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71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71화
가십 신문에서 봤던 뤼디거와 둘째 왕녀와의 사이를 추측하는 기사가 때마침 떠올랐다.
『미혼인 둘째 왕녀는 평소 수도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던 뤼디거와 친분이 있으며…….』
친분이니 뭐니,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너무 대놓고 질투하는 것 같아 차마 묻지 못했다.
그렇게 왕녀와의 관계에 관해 묻는 수많은 질문이 입안에서 빙빙 맴돌다 이내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나는 최대한 덤덤한 척하며 물었다.
“전하께서 뤼디거 씨를 사윗감으로 점찍어두신 거예요?”
“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왜인지 알 것 같은데…….
성격이 이상한 구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건실하고 성실한 사내였다.
요나스처럼 방탕한 것도 아니고, 사지 멀쩡하고, 입이 가벼운 것도 아니고, 잘생겼고, 듬직하고…….
가끔 놀랍도록 자신을 제외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말리나 왕녀를 보아하니 왕족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아 보였다.
그러니 그런 뤼디거의 성향이 별반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사윗감으로 찍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철도 부설권에 관한 문제는 루카 덕에 해결되었고.
혹시 다른 이유가 있나? 나는 넌지시 찔러보았다.
“저는 왕녀 저하랑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게 뤼디거 씨가 후계자가 될 때를 대비해서인 줄 알았어요. 철도 부설권 때문에요.”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그래서 루카가 후계자가되어 안심했는데, 딱히 그게 문제가 아니었나 봅니다. 차기 공작이 아닌 그저 작센 자작이자 군 대령일 뿐인 절 장성급 장교로까지 승진시켜 가며 둘째 왕녀의 부마로 삼으려는 걸 보니 말입니다.”
“…….”
뤼디거도 딱히 이유를 모르겠는지 곤혹스러운 듯 단단한 턱을 매만졌다.
짙은 눈썹 사이 패인 주름이 깊디깊었다.
그냥 내가 봤을 땐 뤼디거만큼 눈에 차는 독신 귀족 남성이 없어서인 것 같은데…….
뤼디거야 칼같이 거절할 테지만, 그렇다 해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남자를 눈독 들이는 다른 이가 있다는 거니까.
나는 애써 웃으며 좋게좋게 말을 맺었다.
“전하께서 둘째 왕녀님께 신경 많이 쓰시나 봐요. 사윗감으로 뤼디거 씨를 지목한 걸 보니.”
“비단 둘째 왕녀만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모든 자식을 평등하게 신경 쓰시려 노력하는 편이시죠. 아마 선왕 전하 때문이 아닐까 짐작됩니다만.”
“선왕 전하요?”
뤼디거가 만나지 않는 게 좋다 단언할 정도로 괴팍한 노인이 도대체 뭘 했길래…….
“선왕 전하께서는 자식들을 무척 차별하셨거든요. 정확히는 바네사 왕녀님만 아끼셨죠.”
“그럼……. 설마 전하도?”
뤼디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보통은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편애하면 편애했지, 차별 대상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하지만 전 세계에도 그런 예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그러려니 싶었다.
“그 때문인지, 전하께서는 왕자와 왕녀 저하의 모든 일에 강박적으로 공평하게 하려 노력합니다. 그 때문에 첫째 왕녀 저하와 첫째 왕자 저하 사이에 왕위 다툼이 있습니다만……. 그 또한 편을 안 들어주고 계시죠.”
“아…….”
“뭐, 그래서 더욱 둘째 왕녀 저하의 결혼을 신경 쓰시는 걸지도 모릅니다만. 저로선 솔직히 전하의 심정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친모인 소피아의 애정을 요나스에게 모조리 빼앗겼으면서도 별생각이 없는 뤼디거에게 있어 현왕의 그런 트라우마는 공감의 대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뤼디거도 정말 어지간하단 말이지…….
아무리 봐도 트라우마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내가 작게 혀를 내두르는 사이, 뤼디거는 멀끔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에는 초조함도 얼핏 서려 있었다.
“그럼 이제 제 차례로군요.”
나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뤼디거는 무슨 질문을 할까.
그저 질문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짐작이 안 갔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뤼디거는 궁금한 건 궁금하다. 바로 입에 담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뤼디거가 쉬이 묻지 못하고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가며 눈치를 본다?
한마디로 이만저만한 질문이 아닐 게 분명했다.
그렇다 해서 내가 과거에 다른 남자를 사귄 적 있는지 없는지 같은 걸 물어볼 만큼 쪼잔한 질문을 던지진 않을 테고…….
내가 자길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제외하면, 뤼디거가 물어볼 만한 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긴장 속에서 뤼디거가 입을 열었다.
그의 나직한, 듣기 좋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선명히 공기를 울렸다.
“혹시 선호하시는 남성의 특징이 있습니까?”
“네?”
“아니면 결혼 상대로 생각하고 계시던 조건이라든가.”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거, 내 이상형 물어본 거지?
그게 끝이야? 고작?
아니, 물론 중요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선호하는 이성의 특징 같은 건 나도 뤼디거한테 궁금한 점이기도 하고.
다만 내가 쉽게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던질 것처럼 뜸을 엄청나게 들여서, 이런 김빠지는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정석적이라면 정석적인 질문이지만…….
뭐라 할까. 오히려 너무 정상적이라서 뤼디거와는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뤼디거가 남의 기준을 맞출 만한 사람도 아니고. 이미 어지간한 기준은 다 훌쩍 넘는 남자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뤼디거가 덧붙였다.
“어느 정도는 다 맞출 자신이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지요.”
어느 정도 다 맞출 수 있다는 자신감은 들어도 들어도 놀라웠다.
거기에 혹여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미리미리 준비한다는 것까지…….
그런데 뤼디거가 준비할 게 있으려나.
평소 내가 결혼 상대의 이상적 조건으로 품고 있던 항목들을 떠올리며 뤼디거와 비교해 보았다.
재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외모는 내 취향이다. 다소 고전적인 느낌이 드는 미남이란 말이지.
목소리야 목소리만 따로 똑 떼놓고 들어도 호감이 절로 생길 정도고.
군인이라 그런지 몸도 탄탄해, 키도 커.
조금 재수 없지만, 뤼디거 말대로 그는 어지간한 조건을 다 충족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성격 정도가 문제일까…….
하지만 또 뤼디거가 성격이 나쁜 건 또 아니란 말이지.
그런 점에 대해 구구절절 솔직히 말을 하자니 너무 조건을 따지는 것 같았다.
노골적이기도 노골적이고.
나는 두루뭉술하게 말을 흐렸다.
“음……. 대부분 다 충족하는 거 같아요.”
“그러면 저에게 바라는 모습이라던가.”
뤼디거는 재차 캐물었다.
내가 그의 지금 모습에 만족한다는 걸 쉬이 믿지 못하겠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뤼디거 씨는 제가 만난 남자 중에서 제일 완벽해요.”
“사람에게 있어 완벽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완벽함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럼 왜 완벽해지려고 하시는 거예요?”
“당신에게만큼은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앗…….
그건 엄청나게 감동인데. 뭐든지 나한테 맞춰주겠다는 거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뤼디거에게 부탁할 만한 게 생각나지 않았다.
전혀 없다는 건 아니고, 지금은 머리가 새하얗게 표백되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지금만으로도 충분해요. 솔직히 뤼디거 씨가 상대라면 과분할 정도예요.”
“그렇지 않.”
“객관적 조건 말이에요, 객관적 조건.”
말로는 조건 운운하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이왕 솔직해진 김에 스스로에게 좀 더 노골적으로 솔직해져 보자면, 나라 해서 뤼디거에게 바라는 게 전혀 없진 않았다.
인류애가 좀 더 넘쳐보라든가.
다른 이들에게 친절할 수 없겠냐든가……. 하다못해 동기들에게라도.
그래도 그렇지, 남들을 인간 취급도 안 한다는 평은 너무 하지 않은가.
하지만 사람이 또 간사한지라, 뤼디거가 그런 내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다른 이들에게 친절해질까 두려웠다.
뤼디거는 지금도 왕이 사위 삼으려고 드릉거리는 남자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사람이 완벽해져 봐라.
너 나 할 것 없이 다 뤼디거를 탐내지 않겠는가.
다들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게 뤼디거의 저 쌀쌀맞고 싹퉁머리 없는 태도 때문인 걸 생각하면, 나로서는 저 성질머리가 최후의 보루이자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방비책이었다.
그런데 저 허들이 쑥 내려간다? 그것도 나 때문에?
‘죽 쒀서 개 주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엄청나게 꼬일 텐데 그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는 없지.’
인간적으로 치졸하다 해도 할 말이 없었고, 정말로 뤼디거를 좋아한다면 이래서 안 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란 인간의 그릇이 이런걸.
좋아하는 남자가 더욱 나은 인격자가 되는 것을 택하느니, 차라리 졸렬한 소인배가 되는 걸 택하겠다.
내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뤼디거는 나를 구슬리듯 살살 말을 걸었다.
“그러면, 이건 절대 안 된다 싶은 것 하나만이라도 말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