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62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62화
이야기는 점점 사실에서 벗어나고 있었지만,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남이 받아들일 내 이미지가 중요했다.
뤼디거의 이미지가 희생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대업엔 원래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게다가 뤼디거는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에 관심도 없고.
나에 관한 소문을 먼저 뿌린 게 그이기도 했으니, 이건 인과응보였다.
나는 흔쾌히 로라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좋, 좋아. 결국 열 명의 암살자를 전부 처치하긴 했지만, 상처를 입은 거지. 그렇게 숲 속에 쓰러진 그를 내가 우연히 발견해서 일주일 동안 고생해서 살려낸 거야. 어때?”
“음……. 좋아요. 그 정도면 납득 갈 거 같아요. 숲 속이라면 역시, 도련님께서 마님과 도련님을 모시러 가는 길에 기습을 당하는 건가요?”
“그래. 너무 우연의 일치 같나?”
“아니에요. 그 정도 드라마성은 있어야 강렬해요.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 같은 말도 있으니까.”
그렇게 로라 또한 가세하여 열심히 머리를 짜내어 내 생각에 개연성을 덧붙여준 덕에, 구구절절한 뤼디거의 부상 일대기가 완성되었다.
거의 소설이나 다름없는 미담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다들 납득해 주겠지.
내가 역전의 용사이며, 전쟁터에서 뤼디거를 구해줬다는 소문을 믿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인데…….
그에 비하면 이건 완전 뉴스네. 뉴스야. 과장이 없고 사실적이지.
게다가 프레이밍으로 실제 사실이 왜곡된 것까지 딱이네.
나는 흡족하게 내가 짜낸 소문을 곱씹었다.
“그럼 저는 본분을 다해 열심히 이 이야기를 퍼트리고 올게요.”
“거짓말인 거 티 안 나게, 살짝살짝. 알지?”
나는 걱정스럽게 덧붙였다.
괜히 이쪽에서 퍼트리는 티가 나면 괜히 역풍이 불 수도 있다.
“당연하죠. 제가 경력 몇 년 차인데요. 저쪽에서 접근해 올 때까지 말하지 않는다. 접근하면 세 번 튕긴다. 상대를 잔뜩 안달 나게 한 뒤에 비밀이라며 꼭꼭 덧붙인다. 어때요?”
로라가 씩 웃었다.
주근깨 어린 광대가 올라가며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열여덟 살의 로라는 십 년 전문가의 포스를 내뿜으며 내 방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위풍당당하였는지, 나는 신뢰 넘치는 눈으로 로라를 배웅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로라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성공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큰 산을 하나 넘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뤼디거와의 소문 말고도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 또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집사 빌헬름을 따로 은밀히 불렀다.
“빌헬름.”
“예, 부르셨습니까, 마님.”
빈터발트의 집사 빈센트에 비하면 훨씬 상냥해 보인다곤 하나, 안경 너머로 느껴지는 눈빛이 마냥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태연한 척, 당연한 요구를 하는 척 말했다.
“혹시 본가에 보내는 보고서의 원본을 갖고 있나요?”
“네?”
뜻밖의 요구에 빌헬름은 눈을 크게 떴다.
“타운하우스에서 본가에 매달 보고서를 보내는 걸 알고 있어요. 그게 사본이고, 원본은 타운하우스에 백업해 둔다는 것도요.”
우연히 그걸 알았을 때 나는 이거다 싶었다.
보고서에는 당시 타운하우스에 머물던 이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다. 당연지사 요나스에 관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요나스는 성인이 되고 난 뒤 일 년의 대부분을 수도에서 머물렀다.
그의 행적 대부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바로 그 보고서였다.
“그건 왜…….”
“확인할 게 있어서요. 혹시 십 년에서 십일 년 전 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이사벨라가 데려온 사생아는 루카의 또래였다.
십 년에서 십일 년 전 요나스의 행적에 대해 미리 알고 있다면, 이사벨라가 요나스와 사귀었다고 거짓 주장을 할 때 반박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해 둔 것이 이것만은 아니었다.
타운하우스의 기록 하나만으로는 이사벨라의 거짓을 완벽하게 파훼할 수 없다.
그러니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르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준비해 둘 생각이었다.
“정확히 어떤 내용을 원하십니까? 이 년 치 분량이라 해도 방대한 양이다 보니……. 특히나 요나스 도련님에 관한 정보라면 더욱 자료가 많습니다.”
요나스의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빌헬름이 바로 그 이름을 거론하니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치가 장난 아닌걸. 나는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요나스에 관한 것이라면, 보여주실 수 있나요?”
빈터발트로 보내진 사본은 일정 주기를 기점으로 정리되었다.
그렇다 보니 빈터발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본은 고작 오 년 전 기록밖에 없었고, 나는 타운하우스에 오는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소피아를 통해 타운하우스로부터 사본을 보내달라 부탁했어도 되는 일이었지만…….
서류가 오가는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아무리 나라 해도 소피아에게 요나스의 뒤를 캘 거라는 말을 당당히 할 염치는 없었다.
만약 빌헬름이 거절하면…… 역시 뤼디거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하지만 그것 또한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뤼디거가 요나스의 행적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고자 하는 거냐 물었을 때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빌헬름는 미간을 살풋 찡그린 채 곤혹스러운 듯 손가락으로 허벅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마치 무언가를 셈하는 듯한 손짓이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빈센트의 답을 기다렸다.
한참 끝에 빌헬름이 입을 열었다.
“보여드릴 수는 있습니다. 가문의 비밀이니 아무에게나 보여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마님 또한 가문의 일원이시옵고……. 게다가 마님께 전적으로 협력하라는 큰 마님의 명도 있으셨으니까요. 다만 말씀드린 대로 정말 양이 많아서 좀 더 원하시는 정보를 구체적으로 말씀 주시면, 제가 분류해 보겠습니다.”
“아니에요, 그 정도면 됐어요.”
다행이다.
나는 화색을 띠며 답했다. 계속해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혹시 사람을 한 명 찾아주실 수 있나요? 지금까지의 행적을 뒷조사해 주시면 더 좋고요.”
뒷조사라 하니 상당히 수상쩍게 들리는데…….
하지만 빌헬름은 당황하지 않고 익숙히 말을 받았다.
“누구입니까?”
“이사벨라. 이사벨라 앤더슨.”
나는 간신히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이사벨라의 풀네임을 되뇌었다.
“앤더슨? 처음 듣는 가문입니다만…….”
“평민이에요. 나이는 제 또래로 추정되고……. 사생아를 가진 뒤 집안에서 쫓겨났을 거예요.”
“그러면 보통 홍등가로 빠지며 신분세탁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찾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찾아야 합니까?”
“홍등가에 있진 않을 거예요. 애 아빠가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아, 그리고 아마 수도에 머물고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죠. 마님께서 내일 왕궁에 다녀오시면 바로 확인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빌헬름이 믿음직스레 답했다.
빈터발트 가에서 수십여 년간 집사로 일해온 관록이 느껴졌다.
“정말 감사해요. 빌헬름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리겠네요.”
“아닙니다. 집사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더 시키실 일 있으십니까?”
“아뇨. 그 정도면 됐어요. 다만…… 뤼디거 씨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해주실 순 있나요? 당분간만요.”
“음……. 도련님께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 건 가능합니다만, 도련님이 먼저 물어보신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빌헬름은 곤혹스레 눈썹을 내려트렸다.
애초에 빌헬름은 내 사람이 아닌 빈터발트의 사람이다. 그쯤은 충분히 짐작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됐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예. 그럼 쉬십시오.”
빌헬름은 깍듯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빌헬름이 문을 닫고 난 뒤에야 나는 소리 내 크게 한숨을 쉬며 소파에 늘어지듯 등을 기댔다.
하지만 그 자세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뒤늦게 여기가 내 방이 아닌 아이리스의 방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파드득 몸을 일으켰다.
“소파 가죽이 늘어나기라도 하면 안 되지, 안 돼.”
나는 최대한 얌전히, 있는 듯 없는 듯 굴다 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주지시켰다.
이곳의 이불보의 실 한 올, 벽지의 도료 한 방울도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소파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다시피 한 채 엉거주춤 앉았다.
이쯤이면 소파 가죽이 덜 상하려나.
나는 작게 투덜거렸다.
“어휴, 방을 모시고 사네, 모시고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