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3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38화
“딱히 유쾌한 작자는 아닙니다. 거들먹거릴 줄만 아는, 주제 모르는 욕심 많고 멍청한 놈이니 얽히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상종하지 마십시오.”
뤼디거에게서 나오는 정보는 모조리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뤼디거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참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프란츠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 못 한 건 아닐까…….
소설에서 뤼디거가 프란츠에게 당하고 만 건 프란츠가 약삭빠르고 집요했던 탓도 있지만, 내심 그가 프란츠를 얕잡아 보고 있던 것도 원인일지도 몰랐다.
“뭐……. 마음의 각오를 미리 해둘게요.”
“최대한 둘이 있는 걸 피하고, 말도 섞지 말고. 애초에 안 부딪히는 게 최고입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나는 의욕 없이 대꾸했다.
내가 상종하고 싶지 않다고 상종 안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무래도 그쪽에서 접근해 올 것 같단 말이지.
내 존재가 얼마만큼의 변수가 될까.
원작에서처럼 이용해 먹을 만한 가볍고 생각 없는, 욕심 많은 모습을 보이는 건 어떨까?
그러면 그쪽에서 방심하고 접근한 틈을 타서 그쪽의 약점이나 증거를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위험하긴 하지.
원래대로라면 방계 모임에서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지만…….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내 시선이 시계에 닿았다.
“……그러고 보니 루카가 늦네요? 이쯤이면 수업이 끝나고 찾아올 때가 되었는데.”
루카가 오기 전까지 방계에 관한 정보를 들을 셈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점심나절이 훌쩍 넘었다.
루카가 내가 뤼디거와 대화하고 있다 해서 돌아갈 성격은 아니니만큼, 괜스레 걱정되었다.
혹시 아직도 수업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불안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시계를 살폈다.
하지만 뤼디거는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가계도를 도로 말며 대꾸했다.
“아버지와 함께 가주의 방에 가 있을 겁니다. 방계 모임 전에 가주의 방에 데려간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게 오늘인가 봅니다.”
“가주의 방이요? 거기서 뭘 하는데요?”
“빈터발트가 공국이었던 당시의 유물이 있습니다. 무척 귀한 것이라, 가주만이 알고 있는 방에 숨겨두었죠. 그래서 가주의 방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루카도 공식적으로 빈터발트의 후 계자가 될 테니 알려주시는 모양입니다.”
공국이었을 당시라면 한 이천 년 전의 유물이라는 거 아냐.
나는 아까 뤼디거에게 들었던 빈터발트의 역사를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생각보다 이 가문, 오래된 가문이란 말이지.
제일 놀라운 건 직계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거지만…….
“후계자에게만 알려주는 건가요? 그럼 뤼디거 씨도 그 방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네. 방의 존재와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만 알고 있습니다.”
“뭐가 있는데요?”
“빈터발트 가주의 일생에 단 한 번, 소원을 들어주는 잔이 있습니다.”
“소원이요?”
원작에 없던 내용에 나는 휘둥그레 눈을 뜨고 물었다.
이 정도쯤 되는 내용이라면 소설에 지나가듯이라도 서술되었을 법한데…….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
“예. 지금은 사라진 고대 마법의 산물이죠.”
아……. 여기 심지어 마법이 있는 세계관이었어?
좀 많이 낯설다…….
갑자기 내가 들어온 소설이 「겨울 숲의 주인」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예전 세상에서도 마법이나 신선 같은, 신비한 힘에 관한 이야기가 전승되어 내려왔으니까…….
이천 년이나 된 가문이면 성물 같은 게 남아 있을 만도 하지.
금세 납득한 나는 오컬트적인 흥미로 물었다.
“정말로…… 그 잔이 소원을 들어줘요?”
“글쎄요.”
“혹시 버켄레이스에서 빈터발트의 가주가 되려고 애쓰는 것도 그 잔 때문인가요?”
소원을 이루어주는 잔이라니.
그런 게 정말로 있다면 너 나 할 것 없이 탐냈을 것이다. 굳이 방계 사람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뤼디거는 심드렁할 뿐이었다.
“글쎄요. 방계 사람들은 소원의 잔을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정도로 취급하고 있을 겁니다. 이천 년 전의 이야기니까요. 실제로 저도 아버지에게 듣기 전까진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했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있는지도 모를 소원의 잔보다는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을 더 원할 겁니다.”
그, 그것 참 다들 이성적이네…….
생각만큼 마법의 존재는 희미하게 흐려져, 미신처럼 비과학적인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근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있을수록, 이거, 내가 알아도 될 만한 정보가 아닌 것 같은데…….
혹여 정말로 소원을 들어주는 잔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보가 아닐까?
무려 이천 년 전의 유물인데…….
미신 같은 거 믿는 사람들은 환장하고 찾아다닐 것 같은데 말이다.
뤼디거가 별것 아닌 듯 말해서 잠시 헷갈렸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그거 저한테 알려줘도 되는 내용이에요?”
“물론입니다. 유디트 씨도 빈터발트잖습니까? 이 정도 내용은 어머니도 알고 계실 겁니다. ……확인은 안 해봤지만 말입니다.”
소피아와 나는 경우가 다르지!
너무나 당연스레 나를 빈터발트 직계로 취급하는 뤼디거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평소에도 빈터발트 사람이라 해주더니, 그게 빈말이 아니었단 말이야……?
보통은 후계자의 이모 되는 사람까지 직계로 쳐주지는 않는다구요…….
프란츠 정도로 가까운 혈족도 방계라고 딱 잘라 말할 정도면서, 나는 괜찮다니.
뤼디거의 직계 기준을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딱히 들어서 이해가 갈 것 같지도 않았다.
나에게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니니만큼, 내 정신 건강을 위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렸다.
뭐, 내가 알아도 상관없는 문제라 하니…….
나는 마음 놓고 호기심을 표출했다.
“혹시 공작님도 소원을 비셨나요? 정말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글쎄요. 아버지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체 그런 말씀을 안 하시는 성정이기도 하고…….”
그럴만하다 생각했다.
막시밀리안이 소원을 비는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기도 했다.
“혹시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주변에 비밀로 해야 하는 건가요?”
“공공연한 건 아니지만, 철두철미한 비밀도 아닙니다. 가족들에게는 지나가는 말로 알려 주신 분들도 있고 말입니다. 물론,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졌는지는 본인만 알고 있습니다만…….”
“아하…….”
“아버지의 소원이라……. 철도 부설권을 따내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 아니었을까 싶긴 합니다. 젊은 시절을 다 바쳤을 정도로 철도 부설권을 따내는 것에 열정적이셨다 들었으니까요.”
그거 참…….
빈터발트 공작다운 소원이라 해야 할지…….
뤼디거가 보는 막시밀리안은 그런 사람인 걸까…….
소원이라는 따스한 이름을 이기엔 너무나도 계산적인 내용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뤼디거 본인이 생각해도 얼토당토 없는 추측이었는지,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제 추측일 뿐입니다. 아마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자신의 소원이 뭔지 말씀해 주시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에 관한 진실은 아마 루카가 알게 되겠죠.”
“루카가요?”
“예. 가주들의 소원을 적어둔 목록 또한 가주의 방에 있다 들었습니다.”
막시밀리안의 소원이 궁금하긴 했지만 루카한테까지 물어 볼 정도는 아니었다.
공작이 숨기고자 하는 비밀을 부러 캐내고 싶은 생각이 없기도 했고, 뤼디거에게 묻는 거랑은 좀 다르게 부끄럽기도 했다.
조카에게는 그런 가십거리에 의연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나 할까…….
“근데 원래 이렇게 일찍 가문의 비밀을 알려주는 거예요? 루카는 이제 열 살인걸요.”
“나이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죠. 루카는 어른스럽고, 빈터발트의 후계자로서의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습니다. 솔직히, 형보다 더 나을 정도입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 많은 수업을 불평 없이 묵묵히 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것 같았다.
하긴, 가문의 일은 나보다 막시밀리안이 더 잘 알겠지.
소설 속, 원래의 루카도 이 소원의 잔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면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그렇게 생각이 흘러가는 도중, 내 시선이 뤼디거에게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