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6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69화
“예, 좋아합니다.”
뤼디거의 대답은 참으로 간결했다.
그의 답이 어찌나 직설적인지, 내가 알고 있는 좋아함과 그가 알고 있는 좋아함이 다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 잠깐.”
그의 답을 순순히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손을 내저으며 한 손으로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
생각해 보면 좋아한다는 말은 참으로 다면적이고, 범위가 넓다.
가족끼리도 좋아한다 하지 않던가.
애완동물도 좋아한다 하고. 친구 사이에도.
나는 좀 더 범위를 좁힐 필요성을 느꼈다.
긴장 때문인지 침이 꼴깍 넘어가며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뤼디거 씨가 날 좋아한다? 그, 이성적으로?”
“네. 제 머리는 더할 나위 없이 이성적입니다.”
“아니, 그 이성적 말고. 그, 여자로서 절 좋아한다는 거냐고요.”
답답했던 나는 가슴을 두드리고 싶었다.
뤼디거의 냉철한 이성에 대해서는 나 또한 익히 알고 있는 바이나, 지금 이 순간 튀어나올 대상은 아니었다.
뤼디거는 미간을 살풋 찡그렸다. 그는 생각할 여지도 없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면 제가 유디트 씨를 여자로서 말고 좋아할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이, 인간적 호감이라거나?”
“유디트 씨는 인간에게 호감을 느낍니까?”
놀랍게도 보통은 인간에게 호감을 느낀답니다.
뤼디거 씨는 모르는 모양이지만요…….
뭐라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끙끙 앓으며 머리를 쥐어 뜯었다.
뤼디거의 앞이니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처음 봤을 때부터입니다.”
그렇게나 오래?
아니, 그럼 처음 봤을 때부터 줄기차게 해온 플러팅이 진심이었단 말이야?
루카의 엄마, 아빠 운운한 것도?
구애하는 여자 운운도?
엄청 기쁜데, 어딘지 모르게 허무했다. 지금껏 내가 해온 부정은 도대체 뭐였지…….
뤼디거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으려 내가 얼마나 애써 노력했는데!
그러니까 나는 지금껏 혼자서 삽질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나의 노력이 허망하게 흩어졌다.
나는 설마 하며 물었다.
“그럼 그 산더미 같은 보석이랑 드레스 선물들도…… 절 좋아해서 그런 거였어요?”
“당연하지요. 저 아무에게나 선물하는 그런 남자 아닙니다.”
뤼디거는 조금 샐쭉해 보였다.
그에게 샐쭉한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오늘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계속 착각하셨겠군요.”
“아니, 그도 그럴 게…….”
당신이 사람 헷갈리게 굴었잖아.
나는 억울함을 속으로 투덜투덜 토로했다.
생각해 보면 뤼디거가 비혼주의자라 해서 연애까지 안 할 거라 확신한 것이 다소 편협했다.
어휴. 그러니까 뤼디거가 나를 좋아한다, 이 말이지…….
물론 뤼디거가 비혼주의자 결심을 깰 정도로 나를 좋아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뤼디거를 좋아하고, 뤼디거도 나를 좋아하고…….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냐?
애초에 기대도 안 했었는데. 꼭 결혼할 필요도 없고, 일단 사귀기만 해도…….
혼자 짝사랑하다 고이 마음 접는 것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잠깐, 잠깐만.
뭔가 엄청나게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나 지금 뤼디거 형수 아니었나?
그러면 사귀고 뭐고 말짱 도루묵이잖아!
짝사랑이 그냥 사실은 쌍방 짝사랑이었습니다! 하고 끝나는 거랑 다름없잖아!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다더니, 그랬으면 내가 루카 엄마로 가겠다 했을 때 말렸으면 좋았잖아.
물론 그때 반대했다 하더라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었지만 괜히 억울했다.
그때 뤼디거가 뭐라 했더라.
‘형의 여자인 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였었나…….
어휴. 다시 생각만 해도 칼바람이 슝슝…….
그러고 보니 도대체 뤼디거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 야?
억울했던 나는 뤼디거를 빤히 노려보며 물었다.
“애초부터 절 좋아했으면, 그때는 왜 제가 루카의 엄마로 와도 된다고 한 거예요?”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뤼디거는 여전히 뻔뻔했다. 그에 기세가 밀린 나는 주춤했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제가 루카 엄마면 당신한테는 혀, 형수잖아요. 아무래도…….”
“당신이 형의 여자든 아니든, 그게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데 문제가 됩니까?”
아, 형의 여자든 말든 상관없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는 뜻이었구나.
하하, 하하하…….
……진짜 어지간하네, 이 남자!
“남들이 흰 눈 뜨고 보잖아요! 아니, 됐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려고 했죠?”
“네.”
“하……. 진짜.”
나도 모르게 흥분해 버렸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는 뤼디거의 얼굴을 참 좋아했지만, 지금 그 얼굴과 마주했다가는 주먹이 나갈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시야에서 그를 차단했다.
내가 한참 손바닥에 코를 박고 있자, 그제야 뤼디거가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유디트 씨를 곤란하게 했습니까?”
“네. 곤란해요. 너무 곤란해.”
뤼디거가 나를 좋아한다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무리다.
거기에 상황도 상황이고…….
나는 우선, 뤼디거의 마음과 의지를 좀 더 정확히 알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니까 뤼디거 씨는 제가 형수든 말든 상관이 없이 좋아한다? 그거죠?”
“네, 맞습니다.”
뤼디거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 시무룩해 보였다.
도베르만처럼 쫑긋거리는 귀가 밑으로 축 처진 환영이 보였다.
시무룩하긴 뭐가 시무룩해.
세상에서 제일 뻔뻔할 것 같은 남자인데.
나는 애써 환영을 무시하며 최대한 건조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질문을 이었다.
“그러면 딱히 결혼이라거나 그런 것까지는 생각 없으시고.”
“아뇨. 할 수 있다면 하는 쪽이 좋습니다. 하지만 유디트 씨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을 수가 있으니까요.”
아니, 결혼까지 생각했으면서 형수든 말든 상관없다고 한 거야?!
내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너와 내 환경이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형수랑 도련님이잖아! 적어도 루카가 후계자로서 안정될 때까지는, 계속!
게다가…….
“당신…… 비혼주의자 아니었어요?”
“비혼주의자요? 제가 말입니까?”
뤼디거가 펄쩍 뛰며 놀랐다.
그가 이렇게 놀랄 수 있는이라는 걸 나는 지금 처음 알았다. 뤼디거는 나를 채근하듯 재촉했다.
“어디서 들은 얘깁니까? 프란츠입니까?”
“……아니에요?”
“아니……. 뭐. 네. 아닙니다. 아니에요.”
뤼디거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미간을 찡그린 채 격렬히 부인했다.
프란츠를 향한 노기가 언뜻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그를 비혼주의자라 믿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프란츠 때문이라고 착각한 것 같았다.
프란츠의 결백이야 내 알 바 아니고……. 뭐, 뤼디거가 아니라면 아닌 모양이지만…….
“재혼할 생각이라면 빈터발트를 통해 중매받으란 이야기는.”
“중매 대상으로 제가 부족한 점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말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자신감이 넘치네…….
하긴, 결혼 시장에서 그 누가 뤼디거를 거부하겠어.
그러고 보니 기차에서 카드게임을 할 때, 좋아하는 여자가 있냐는 루카의 질문에 답을 안 했었지.
그때도 설마 나를 염두에 둔 거였나.
그리 생각하니 좀 쑥스러운데.
손끝에서부터 열기가 퍼져갔다.
나는 간질간질한 손끝을 서로 만지작거리며 간지러움을 달랬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했다.
좋아. 몇 번이나 되는 부딪힘이 있었지만, 이제 슬슬 뤼디거 사용법을 알 것 같았다.
이 남자는 한마디로…….
너무 직선적이다!
명령어를 넣어주면 넣어주는 대로 꼬박꼬박 직선적인 대답을 뱉어내는데, 그 명령어의 방향이 조금만 틀려버려도 대답이 저 멀리로 훌쩍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애초에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그래서 지금껏 내가 예의 차린다고 넌지시 했던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이 전부 그 모양 그 꼴이었던 거고.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대답들에 대한 해답을 이제야 알게 된 기분이다.
뤼디거에게 조금이나마 익숙해진 것 같았지만, 그만큼 정신적으로 피로해졌다.
안 그래도 오늘 하루 일이 많았던 터였다. 거기에 뤼디거의 고백까지 겹쳐지니 머리가 멍했다.
머리 아픈 일은 꼭 한 번에 몰려온단 말이지…….
만약 뤼디거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진전시킬 생각이라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아직 루카의 친모로서 사교계 데뷔를 치르진 않았으니까.
사교계에 데뷔하고 나면 끝이다.
나중에 내가 루카의 이모였다고 밝혔다가는 왕족 기만죄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사실 이모였다고 밝히면…….
안 되지, 안 돼. 유디트 마이바움. 무슨 헛생각을 하는 거야?
내 변덕 때문에 루카를 위험하게 둘 수는 없다. 아직 이사벨라와 대면하지도 않은 상황 아니던가.
역시 이모로서는 루카를 지킬 명분이 서지 않아…….
하물며 뤼디거와 정도 이상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 또한 괜히 말 나올 구실만 주는 것이리라.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잡았다.
하지만 뤼디거는 그런 나를 흔들듯, 나직이 물었다.
“제 고백에 대한 답은 언제쯤 주실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