상대하던 뤼디거의 존재가 싹 사라져서, 마치 내가 암살자를 일대일로 상대한 것처럼 들렸다.
째깍째깍. 거하게 착각의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바라보는 로라의 눈빛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마님께선 정말 대단하세요!”
“자, 잠깐, 로라. 그 소문에선 조금 틀린 게 있는데…….”
내가 암살자를 처리했다 믿어 의심치 않는 로라의 모습에 나는 틀린 점을 짚어주기 위해 황급히 덧붙였다.
하지만 하필 그때, 소피아의 하녀 캐시가 나를 찾아왔다.
“작은 마님, 큰 마님께서 부르십니다. 곧 있을 방계 모임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는 데 안목을 빌려주셨으면 하세요.”
“어? 내가 도움이 될까? 옷고르는 건 자신이 없는데.”
루카와 뤼디거조차 포기한 내 패션센스가 아니던가. 나는 주저하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캐시는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는 듯 나를 재촉했다.
“서두르세요. 마님께서 재단사와 함께 기다리고 계세요.”
“아, 알았어!”
결국, 나는 로라의 착각에 대해 해명하지 못했다. 그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뒤늦게 로라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로라는 이미 주변 하녀들에게 말해버린 뒤였다.
“어떻게 하죠? 저는 그냥 마님이 이렇게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싶어서…….”
“……어쩔 수 없지, 뭐. 그런데, 정말 소문 다 퍼졌어?”
“네…….”
로라는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전전긍긍했다.
곤혹스레 발을 동동 구르는 로라의 안색이 시커됐다.
“마님과 집사님이 절 믿고 뽑아주셨는데……. 이런 큰 실수를 저질러 죄송해요. 어쩌죠? 제가 다시 정정할게요.”
로라는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큰일은 아니었다.
그저 이상한 소문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니까…….
게다가 로라는 좋은 뜻으로 한 일이니만큼 더 책임을 묻기 그랬다.
나는 로라를 위로했다.
“그럴 필요 없어. 뭐, 그런 소문이 돈다고 해서 다들 정말로 내가 암살자를 잡았다고 믿겠어? 그냥 흥미 본위로 주고받는 말이지. 실제로 나한테 암살자를 잡아 와라 등 떠밀 것도 아니고 말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
“마님은 정말……. 상냥하세요!”
로라는 감격한 낯으로 울먹였다. 그렇게까지 감동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뭐……. 엎질러진 물이니까.”
나는 어색히 웃으며 얼버무렸다.
상냥하다는 칭찬은 몇 번을 들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여튼, 그렇게 난 루카를 지키기 위해 암살자를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았고, 되레 암살자를 처리했다는 위업을 얻게 되었다.
마치 엄마는 강하다는 캐치프레이즈의 산증인처럼…….
아닌데……. 그거 아닌데…….
그 이후로, 간혹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하녀들이 뒤돌아서서 수군대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예전과는 달리 호의적인 시선이기는 했지만…….
‘거, 거북해…….’
대놓고 나에게 접근하여 묻는 이들은 없었지만,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마저 숨기지는 않았다.
과연 내가 묵과한 소문들이 어디까지 불어났을까 확인하는 것도 두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이 모든 소문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