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5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58화
예상 밖의 질문에 돌연 말문이 막혔다.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뤼디거의 얼굴은 평소와 같이 무표정함 그대로였지만, 그가 미세하게 떨고 있다는 걸 손에 들린 카드 끝을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나는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어어.”
“내가 공작가를 이으면 계속 이렇게 부유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데? 정말 상관없어?”
내 답이 별로 신뢰 가지 않았는지, 루카는 계속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루카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호수에 쏟아지는 별빛이 비치는 것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는 무언가를 갈구하듯 보였다.
얘가 왜 갑자기 이런 걸 묻지?
지금껏 공작가를 잇기 싫은 기색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아니면 수도에 가서 후계자로 공표될 생각을 하니 긴장되는 걸까?
지금껏 태연해 보였지만, 사실은 무척 심란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고는 하지만 열 살짜리 아이 아니던가.
평범한 평민 아이에서 하룻밤새 공작가의 후계자가 되었으니,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어도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루카가 이렇게 묻게 된 원인도 짐작이 갔다.
아마 예전에 가주의 방에 관한 화제가 나왔을 때 잠시 언급한 내 소원 때문이겠지.
가주가 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 행복한 어른이 되길 바란다는 내 말을 그 뒤로도 계속해서 곱씹었던 모양이다.
루카가 후계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언급을 뤼디거에게만 했던 것도 뒤늦게 기억났다.
‘설마 저걸 물어보려고 이런 판까지 짠 거야? 참 나, 그냥 물어보지…….’
가슴 한구석이 꽉 틀어막혔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대뜸 물을 용기가 없었던 걸까. 어른스러운 척 보여도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였다.
‘내가 지금까지 루카를 너무 어른처럼 여겼던 걸까…….’
말로는 어린애 취급한다. 하지만, 실상은 루카에게 자율적으로 믿고 맡기는 부분도 많았다.
좋게 말하면 루카를 믿어서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수도에 가서 이사벨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나는 진심으로 내 행동을 반성했다.
‘역시 그때 좀 더 차근차근 설명해 줄걸 그랬어.’
말은 언제나 부족하다.
내 진심을 어디까지 드러내도 좋을지 재다 보면 되레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할 때도 많았다.
나는 한숨과 함께 루카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번에는 내 진심이 전해질 수 있게.
“애초에 내가 공작가에 따라온 건 널 지키기 위해서지, 네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야. 네가 공작가를 안 이으면 같이 손잡고 나오지 뭐. 둘 다 사지 멀쩡한데 설마 굶겠어? 밥 벌어먹을 구석은 나올 거 아냐.”
루카의 얼굴이 조금 울 듯 일그러졌다.
뤼디거는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내 대답의 어느 부분이 맘에 안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루카지 뤼디거가 아니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지금껏 생각만 하고 있었던 다짐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애초에 네가 공작가를 이어도 나는 가문에선 나올 생각이었어.”
“뭐?”
“뭐라고요?”
이번엔 루카의 미간 또한 와락 주름이 잡혔다.
두 사람은 돌연 놀랐다는 듯 펄쩍 뛰며 되물었다. 어찌나 반응이 격했는지, 되레 내가 얼떨떨할 정도였다.
내가 못 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당연하지 않나……?
“아, 아니. 그렇잖아요. 제가 루카 진짜 엄마도 아니고……. 사실은 이모인데.”
“엄마로 와 있잖아. 다들 엄마인 줄 아는걸?”
“하여튼……. 네가 공작가를 이었을 때쯤이면 너도 다 자랐을 테니까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괜찮을 거 아냐.”
나는 논리적으로 열심히 반론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딱히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 아니었다.
“……게 가만둘 줄 알아?”
“……예상과 다른데.”
뭔 생각을 그리도 열심히 하는지, 제각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소외감마저 들었다.
“저기요. 둘 다 저한테 할 말 있으면 그냥 말해주실래요?”
“……아닙니다.”
뤼디거는 중얼거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멀끔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루카 또한 천연덕스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깨를 으쓱였다.
굉장히 신경 쓰이는데……. 뭔가 숨기고 있는 게 틀림 없다.
하지만 어차피 캐물어 봤자 제대로 대답도 안 해줄 테고. 그나마 루카가 후련해 보이는 건 다행이었다.
나는 손뼉을 치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게임은 여기까지 할까? 물어볼 만큼 물어본 것 같은데.”
그러고는 탁자 위에 어지러이 흩어진 트럼프를 치우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때, 커다란 손이 내 손을 가로막았다.
“아뇨. 아직입니다.”
“하, 하지만 뤼디거 씨…….”
뜻밖에 저지하고 나선 것은 뤼디거였다.
지금껏 계속 지기만 해서 내심 내 제안을 반길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뤼디거를 곤혹스레 바라보았다.
뤼디거의 손은 내 손을 넘어 밑에 흩어진 카드들마저 덮을 듯 컸다.
그는 내가 카드에서 손을 떼고 나서야 흡족한 듯 손을 치웠다.
나는 뤼디거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저…… 재밌으세요? 마음에 드셨어요?”
“포커 말입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그저 그렇습니다. 그래도 유디트 씨랑 함께하니 재미있는 것도 같군요.”
“그, 그래요?”
언제나와 같은 뤼디거의 불꽃 플러팅은 어느 정도 고려해서 들었을 때, 포커 자체는 딱히 재밌지 않다는 말이렷다.
그러면 굳이 게임을 지속할 이유가 없지 않나?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거라도 아니면…….
아, 설마 그건가.
뤼디거가 이겨서 원하는 질문을 할 가능성이 영에 수렴하는지라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신 거예요?”
“네. 유디트 씨에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나한테?
뤼디거는 그렇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 사람들 생각보다 제대로 불붙었잖아?
포커가 주고 진실게임은 부차적 문제였는데, 이러다 진실게임이 주가 되게 생겼다.
“뭐……. 그럼 좀만 더 해볼까요?”
그렇게 판이 다시 돌아갔다.
도대체 뭘 묻고 싶은 건지, 뤼디거는 지금껏 무덤덤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의욕적으로 덤볐다.
이거……. 그냥 벌칙금 내고 넘어가려고 하면 큰일 나겠는데…….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하지만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내심 안도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전연승의 승리자 루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난 이제 아저씨한테 묻고 싶은 거 없는데. 그냥 돈으로 계속 내요.”
“루카!”
“아닙니다. 확실히 그쪽이 판이 빨리 진행될 것 같군요.”
자, 잠깐. 그거 애 교육에 정말 안 좋은 거거든?
하지만 뤼디거는 승리에 눈이 돌아간 사람처럼 강경히 게임 재개를 부르짖었다. 평소 내가 알던 뤼디거 같지가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진짜 무섭잖아.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못 먹어도 고’라고는 하지만 뤼디거의 ‘고’는 그의 잔돈이 탈탈 털리는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뤼디거에게 남은 돈은 단위가 커도 너무 컸다. 이미 루카에게 들어간 돈도 용돈이라 치기엔 너무 많았다.
어린 시절에는 도대체 왜 엄마가 내 세뱃돈을 가져가나 싶었는데, 막상 애 키우는 처지가 되니 알 것도 같았다.
“용돈 고마워요, 삼촌.”
루카가 뤼디거를 처음으로 삼촌이라 부른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지만, 전혀 풋풋하고 감동적이진 않았다.
이건 어떻게 들어도 비꼬는 거잖아…….
루카의 인성,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은 것일까. 역시 정서 교육이 시급한 것 같은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또 다른 보호자인 뤼디거가 저러니 원.
더는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뤼디거를 강경히 제지했다.
“인제 그만. 진짜 안 돼요. 뤼디거 씨도 어른이잖아요.”
평소엔 그리도 어른스러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럴까.
그쯤 되니 뤼디거가 무슨 질문을 할지 무섭다기보다 궁금한 게 더 컸다.
보다 못한 나는 불쑥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 보세요. 대답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