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60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60화
하인들이 모두 어서 오시라며 허리를 숙였다.
지극한 환대에 얼떨떨해져 나도 모르게 주춤하고 말았다.
그런 내 기색을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뤼디거가 전전긍긍해하며 덧붙였다.
“빈터발트 성에 비하면야 협소하긴 하지만, 그래도 당분간 지내시기 불편하진 않을 겁니다.”
네?
아무리 생각해도 뤼디거는 엠덴 저택을 저택으로도 안 봤을 게 분명했다.
처음엔 왜 나랑 루카가 외양간에서 살고 있나 싶었겠네.
“아뇨. 충분히 크고……. 괜찮아요. 다들 환대해 주셔서 놀랐을 뿐이니까.”
이제 제법 뤼디거 언어에 익숙해진 나는 능숙하게 덧붙이며 그를 다독였다.
뤼디거는 다소 안심한 듯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미간에 주름이 하나 있고 없고 차이였지만, 그 차이가 이젠 제법 크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기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빈터발트에서도 뤼디거의 태도가 유난하다며 하녀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지 않았던가.
블루옌의 저택이라 해서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빈터발트에서는 뤼디거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어찌저찌 잘 무마되었다지만, 여기서도 암살자와 일대일로 맞서 싸우는 귀족 영애라는 소문을 얻을 순 없었다.
역시, 애초에 여지를 주지 말아야…….
그리 생각한 나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뤼디거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어찌나 단단하게 잡고 있는지 옴짝달싹도 안 했다.
‘아니, 에스코트 하는 손을 이렇게 꽉 잡고 있는 신사가 어디 있어?’
나는 한참 기를 쓰다 포기했다.
에휴,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해 보면 내가 뤼디거의 행동을 제지하려 한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비키지?”
내 뒤에서 루카의 볼멘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루카가 아직 마차에 있었지.
“에스코트를 하는 거야, 아니면 엄마한테 추근거리는 거야?”
저기, 루카. 그런 발언은 괜히 오해에 불만 붙일 뿐인데…….
아니나 다를까, 숨 들이켜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났다.
발언의 내용도, 뤼디거를 향한 날카로운 어조도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교육이 잘 되었는지 저들끼리 수군대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만 봐도 얼마나 당황하는지가 느껴졌다.
이건 전적으로 루카를 신경 쓰지 못한 내 탓이다. 나는 황급히 루카에게 사과했다.
“미안, 루카. 내가 잡아줄까?”
“됐어.”
루카는 툴툴거리며 마차에서 계단을 밟고 폴짝 뛰어내렸다.
루카를 흘끔거리는 하인들의 시선에선 놀라움과 불안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놀라움이야 요나스를 쏙 빼닮았으니 그럴 만하다 해도, 불안은 왜인 걸까.
물론 방금 전 루카의 발언이 무척 시건방져 보이기는 했지마는,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애초부터 마음 졸이고 있었던 것 같은…….
‘하긴, 요나스의 주 거주지가 수도의 타운하우스라고 했었나.’
빈터발트에서도 갖은 사고를 치고 다녔던 불한당이다.
그가 불야성과 같은 수도에서는 얼마나 개망나니처럼 굴었겠는가?
그런 요나스가 가고 그의 자식이 왔는데, 숙부인 뤼디거에게 반말을 툭툭 내뱉는 게 아닌가.
그들로서는 요나스의 악몽이 재림한다 생각해도 별수 없었다.
‘하여튼 루카는 뤼디거한테는 유난히도 심하게 군다니까……. 뤼디거라도 단호하게 제지해야 하는데, 별로 상관없다며 넘기니까 루카가 더 저러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지난번에 한 번, 뤼디거에게 넌지시 루카의 말투가 불쾌하지 않느냐며 떠본 적이 있었다. 그때 뤼디거의 답변은…….
‘루카는 유디트 씨에게도 말을 놓지 않습니까. 저는 되레 루카가 저를 유디트 씨처럼 가까이 여겨주는 것 같아 기쁜데요.’
아냐. 그거 아냐, 뤼디거…….
뤼디거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차마 그의 앞에서 대놓고 루카가 널 싫어하는 것 같다 말할 순 없었다.
‘말하는 나도 상처라고! 루카랑 뤼디거 사이가 이렇게 될 줄이야…….’
이쯤 되니 원작의 흔적은 배경밖에 남지 않았다.
성격도, 관계도 이렇게까지 원작이랑 다르게 흘러갈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처음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아닌가? 처음에도 이랬나?
하여튼 입맛이 썼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원래 우리 루카, 착하고 예의 바른 애인데……. 점잖고…….’
나는 속으로 중얼중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내가 주장해 봐야 엄마의 팔불출로밖에 들리지 않을 터였다.
수도에서 꽤 오래 머물 테니, 그사이 루카의 이미지를 싹 바꿔놓으면 될 것이다.
그건 그리 어렵지 않다. 루카는 정말 바른 생활 어린이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나지…….’
나는 늘어서 있는 하인들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타운하우스를 관리하는 집사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머리가 하얗게 샌, 노안경을 쓴 점잖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블루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이바움 부인. 블루옌의 타운하우스를 맡고 있는 집사, 빌헬름이라 합니다.”
“아…….”
그런데 그의 외모가 무척 익숙했다.
어디서 봤더라. 내가 눈을 깜빡이며 집사를 빤히 바라보자, 옆에 있던 뤼디거가 작게 귀뜸해 주었다.
“빌헬름은 빈센트의 쌍둥이 동생입니다.”
빌헬름은 인자하게 웃어보였다.
잘 웃지 않고 딱딱한 낯인 빈센트와 다른 사람이라는 게 확 느껴지는 미소였다.
‘빌헬름이 잘 웃는 걸 보니 빈센트도 처음부터 그리 무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빈터발트에서 살게 되면 다들 표정을 잃게 되는 걸지도.’
그렇다면 되도록 루카는 수도에서 키워야겠는걸…….
루카를 아끼는 소피아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루카를 제2의 뤼디거로 만들 수는 없었다.
‘앗, 그런데 생각해 보니 수도는 너무 방탕한 것 같은데. 자칫 루카가 요나스처럼 자라기라도 하면…….’
그건 더 싫었다.
귀여운 루카가 그런 불한당이 되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던 나는 작게 몸을 떨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곤 짐작하지 못할 뤼디거와 빌헬름은 보고를 주고받고 있었다.
“전보를 받고 빠진 것 없이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좋아. 유디트 씨의 방은 어디지?”
“아이리스의 방입니다.”
“좋아. 유디트 씨에게 어울리는 방이로군.”
도대체 무슨 방이기에 나와 어울린다 하는 거지? 궁금했던 나는 바로 물었다.
“어떤 방인데요?”
“가보면 압니다.”
뤼디거는 드물게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입가를 들썩였다. 그것만으로도 타운하우스의 하인들에게는 놀라운 모습인 모양이었다.
집사 빌헬름 또한 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의 콧잔등에 얹혀 있던 안경이 밑으로 주륵 미끄러졌다.
그렇게 우리는 빈터발트의 타운하우스에 입성했다.
루카의 방은 푸른 리본의 방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푸른색과 짙은 고동색이 정갈하게 조화되어 있었다.
그 뒤, 나는 뤼디거의 손에 이끌려 아이리스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평소답지 않게 뤼디거는 조금 들떠 보였다.
아이리스의 방 또한 이름답게 연보라색에 흰색이 우아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둥근 곡선을 그리고 있는 감성적인 가구들은 전부 조개껍데기 안처럼 새하였다.
연보라색 벽지에는 하나하나 아이리스가 그려져 있었는데, 꽃의 테두리를 금색 도료로 덧그렸다.
흰 커튼은 섬세한 레이스로 뒤덮여 있었고, 연보라색 이불보에는 금실과 은실로 아이리스가 수놓여 있었다.
침대 기둥에는 우아하게 드리워진 침대 커튼의 가장자리에 구슬로 아롱다롱 술이 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그냥 실을 꼬아 만든 구슬인 줄 알았는데, 잘 보니 그게 전부 진주였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섬세하고 우아하며 세련되었다.
과연, 뤼디거가 의기양양해할 만한 방이었다. 나는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이 방은…… 무슨 왕족이 머물 만한 곳 같은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이 방은 바네사 왕녀님을 위해 만들어진 방입니다.”
“바네사 왕녀님이요?”
“네. 왕녀님과 아버지께서 결혼하셨을 때, 그분을 위해 꾸민 방입니다. 요나스를 낳고 바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 타운하우스에는 몇 번 오신 적이 없지만……. 어머니께서 계속 유지하고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요나스의 애인들 모두가 이 방을 탐냈지만, 아무도 이 방에 들어선 적은 없었죠.”
뤼디거는 점잖게 말했지만, 한 마디로 이 방에서 요나스와 여자들이 뒹군 적이 없단 말이었다.
“하긴, 요나스가 아무리 망나니라 해도 친어머니의 방이었는데…….”
“아뇨. 그런 걸 신경 쓰는 인간은 아니었고. 요나스 또한 몇 번이나 이 방을 쓰게 해달라 요청했습니다. 물론 기각당했죠.”
그건 좀 놀라웠다.
요나스라면 소피아의 전적인 편애를 받는, 빈터발트의 금지옥엽이 아니던가.
하긴 요나스 위에 바네사가 있지, 바네사 위에 요나스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게 의미 있는 방에 제가 머물러도 돼요? 전 다른 방이어도 상관없어요.”
나는 슬쩍 눈치를 보았다.
요나스조차 쉽게 들락날락하지 못하는 방을 나에게 내어주다니, 엄청 부담스러웠다.
그렇다 해서 요나스가 여자들과 뒹굴던 방에 머물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호텔이라고 생각하면 상관없지 않을까? 어차피 침구는 다 바꿨을 테고 말이다.
뤼디거는 내 불안을 종식시키려는 듯 단호하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아무리 주장해도 집사는 결코 이 방을 내어주지 않았을 겁니다.”
소피아가 허락했다고?
아무리 내가 바네사의 눈동자와 같은 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해도, 허용의 범위가 좀 과한 것 같은데.
나로서는 이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뭐, 소피아가 이해가지 않을 정도로 날 챙겨주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도 일단 방은 최대한 깔끔하게 써야지.
크게 인심 써 나를 이 방에 들여보내 주었는데, 가구에 흠이라도 나면 소피아 볼 면목이 없었다.
로라 또한 나에게 주어진 방을 보고 놀랐다.
이렇게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방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빈터발트에서 어깨너머로 온갖 고급스러운 걸 다 보았을 로라가 그리 놀랄 정도니…….
‘좋아. 티타임도 이 방에서 갖지 말아야지. 잘못하다가 바닥에 차를 엎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나는 그리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타운하우스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