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37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37화
CHAPTER4. 자꾸 없던 설정이 튀어나오는데 말입니다
좋아하자마자 차여버린 꼴이지만, 그렇게 절절하거나 충격 적이진 않았다.
뤼디거를 좋아했다는 내 감정이 딱히 놀랍지 않기도 했고.
나에게 잘해주는 내 이상형의 남자라니, 싫어하기가 더 힘든 남자가 아닌가.
게다가 첫 짝사랑도 아니다.
짝사랑 몇 번 접어본 가닥으로 나는 금방 마음을 정리했다.
어차피 못 가질 떡인 게 뻔한데 구질구질 마음고생해 봐야 나만 힘들 게 뻔했다.
게다가 자주 마주치는 만큼, 내가 이 감정을 오래 갖고 있어서 좋을 게 없었다.
한 방울의 눈물은 그만큼 빨리 마른다.
새벽의 눈물 한 방울과 함께 모든 것을 떨쳐낸 나는 코앞으로 다가온 방계 모임을 준비하는 것에 몰두했다.
방계 모임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정이 당겨졌다. 한 삼 개월 정도 뒤가 아닐까 싶었는데…….
나는 방계 모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던 만찬 자리를 떠올렸다.
그날, 항상 침묵하고 있던 공작이 드물게 입을 열었다.
“이제 루카도, 자네도 어느 정도 예법을 익히고 가문에 익숙해진 듯하니, 슬슬 루카의 존재를 알리는 게 좋겠다.”
내 예법 운운하는 말은 그저 회에 곁들여진 무채 같은 것이었고, 방계 모임이 빨리 잡힌 원인은 바로 루카였다.
하긴 루카의 성취가 빠르긴 하지.
방계 모임이 곧이라는 말에도 루카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뿐이었다. 태연히 식사하는 몸가짐은 태어났을 때부터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태어난 듯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이 정도라면 평민 출신 운운하는 소리는 절대 듣지 않겠지.
문제는 나였지만…….
나는 불안스레 눈을 굴렸지만, 차마 공작에게 대꾸할 수가 없어 입만 달싹였다.
막시밀리안은 여전히 상대하기 어렵단 말이지…….
뤼디거가 그대로 늙은 듯한 모습의 공작은 주변의 모든 타인을 무가치한 존재를 대하듯 하곤 했다. 오로지 예외는 소피아뿐, 나라 해서 다를 바는 없었다.
이게 바로 뤼디거를 대하는 하녀들의 심정인가……. 하녀들이 뤼디거를 무서워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다행히 내 불안한 마음을 알아준 듯, 뤼디거가 반박했다.
“벌써 말입니까?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만.”
“너에게 뭔가 흠이 있어 후계자 자리를 비워두는 게 아니냐, 방계에서 계속 말이 많아.”
“방계의 수다를 참고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말단이 썩기 시작하면 중심까지 썩어 들어가는 건 금방이다. 애초에 그럴 일이 없게 두어야지.”
부자간의 대화라기엔……. 지금 두 분, 싸우세요……?
공작은 마음을 정했고, 순순히 결심을 바꿀 생각은 없어 보였다.
길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점점 마음을 내려 놓았다.
‘그래.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인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포기한 나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키곤,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제가 따로 준비할 것이 있나요?”
“곧 방계 사람들이 저택에 올 테니, 적어도 그들의 정보 정도는 숙지해 두는 것이 좋겠구나.”
대답은 소피아에게서 나왔다. 소피아는 칼질을 멈추지 않은 채, 바로 뤼디거에게 말했다.
“뤼디거. 저택에서 할 일도 없을 텐데, 네 형수에게 방계 사람들에 대해서 알려주려무나.”
형수라는 말에 내 칼이 접시를 긁었다. 만약 물을 마시고 있었다면 사레가 들렸을 게 분명했다.
물론 내가 지금 여기 뤼디거의 형수로 와 있는 게 맞긴 한데…….
직접 그런 호칭을 들은 건 또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런 나와 달리 뤼디거는 태연히 말을 받았다.
“딱히 유디트 씨께서 숙지하실 만한 게 있겠습니까? 어차피 그들과 그리 말을 섞지도 않을 텐데 말입니다. 말 그대로 통보의 장 아닙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랫것들이 기어오를 만한 틈을 주지 않는 게 좋지.”
그들은 방계 사람들도 까마득한 남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절대 빈터발트라 인정하지 않는, 벽이 느껴지는 태도였다.
용케도 나는 빈터발트 취급을 해주는구나…….
이 가족들을 알면 알수록, 내가 여기서 이렇게 한 가족으로 식사를 하는 것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피아와 뤼디거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게다가 유디트는 아직 가계도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으니 그걸 틈으로 삼는 것들이 분명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되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날 나는 체했다. 이상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자주 체하는 기분이란 말이지.
하여튼 그렇게 방계 모임의 구체적인 날짜가 정해졌다. 정확히는 통보받은 것에 가까웠지만.
집사 빈센트에 의해 방계로 서신이 날아가고,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뒤, 나는 그 전의 무료한 일상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무도 내 예법을 지적하진 않았지만, 내가 먼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내 흠은 곧 루카의 흠이 되는 만큼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식사 예절 및 귀족 화술을 몇 번이나 점검했다.
바쁜 게 기껍기도 했다. 적어도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뤼디거에 대한 감정도 수그러들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서 뤼디거와 단둘이 있는 시간에 긴장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소피아의 명령으로, 나에게 방계 구성원에 관해 설명할 임무를 맡은 그는 평소보다도 더 자주 나를 찾아왔다.
그는 두루마리로 길게 말린 가계도를 가져와 탁자 위에 펼쳤다. 두루마리를 손끝으로 툭툭 건드리는 그의 손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손에 땀이 찼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나는 가계도를 머릿속에 박아 넣는 것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가계도의 그림은 마치 나무의 뿌리를 그려둔 것 같았다. 직계는 가운데 굵은 뿌리로 표시가 되고, 곁뿌리처럼 방계가 갈래 갈래 뻗어 나갔다.
그런데 빈터발트의 역사가 오래된 것 치고, 생각만치 곁가지로 뻗어 나간 것이 없었다.
북부의 환경 때문에 생존율이 낮아 그런 건지, 아니면 몇 대 이상은 배제한 건지……. 애초에 형제가 많은 집안도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나로서는 외울 게 줄어들어 다행인 일이었다. 가계도를 외우는 일로 뤼디거에 대한 마음을 회피하려 했지만, 외우는 게 싫은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위에서부터 가문의 역사를 줄줄 설명하던 뤼디거의 손끝이 현 가주, 막시밀리안의 이름 위에 도달했다.
“아버지에겐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버켄레이스 백작이죠. 버켄레이스 백작에게는 제 또래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순간 뤼디거의 입술이 비틀렸다. 답지 않게 못마땅한 낯이었다.
“프란츠 버켄레이스. 같은 항렬 중 저를 제외하면 제일 서열이 높은 이입니다. 방계 혈족 중 제일 직계 혈족에 가까운 만큼, 입김이 센 편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때문인지, 버켄레이스 백작가에서는 허튼 꿈을 꾸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루카의 존재로 의미 없는 꿈이 되어버렸죠. 아마 암살자를 보낸 것도 그쪽일 겁니다.”
뤼디거는 버켄레이스 백작 쪽에서 암살자를 보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암살자를 보낸 건 프란츠였고, 버켄레이스 백작은 프란츠의 야욕을 말리는 입장이었다.
뭐, 그렇다 해서 아들을 혼쭐 낼 정도로 강경한 건 아니니 같은 편이라 해도 무방하지만.
눈을 감고 모르는 척하다가, 결국은 제 아들에게 동조하게 되니 그 나물에 그 밥이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소설 속 악당과의 조우인가…….’
사실 프란츠가 악당이라 칭할 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이는 아니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욕심만 그득한 소인배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작자일수록 성가시고 짜증 나기 마련이지…….’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프란츠가 내가 알고 있는 소설 속 내용과 다른 사람이면 어쩌지. 뤼디거도, 루카도, 소피아도, 다들 달랐으니까…….’
물론 암살자를 보낸 시점에서 인성 수준이 원작과 그리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원작보다 생각이 짧고 멍청하면 좋겠지만, 되레 더 약삭빠르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물었다.
“그 프란츠 버켄레이스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유디트 씨가 궁금해하실 만한 가치가 없는 작자입니다.”
뤼디거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평소보다도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눈에 띄게 노골적인 적의였다.
프란츠를 싫어하나?
물론 충분히 싫어할 만했다. 자신의 자리를 노리며 암살자까지 보내는 사촌이라니,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봐온 뤼디거는 타인이 저를 죽이려 하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보니 잠시 당황했다.
뤼디거는 프란츠의 이름이 나오는 것조차 불쾌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였다.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나는 살살 뤼디거를 설득했다.
“그래도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뤼디거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