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46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46화
키는 또 얼마나 큰지, 마주 선 채 그를 바라보려니 목이 꺾일 듯 젖혀졌다.
“하녀들 때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말한 건 뤼디거 씨고……. 뤼디거 씨야말로 남 얘기 신경 잘 안 쓰시는 분이잖아요.”
“그렇죠.”
뤼디거의 짙은 속눈썹이 위아래로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랜턴의 유리처럼 말갛게 나를 비추었다.
그는 조금 더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낯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뤼디거의 시선은 너무 곧고 발라 마주하고 있으면 가끔 숨이 막혔다.
나는 숨을 작게 들이켰다. 그저 상황을 설명할 뿐인 일에 입이 바싹 말랐다.
나는 차근히 말을 이었다.
“그런 분이 절 신경 써주셔서 그래서 좀 당황했을 뿐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그제야 깨달은 듯, 뤼디거는 눈을 부릅떴다.
뒤통수라도 맞은 듯 그의 낯은 배신감과 깨달음으로 얼룩졌다. 그는 멍하니 되뇌었다.
“그렇……군요. 그렇네요. 그렇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는 홀로 곱씹듯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충격의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이 그러한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던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문 채 그의 고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신경 쓰고 있던 건 바로 저였군요.”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감탄 섞인 중얼거림을 되뇌었다. 그의 입가가 들썩였다.
“지금껏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신경 안 쓴다 생각했습니다만……. 당신 이야기가 되니 상황이 달라지는군요. 신경 쓰입니다. 엄청. 참견하지 않곤 못 견딜 만큼.”
자, 잠깐. 지금 발언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요.
무슨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남 신경 써본 사람처럼…….
평소에도 수상쩍게 들릴 만한 발언을 수시로 던지던 뤼디거였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각 잡고 건넨 말이다 보니 더욱 파급력이 셌다.
당혹스러웠던 나는 입만 뻐끔거렸다.
그의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뤼디거는 당황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향한 그의 청회색 눈빛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모든 방황을 정리한 듯, 개운해진 눈빛이었다.
“그럼, 오늘 피곤하셨을 테니 이만 쉬십시오.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뒤돌아서서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태도가 어찌나 칼 같은지, 혼자 남은 나만이 얼떨떨하게 그의 자취를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CHAPTER6.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뤼디거는 납득하고 개운해졌겠지만, 나는 되레 의문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 일이 신경 쓰인다는 거지? 도대체 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내 눈이 말똥말똥했다.
쉽게 잠이 들지 못하고 몇 번이고 뒤척거렸다.
‘설마 정말 나를…… 좋아하나?’
나는 픽 웃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꼴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진짜. 유디트 마이바움. 또, 또 시작한다. 김칫국 그만 마시라니까.’
나는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푹신한 베개 위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참견하지 않곤 못 견딜 만큼……. 내가 답답했던 걸까. 막 밥그릇 못 챙기는 것 같고……. 아니, 아니지. 그건 결국 핵심이 아니잖아.’
그가 나를 답답히 여기는 근본적 이유. 그가 내 일을 신경 쓰는 이유…….
‘아, 모르겠다.’
한참 머리를 쥐어뜯던 나는 바닥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발을 크게 굴렀다.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였지만 지금 이 방에는 나 혼자 있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아니, 자기 혼자 납득하고 떠나면 어떻게 해? 나한테도 설명 좀 해주고 가면 어디가 덧나?’
나는 투덜거리며 뤼디거의 욕을 실컷 늘어놓았다.
그걸 기점으로, 나는 뤼디거의 단점을 줄줄이 꼽아보았다.
‘키가 너무 큰 것도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아. 가까이 있으니까 목이 아프다고. 말이 너무 없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말이야. 게다가 너무 자기중심적이야. 자기 가치관이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는지 상관도 안 하지.’
뤼디거의 단점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끝도 없이 나왔다.
‘군인이라 그런지 말투도 가끔 소름 돋는다니까. 보통, 처리라는 표현을 사람한테 써? 정말 처리해 버릴 것 같은 게 더 무섭단 말이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단숨에 쓱싹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암살자를 상대할 때 조금도 거리낌 없이 바로 총을 쐈지…….
그땐 군인이라 그런가 프로페셔널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암살자를 인간 취급 안 해서 그렇게 거침없었구나 싶었다.
무슨 소시오패스도 아니고……. 사람이 이미지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친척인 방계 사람들도 사람대접 안 하는데 암살자라 해서 사람대접 했겠어? 어휴……. 아니, 원작 유디트는 무슨 깡으로 뤼디거한테 덤빈 거야? 원작에선 완전 경멸당하는데……. 무덤덤한 지금도 다른 사람들 취급에 깜짝깜짝 놀라는데. 진짜,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울었다, 울었어.’
새삼스레 유디트의 근성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그렇게 나는 뤼디거의 단점을 바닥까지 닥닥 긁어모으며 밤을 꼴딱 새웠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 뤼디거가 나는 물론이거니와 누군가를 사랑하는 모습이 좀체 연상되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일종의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내 희망일 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실제로 뤼디거가 비혼주의자이니만큼, 아주 가능성 없는 희망은 아니었다.
뤼디거에게는 앞으로도 연인이 없을 테고…….
그렇다면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만 들키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렇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뤼디거의 곁에서, 루카의 또 다른 보호자로서……
아니, 잠깐. 뤼디거 성격대로라면, 혹여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걸 들키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자기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이야…….
아. 근데 그건 그거 나름대로 상처인데…….
뤼디거에게 치근덕거렸던 하녀들이 내쫓긴 걸 생각하면, 역시 좋아하는 걸 들키지 않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혹여 날 질색하며 경멸하기라도 하면……. 으으…….
난 지금 상태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연인 관계가 아닌, 루카를 매개로 둔 유사 부모나 다름없는 관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단점의 끝에서 발견한 것이 이런 초라한 안도라니.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자조했다.
* * *
다음 날, 나는 거울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밤을 새운 여파인지, 눈 밑에 거뭇거뭇하니 그늘이 져 있었다.
그렇게 밤을 새운 것도 부질없이, 나에겐 아직 많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뤼디거도 뤼디거지만, 지금은 프란츠가 더 문제지.’
뤼디거는 개인적 문제. 프란츠는 이 빈터발트의 존속이 달린 대의적 문제였다.
뭐가 더 중요한지는 비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방계 사람들도 아직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이 저택을 떠나기까지 긴장을 완전히 놓을 수가 없었다.
한 번에 하나씩 차례로 들이닥치면 좋을 텐데 꼭 일은 한 번에 몰아서 터진다. 사람 정신없게.
프란츠를 신경 쓰는 것은 나뿐이 아닌 듯, 다음 날이 되기가 무섭게 바로 루카가 나를 찾아 왔다.
“그 사람이랑은 절대 엮이지 마. 만나지도 말고, 말을 걸어도 무시해.”
나야 프란츠가 악당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이런다지만, 루카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프란츠를 경계하는 걸까?
어제 저녁 연회 때 프란츠가 추파를 던진 모습을 보고 저러나…….
하긴 뤼디거가 나한테 치근댄다며 길길이 날뛰었던 적도 있었지.
내 입으로 인정하긴 좀 그렇지만, 루카는 가끔 내 주변 남자들에 대해 굉장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중 대부분이 망상에 가까운 추론이었지만…….
내가 알았다 해도 좀처럼 안심할 수가 없는지, 루카는 거듭 프란츠와 엮이지 말라 일렀다.
“이모는 허술한 구석이 있어서 또 어리바리하다가 끌려갈 테니까, 애초에 말을 받지를 마.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내가 그 사람이랑 왜 엮여?”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답은 그렇게 했지만, 내 머릿속으로는 다른 속셈이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역시 한 번쯤은 만나봐서 무슨 의도를 품고 있나 떠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내가 다른 주판을 튕기고 있다는 걸 루카가 알면 배신감을 느낄 테지만, 이게 다 루카를 위해서다.
프란츠가 어떤 속셈인지 알아야 루카를 좀 더 확실히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양심의 가책을 합리화로 꼭꼭 눌렀다.
그러는 와중, 로라가 갑작스러운 말을 전했다.
“마님, 큰 마님께서 티타임을 함께 보내자 하세요.”
“오늘도……?”
평소에야 소피아와 자주 티타임을 보내곤 했지만, 지금은 방계 사람들이 와 있지 않은가.
티타임은 작은 사교계였다. 티타임을 통해 인맥을 넓히고, 비공식적 회담 또한 종종 이루어지곤 했다.
게다가 소피아는 빈터발트의 곳간을 틀어쥐고 있는 안주인이었다.
소피아는 빈터발트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않는 편이고, 방계 사람들이 빈터발트에 올 만한 일도 드문 만큼 이번 방문은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쉬운 소리를 하려는 방계 사람들로 그녀의 방이 문전성시를 이룰 거라 짐작했는데…….
“혹시…… 티타임에 방계에서 온 다른 분들도 참석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