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4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4화
그 웃음의 의도가 내 기분을 엉망으로 만드는 거라면 성공했다. 안 그래도 못생긴 남자가 못 생기게 웃고 있으니 정말 기분이 나빴다.
나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대꾸했다.
“루카가 아파. 약재상 가는 중이야.”
“오, 웬일이야? 네가 루카 아픈 것도 신경 쓰고. 원래 애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라 했잖아.”
“농담할 기분 아니야.”
내가 성가시다는 듯 쳐냈지만 남자, 토마스는 개의치 않고 내 곁으로 따라붙었다.
그는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떠보듯 말했다.
“야, 근데 오늘 괜찮은 남자 하나 왔다더라. 귀족인가 본데 벌써부터 레아가 눈독 들이고 있다고.”
엠덴 마을은 그리 큰 마을이 아니다. 뉘 집에 젓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알고 있을 정도니까.
마을에 낯선 이가 오면 바로 소문이 쫙 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나는 마을에 왔다는 귀족이 누군지 눈치챘다.
내 옷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자 마차의 주인이겠지.
“아아. 알 거 같네.”
“마주쳤어? 봤어?”
“못 봤어. 마차에 치여 넘어졌거든.”
“그래서 네 꼴이 이 모양이구나?”
희희낙락하는 목소리엔 어딘지 모르게 안도가 서려 있었다.
내가 그 귀족 나으리와 얽히지 못한 게 그리도 기쁜 모양이었다.
나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그의 말을 흘려 넘겼다. 애가 아프다는데 자꾸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말이야.
귀족 남자가 오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만큼, 나는 그를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앞으로만 걸어가니 애가 탄 걸까. 옆에서 토마스가 헛기침을 했다.
“큼, 큼. 야. 그런데 너, 오늘 파트너는 있냐?”
어쩐지 내가 마을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접근해서 계속 근처를 파리처럼 맴돌더라니.
내 미간에 와락 힘이 들어갔다.
지금껏 내가 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구만?
“루카가 아프다고 했잖아. 파트너는 무슨 파트너. 성가시게 굴지 말고 다른 애한테나 제안해.”
“에이, 루카 핑계 대지 말고. 네가 언제부터 루카를 신경 썼다고.”
토마스는 계속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정말로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아, 빡쳐.
딱히 마을 사람들에게 나의 진솔함을 납득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엔 유디트 마이바움이 이 마을에서 지내온 일생이 너무 길었고, 내가 이 몸에 들어온 기간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이십칠 년과 한 달.
이 몸뚱어리의 업보이니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하지만 매번 내가 하는 말을 거짓말, 혹은 핑계 취급당하는 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나마 사교계에서 유명한 악녀라든가, 대륙에 악명을 떨치는 악당이라든가 그런 레벨이 아니라서 다행일까……. 적어도 다른 마을에 가면 이런 취급은 안 받을 거 아냐.’
역시 내년에 루카를 빈터발트에 보낸 뒤, 다른 마을로 이사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방계 사람들 시선을 피할 생각이기도 했고…….
방계 사람들은 루카를 공격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샅샅이 찾는다.
만약 유디트가 원작에서처럼 돈을 뜯어내겠다 나대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눈에 띄는 건 금방이었을 것이다.
루카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외가 쪽의 유일한 혈육이니까.
빈터발트가 있는 북부는 패스,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서부도 패스, 엠덴이 속한 남부도 패스…….
동부나 수도가 있는 중앙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역시 연고지 없는 시골 마을에 젊은 여자 혼자 정착하는 건 주의할 게 많으니 수도로 가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으로 가라는 말도 있으니까.’
토마스가 끈덕지게 달라붙으면 달라붙을수록, 타지로 떠나고 싶은 열망이 커져만 갔다.
나는 매크로처럼 같은 대답만 반복하며 토마스를 쳐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성가심 그득한 눈으로 그를 휙 노려보았다.
“내가 언제 루카 핑계 대면서 거절한 적 있어?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게 내 성격인 거 알지?”
“아, 알지.”
“내가 꼭 험한 말 해야 알아듣겠어?”
내가 눈을 세모나게 뜨고 윽박지르자, 그제야 토마스는 입을 꾹 다물고 눈치를 보며 어깨를 움츠러트렸다.
그래도 완전히 포기를 못 했는지, 아니면 면구스러운 상황을 자기합리화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이라도 하는 건지.
토마스는 저 혼자서 무어라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하여튼 계집애, 튕기긴 더럽게 튕겨. 그러니까 아직도 결혼 못 하고 조카나 키우고 있지. 너 눈 안 낮추면 아무도 너 안 데려가.”
후려치는 말이 자연스럽다.
내 이마에 핏대가 불룩 섰다.
유디트와 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점이 있었지만, 공통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눈을 낮춰서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이었다.
유디트가 바라는 결혼 상대의 조건 첫째, 재력!
외모 콤플렉스가 있던 그녀는 그만큼이나 자신을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제 외모를 돋보이게 해줄 온갖 드레스와 보석을 항상 갈망했고, 그러기 위해선 재력이 필수였다.
결혼 상대의 조건 둘째, 외모!
돈만 봤다면 거상의 후처가 됐을 테지만, 그렇다 해서 2세가 못생긴 건 또 용납할 수 없었다.
적어도 루카보다는 예쁜 아이를 낳고 싶었던 만큼, 남자의 외모가 잘생긴 건 필수였다.
그러다 보니 유디트의 결혼이 점점 늦어졌지만……. 나는 전적으로 그런 유디트의 조건에 동감했다.
그뿐이랴.
같이 살려면 성격도 좋아야지, 계속 목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니까 목소리도 좋아야지, 관리 안 해서 뱃살이 나온 건 게을러 보이고, 비리비리 한 건 영 매력이 없다. 아, 키가 큰 건 필수다!
그런 수많은 조건과 타협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가당찮다는 듯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넌 네 얘기를 남 얘기하듯 하는 재주가 있구나? 내 걱정 마시고 너나 잘하세요, 토마스. 너도 나랑 어떻게 얽어보려고 이러는 걸 보니 눈 어지간히 높은가 본데, 눈 안 낮추면 결혼 못 한다?”
내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토마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그래도 쏘아붙일 용기는 없는지, 금세 꼬리를 말고 어물쩍 뭐라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도망쳤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눈이 높니 뭐니 후려쳐서 어떻게 해보려는 속셈을 모를 줄 알고?
라리사와 루카의 외모가 유난히 예외일 뿐이지, 유디트 또한 이런 시골 마을에선 정말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유디트의 기억을 뒤져본 바로는, 어렸을 땐 토마스가 감히 말도 못 붙였었다.
그때 없던 용기가 왜 지금 와서 생겼겠는가. 저도 나이가 들었다고 용기를 내는 것일까?
아니다. 내 조건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서 들이밀어 보는 것이다.
그때의 유디트나, 지금의 유디트나 나이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조건은 별반 다른 게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토마스나 나나 동갑이었다. 피차 결혼 적령기 끝물인 건 마찬가지면서, 우습지도 않았다.
‘하여튼 여자한테만 유난히 결혼 적령기를 빡빡하게 내세운다니까…….’
이세계까지 와서 결혼 얘기로 남들한테 한 소리 듣게 될 줄은 몰랐던 만큼,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
간신히 토마스를 떼어낸 나는 제2, 제3의 토마스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하필 오늘이 오월제라 그런가, 가는 길마다 사람이 차였다.
나는 최대한 빠른 발걸음으로 인파 사이를 헤치며 지나가려 노력했다.
그때, 갑자기 튀어나온 커다란 한 사내와 부딪혔다.
단지 부딪혔을 뿐인데, 사내의 몸이 어찌나 단단한지 그대로 내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아야!”
땅바닥에 넘어진 내 주위로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황급히 약초 바구니를 끌어당겼다. 사람들 발에 치여 약초가 뭉개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마차에, 사람에.
오늘 뭐가 끼여도 단단히 끼인 게 분명하다.
그런 내 위로 갑자기 먹구름이라도 찾아온 듯 햇빛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이 나와 부딪힌 사내의 그림자라는 걸, 나는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사내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내 코앞에 들이밀어진 새까맣고 윤기가 자르르한 가죽장갑을 끼고 있는 손은 내 손바닥 두 개만 했다.
“괜찮으십니까, 레이디?”
나직이 울리는 목소리는 또 어찌나 좋은지. 그의 목소리가 닿은 귓바퀴가 찌르르 울렸다.
하지만 목소리가 좋은 건 좋은 거고.
나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낯선 목소리. 게다가 날 레이디라 부르는 호칭을 보아하니 이 동네 출신이 아닌 듯싶었다.
게다가 언뜻 보이는 그의 구두코가 반질반질한 것이 돈깨나 있는 집안 자제가 분명했다.
‘이런 사람이 잘못 꼬이면 일이 귀찮아지지.’
원래의 내 외모였다면 남자가 꼬이니 뭐니 하는 착각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유디트는 그런 착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외모였다.
매일 이 몸을 갖고 움직이는 나도 아침에 세수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만약 유디트였다면 제 예쁜 외모를 자랑하듯 화사하게 웃으며 사내에게 손을 뻗었겠지만, 남자와는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애써 고개를 숙여 그의 시선에서 내 얼굴을 숨겼다.
그런 내 심정을 조금도 모르는 사내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제가 서두르느라 실례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녜요. 저도 때마침 서두르고 있었고.”
나는 사내의 손을 잡을 생각도 못 한 채 오뚝이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사이 내 엉망이 된 치맛단을 발견한 건지, 사내가 걱정스레 물었다.
“잠시만, 레이디. 옷이…….”
“아, 이건 괜찮아요. 경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제가 정말!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그의 관심이 달갑지 않았던 나는 내 할 말만 쏘아붙인 채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뒤로 시선이 따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뒤돌아 확인해 볼까도 싶었지만,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곤혹스러워진다. 나는 애써 그 시선 무시한 채,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