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4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45화
* * *
만찬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침묵이나 다를 것 없는 식탁 위. 간혹 말이 오가더라도 그 속에 가시가 있었다.
당연히 나를 향한 가시였다.
“그나저나 시골에서 살았다고는 믿기지 않는 외모네요. 주변 남자들이 가만히 두던가요?”
“게다가 미혼모로 애를 키우면 아무래도 주변 시선이 좀 그랬을 텐데……. 사람들이 그런 쪽으로 많이 착각하지 않던가요? 아, 착각이 아닌가?”
체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 포크로 음식을 헤집었다.
안 그래도 속이 조금 더부룩한 것 같았다.
음식을 깨작거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체하는 것보다야 낫다.
나는 과거였다면 상상해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간 사치스러운 요리를 반 이상 남겼다.
그때, 뤼디거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작게 속삭였다.
“신경 쓰이십니까? 처리할까요?”
처리는 무슨 처리.
화들짝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뤼디거의 허벅지를 찰싹 때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뇨. 그냥 가만히 있어주세요. 가만히.”
뤼디거는 놀란 듯 눈썹을 치셨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린 나는 귀 끝이 붉게 달아 올랐다.
“그……. 정말 신경 안 쓰여요.”
뤼디거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녀들 뒷말은 그리도 신경 쓰더니, 앞에서 벌어지는 앞말은 신경을 안 쓴다 하니 이상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때랑은 경우가 다른걸.
그때도 뤼디거와 얽힌 일만 아니었다면, 나도 그렇게까지 기를 쓰고 해명하려 들진 않았을 거다.
설마 오늘 뤼디거가 초장에 나선 일로 오해하진 않겠지…….
조금 불안한 심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직 괘, 괜찮을 거야.
뤼디거가 대놓고 날 지목해서 옹호한 게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방계 사람들은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 편견으로 왜곡할 이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정정해도 달라질 게 없는 만큼,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러는 사이, 죽음 뒤의 지옥처럼 영원할 것만 같던 만찬이 간신히 끝이 났다.
제일 먼저 자리를 뜬 것은 연회 내내 몸이 좋지 않았던 공작 부인 소피아였다.
그녀가 일어서기가 무섭게 공작이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짙은 눈썹 밑 눈매가 걱정스레 소피아를 살폈다.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친동생과 조카를 상대로 그리도 냉정했던 이라곤 믿을 수가 없었다.
신분이 높은 이가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이 예의였던 만큼, 공작 부부가 떠나기만을 기다렸던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희도 이만 자리를 비우도록 하겠습니다. 루카가 아직 어려서 피곤해하네요.”
물론 실질적인 내 위치는 ‘마이바움 가의 평민’이니만큼 다른 방계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서는 게 충분히 트집 잡힐 수 있겠지만…….
그래서 루카 핑계를 댔다.
루카는 피곤하다는 내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눈치가 빠른 만큼 굳이 반박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방계 사람들은 호락호락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공작 부부도 없겠다, 이 기회에 그들의 저열한 호기심을 채울 속셈이었다.
“어머, 애가 졸리면 하녀를 시켜 먼저 들여보내면 되지. 왜 부인까지 자리를 비우나요?”
“……제가 잠자리에서 다독여 줘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대면서도 참 어이없는 핑계다 싶었다.
삽시간에 엄마가 잠자리에서 다독여줘야 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루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루카한테 좀 미안하네……. 안 그래도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어 하는 애인데.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방계 사람들은 끈질겼다.
“유모 시켜요. 애를 그렇게 싸고돌면서 키우면 안 돼요.”
“그러고 보니 유모는 구했나요?”
“유모요?”
나는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내가 바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루카가 완전 갓난아이인 것도 아니고. 유모가 무슨 필요란 말인가?
하지만 방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내 반응이 우스웠는지, 그들의 입가가 씰룩이며 조소를 띄었다.
그들은 나를 가르치듯 말했다.
“하……. 마이바움 부인이 귀족가 생활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뭘 모르나 본데, 귀족 아이들은 유모의 손에 크는 게 관례예요.”
“맞아요, 맞아. 아, 물론 예외도 있긴 했지만……. 그래. 요나스는 공작 부인 손에 직접 자랐잖아요.”
“에이, 요나스에게는 공작 부인이 유모나 다름없었죠.”
“어머, 공작 부인을 유모 취급 하다니. 공작 부인의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래요?”
“공작 부인도 부정하진 않을걸요?”
그들은 그러고 까르르 웃었다.
소피아의 앞에서는 그렇게 알랑방귀를 뀌더니, 그녀가 없어지기가 무섭게 소피아를 욕하는 그들의 행태가 치졸해 보였다.
게다가 여기엔 뤼디거도 있는데…….
아무리 뤼디거와 소피아의 사이가 살갑지 않다고 해도, 자식 앞에서 부모를 욕하는 그들의 무례함에 기가 찼다.
아니나 다를까, 뤼디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뤼디거가 폭발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게 좋겠다. 안 그래도 그들의 쓸데없는 수다를 더 들어주기도 힘들던 찰나였다.
나는 빙긋 웃으며 그들에게 벽을 쳤다.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루카의 교육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공작 부인의 의견에 따르고 있어서요. 이견이 있으신 분들은 공작 부인께 말씀드리는 쪽이 좀 더 효율적일 것 같네요.”
공작 부인의 위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저들을 쉽게 떨쳐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피아가 거론 되자 그들은 구시렁대면서도 대놓고 말을 하진 못했다.
뒤에서 속닥속닥 흉을 보긴 하지만, 공작 부인과 대놓고 대면할 용기가 없는 자들이었으니 당연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뤼디거가 일어서며 나섰다.
“제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차마 뤼디거를 붙들 수 없었는지, 방계 사람들은 그제야 순순히 나를 보내주었다.
뤼디거의 손에 의지한 채 연회장으로부터 등을 돌린 나는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오늘이 첫날이라 이렇게 유난한 걸까, 아니면 원래도 귀족가의 모임이란 게 이런 걸까.
후자라면……. 으으……. 수도에서는 어떻게 버티지.
그래도 큰 사건 없이 모임이 끝나 다행이었다.
뤼디거와 루카가 시한폭탄 같은 발언을 던질 때만 해도 조마조마했는데……
소설의 악역인 프란츠와도 만나고.
이로써 본격적으로 원작 궤도에 진입했다.
프란츠의 속셈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행동으로 옮기진 않은 만큼 오늘의 방계 모임은 성공적이라 해도 좋을 터였다.
오늘의 일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 곧 풍랑처럼 휘몰아칠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인지 작게 한숨을 내쉬는 내 심장 한 켠이 두근거렸다.
* * *
루카를 먼저 방으로 데려다주는 동안, 뤼디거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가 운을 뗀 건 내 방까지 나를 에스코트한 뒤였다.
“유디트 씨.”
내가 방에 들어서려는 찰나, 그가 나를 불렀다.
내 방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그에게 드리워지며 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흑과 백의 공간처럼, 문을 하나 사이에 두고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 경계에 선 채 뤼디거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죠? 혹시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안에 들어오셔서…….”
나는 몸을 비스듬히 틀어 자리를 내어주며 말했지만, 뤼디거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짧은 의문일 뿐이라.”
고개를 내젓는 그의 얼굴에 명암이 내려앉았다.
방문 앞에 우뚝 선 그의 안색은 낮게 침잠해 있었다.
뭐길래 이렇게 심각하지. 덩달아 긴장한 나는 그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연회장에서 왜 그런 말들을 듣고만 계셨습니까?”
“네?”
“굳이 그런 말, 듣고 계실 필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이 당신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건 신경 쓰셨으면서, 방계 사람들은 왜 그냥 두게 하셨습니까?”
그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나는 표정 관리를 좀처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그 상황을 이해 못 하리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처리하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로 그와 작게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그의 낯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내가 당혹스러운 것은 그가 굳이 그에 대해 다시 짚고 넘어가는 점이었다.
이걸 어떻게 답해야 하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손을 내 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어……. 잠깐만요. 제가 좀 당황스러워서.”
“당황스럽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너는 네가 그러는 지금 이 상황이 안 당황스럽니……?
나는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