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5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53화
도대체 애한테 저런 말투를 가르친 원흉이 누구야?
토마스? 딘? 조셉?
엠덴에서 거들먹거리던 양아치들을 떠올린 내 주먹에 절로 불끈 힘이 들어갔다.
그놈들이 눈앞에 있으면 당장 대거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래서 맹모삼천지교라고, 주변 교육환경이 중요하다니까.
내가 옛 성현의 말씀을 곱씹고 있는 사이에도 루카는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어느새 원한의 화살은 프란츠에서 뤼디거로 향해 있었다.
“그 아저씨도! 허우대만 멀쩡해서 말이야, 제대로 지킬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고!”
“그, 그래도 뤼디거 씨가 와주셔서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었는데…….”
“애초에 그런 일이 없게 했어야지!”
루카의 푸른 눈이 나를 흘겨보았다.
지금 뤼디거 편을 들고 있을 때냐는 듯 질책하는 시선이 따끔따끔했다.
“청혼? 우리 이모한테? 웃기지도 않아, 그 족제비 같은 놈이!”
쌓이고 쌓인 울화통을 오늘 표출하기로 마음먹은 듯, 루카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어린애가 무슨 놈의 화를 그렇게 쌓아놓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다가 제 성질 못 이겨 뒤로 넘어갈 것 같았기에, 나는 쩔쩔매며 루카를 달랬다.
“루카,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앞으로도 만나지 마, 알았지? 첫 만남에 청혼이면, 두 번째 만났을 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엄연히 말하자면 청혼이 아니라 교제 신청이었지만…….
나도 눈치가 있지, 지금 그런 말을 했다가는 그놈 편을 드는 거냐며 이차전이 시작될 게 뻔히 보였다.
나에겐 프란츠의 체면보다는 지금 이 순간 루카의 심신 안정이 더 중요했다.
정작 화낼까 싶어 마음 졸였던 뤼디거는 별말 없이 지나갔는데, 루카가 이럴 줄이야…….
도대체 프란츠, 무슨 짓을 한 거야?
연회장에서 언성이 높아지긴 했다지만, 마냥 그때의 일로 루카가 이렇게까지 질색하진 않을 것 같은데…….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도통 이유가 짐작 가지 않았다. 그냥 루카가 프란츠를 싫어하는구나, 하는 수밖에.
CHAPTER7. 조카의 정서 교육이 시급합니다
뤼디거가 수를 쓴 건지, 아니면 그때 뤼디거에게 부지깽이로 맞고도 아무 말 못 한 것이 굴욕적이었던 건지.
프란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빈터발트를 떠났다.
방을 나서면서도 끝까지 질척였던 모습을 떠올려보건대, 뤼디거가 수를 쓴 쪽으로 내 마음의 추가 기울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방계 모임이 끝이 났다.
그래도 방계 사람들과 안 마주치려고 했던 것에 알게 모르게 신경을 많이 썼던 모양이다.
‘이래서 수도에서는 정말 어떻게 버티냐…….’
기진맥진해진 나는 한참 동안 방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부살이 인생 아니던가.
그렇게 대놓고 파업할 수는 없었던 만큼, 나는 최소한의 사회적 인간의 꼴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마냥 파업할 수 없었던 것은 루카 때문이기도 했다.
프란츠의 일 이후, 계속해서 꿍한 채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수업을 빼먹기가 일쑤에, 수업 시간에도 계속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던지면 척척 대답하니, 선생들도 어쩌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결국 선생님들은 나를 찾아왔다. 선생들의 간절한 요청에 나는 루카를 불러 물었다.
“루카, 요즘 선생님들이 네 수업 태도에 대해 지적이 많던데. 갑자기 왜 그래? 뭐 심란한 일 있어?”
“……그건 아니고.”
대답하는 루카의 표정이 뚱했다.
대화에 협조적이지 않은 루카의 태도에, 나는 자연스레 대화가 길어지리라는 걸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루카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꺼냈다.
“나 당분간 수업 안 할 거야. 알아서 자습할게.”
“뭐? 갑자기?”
“그런 쓸데없는 데 뺏길 시간 없어.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루카가 투덜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린애가 뭐가 그리 머리 복잡할 일이 많은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걱정스럽고 미심쩍은 심정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나를 흘끗 본 루카가 덧붙였다.
“내가 알아서 잘해. 걱정 마.”
“그건 알아서 하고 말고가 아닌 문제야, 루카. 이유를 알아야지 선생님들께도 이러이러하다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지. 아무 이유 없이 수업을 멈출 수는 없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나는 차근히, 신경질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이유가 뭐든지 간에 루카의 태도는 결코 예의 있다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카는 내 말을 전혀 이해 못 한 듯, 의아히 되물을 뿐이었다.
“어차피 가문에 고용된 사람일 뿐인데?”
아…… 뒷골이…….
가끔 이 세계의 귀족주의와 마주하면,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단 말이야…….
선생에게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기본 전제 조건부터가 없으니 설명하기가 막막했다.
나는 끙, 혀를 찼다.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 된 것 같았지만, 이 세계의 기준에서 루카의 사고가 틀린 건 아니었다.
선생을 신경 써주는 것이 배려의 영역에 들어갈 줄이야…….
이 문제에 관해서 루카를 설득할 만큼의 논리가 아직 내 안에서 정립되지 않았다.
이럴 땐 괜히 들쑤셔 봐야 어른으로서의 체면만 깎아먹을 뿐이다.
좋아. 일단 이 문제는 덮어두자.
나는 한숨과 함께 문제의 본질로 초점을 돌렸다.
일단 원론적인 부분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 같았다.
“그래, 뭐 때문에 그리 머리가 복잡한데?”
“…….”
“말 못 해?”
루카는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고집이 쇠고집인지라, 저렇게 나오면 아무리 구슬려도 절대 말 안 한다.
뭔 놈의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사춘기인가? 아니, 애가 아무리 조숙해도 그렇지, 열 살에 사춘기는 좀…….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루카가 이러는 게 이 세계에서는 크게 이상하지 않다고는 해도, 나는 루카를 그냥 이대로 둘 수 없었다.
좋아. 마음을 다진 채 결연히 운을 뗐다.
“그렇게 생각할 게 많으면, 이리 나와.”
“왜?”
“나오면 알아.”
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곤 자리를 박찼다.
루카는 영문을 알 수 없는지 미간을 살포시 찡그렸지만, 순순히 내 뒤를 따랐다.
루카의 정서 교육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일까.
복도를 성큼성큼 내딛는 내 발걸음이 유난히도 무거웠다.
* * *
“……이게 뭐야.”
정원에 오도카니 선 루카는 제 손에 들린 공을 내려다보았다.
다갈색의 조금 딱딱한 가죽공이었다. 루카의 작은 손으로 쥐기엔 다소 크지만, 내 손에 딱 맞았다.
“몰라? 공이랑 글러브잖아.”
나는 태연스레 대꾸하며 루카에게 가죽 글러브도 건넸다. 송아지 가죽으로 된 글러브는 부드럽고 유연했다.
송아지 가죽이라니…….
단단하고 튼튼한 소가죽의 장점과 부드럽고 가벼운 돼지가죽의 장점을 동시에 지닌 고급품이다.
소프트볼 할 때는 비싸서 못 썼는데, 이걸 이렇게 써보게 되네.
나는 왼손에 글러브를 끼고 손을 접었다 폈다 해보았다.
공과 글러브를 따로 주문한 건 아니었다.
어린 루카를 위해 빈터발트에서 이것저것 준비한 장난감 상자 속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던 걸 가져온 것이었다.
되짚어 보니 루카가 빈터발트에 와서 노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맨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은 내 방에서 빈둥거리는 거로 때우고…….
어린애가 맨날 방에만 콕 박혀서 공부만 하니까 생각이 그렇게 많지.
루카는 뚱한 얼굴로 공과 글러브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걸 어떻게 하라고.”
“캐치볼 하자고. 글러브는 왼손에 껴. 나처럼.”
나는 글러브를 낀 왼손을 보여 주며 말했다.
루카가 글러브를 착용하는 동안 공을 건네받은 나는 가볍게 공을 쥐었다가 그대로 위로 던져 올렸다.
공은 그대로 내 글러브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나는 능숙한 스냅으로 공을 다시 던졌다.
글러브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전의 후추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손맛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공을 안 던진 지 한참 됐지…….’
소프트볼부의 에이스에 전국체전까지 나가기는 했지만, 프로로 활동할 자신은 없었다.
고등학교부터는 학업에 매진했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다 보니 공을 만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캐치볼이 뭔데?”
설마 캐치볼이 뭔지도 모를 줄이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엠덴에 있는 동안은 루카 혼자 벌어먹기 바빠 공놀이할 여유가 없었고, 빈터발트에 와서도 공부하기 바빴으니…….
전적으로 내 잘못이네, 내 잘못이야.
양심의 가책이 들었던 나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서로 공을 던지면서 주고받는 거야. 아, 맨손으로 잡으면 다치니까 이 글러브로 받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