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54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54화
“공을 던지고 받는다고? 할 줄 알아?”
루카의 눈이 의심스레 가늘어졌다. 내가 공을 던질 수 있을 거라곤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루카가 아는 유디트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실제로 유디트의 과거는 운동이나 야외 활동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핑계를 대면 모든 게 풀리는 법이다.
나에겐 루카가 모르는 십칠 년이 있으니까.
“너보다야 잘하지.”
나는 의뭉스레 씩 웃으며 공을 던졌다.
공은 루카가 잡기 편한 위치로 곧게 뻗어 나갔다.
루카는 얼결에 글러브로 들어온 공을 낚아챘다.
나는 기세 좋게 글러브를 주먹으로 팡팡 치며 말했다.
“나한테 던져 봐.”
루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공을 던지는 일 따위 시답잖다고 생각하는 게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글쎄,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걸.
나는 빙긋 웃으며 루카를 재촉했다.
“얼른.”
그제야 루카가 공을 던졌다. 나름 힘을 줬는지, 무게가 앞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힘의 분산이 완전 엉망이다. 마지막에 던지는 순간 손목도 꺾였고.
공은 힘이 들어가지 않은 채 비실비실, 엉뚱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나는 두어 발짝 대각선 앞으로 나서며 공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루카에게 슬쩍 던졌다.
내가 던진 공은 루카의 글러브 안으로 정확히 들어갔다.
“생각만큼 쉽지 않지?”
루카의 얼굴에 오기가 솟았다.
공을 만지작거리며 내려다보는 눈길에는 아까 없던 집요함이 서려 있었다.
그렇게 한두 번 공이 오갔다.
내가 던진 공은 루카의 글러브로 정확하게 가는 것과 달리, 루카의 공은 중구난방으로 자유분방하게 뻗어 나갔다.
물론, 내가 공을 놓치는 일은 없었다.
루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왜 이렇게 잘해?”
“내가 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 실력에 나름 자부심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정받는 건 기분이 좋았다.
“원래 머리가 복잡하면,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를 비워줘야 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겠다, 처음보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루카는 인정하지 못하겠는지 작게 투덜거렸다.
“그렇게 머리를 비워서 프란츠랑 어울리지 말라는 내 말도 잊어버린 거고 말이지.”
“뭐라고 했어, 루카?”
“아무 말도 안 했어.”
지나간 일을 몇 번이나 화제에 올리는 건 신사답지 못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루카는 입을 딱 다물었다.
‘하지만 다 들었다, 요놈아.’
하여튼 뒤끝 길다니까……. 누굴 닮아 저러는지,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운동 감각이 좋은 편이라, 루카는 금세 요령을 익혔다. 그리 오래지 않았는데도 능숙하게 공을 주고받았다.
루카 실력을 보건대 좀 더 본격적으로 던져 봐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제대로 자세를 잡아보았다.
양쪽 발을 붙인 뒤, 팔을 뒤로 들었다. 윈드밀까지 해서 던지기엔 루카가 아직 작았고…….
나는 관성을 이용해 앞으로 쭉 손을 흔들어 내밀었다.
손목이 몸통 측면을 통과하는 것까지, 아직 자세가 무너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역시, 치마로는 불편하단 말이야. 바지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본격적인가 싶긴 했지만,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운동하는 게 너무 불편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공을 주고받던 루카가 돌연 의아한 듯 물었다.
“이모는 왜 그렇게 밑으로 던지는 거야? 그게 더 잘 던져져?”
“습관이라…….”
소프트볼부 출신이다 보니 언더로 던지는 게 몸에 익었다.
그게 루카에겐 생소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이쪽이 제구가 더 잘돼. 대신 체중이 안 실려서 구속은 안 나오고.”
야구였다면 언더핸드스로는 제약이 많은 투구 폼이지만, 내가 하는 건 소프트볼이니까…….
그러고 보니 글러브와 공이 있는 걸 보아하니 여기에도 야구 비슷한 운동이 있나 본데, 어느 쪽에 가까울까? 크리켓? 소프트볼?
야구든 소프트볼이든 사람 수가 꽤 필요한 운동이니, 사람 많은 수도에 가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갑자기 수도에 가는 게 기대되기 시작했다.
나는 의욕적으로 말했다.
“나중에는 배트 가지고도 해보자.”
“그걸로 뭘 하는데?”
“날아오는 공을 쳐서 멀리 보내는 거야. 재밌어.”
그렇게 루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캐치볼을 하는 사이, 어느새 뤼디거가 다가와 있었다.
뤼, 뤼디거가 지켜보니 조금 부끄러운데.
예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뤼디거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나니 계속해서 의식이 되었다.
하지만 긴장에도 불구하고 내 제구력은 흔들림이 없었다.
내가 선수일 때도 갖지 못한 경지였다.
‘내가 전국체전 결승 때 이만큼만 덜 떨었어도 프로 생각을 했을 텐데.’
결승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평소만큼 실력을 못 냈던 걸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어휴, 잊자. 무려 십여 년 전의, 그것도 이전 세계의 일인데.
이 세계에 와서도 그때의 일을 곱씹고 있는 상황이 웃겼던 나는 픽 웃었다.
그때, 가만히 보고 있던 뤼디거가 돌연 물었다.
“재밌어 보이는군요. 저도 해보고 싶습니다만. 잠시 어울려주시겠습니까?”
“저, 저요?”
번지수 잘못 잡은 게 아닌가 싶었던 나는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루카랑 해보겠다고 나서지 않나?
삼촌, 조카 사이에 추억도 좀 쌓고 그래야지.
아……. 어쩌면 루카가 맨날 아저씨, 아저씨 그래서 좀처럼 친해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한테 빙 돌려 말하는 거지.
‘그’ 뤼디거가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건 좀 낯설었지만, 원래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지 않던가. 하물며 상대가 그의 인생에서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생긴 지 얼마 안 된 조카라면 더더욱.
좋아, 그럼 내가 도와줘야겠네.
나는 손에서 글러브를 빼며 슬쩍 제안했다.
“저 말고 루카랑 해보시는 건 어때요?”
“나 지쳤어…….”
하지만 내가 뤼디거에게 글러브를 건네는 것보다 루카가 한 발 더 빨랐다.
어느새 글러브를 뺐는지, 루카는 뤼디거에게 글러브를 넘기곤 비실비실 근처의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평소라면 뤼디거와 내가 단둘이 뭘 하는 걸 보지도 못하는 애가 저렇게 나가떨어질 정도라니…….
색색 숨을 쉬는 루카의 얼굴이 빨갰다.
저거저거, 완전 운동 부족이네, 운동 부족이야.
승마는 그래도 꾸준히 하는 것 같더니, 역시 그것만으로는 운동량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전까진 방계 모임을 앞두고 공부만 하게 내버려 뒀지만, 이제부터는 종종 불러서 캐치볼도 시켜야지.
어차피 이제 수업도 당분간 안 하겠다……. 역시 애는 좀 뛰어 놀고 그래야 건강해진다고.
나는 작게 혀를 찼다.
루카의 빈약한 체력에 내가 어처구니없어 하는 사이, 뤼디거가 글러브를 끼고 나섰다.
루카랑 내 손에 맞는 글러브다 보니 뤼디거에게는 조금 작은 모양이다.
그는 불편한 듯 연신 글러브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그, 그럼 던질게요.”
나는 아까보다 힘을 빼고 공을 던졌다. 팔다리가 길쭉하고 몸을 평소에도 움직여 버릇해서 그런지, 확실히 루카랑 할 때보다는 수월했다.
뤼디거는 금방 능숙해졌다. 그의 공이 정확히 내 가슴 언저리에 놓인 글러브로 향했다.
루카가 누구 운동신경을 닮았는지 알 것 같았다.
“뤼디거 씨도 참 신체는 건강한데 말이에요…….”
루카한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해줬는데, 대놓고 반례가 이렇게 나타나니 참 할 말이 없어지네…….
물론 뤼디거의 정신이 건강하지 않다는 건 아니고…….
뭐, 어떻게 보면 정말 건강해 보이긴 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신경 쓰는 일 없고.
그렇게 내가 속으로 뤼디거에 대한 불만을 구시렁대고 있을 때, 뤼디거가 덤덤한 낯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거였군요. 재밌네요.”
“안 해봤어요?”
“네. 처음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이라기엔 익숙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예전에 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 안 같아요. 요나스랑은 그러면 뭘 하고 놀았어요?”
“형님과 놀아야 합니까?”
“…….”
두 살 차이 나는 형제면 보통 친구처럼 놀지 않나?
귀족가 애들은 다들 저렇게 형제끼리 데면데면한 것인지, 아니면 뤼디거와 요나스만 저런 것인지…….
하여튼 어린 시절, 이 커다란 성에서 공부만 했을 뤼디거를 생각하니 안쓰러움이 치솟았다.
요나스야 다 큰 뒤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로 놀고 다녔다지만, 뤼디거는 바로 군대로 갔고…….
‘평생 공부하고 일만 해서 저렇게 사람이 묘하게 대화 핀트를 못 잡고 그러는 걸까…….’
나는 작게 혀를 찼다.
역시 어린 시절 정서 교육이 중요해.
루카도 지금부터 열심히 다른 활동도 하게 시키지 않으면, 제2의 뤼디거가 되어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