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81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81화
루카는 부친인 요나스에 대해 별 기대와 믿음이 없었지만, 막상 제가 아닌 다른 사생아의 등장에 원작에서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루카가 원체 요나스를 빼닮았기에 후계자의 위치가 번복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루카는 간신히 얻게 된 행운이 손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걸 이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 루카는 빈터발트 후계자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마음고생했었다.
나는 이사벨라를 빤히 응시하며 루카의 손을 꽉 잡았다.
내 손의 온기가 과연 얼마나 루카에게 의지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너 혼자가 아니라는 나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뤼디거 또한 드물게 당황한 듯 나직이 혀를 찼다.
주변에 있던 다른 왕족들도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인상을 찡그렸다.
왕은 곤혹스러운 한숨과 함께, 한 손을 들고 술렁이는 귀족들을 진정시켰다.
“조용, 조용!”
왕이 조용히 하라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연회장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왕은 이사벨라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아이의 부친이 요나스 빈터발트라는 네 말이 진실이냐?”
“제 심장도 걸 수 있습니다, 전하.”
고개를 깊숙이 숙인 이사벨라는 이내 루카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제 아이 또한 저 아이와 같은 열 살이옵니다. 단지 어미의 용기가 없다는 것만으로 아이의 운명이 갈리는 것은 너무 잔혹한 일이라 생각해 이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섰습니다. 제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사벨라가 당당하니 왕도 이사벨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을 캐묻는 왕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그 아이가 뷜로 백작의 아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뜬금없는 왕의 말에도 이사벨라는 거리낌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증거가 없냐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
이사벨라는 치맛단 속 주머니에서 문제의 회중시계를 꺼냈다.
“여기, 요나스가 저에게 증표로 준 바네사 왕녀님의 회중시계가 있습니다.”
시종이 냉큼 이사벨라의 손에서 회중시계를 받아 왕에게 옮겼다.
회중시계를 받아본 왕의 안색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과연 그 시계가 진짜일까, 아닐까.
만약 진짜라면 이건 정말 몇 년간 주야장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추문이었다.
모두의 시선 속에서 왕은 침중한 신음과 함께 읊조렸다.
“이건…… 정말 바네사의 것이로구나.”
왕의 확언이 떨어졌다.
모두가 의심하던 시선을 거두었다.
요나스는 애인들에게 쉬이 사랑의 증표를 건네는 이가 아니었다.
하물며 친모인 바네사의 회중시계라니. 이만저만한 관계가 아니라며 다들 입을 모았다.
점점 그녀를 요나스의 애인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원작에서는 이대로 이사벨라가 요나스의 여인으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리 흘러가게 가만둘 순 없다.
지금 제대로 그녀를 쳐내야 이어지는 프란츠의 시도도 막아낼 수 있을 테고, 끝내 장르 또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그 분위기가 이 연회장을 뒤덮기 전에 그녀의 입에서 진실을 끄집어내는 일이었다.
나는 최대한 유순한 표정을 지은 채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전하, 저 여인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감히 제가 끼어 드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겠습니까?”
“……이, 아니, 엄마?”
루카가 내 치맛단을 잡아당겼다.
지금껏 철두철미하게 잘 지켜온 호칭 실수를 할 정도로 당황한 모양이었다.
걱정 마, 루카.
이 이모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원작 같은 구박 데기 신세는 이제 끝이야!
나는 루카를 돌아보는 대신 왕을 빤히 응시했다.
왕은 혹여나 내가 그녀의 머리를 휘어잡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가 전혀 흥분한 것 같지 않자 이내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노라.”
왕의 허락도 받았다.
공개적으로 그녀를 추궁할 권리를 얻어낸 나는 이사벨라에게로 다가섰다.
그런 내 뒤를 바로 뤼디거가 쫓았다.
내가 괜히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하는 걸까. 평소에도 그리 걱정을 해대는데, 이런 상황이니 신경 쓰이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나는 심드렁히 뤼디거에게 말했다.
“걱정 마요. 소란 안 피워요.”
“제가 우려하는 것은 저쪽입니다.”
뤼디거가 나직이 속삭이듯 말하며 턱 끝으로 이사벨라를 가리켰다.
명백히 선을 긋는 태도였다.
이사벨라는 그에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었던 만큼 침묵으로 일관했다.
빈터발트의 대표인 뤼디거가 대놓고 이사벨라를 탐탁지 않아 하자, 귀족들은 일이 어떻게 되는 거냐며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앤더슨 양.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유감이네요.”
“……저도 유감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죠. 있는 과거를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으니까.”
이사벨라는 성난 고양이처럼 털을 세우고 나를 경계했다.
대꾸하는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그래. 있는 과거를 완전히 숨길 순 없지. 그게 과연 정말로 있는 과거라면야.
나는 이사벨라의 적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태연히 물었다.
“앤더슨 양의 아이는 몇 살인가요?”
“열 살이에요. 봄에 태어났어요.”
“우리 루카는 이른 겨울에 태어났는데……. 루카와 별로 차이가 안 나네요.”
“그럴 수도 있죠. 그쪽이 먼저라고 해서 그쪽만 인정받으란 법은 없잖아요?”
그녀는 뻔뻔스레 고개를 치켜 들며 외쳤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지레 찔린 기색이었다.
나 또한 그녀에 맞춰 흥분할 필요는 없다.
내가 만약 이사벨라에 대해 몰랐더라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더듬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사벨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고, 대비도 차고 넘칠 정도로 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든 경우의 수를 짜놓고 자기 전에 몇 번이고 반복한 나는 거침없이 바로 강수를 두었다.
“뭐, 딱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당신 자식이 진짜 요나스의 아이라면요.”
“뭐, 뭐라구요?”
대놓고 내가 의심을 표하자 이사벨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귀족들 사이에서의 웅성거림 또한 커졌다.
다들 내가 빈터발트라는 밥그릇을 빼앗길까 당황하며 이사벨라를 쳐내려고 한다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이사벨라가 억울한 듯 반박했다.
“저에겐 이 회중시계가 있어요!”
“훔친 걸 수도 있잖아요?”
태연한 내 대꾸에 그녀는 더 약이 오른 듯 바르르 떨었다.
그녀 또한 당황스러울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며 난리를 쳐야 하는 내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따박따박 반박하니까.
이사벨라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나를 몰아가려고 시도했다.
“하, 마이바움 양,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지만…….”
“아니, 사실이 그래서요.”
물론 순순히 당해주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저쪽에게 승기를 주고 방심하도록 하여 말실수를 유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종종 핵심을 잡지 못하는 이 또한 생긴다.
그런 이들의 입을 통해 유언비어가 퍼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이니만큼 속전속결로 휘몰아쳐서 끝내는 쪽이 나았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요나스를 만나본 이들이라면 다들 동의할걸요. 요나스는 단 한 번도 만나던 여자에게 이런 종류의 선물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꽃이나 보석이라면 모를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그렇다며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이 연회에 참석한 요나스의 연인이었던 이들은 백삼십여 명.
열댓 명이면 모를까, 백삼십 명쯤 되는 이들의 공감과 동의는 꽤 위력이 컸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왕녀님의 시계를 건넸잖아요? 그렇다는 건 그만큼 당신이 요나스에게 있어 의미 있는 여자였다는 뜻인데……. 그가 도대체 뭐라 하면서 당신에게 회중시계를 준 거예요? 아, 저어하지 말아요. 전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다들 궁금할걸요.
나는 뒷말을 작게 입안으로 삼켰다.
굳이 내가 말로 하지 않아도, 무언의 시선 압박이 이사벨라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이사벨라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호, 혹시라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이걸 들고 찾아오라고.”
“그러면 아이를 가졌을 때 왜 요나스를 찾지 않았어요? 그때가 바로 그 회중시계를 쓸 만한 기회였을 텐데.”
“저택에 찾아갔어요. 하지만 문지기는 도련님이 안 계신다고……. 저를 잡상인 취급하면서 내쫓았어요.”
“그 시계를 보여줬는데도요?”
“……네, 맞아요.”
“언제쯤이었나요?”
“기억 못 해요.”
“대충 헤아릴 수 있을 텐데요. 임신한 시기와 계절을 떠올리면요.”
“……아마 가을 초입이었던 것 같아요.”
“확신할 수 있어요?”
“네?”
이사벨라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의 말에서 거짓말의 가닥을 발견한 나는 차근히, 그녀가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 설명해 주었다.
“사실 부끄럽지만, 제가 연회에 오기 전에 빈터발트 가의 타운하우스에 있는 보고서를 읽었거든요. 솔직히 궁금하잖아요. 나를 만나던 전후로 그가 뭘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