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66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66화
정말로 그럴까 싶긴 했지만, 노신사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로서는 사람을 부르겠다 고집을 부리기도 뭐했다.
결국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나는 갑작스레 노신사의 말동무가 되어 버렸다.
“그, 마음씨도 고와라. 자네가 아니었다면 내 큰일 날 뻔했네 그려.”
“아니에요. 운이 좋았을 뿐인걸요.”
운이 좋다는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처음 온 왕궁에, 우연히 들른 정원이 아니던가.
나와 로라가 오기 전까진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정원에서 갑자기 쓰러지다니.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방치될 뻔했다.
어지간해선 수행원이라도 하나 데리고 다니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혹시 지병이 있으신 건…….”
“지병은 아니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기온 변화에 몸이 영 따라가질 못하는구먼. 예전엔 이 정도는 거뜬했는데.”
“날씨는 아직 따듯해 보여도 드문드문 부는 칼바람이 매섭죠.”
“그러니까 말이야.”
물론 빈터발트보다야 따뜻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준은 빈터발트였다. 남부인 엠덴에 비하면 수도 날씨도 꽤 쌀쌀한 축이었다.
“혹시 모르니 사람이라도 한 명 데리고 다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은 무슨! 다 귀찮게 굴기만 하고 말이야. 사람을 맨날 노친네 취급하고…….”
노신사는 한참을 투덜거렸다.
주변에서 신경 써주는 것이 과한 간섭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어느 가문인지는 몰라도, 고집이 이만저만한 걸 보니 자식들이나 주변에서 보살피는 사람이 고생깨나 하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왕궁에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네. 오늘 처음 왔거든요.”
“그래?”
순간 노신사의 눈빛이 돌연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빛났다.
“실례지만, 어느 집안의…….”
딱 질문 들어가는 것이 제 자식, 아니, 손자와 이어주고자 하는 낌새였다.
결혼하기 싫어하는 손자를 은인과 억지로 이어주려 하는 할아버지……. 너무 흔한 클리셰잖아.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가 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결혼 상대로 흠결이 없는 상태도 아니거니와, 옷차림만 봐도 높은 집안으로 짐작되는 노신사의 가문과 격이 맞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왕궁에서 맞닥트렸겠다, 입고 있는 차림새도 귀한 것이니 상대는 당연히 날 귀족이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아……. 제가 가문이 변변찮아서요. 아실만할 것 같지는 않아요.”
이 상황이 곤란했던 나는 어색히 웃으며 답했다.
물론 빈터발트에 적을 두고 있다 뭉뚱그려 말해도 좋을 테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내가 그 집안사람은 아니니까.
내 대답을 듣기가 무섭게 노신사가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내가 생명의 은인을 가문 정도로 차별할 사람으로 보이나?”
어찌나 정정한지, 아까 쓰러졌던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건강하시구나 하고 생각했을 터였다.
나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날뛰는 노신사를 서둘러 진정시켰다.
“아뇨, 그렇진 않고요……. 진정하세요. 또 쓰러지시겠어요.”
그제야 노신사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는 내 얼굴을 뚫어질 정도로 빤히 바라보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후우, 후……. 그래. 일단, 생명의 은인의 이름은 알아야지.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어……. 유디트 마이바움이에요.”
“결혼은 했고?”
상대의 의도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니만큼, 결혼했다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귀족도 아닌 별 볼 일 없는 집안 여식과 손자를 이어주니 마니 하진 않을 것 같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음……. 아뇨.”
“출신은 어디 출신인가?”
“엠덴 출신이에요.”
“엠덴?”
“그린할텐 지방의 작은 마을이에요.”
“그 먼 곳에서 수도까지 왔어? 혹시 몸을 의탁하고 있는 귀족 가문이 있나?”
점점 신변 조사가 되어가는 기분인데…….
노신사는 참으로 꼬치꼬치도 캐물었다. 무슨 취조라도 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을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괜히 빈터발트에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왕지사 털어놓은 것, 나는 사실대로 답했다.
“어……. 빈터발트 가에…….”
“빈터발트 가에?”
하지만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신사의 한쪽 눈썹이 위로 치켜올라갔다. 명백히 불쾌한 기색이었다.
“흠, 흠. 하여간 그렇구먼.”
뒤늦게 자신이 너무 과한 반응을 보였다 생각했는지, 노신사는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찜찜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일순 노인의 얼굴에 스친 표정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와 맞닥트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번만큼은 도대체 왜, 라는 의문조차 들지 않았다. 솔직히 적이 없을 것 같은 가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계에 하는 것만 봐도……. 남들한테 더했으면 더했겠지.’
나는 나직이 혀를 찼다.
남들한테 원한 사고 다녀서 좋을 게 없는데. 루카라도 지금부터 미리 교육해 놔야겠다.
내가 그리 다짐하던 중, 저쪽 멀리서 로라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마님, 어디 계세요?”
“어이쿠, 자네를 찾는 모양이로군. 내가 너무 오래 잡아두었나 보네그려. 얼른 가보게.”
아까만 하더라도 날 붙들더니, 이번엔 손바닥 뒤집듯 부랴부랴 내 등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떠밀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못내 불안해하며 물었다.
“저……. 정말 사람을 안 불러 드려도 되나요?”
“당연하지! 여기서 조금 앉아 있다가 돌아갈 셈이네. 어서 가 봐. 하녀 아이가 목이 쉬겠어.”
노인이 그리 말하기가 무섭게 로라가 날 부르는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그럼……. 날씨가 쌀쌀하니 너무 오래 계시진 마세요.”
“그래, 그래.”
노신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고개를 까닥하고는 바로 뒤돌아서 로라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마님, 왜 대답이 없으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마주친 로라는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아니, 웬 노신사분이 쓰러져 계셔서……. 도와드리다 보니 늦었어.”
“노신사분이요? 어느 가문요?”
“아…….”
나는 그제야 호구조사는 열심히 당했으면서, 정작 노신사의 신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혹스러운 내 낯을 보기가 무섭게 로라는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로라는 큰일이라도 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어머, 마님도. 위험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역시 제가 붙어 있었어야 하는 건데…….”
“아, 아냐. 엄청 친절하고 좋은 분이셨어. 그냥 정신이 없어서…….”
나는 다급히 변명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로라가 집으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바로 루카에게 이를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심, 나 또한 그 노신사가 일부로 신분을 숨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설마……. 보아하니 빈터발트 가와 사이가 별로 안 좋아 보이던데, 나중에 내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 거겠지.’
나는 애써 좋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노신사를 만난 덕에 말리나와의 대화에 대해 잊을 수 있었다.
그건 정말 다행이네. 나는 멀끔해진 얼굴로 한결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하여튼 빨리 가자. 뤼디거 씨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 *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뤼디거와 약속한 곳으로 향했다.
왕궁은 처음이었지만 길눈이 좋은 로라가 함께 있으니 머뭇거리는 일 없이 단숨에 약속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뤼디거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큰 데다 장교용 모자까지 쓰고 있으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곧은 자세로 뻣뻣이 서 있는 그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조금만 오래 서 있으면 삐딱하게 자세가 흐트러지는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나는 작게 감탄하며, 뤼디거를 향해 반갑게 다가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가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이 시종일관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정작 뤼디거는 입 한 번 벙긋거리지 않았기에 다른 일행인 줄 알았는데…….
그냥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일 수도.
그러고 보니 주변 사내들은 뤼디거와 같은 장교복을 입고 있었다.
뤼디거의 표정이 심각한 걸 보니 내가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내가 그리 생각하며 잠시 주춤하기가 무섭게 뤼디거의 고개가 획, 내 쪽을 향해 돌아왔다.
그의 시선이 똑바로 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내가 오고 있는 걸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나한테 무슨 GPS라도 달아놨나? 그건 아닐 텐데.
뤼디거는 들러붙는 다른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바로 나에게로 척척 다가왔다.
“말씀은 잘 나누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그럼 이만 돌아갑시다.”
뤼디거는 그리 말했지만, 나는 차마 그의 말대로 할 수가 없었다.
대화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이렇게 다짜고짜 가도 되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아까 뤼디거에게 말을 하고 있던 장교 둘이 뤼디거의 뒤를 따라 헐레벌떡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