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7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7화
역시!
루카의 빈터발트 행!
원작 소설의 도표와도 같은 첫 시작의 순간에 내가 실시간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과장 조금 보태서 감격으로 기립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나는 주의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루카를 아끼는 좋은 이모다. 좋은 이모다.’
스스로를 세뇌하듯 몇 번이고 곱씹은 나는 얼굴 가득 충격과 근심을 가장했다.
나는 언제쯤 고개를 끄덕여야 수상쩍지 않아 보일까 가늠하며, 고뇌에 빠진 낯으로 애꿎은 찻잔만 한참을 매만졌다.
내 연기가 퍽 먹혔는지, 뤼디거는 조심스레 날 설득하려 했다.
“우려하시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빈터발트에서는 전적으로 루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뤼디거의 말은 진심이었다.
뤼디거와 뤼디거의 부모님, 그러니까 루카의 조부모는 실제로 루카를 사생아가 아닌 친손자처럼 대우했다.
실제로 뤼디거가 결혼 생각이 없다 보니, 루카가 유일한 조손이기도 했고…….
그래서 루카를 후계자로 삼으려다가 방계의 반발을 사서 그 사달이 났지.
루카의 앞에 펼쳐질 가시밭길을 떠올리니 절로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갑자기 갈등이 치밀었다.
꼭 루카를 보내야 하는 걸까…….
그냥 이대로 나랑 같이 있어도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빈터발트에선 루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뤼디거가 그에 대해 말하진 않았지만, 요나스의 핏줄을 이었다는 게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고.
내가 엄마도 아니고 이모니, 양육권 분쟁을 해서 이길 수도 없다.
사실, 엄마였어도 빈터발트를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다.
게다가 내가 근 한 달 남짓 잘해주려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지금껏 있었던 학대가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루카도 아마 뤼디거를 따라가고 싶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한 달간의 노력이 의미 없었던 것 같아 조금 입맛이 썼다.
‘그만 질척이자! 루카한테 잘해준 건, 뭔가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러고 싶어서였을 뿐이잖아.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하는 게 최선이라니까. 원래 시험 칠 때도 종 치기 3분 전에 답 바꾸면 틀리는 법이야.’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정리한 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 급작스러워서…….”
“이해합니다.”
뤼디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힘겹게 웃어 보이며, 조곤조곤 덧붙였다.
“지금은 루카가 아프다 보니 이런 사정에 대해 갑자기 알려 주기가 힘드네요. 오늘 약 먹고 푹 쉬면 내일쯤은 완쾌할 테니, 내일 한번 만나보시겠어요?”
“그렇게 배려해 주시면 저야 고맙습니다만.”
“뭘요. 루카를 위해선 걸요.”
나는 뤼디거를 배웅하는 그 순간까지도 조카와 헤어지게 되어 슬픈 이모의 심정을 열연했다.
애초에 루카를 보낼 생각 만만이었다는 걸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휴, 어떻게든 산 하나를 넘기긴 했네.’
뤼디거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날 저녁, 난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부려 포토푀를 만들었다.
맛이 썩 괜찮았는지, 루카는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다.
나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보았다.
‘이게 루카와의 마지막 저녁이 될 수도 있겠네. 한 달 남짓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나는 뿌듯해하며 이 순간을 기억하려 노력했다.
루카에겐 일부러 뤼디거가 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이면 바로 알게 될 일이기도 하고…….
오늘 뤼디거가 갑자기 나타난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던지라, 조금이라도 충격을 분산시켜 보고자 하는 자기 보호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예정했던 대로 뤼디거가 찾아왔다.
밤사이 열이 완전 똑 떨어진 루카는 갑자기 등장한 뤼디거를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해져 물었다.
“삼촌?”
“그래. 네 삼촌이야, 루카.”
내가 살짝 웃으며 루카의 등을 작게 떠밀었다. 인사하란 뜻에서였다.
하지만 루카는 등에 힘을 준 채 그 자리에 오뚝 서 있었다.
얘가 낯을 가리나.
나는 뤼디거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루카를 재촉했다.
“인사해야지, 루카.”
“……저 아저씨는 나랑 전혀 안 닮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가족이야?”
뤼디거를 바라보는 루카의 시선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무언가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었지만, 나는 루카가 아파서 예민해졌다고 생각하고 좋게 타일렀다.
“루카 너랑 나도 안 닮았는데 가족이잖니. 외모로 그렇게 판단하면 안 돼.”
물론 루카의 의심에 유디트 또한 공감했다.
머리카락 색과 눈 색은 물론이거니와 이목구비 하며, 뤼디거와 루카 사이에 닮은 점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았다.
원작이 친척 맞다 그러니까 그런 줄 아는 거지.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였다면 솔직히 의심스럽기도 했을 터였다.
“그거랑은 달라!”
루카가 소리를 질렀다. 뤼디거를 바라보는 눈엔 이제 적대감마저 서려 있었다.
원작의 루카는 뤼디거를 단숨에 삼촌으로 받아들였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역시 나랑 뤼디거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나……. 근데 그건 좀 그렇잖아.
내가 루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와중, 뤼디거 또한 난처함에 땀을 뻘뻘 흘렸다.
바늘을 찔러도 튕겨 나갈 것 같은 매끈한 얼굴이 곤혹스레 일그러졌다.
“루카 너는 내 형과 똑 닮았다. 금발에 짙은 푸른 눈……. 나는 형과 전혀 닮지 않았고. 형은 형의 모친을 닮았고, 나는 아버지를 닮은 편이거든. 그러니 너와 내가 닮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 그, 그래. 형의 초상화가 담긴 로켓이 있다. 한 번 보렴.”
뤼디거는 줄줄 변명을 늘어놓더니, 루카가 믿지 못하는 것 같자 결국 품을 뒤적이더니 로켓을 꺼냈다.
로켓 안에는 루카가 자라면 딱 그러할까 싶은, 그리스 조각상 같은 남자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라리사가 도대체 왜 정체 모를 불한당과 하룻밤을 보냈나 지금껏 궁금했는데,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저런 외모였다면……. 그럴 수도 있지.’
홀로 납득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는 여전히 현실 부정하듯 부릅뜬 눈으로 손에 쥔 로켓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루카의 작은 어깨를 끌어안으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루카를 타일렀다.
“삼촌네 집이 엄청 부자야. 귀족이기도 하고. 삼촌 따라가면 이제 맨날 고기도 먹고, 배우고 싶은 것도 다 배우고 그런다니까?”
“……이모는?”
“나? 난 집에 있어야지.”
그래도 이모라고 서운해하는 것 봐. 조금 뿌듯하긴 하네.
이렇게 순한 애 앞에서 양육비 운운하다니. 하여튼 유디트 마이바움이 문제였다.
‘이젠 루카도 배신감을 느끼지 않겠지……. 좋아. 이대로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거야.’
하지만 내 의도와 달리, 지금 루카의 눈에 가득 일렁이는 것은 분명 배신감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절망적이기까지 한 모습에 나는 눈을 끔뻑 떴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뭔가 문제가 있나?
그 순간, 돌연 루카의 눈빛이 번뜩였다.
루카는 갑자기 내 허리를 와락 껴안으며 외쳤다.
“어, 엄마!”
……뭐?
처음엔 엄마라는 말이 날 부르는 게 아닌 줄 알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쟤 엄마는 라리사였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유디트를 엄마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데.
하물며 이모라고도 잘 부르지 않는 편이었다.
부른다 해도 약간 악에 받친 듯한 원망 어린 호칭이었을 뿐…….
얼마나 당황했는지, 나는 말까지 더듬어가며 부정했다.
“내, 내가 왜 네 엄마야. 엄마가 아니라 이모잖아!”
하지만 루카는 쐐기를 박듯 다시 한 번 외쳤다.
“엄마! 날 버리지 말아요!”
“아니, 그니까 내가 네 엄마가 아니잖아. 루카. 갑자기 왜 이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뤼디거와 루카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뤼디거 또한 얼떨떨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딱 다물린 입술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움찔거렸다.
일단 루카를 먼저 진정시키고, 뤼디거에게 해명하자.
나는 상냥한 목소리로 루카를 다독이려 했지만, 루카는 되레 내 치마폭을 눈물로 적시며 달라붙었다.
“앞으로도 이모라고 부를게요. 그러니까 버리지 마요, 네?”
잠깐, 상황이 완전 이상해지잖아.
마치 내가 진짜 엄마인데, 처녀 행세하려고 억지로 루카에게 이모라고 부르게 하는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뤼디거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