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77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77화
죠세핀의 몸은 묘하게 뤼디거와 루카 쪽을 향해 틀어져 있었다.
그녀의 빙긋 웃는 옆모습에서 느껴지는 거부에 말문이 절로 막혔다.
죠세핀은 무성의할 정도로 건조한 뤼디거의 답변에도 개의치 않은 채 계속해서 살갑게 말을 걸었다.
“아바마마가 부탁한 내 사교계 데뷔 에스코트도 거절했었고……. 그런 그대니 더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겠지.”
“폐하께서 과한 참견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폐하라 할지라도 에스코트의 권리에 참견할 수는 없는 법일 텐데요.”
“그러니 자네가 고지식하다는 거야. 아바마마도 그래서 계속해서 경을 내 부군으로 생각하시는 거고.”
죠세핀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뤼디거를 질책하며 눈을 흘겼다.
죠세핀의 태도나, 굳이 이런 화제를 꺼낸 것이나…….
설마 나를 견제하려고 하는 건가?
뤼디거는 왕녀와 별 사이가 아니라고 했지만, 왕녀 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그래서 뤼디거가 에스코트한 나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거라면…….
하지만 이어지는 죠세핀의 말에 나는 더욱 종잡을 수가 없어졌다.
“그렇지만 이제 달라질지도 모르지. 경은 이제 내 언니를 더 조심해야 할 거야.”
“빅토리아 왕녀님 말씀입니까?”
뤼디거는 담담히 물었다.
갑자기 첫째 왕녀인 그녀가 화두에 오른 건지 짐작할 수가 없었던 나는 눈만 굴리며 눈치를 보았다.
“그래. 언니가 자네를 신랑감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빅토리아 왕녀님께서는 신중하게 결혼 상대를 고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왕위를 쟁취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물로 말입니다.”
“그러니 자네가 딱이지. 빈터발트 공작가의 적통으로 빈터발트의 배경을 끌어올 순 있지만, 빈터발트의 후계자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하기엔 형님이 살아 계실 적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으셨습니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제 상황은 같습니다.”
“언니는 항상 요나스가 요절할 거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 당연히 자네가 빈터발트 공작이 될 거라고도. 하지만 루카를 후 계자로 내세우는 걸 보니, 이제 확실히 자네가 빈터발트에 관심이 없다는 걸 믿게 된 모양이야.”
“마치 제가 형님을 죽이고 빈터발트 후계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뭐…… 언니 본인이 그런 사람이니까. 그러니 오라버니와도 대적하는 것일 테고……. 그러다 보니 야망이 없는 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
죠세핀은 그리 말하며 빙긋 웃었다.
언니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낯에는 약간의 동경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빅토리아 왕녀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뤼디거를 좋아해서 나를 견제하는 것 같진 않고…….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보다.
나는 그리 가벼이 넘겼다.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껏 만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에 넘쳤다.
솔직히,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곱씹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 나라 왕족들은 만날 때마다 머리가 복잡해 질 만한 거리를 하나씩 던져주네.
말리나는 막시밀리안을 조심하라 하고, 죠세핀은 빅토리아 왕녀를 조심하라 하고…….
물론 후자는 나한테 한 말은 아니지만, 뤼디거의 결혼이 얽힌 일이니만큼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불안을 종식하듯, 뤼디거가 단호하게 말했다.
“첫째 왕녀께서 절 어찌 생각하시든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만, 참고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뭐, 빈터발트 경이 알아서 잘하리라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지.”
죠세핀의 얼굴에 설핏 자조가 스쳤지만, 금방 자취를 감추었다.
때마침 말리나가 준비를 끝내고 응접실에 들어섰다.
“인제 그만 가자꾸나. 오라버니가 먼저 와버리겠어.”
“아바마마께선 준비하는 데 오래 걸리잖아요. 걱정 마세요, 고모님.”
죠세핀은 말리나에게 다가가며 살갑게 말했다.
두 사람은 정말 사이좋은 고모와 조카 사이로 보였다.
두 왕녀와 함께 연회장으로 가는 도중, 루카가 작게 내 손을 잡아끌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허리를 조금 숙이니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신경 쓰지 마.”
“응? 뭘?”
“삼촌……. 아니, 저 아저씨 말이야. 왕녀님이랑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나는 뜬금없는 루카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얘가 오늘따라 웬일이래.
게다가 어조가……. 좀 그렇잖아. 마치 내가 뤼디거가 왕녀랑 결혼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처럼!
물론 내가 뤼디거를 좋아하고, 그에게 고백을 받기까지 했지만 대외적으론 아무 사이도 아닌데…….
호, 혹시 눈치챘나?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눈치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니까.
“당연히 신경 안 쓰지. 너야말로 그런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마.”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목소리를 꾸며 대답했다.
실제로 신경 쓰이는 건 좀 다른 부류의 일이기도 했고…….
그나저나 평소엔 뤼디거와 내가 조금만 붙어도 바락바락 성을 내더니 이런 상황에서는 내 걱정을 먼저 하네.
기특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어른스러운 것 같아 걱정되기도 했다.
신경 쓰지 말라는 말 말고 또 할 말이 있는 듯 루카가 입을 달싹였다.
말할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는 듯 쉬이 말을 잇지 못했지만, 각오를 다진 듯 운을 뗐다.
“그리고 오늘…….”
“응? 뭐라고, 루카?”
하지만 점점 가까워진 연회장에서 흘러나온 소음 때문에 루카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 것일까, 루카는 고개를 내저으며 얼버무렸다.
“……별것 아냐.”
“요 녀석, 실없긴.”
나는 픽 웃어넘겼다.
그렇게 우리는 연회장에 다다랐다.
처음에 연회장을 걸어갈 때의 다소 낮잡아보던 시선과 달리, 지금은 어딘지 모르게 눈길이 누그러져 있었다.
나에 대해 수군거리던 뒷담도 목소리가 낮아졌다.
“정말로 말리나 왕녀님이 샤프롱으로…….”
“정말 믿기지 않네요. 말리나 왕녀님이 샤프롱을 해주시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저 여자는 모를걸요?”
그 영광, 지금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래서 소피아가 다이아몬드까지 진상하며 말리나를 샤프롱으로 하려고 했던 거였구나.
소피아의 큰 뜻을 이제야 절감한 나는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저 다이아를 봐요. 저 귀한 걸……. 빈터발트에서 저런 것도 해줄 정도이니, 위세가 장난 아니겠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저 여자와 친해지면 빈터발트 가와 왕가에도 선을 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사교계를 모르는 평민이니까 조금만 잘해줘도 마음을 열 거예요.”
하하……. 착각은 자유지만, 그 의지는 높게 사겠습니다.
나와 친해지는 것이 이득이라는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니었는지, 실제로 친한 척하며 들러붙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오래가지는 못했다.
빈터발트의 북풍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 같은 뤼디거의 쌀쌀맞음에, 다들 몇 마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비실비실 사라졌다.
그렇게 뤼디거가 파수견처럼 우뚝 서 있는데, 말리나가 잠시 나에게 귀띔했다.
“내 잠시 목을 축이고 오마.”
“그럼 저도 함께.”
말리나를 혼자 보낼 수 없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말리나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이럴 땐 괜히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가 사람들에게 잡히기 일쑤다. 여기 있도록 하려무나.”
“고모님, 제가 모실게요.”
죠세핀이 바로 말리나에게 다 가서며 말했다.
왠지 죠세핀이 나와 있는 걸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인 걸까…….
뭐, 실제로 말리나에게 살뜰히 잘하는 모양이니, 내가 과민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앗, 이게 누구십니까. 레이디 마이바움. 오늘도 뵙네요.”
때마침 익숙한 목소리의 사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왕궁에서 마주친 적 있던 뤼디거의 동기, 페터와 다니엘이었다.
처음으로 등장한 익숙한 얼굴들에, 나는 그들을 반겼다.
“헵스퍼트 중령님, 저머밀 소령님, 여기서 뵈어 반갑네요.”
“하하. 오늘 연회는 빠질 수가 없죠. 차기 빈터발트 공작의 데뷔에, 드물게 있는 왕실 주최 사교회 아닙니까.”
“럼가트의 모든 귀족이 오늘 이 연회의 참석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 갖은 수단을 다 썼다더군요.”
“그 정도였나요?”
“물론이죠. 저희도 간신히 참석했습니다.”
페터가 너스레를 떨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정도 끗발이 있는 가문의 영식들이라는 걸 들어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뤼디거가 뷜로 백작의 여인을 에스코트한다면서요? 마이바움 양께서 운하시겠습니다.”
“예전에 그리 철벽같은 놈이 요즘은 여기저기 에스코트하고 다니는 게 참 신기하단 말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한다던데…….”
“그 덕에 넌 한몫 두둑이 챙겼잖냐. 뭐, 마이바움 양을 만나고 에스코트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아, 그러면 혹시 오늘 혼자 오셨습니까? 만약 에스코트해 오신 분이 안 계신다면 제가 대신 해드리겠습니다.”
“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이상했다.
마치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