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3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39화
루카가 없었더라면 소원의 잔의 적법한 주인이 되었을 이.
그는 소원을 빌 기회가 있으면, 과연 무슨 소원을 빌까?
물론 정말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긴 하지만……. 그 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다들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하는 상상 정도는 한 번쯤 해보잖아?
나는 그저 흥미 본위로 가볍게 물었다.
“뤼디거 씨는 소원을 빌고 싶지 않으셨어요? 가주가 되면 소원을 빌 수 있었을 텐데.”
“저는 딱히 소원 같은 게 없는지라. 그런 걸 믿지도 않고 말입니다.”
뤼디거의 대답이 너무나 단호했던지라 할 말을 잃었다.
괜히 내가 미신을 믿는 어수룩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긴 그는 약간 바라는 게 없는 이미지이긴 하지. 오죽하면 내가 속세에서 벗어난 사람 같다고 느꼈을 정도겠어.
좀 민망해진 나는 어물어물 말을 흐리며 변명했다.
“아, 그래요? 하긴……. 뤼디거 씨는 바라는 게 있다면 스스로 쟁취하실 것 같긴 해요.”
뤼디거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달싹였다.
미간을 찌푸리고는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한참 끝에 입을 열었다.
“……아, 정정하겠습니다. 제 소원은 이미 이루어져서, 딱히 빌 필요가 없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아……. 소원이 있었어? 그건 또 신기하네.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뤼디거의 소원은 과연 뭐였을까.
하지만 내가 알 수 있는 범위는 소원의 여부까지라는 듯, 그는 소원의 내용에 대해선 입을 딱 다물었다.
미동도 없는 턱 끝에선 내가 감히 물을 수 없는 것이라는 선이 느껴졌다. 좀 더 개인적인, 내밀한 선이.
갑자기 선 밖으로 떠밀린 기분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이게 옳은 위치였다.
지금껏 그가 내 궁금증에 곧이곧대로 답해준 것은 그저 호의였을 뿐이다.
나는 치미는 호기심을 속으로 꾹꾹 눌렀다. 그저 호기심일 뿐인데, 가시를 삼킨 듯 속이 따끔했다.
* * *
결국 루카는 그날 점심시간이 다가도록 오지 않았다.
나는 뤼디거와 함께 늦은 점심을 했다.
루카는 뒤늦게 티타임이 되어서야 나를 찾아왔다. 어딘지 모르게 안색이 좋지 못한 모습에 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오늘 가주의 방에 다녀왔다며? 거기서 무슨 일 있었어?”
“응? 으응. 어떻게 알았어?”
루카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너무 당황하는 모습에 되레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뭐야. 혹시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아니, 나 정도면 알아도 된다며! 루카 반응이 그게 아닌 거 같은데!
뤼디거가 너무 순순히 말해줘서 잠시 착각해 버렸다.
퍼드덕 뛰는 루카의 반응을 보니, 마치 내가 루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변명했다.
“뤼디거 씨가 알려줬어.”
“…….”
하지만 루카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질 뿐이었다.
하긴, 가주들에게만 알려주는 거라고, 이제 후계자가 될 테니 알려주겠다고 해서 잔뜩 기대에 부풀었을 텐데…….
막상 다녀왔는데 이모인 내가 알고 있으니, 기분이 묘할 것이다.
내가 너무 성급했나……. 루카가 말하기 전까지 모르는 척할걸. 아니, 그냥 아는 척하지 말걸…….
나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이야기를 돌렸다.
“별일 없었으면 됐어. 지금 누워서 쉴래? 오후 수업은 빼는 게 좋겠다.”
“아냐. 괜찮아.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
“열 살짜리 애가 뭘 그리 혼자 생각할 게 많아. 고민이 있으면 털어놔 봐. 같이 생각하면 좀 낫지 않겠어?”
“…….”
넌지시 루카를 달랬지만, 루카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루카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못 미덥나? 의논 상대가 되어줄 만큼의 믿음을 주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아니지, 아니야.
마음을 열었다 해도, 믿음직스러운 어른과는 다른 이야기니까.
잠시 어른스럽지 못한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실제로 예전 유디트를 생각하면 루카가 여기까지 마음을 열어준 것도 고마워해야 했다.
좀처럼 루카의 기분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전전긍긍했다.
이럴 땐 그냥 놔둬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든 말을 걸어서 안 좋은 기분을 풀어줘야 하나?
좀 재우는 건……. 아니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바로 자는 것도 좋지 않다 그랬어.
스트레스가 해소가 안 되고 남아 있어서 머리가 나빠진다고…….
최근 있는 가장 큰 이슈가 뭐지……. 방계 모임?
하지만 방계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가 더 스트레스 받는 건 아닐까…….
애를 올바르게 키우는 일이 쉽지는 않구나.
우리 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이렇게 전전긍긍했으려나. 그리 생각하니 갑자기 고마움이 왈칵 몰려왔다.
흑흑, 그렇게 키운 딸내미가 요절해서 소설 속 세계에 와 있습니다…….
갑자기 나도 우울해지네.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목소리를 밝게 꾸몄다.
“대부분의 고민은 정말 별거 아니야. 해결책이 있는데 그 해결책이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해결책이 없는 문제라면?”
“물론 해결책이 없는 문제일 수도 있지. 근데 그런 문제일 경우에는 지금 당장 고민한다 해서 답이 나오진 않거든. 나중에 퍼뜩 생각나는 경우가 대다수지.”
나는 루카의 질문에 그럴싸한 답을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냈다.
다행히도 루카는 내 대답에 납득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결국 루카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하는 근본적 문제는 그대로였다.
“나중에 가주가 되면 소원은 뭘 빌까, 같은 생각은 어때? 루카, 너는 무슨 소원을 빌고 싶어?”
나는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이 나올 만한 질문으로 고쳤다.
가주의 방에 관한 내용이라 더 기분이 나빠질까 싶긴 했지만, 이왕지사 말이 나와버린 화제니까.
“그걸 믿어?”
“뭐, 소원 비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해보는 거지. 안 그래도 아까 뤼디거 씨한테도 물어봤는데, 뤼디거 씨는 딱히 소원이 없대. 이미 이루어졌다나.”
“…….”
뤼디거의 이름이 나오자 루카의 미간에 와락 주름이 졌다.
굉장히 못마땅해하는 듯도, 당혹스러운 듯도 한 표정이었다.
내가 또 무슨 말실수를 했나?
내가 한 말을 되짚어봤지만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그냥 뤼디거의 존재 자체가 별로인가……?
원래는 참 좋은 삼촌, 조카 사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첫 단추가 문제였을까…….
내가 루카와 뤼디거의 사이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는데, 입을 다물고 있던 루카가 대뜸 물었다.
“이모는 무슨 소원을 빌고 싶어?”
“어? 나?”
갑자기 화살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막상 나에게 소원이 뭐냐 물으니 입이 딱 다물렸다.
마음만 같아선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근데 원래 몸이 죽어 있거나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끙, 혀를 차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원래 세계였다면 로또 열 번 당첨돼서 부자로 펑펑 살고 싶단 소원을 빌었겠지만…….
빈터발트에 있으니 딱히 돈 걱정이 안 되기도 하고.
보석을 몇십 상자씩 안기는 씀씀이로 미루어보아, 루카가 다 크고 내가 여길 뜬다 해도 맨몸으로 내쫓진 않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됐지, 뭐…….
내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게 아니라는 것에 대한 찔림은 좀 있지만, 소원을 빌어서 부자가 되는 것도 내 힘이 아닌 건 마찬가지니까.
뤼디거가 날 좋아했으면 좋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거고.
사람의 감정을 마법으로 어떻게 하려고 했다가는 끝이 좋지 않다는 건 장르 소설 경력 이십 년 차쯤 되면 잘 알 수밖에 없게 된다.
고민은 딱히 오래가지 않았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간단한 문제였다.
“일단 지금은……. 루카 네가 무사히 빈터발트 가주가 되었으면 좋겠네.”
독립할 때 어느 정도 지원받는 것도 루카가 후계자일 때의 이야기다.
원작대로 흘러가면 지원이 뭐냐, 내 목숨마저 간당할 텐데.
나로서는 제법 간절한 소원이었지만, 루카는 영 못 미더운가 보다. 루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캐물었다.
“그게 소원이라고?”
“응? 으응.”
나는 떨떠름히 답하며 머뭇거렸다.
혹시 가주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가주가 아닌 건 의미가 없다고……. 앗,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루카의 정서 교육과 스트레스 수치가 신경 쓰였던 나는 황급히 변명했다.
“딱히 네가 가주가 되길 바란다는 건 아니고……. 그냥 네가 행복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