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70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70화
고백에 대한 답을 들을 생각을 했단 말이야?
솔직히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별 신경 안 쓸 것 같았는데…….
하지만 확실히, 아무런 답도 않는 건 고백을 해온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뤼디거의 고백은 정말 기뻤다.
다만 그의 고백을 받아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을 뿐.
나라 해서 뤼디거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뤼디거의 성격으로 미루어, 일을 일사천리로 제멋대로 진행할 게 분명했다.
그래, 빈터발트에서 내 소문처럼 말이야.
잔뜩 과장하고 부풀려서. 자기가 원하는 결과만 얻어내면 그만이라는 듯이…….
물론 그런 뤼디거의 행동이 많은 도움이 되긴 했다.
덕분에 뤼디거와 그렇고 그런 사이에 관한 의혹은 완전히 벗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다만 수도에서 내가 할 일과 상충하지 않느냐 하면 확신이 없었다.
솔직히 그런 뤼디거의 제멋대로인 행동이 절대 달갑지 않았다.
내가 예상한 상황에서 변수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일 뿐이니까.
나는 최대한 프란츠에게 공격받을 여지를 줄이고 싶었다.
뤼디거야 남들 시선은 상관 안 해도 된다 생각하겠지만, 그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프란츠의 집념을 다소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빈터발트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뤼디거와의 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진한다 해도 문제고…….
게다가 나, 연애랑 일 둘 다 집중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란 말이지.
머리도, 마음도 복잡했다.
이게 전부 번뇌 때문이야. 이럴 때는 애초에 처음 생각했던 대로 가는 게 최고였다.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나는 결연히 답했다.
“……이번 수도에서 열리는 루카의 사교계 데뷔 연회가 끝나고, 영지로 돌아가면서요. 그때 답해드릴게요.”
그때쯤이면 이사벨라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었을 테니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또 다른 문제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겠지만…….
당장 눈앞의 커다란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에 몸이 축 늘어졌다.
무려 대답을 한 달 가까이 미뤘지만, 뤼디거는 되레 반갑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애초에 이렇게 고백할 생각이 아니었으니 때마침 잘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제대로 다시 하겠습니다.”
“뭘요?”
뜬금없는 말에 나는 눈만 깜빡였다.
뭐, 뭘 제대로 한다는 거야.
뤼디거는 떨떠름한 내 반응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
“고백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차에서 지나가는 말로 이리 해치울 만큼 가벼운 사항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가벼운 사항이 아니기는 한데…….
무슨 프러포즈도 아니고, 고백한 걸 또다시 해? 이미 입에서 좋아한다는 말이 나온 시점에서 끝난 일 아닌가?
또 뭘 얼마만큼 성대하게 하려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뤼디거를 만류하려 했다.
“이미 하신 고백을 다시 하실 것까지야…….”
“그래도 제대로 하는 게 제가 속이 편합니다. 만약 유디트 씨가 거절하시기 불편해서 그러신 거라면…….”
“아뇨,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고.”
“다행입니다. 그러면 제가 영지에 돌아가는 대로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뤼디거는 강경했다.
정말 진심일까……? 일견 진지한 듯 보이는 그의 진정한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짙게 내리깔린 속눈썹 아래 청회색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담아내지 않은 채 투명할 뿐이었다.
한참 동안 마차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 뤼디거가 정말로 나를 좋아한다고?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믿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뤼디거에게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걸 들킬까 전전긍긍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은 정말 천국의 구름을 밟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해서 마차 안의 침묵이 반가운 건 아니었다. 되레 생각만 더 많아져서 불편했다.
뤼디거가 날 어떻게 볼까 생각하니 이전엔 무심결에 넘겼던 행동 하나하나에 더 신경 쓰게 되고…….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이 어색한 침묵을 유지하는 것도 좀 그렇고…….
어색하지 않게 꺼낼 만한 대화 소재를 떠올리던 내 머릿속에, 아까 페터가 언뜻 던지고 지나간 말이 떠올랐다.
전하가 헛발질한다고 했던가.
뤼디거의 진급이 관련된 모양인데……. 왕녀도 얽혀 있는 듯한 뉘앙스였다.
뤼디거가 대신 설명해 준다고 했었으니까 물어봐도 괜찮겠지.
나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저머밀 소령이 말하던 왕녀님 이야기는 뭐예요? 장관급 진급은 또 뭐고요?”
“……그건 별것 아닙니다. 전하께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일 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뤼디거는 순순히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내가 너무 깊게 파고드는 게 아닐까 고민했을 테지만, 이제는 아니다.
더는 홀로 삽질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놓고 직구를 던졌다.
“당신한테 별것 아닌 건 알겠어요. 그런데 궁금하다구요. 당신은 저에 대해 궁금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루카에게 몇 번이고 지면서도 카드게임을 도전하던 걸 보면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물론 그때 궁금했던 점이 지금도 궁금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단순히 역지사지의 마음을 곱씹어보라는 뜻에서 던진 말이었지만, 뤼디거는 내가 그리 물을 줄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저에 대해 궁금합니까?”
“당연하죠.”
“…….”
내가 왜 안 궁금해할 거로 생각한 거지?
지금껏 내가 얼마나……. 내가……. 음…….
나는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뤼디거에 대해 자세히 캐물은 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뤼디거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뤼디거와 빈터발트에 대한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원작의 지식 덕에 알고 있었고……. 그 이상으로 파고드는 건 조금 무례 같았다.
혹시 뤼디거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가 자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해서는 아닐까?
가끔 그런 특이한 취향의 남자들도 있잖아.
솔직히 뤼디거 정도 되면 항상 주변 여성들이 호의적이었을 테니까.
반면 나는 처음부터 뤼디거에게 어느 정도 선을 긋고 행동했고…….
그래도 결국 좋아하게 되어버렸지만 티를 내진 않았으니, 뤼디거에게는 그에게 관심 없는 쌀쌀맞은 여자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아……. 그러면 내가 뤼디거를 좋아한다고 밝히게 되면 마음이 식어버리는 건가. 그건 좀 곤란한데.
물론 그게 아닐 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뤼디거가 나를 좋아할 만한 다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빙의했다는 특성을 빼고는 난 전혀 특이한 사람이 아니니까.
물론 유디트의 외모 자체가 어디 가서 빠지는 외모는 아니지만…….
단지 그뿐이라 하기엔 뤼디거는 더 많은 미인을 봐왔고, 애초에 원작에서는 유디트에게 눈길 한 점 안 줬었다.
그러면 내 성격?
음……. 역시 잘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뤼디거를 좋아할 이유는 수십 가지를 댈 수 있지만, 뤼디거가 날 좋아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짐작할 수가 없었다.
‘사실 뤼디거가 아니라 다른 남자라도 마찬가지란 말이지…….’
유디트의 외모와 빈터발트의 후계자라는 루카의 배경이 없는 날 과연 좋아할까…….
아냐, 이런 생각은 나중에 하자. 괜히 삽질하다 뼈 맞겠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하느라 시간을 보내느니, 이런 복잡한 문제는 뒤로 넘겨버리는 게 나았다.
내가 그렇게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뤼디거가 흔쾌히 제안 했다.
“그럼 우리, 질문 하나에 하나씩 대답을 주고받읍시다.”
“그건 공평한 것 같나요?”
“예. 그럼 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냥 질문하면 대답해 주겠다 할 땐 비겁하다느니 정정당당하지 않다느니 해놓고는…….
하여튼 뤼디거의 기준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싶었던 나는 짐짓 엄히 일렀다.
“당신에 대한 제 마음이 어떻고에 관한 건 대답 안 할 거예요. 빈터발트에 가서 대답할 거라고 했으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그는 설마 자신을 그런 졸렬한 사내로 본 거냐는 듯 물었다.
나라면 그냥 그랬을 거 같아서 말한 건데…….
괜히 머쓱해졌다. 나는 어물어물 시선을 흐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럼 됐어요. 그래서 전하랑 무슨 이야기를 한 거예요?”
“별것 아니고, 승진 이야기가 나왔을 뿐입니다. 거절했고요.”
“승진인데 왜 거절하셨어요?”
“전공이 없는데 승진이라니요. 대가 없는 승진은 없습니다. 이 경우엔, 대가가 둘째 왕녀님과의 결혼이었겠지요.”
왕녀와의 결혼.
단어를 곱씹었을 뿐인데 가슴 한구석이 철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