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47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47화
나는 불안스레 물었다.
혹시나 이번 티타임을 통해 어색한 방계 사람들과의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아, 그런 거라면 전혀 달갑지 않은데. 딱히 방계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뇨. 큰 마님은 번잡한 거 싫어하시는 거 아시잖아요.”
로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물론 나도 소피아가 번잡한 거 싫어하는 걸 알긴 하지만…….
그래도 방계 사람들이 와 있으니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소피아의 사전에 예외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방계 사람들이 없다 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제저녁 만찬에서 마주했던 그들을 떠올리니,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중 누굴 만나도 피곤할 게 뻔했으니까.
‘썩 인상이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지.’
그들의 눈에 선연했던 질투가 아직도 아른거렸다.
한낱 평민이었던 이가 빈터발트 직계에 들어앉는다니 배알이 단단히 꼴린 모양이었다.
‘솔직히 어제 체하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니까.’
나는 진절머리 나는 어제의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방계 사람들도 없다고 하겠다, 별일 없겠지 싶었던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티타임에 맞추려면 바로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나는 소피아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동관의 복도를 지나는 찰나, 복도의 열린 창문을 타고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어제 드레스랑 목걸이는 봤어요?”
“봤어요, 봤어요. 라벤더 다이아였죠? 그렇게 투명하고 색이 선명한 건 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이 상황, 상당히 익숙한데……?
기시감이 드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발이 멈췄다.
라벤더 다이아라니. 이렇게 들어도 저렇게 들어도 내 이야기다.
매번 이렇게 우연처럼 내 얘기를 듣게 되는데 말이야…….
공교로울 정도로 타이밍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내가 못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얘기를 많이 하는 건지.
뭐, 둘 다일 수도 있고.
자꾸 엿듣는 기분이 돼서 참 그런데…….
아니, 남의 집 앞마당에서 소리 높여 집주인 욕하는 저 사람들 잘못 아닌가.
나는 회사 근방 100m 이내의 가게에서는 상사 욕은 입도 벙긋 안 했는데.
누가 들을 줄 알고…….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은 게 틀림없다.
“드레스는 어떻고요. 그렇게 섬세하게 반짝이는 공단은 처음 봤어요. 그 귀한 옷감으로 드레스 한 벌을 통으로 지은 거죠?”
“공작가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리 사치를 하니…….”
종일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잘 보일까 고민하며 꾸민 옷이 난도질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만약 내 옷차림이 그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더라면 그걸로 안목이 낮다, 평민 출신은 어쩔 수 없다 욕을 했을 거면서.
나로서는 어떻게 해도 욕을 먹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나직이 혀를 찼다.
옆에서 나와 같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로라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당장 무어라 외치며 나서려는 모습에 나는 황급히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다행히 그들은 여전히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조잘조잘 말을 이었다.
“공작님도 참. 그런 사람을 집 안에 들이다니……. 빈터발트의 격에 안 맞게…….”
“공작님이 문제가 아녜요. 공작 부인이 그렇게 그 불여우를 물고 빤대요. 들은 바로는 얼음 요정의 눈물 서른 개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선물했대요.”
“어머, 그게 얼만데. 어머, 어머.”
“오늘 티타임도 다들 거절 당했죠? 그게 그 불여우 때문이래요.”
내 호칭은 완전히 불여우로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다들 당연하게 날 불여우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다들 소피아와의 티타임을 거절당했구나……. 그래서 여기서 이러고 있었던 거구만.
어느새 뒷담은 내 이야기에서 소피아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소피아 그 깐깐한 여자가 잘도 그런 미천한 신분의 여자를 요나스의 여자로 인정했네요.”
“죽은 요나스의 유일한 혈육이니, 어쩌겠어요? 기준에 미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지, 뭐.”
“하여간 웃기다니까. 제 친자식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죽은 왕녀의 자식에게 아직도 집착하다니.”
“그런 여자니까 부족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왕녀께서 돌아가신 뒤 공작 부인이 된 것이죠. 왕녀의 자식을 누구보다도 잘 키운다는 명목하에 된 공작 부인이니, 그 의무는 다해야 하지 않겠어요?”
오……. 제법 깡이 있는데.
빈터발트 내에서 소피아의 욕을 할 줄이야…….
막시밀리안이 무서워서라도 아무 말 못 할 거로 생각했는데, 역시 안 보이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니까.
문제는 내가 듣고 있다는 거지만.
이제는 내 이야기도 아니겠다,
더 이상 듣고 있기도 그랬다. 나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이 또다시 내 덜미를 붙들었다.
“게다가…… 저만 느꼈어요?”
“뭘요?”
“그……. 뤼디거랑 그 여자랑 좀 이상하지 않아요?”
잠깐! 잠깐!
왜 갑자기 이야기 주제가 거기로 튀어?
“맞아요, 맞아. 에스코트해서 오가는 거 봤어요? 애인 사이에서도 그렇게 친밀한 에스코트는 안 할걸요.”
“뤼디거 걔가 그 여자 편든 건 어쩌고요. 원래 그런 애 아니잖아요? 그거 편든 거 맞죠?”
“남들 눈은 무섭지도 않다. 이거죠. 이래서 천박한 핏줄이란. 형수와 시동생 사이에 붙어먹다니…….”
“하여간, 요나스의 여자랍시고 가문에 들어온 여자가 제 친아들에게도 꼬리 치고 있으니……. 공작 부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걸 그냥 두고 보고 있죠?”
아니, 그렇게까지 확정 지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요…….
물론 뤼디거가 나 때문에 그 당숙모라는 사람과 마찰이 있긴 했지만, 딱히 날 옹호하는 기색이 두드러지진 않았는데…….
에스코트도 예법상 당연한 일이었고. 흠잡힐 이유가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날 깔아뭉개기 위해선 기억 날조마저 할 기세였다.
그들은 모두 나와 뤼디거가 은밀한 사이임이 틀림없다 입을 모았다.
그들은 내가 끼어들 새도 없이 와다다다 이야기를 하더니, 이내 시간이 되었다며 자리를 떴다.
덩그러니 복도에 남겨진 나는 질린 낯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로라의 안색 또한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혹시나 로라가 뤼디거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또다시 오해하면 어쩌지.
안 그래도 빈터발트 내에 돌던 뤼디거와의 관계에 대한 소문을 간신히 종식시켰는데……. 다시 불똥이 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다행히 로라는 방계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지, 왈칵 화를 냈다.
“저, 저. 저런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라니……. 큰 마님께 말씀 드려요, 마님.”
“됐다, 됐어. 괜히 신경 쓰시게 하고 싶지 않아.”
소피아에게 가서 말을 하는 것도 웃겼다.
방계 사람들이 부인이랑 제 욕을 하던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내 귀에 들어올 정도로 조심성 없게 굴면, 소피아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순식간일 터였다.
“하지만.”
로라는 납득하지 못한 듯 입을 달싹였다.
나는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내 의도를 전했다.
로라는 억울한 듯 입술을 삐죽였다.
꼭 어디 가서 조잘조잘 털어놓지 않으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사실을 뻔히 알았지만, 나는 굳이 로라의 입을 단속하진 않았다.
뭐……. 하녀들의 입을 통해 소피아의 귀에 들어가는 걸 기대하는 심정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고.
다만 뤼디거의 귀에 들어가는 건 좀 그런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은 사내이니만큼, 소문을 알게 된 뤼디거가 어떻게 나설지 조금 불안해졌다.
‘뤼디거의 행동 패턴을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야.’
역시 최대한 조용히 일 처리를 하는 편이 낫겠다. 나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다른 것보다도 둘째 도련님한테는 꼭 비밀로 하렴. 알았지?”
하지만 로라는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결연히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할게요!”
로라는 내 맘 다 안다는 듯, 눈 한쪽을 찡긋거렸다. 자기만 믿으라는 듯 얼굴에는 자신감이 그득했다.
하지만 영 믿음이 가지 않는데…….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가끔 보면 로라도 참 대책이 없었다.
주변에 상의 안 하고 저 혼자만 생각해서 앞뒤 안 보고 직진하는 불도저 같은 성격은 북부 사람들 특징인가……
불안했던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 어떻게 뭘 알아서 잘할 생각인 건데……?”
“어휴, 그런 자잘한 것까진 마님이 아실 필요 없으세요. 마님은 그냥 모르는 체하시고 계시기만 하면 돼요.”
“그, 그래.”
로라의 기세가 자못 강경했던지라, 나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방계 사람들이 성에 일주일쯤 머문다고 했었나.
일주일 동안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정도야 참을 만하니까 별일 없었으면.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인만큼, 나는 최대한 빨리 이 일주일이 지나기를 간절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