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5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59화
무슨 질문을 할지 들어나 보자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루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버럭 외쳤다.
“내가 뭐 때문에 계속 이긴 건데!”
뭐……. 때문인데?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나는 대답을 재촉하듯 루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카는 거기까지만 말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씩씩거리는 얼굴은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저도 그런 비겁한 방법으로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니……. 내기해서 이기는 건 안 비겁한 방법이야? 어떻게 봐도 그냥 물어봐서 대답해 주는 게 정정당당해 보이는데…….
“그러니, 조금만 더 합시다.”
저기요…….
뤼디거는 어딜 봐도 훌륭한 도박 중독의 증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한숨과 함께 덧붙였다.
“도박에 중독되면 진짜 답 없어요. 루카 외할아버지만 해도 도박 중독으로 재산을 다 날려 먹었거든요? 제가 가문도 뭣도 없어진 게 도박 때문이에요.”
“루카의 외할아버지라면.”
“제 아버지요. 도박장에서 거하게 잃고 술에 잔뜩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오다 그대로 다리 밑으로 굴러떨어져 운명해 주신 덕에 저택이라도 남아 있던 거예요.”
아버지라곤 하지만 아버지라는 느낌은 전혀 안 드는 작자였다.
실제 유디트의 기억 속에서도 썩 부모다운 일을 한 적이 없기도 하고……. 유디트 또한 아버지라면 치를 떨었었다.
아버지까지 운운하니 아무리 뤼디거라 해도 강경히 나서긴 그런 모양이었다.
원체 남 눈치 안 보고 사는 사람이다 보니, 그 정도 눈치가 있다는 게 좀 신기하긴 했다.
“……그렇습니까.”
뤼디거는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량해 보여, 나도 모르게 그러면 한 판만 더 하자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휴, 안 되지, 안 돼.
나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채, 흐트러진 트럼프를 척척 정리했다.
결국 포커 게임의 승자는 루카였다. 돈도 벌고, 원하던 답도 듣고.
‘루카가 도대체 누구한테 도박을 배운 건지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누가 루카를 가르쳤는지는 몰라도, 애를 완전 타짜를 만들어 놨다. 어휴.
그게 누군지 알기만 하면!
나도 배워보고 싶네, 진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루카와 무언가 내기를 걸고 카드 게임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아주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CHAPTER8. 머리 아픈 일은 꼭 한 번에 몰려온다.
그 뒤로도 뤼디거는 계속해서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내가 진실게임은 이제 그만이라며 단호하게 덧붙였다. 내 기세가 강경하다 보니 뤼디거도 재차 권하지는 않았다.
혹시 세 명이 문제인가 싶어 나는 로라에게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했다.
“네? 도련님들이랑요? 뭘요? 카, 카드 게임이요? 마, 말도 안 돼요! 그렇게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마님!”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로라는 손사래를 치며 도망쳤다.
도련님, 특히 뤼디거와는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질색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결국 그렇게 카드 게임이 끝나고 말았다.
대신 카드 쌓기라든가, 같은 색끼리 짝을 맞춰 짝 맞추기 게임을 했다.
비교적 건전한, 도박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게임류였다.
그래. 이제야 루카의 나이 대에 좀 맞는 것 같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카드 짝을 고르는 루카를 보며 나는 흡족히 미소 지었다.
수도까지의 일주일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시집과 예법 책은 도대체 왜 챙겼는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럼가트의 수도, 블루옌에 도착했다.
센트럴 기차역은 노이할트 기차역이나 빈터발트 기차역과 규모 면에서 달랐다.
빈터발트 역도 어지간히 크다 싶었는데, 수도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중앙역답게 플랫폼에는 많은 기차가 출발 시각을 기다리며 증기를 뿜고 있었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자신이 탈 기차를 찾아 플랫폼을 이리저리 누볐다.
그리 기차역이 복잡하건만, 우리 일행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우리는 차장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빈터발트 가문의 문양이 달린 마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빈터발트의 타운하우스로 향했다.
마차 창밖으로 보이는 수도의 풍경은 확실히 다른 곳에 비해 번잡했다.
건물도 많고, 지나가는 마차도 많고…….
빈터발트에서는 빈터발트 성을 제외하면 딱히 건물이라 할 만한 걸 보지 못했고 노이할트에서는 높아 봐야 2층 건물들이었는데, 블루옌은 3층 높이의 건물이 벽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다.
‘유럽 수도랑 비슷하게 생겼네.’
나는 마치 해외여행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으로 주변을 살펴 봤다.
이런 풍경이면 루카도 놀랄 만한데, 창밖을 바라보는 얼굴은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담담했다.
턱을 괴고 가만히 밖을 응시하는 루카의 모습은 무척 지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런 걸 보면 똑 닮았다니까, 정말.’
나는 대각선으로 앉아, 서로 정반대의 창밖을 바라보는 무표 정한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생긴 것도 나이 대도 정반대의 남자들이 내 눈엔 그린 듯한 판박이로 보였다.
마차는 다운타운의 메인거리를 지나 귀족가의 타운하우스들이 늘어서 있는 고급 주택가에 다다랐다.
이 세계의 상권은 점점 도시를 기점으로 발달하고 있었고, 시골 귀족들은 낙후된 자신의 영지보다 도시에서 살기를 갈망했다.
그래서 다들 자신의 영지를 두고 도시로 몰려왔지만, 도시의 땅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골 귀족들에게는 도시의 높은 땅값이 부담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평민과 섞이고 싶지도 않았다.
특권계층으로 사는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던 그들은, 기존 평민들의 주택과는 분리된 대지에 같은 귀족들끼리 벽을 붙여 여러 채의 고급 주택을 지었다.
그 때문에 좁은 면적에 높은 층의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고급 주택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좁다고 해도 엠덴에 있는 우리 집보다야 훨씬 크지만……. 내 원룸이랑은 비할 바도 아니고.’
귀족들의 기준으로 보면 그나마 현실과 타협한 결과였을 것이다.
과연 이 중에서 어느 저택이 빈터발트의 타운하우스일까.
내가 제일 화려한 건물이 무엇일까 짐작하며 이리저리 기웃이는 도중, 마차는 쭉쭉 앞으로 나 아가더니 이내 주택가를 빠져나갔다.
‘다른 구획에 있나?’
하지만 마차는 점점 도심에서 멀어졌다.
중간에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은 철책이 마차 앞을 가로막았다.
철책 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바로 문을 열었고, 마차는 그대로 철책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작은 숲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가 어디를 가고 있는 건지 몰랐다.
잘 관리된 듯한 숲길의 끝에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커다란 대저택이었다.
저택의 현관 앞으로 하인과 하녀들이 전부 나와 이열종대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아까 전 그 철책부터 여기까지가 빈터발트의 타운하우스 부지라는 걸 깨달았다.
아까 철책 문의 윗부분에 뭔가 금장으로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빈터발트의 문장이었나.
‘아아……. 그래. 내가 너무 서민적으로 생각했구나.’
서민들이야 걸어 다니거나 집 앞에서 마차를 잡아타거나 해야 하니 저택이 도심 가까이에 있을수록 좋았다.
귀족들의 타운하우스라 해서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저택 부지조차 줄이는 처지에 마구간과 마차를 따로 대둘 만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빈터발트 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수도의 부지를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빈터발트 가에겐, 되레 몰려 사는 그들이 닭장 속의 닭처럼 느껴졌으리라.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심에서 다른 이들과 낑겨 사느니, 보다 한적하고 전경 좋은 근처 산을 통째로 사는 쪽이 그들 취향이었겠지.
왕가의 명예를 생각해서인지 저택의 위치가 왕궁보다 고도가 낮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쯤 되면 제2의 왕궁 같은데…….’
이런 것을 과연 타운하우스라는 명칭으로 불러도 되는 것일까.
그래도 많이 빈터발트 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먼 모양이다.
나는 심란한 마음을 품은 채 뤼디거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