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7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73화
아아, 이사벨라에 대한 뒷조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빠르기도 하지.
오늘 왕궁에 다녀오면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해두겠다고는 했지만, 조금 과장된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근데 그걸 루카가 알고 있으면 어떻게 해? 내가 최대한 비밀로 해달라고 했잖아!
게다가 이 자리엔 뤼디거도 있다.
뤼디거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던지라, 나는 흘끗 그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변명했다.
“별것 아냐. 내가 처음 사교계 데뷔하는 거잖아. 기존 사교계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래서 신경 써둬야 하는 사람에 대해 자료를 좀 부탁했어.”
“흐음.”
변명이 먹힌 모양인지, 루카는 더 캐묻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뤼디거도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여튼 조금도 방심할 수 없다니까.
연달아 가슴이 철렁한 나는 속으로 작게 구시렁거렸다.
도대체 빌헬름을 일 처리를 어떻게 해서……. 속도를 신경 쓰느라 보안을 포기한 건 아니겠지.
이번 일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다. 나는 빌헬름에게 단단히 따져 물어야겠다 다짐했다.
* * *
“루카 도련님이 말입니까?”
빌헬름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제가 보고서를 준비한 걸 아는 이는 저택에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도련님은 오늘 온종일 방 안에 계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뭐야.
그러면 루카가 비밀 통로라도 찾아내서 보고서를 훔쳐보기라도 했다 이거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혹시 비밀 통로가 있어요, 여기?”
“……건축 시 그러한 점도 고려해서 설계하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사용되는 일은 없습니다.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입니다.”
정말로 비밀 통로를 발견한 거 아냐, 걔?
골치가 아파진 나는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살살 문질렀다.
“혹시 보고서를 보기라도 했다면…….”
“그건 아닐 겁니다. 보고서는 제가 계속 들고 있었으니까요. 아마 제가 보고서를 준비하는 걸 보고 떠본 게 아닐까…….”
빌헬름은 그것만큼은 아니라는 듯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빌헬름의 행적만 보고 넌지시 떠봤다니, 열 살이 던질 만한 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루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보고서를 보지 못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이야 이사벨라가 누군지 모를 테니 그러려니 할 테지만, 연회에 이사벨라가 난입하고 난 뒤가 문제였다.
내가 어떻게 이사벨라에 대해 미리 알고 조사한 건지 의심할 테니까.
물론 프란츠 핑계를 대며 대충 둘러대면 되는 일이긴 하지만…….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알았어요. 준비해 줘서 고마워요, 빌헬름.”
“아닙니다. 혹시 더 필요한 게 생긴다면 언제든 말씀 주십시오.”
빌헬름이 떠나가고 방에는 나와 보고서만이 남았다.
일단 지금은 뤼디거와의 관계 전진이니 루카가 어디까지 눈치를 챈 건지 등의 사소한 일들로 머리를 어지럽힐 때가 아니었다.
연회장에서 이사벨라를 막아내지 못하면 이 모든 일이 도루묵이 되니까.
나는 이사벨라에 대해 뒷조사를 한 정보를 갖고, 미리 받아놓은 보고서 속 요나스의 동선과 비교, 대조해 보았다.
서류철 속 종이가 팔락팔락 넘어갔다.
보고서에는 요나스가 몇 시에 타운하우스에 들어서고 나섰는지, 어떤 여인과 함께했는지, 무슨 선물을 했는지가 적혀 있었다.
그 선물을 산 가게가 어디인지까지.
강박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적혀 있는 내용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네. 요나스 이 자식, 이렇게 놀아나면서도 행선지 한 번 숨긴 적이 없잖아?’
내가 너무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한 걸까…….
하긴, 나로서는 학원 갔다고 거짓말하고 PC방에 놀러 가는 것 정도가 일탈의 한계였다.
그런 내가 이렇게 공개된 일탈을 자행하는 요나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애초에 가문에서 방탕한 생활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안 해서 그런가……. 정말 놀랄 만큼 투명하단 말이지.’
나는 그 뒤로도 죽 이어지는 요나스의 행적을 넘겨 읽었다.
그 와중에 요나스가 친구와 함께 그린할텐 지역으로 떠났다는 문구가 보였다.
‘이때 라리사를 만났겠지.’
나는 해당 부분을 손가락으로 슬쩍 쓸어 보았다.
종이의 까끌거리는 느낌이 손끝을 간지럽혔다.
따지고 보면 라리사는 내가 직접 만난 적 없는, 유디트 기억 속의 인물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나는 괜스레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종이를 넘겼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요나스의 행적과 이사벨라의 행적을 비교해 보았다.
그런데…….
‘이거, 겹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나는 피식 실소했다.
내가 굳이 비교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요나스와 이사벨라의 생활은 하늘과 땅만큼의 간극이 있었다.
바네사의 회중시계가 없었더라면 빈터발트에 발도 못 들였을 터였다.
하긴, 프란츠도 그걸 알아서 바네사의 회중시계를 따로 빼돌려 놓은 게 분명했다.
프란츠와 이사벨라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용의주도한 프란츠가 이미 그에 관한 정보는 다 지운 모양이었다.
보고서에 프란츠에 관한 것은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내가 원한 것은 다 확인했다.
이사벨라와 요나스는 정말로 만난 적이 없고, 애초에 어울릴 일도 없는 관계다.
소설 속에서는 이사벨라는 프란츠의 내연녀로 나왔다지만, 지금 내가 지내는 이곳이 마냥 소설 속 내용대로 흘러가지 않으리란 불안감이 있었다.
뤼디거도, 루카도 원작하고 달랐으니까.
그래서 혹시나 싶어 대비한 것이었다. 확실히, 한 번 짚고 넘어가니 좀 더 개운해졌다.
‘좋아. 이제 남은 건 자료 없이도 바로 반박할 수 있게 보고서 내용을 달달 외우는 것뿐인가…….’
나는 제법 쌓여 있는 보고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외워야 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연회에 참석하는 이들 중 요나스와 한때 연인이었던 이들이 누구누구인지도 파악해 두어야 했다.
나는 기억력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즐겨 읽던 책의 내용은 달달 외워도, 전공 서적은 한 페이지 외우는 데도 한참 걸렸다.
‘이건 소설이다……. 소설 외전이다……. 나는 좀 더 심도 있게 소설을 읽는 중이다…….’
나는 그렇게 자기 세뇌를 하며 남는 시간을 전부 탈탈 털어 때 아닌 암기 공부에 매진했다.
이것저것 터진 일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밀려오는 까만 문자의 홍수에 이내 멀끔해졌다.
그래도 사람이 필사적이 되면 어떻게든 일을 해결하는 모양이다.
연회 전날, 나는 기어코 그 모든 걸 달달 외울 수 있었다.
이쯤이면 인간 승리가 아닐까?
나는 스스로의 가능성에 작게 감탄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모든 준비를 끝마친 나는 창문을 열고 새벽바람을 쐬었다.
피부에 닿아오는 새벽 공기가 차게 정신을 깨워주었다.
오늘로 원작과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루카가 복수하는 일 따위 없게, 뤼디거가 죽는 일 따위 없게.
이제 정말, 장르를 바꿀 때가 온 것이다.
모든 준비가 된 나는 각오를 다진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초조함과 긴장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새벽녘 동터 오는 하늘을 바라보는 내 두 눈만큼은 또랑또랑하기 그지없었다.
CHAPTER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 마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나를 깨우기 위해 방에 들어선 로라가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밤새웠다고 말해봐야 한 소리 들을 게 뻔했기에 나는 입에 침을 슥슥 바르곤 바로 거짓말을 했다.
“오늘따라 눈이 일찍 떠지더라. 아무래도 긴장돼서 그런가 봐.”
“하긴, 왕족분들도 참석하는 연회니까요. 전하께서도 참석하신다면서요? 어휴, 말리나 왕녀님만 해도 장난 아니셨는데.”
로라는 호들갑을 떨었다. 지난 번 왕궁에 갔을 때의 이야기로 조잘조잘 수다를 떨면서도 아침 세안 준비는 척척 이루어졌다.
향유를 몇 방울 떨어트린 세안 물로 얼굴을 씻어내니 정신도 말끔해진 것 같았다.
날개뼈를 덮을 만큼 길어진 머리카락을 고이 빗어 틀어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만 또 한참이다.
스스로는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섬세한 매듭이 땋아 내려져 갔다.
로라는 인두를 이용해 내 옆 머리카락에 우아한 컬을 넣었다.
자개에 금으로 포인트를 준 흰 아이리스 모양의 장식을 머리에 장식하는 것까지가 끝이었다.
로라는 작게 감탄하며 스스로의 실력에 흡족해했다.
“오늘도 완벽하네요.”
“고마워, 로라. 늘 느끼는 건데 넌 정말 솜씨가 좋은 것 같아.”
“뭘요. 아직 제 솜씨는 끝이 아닌걸요! 이젠 드레스와 보석이 남았어요!”
그리 말하며 미리 준비해 둔 보석과 드레스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