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8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83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맞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사벨라에게는 사신의 발걸음처럼 들렸을 것이다.
“거, 거짓말은 당신이 하고 있어요. 그에게 특별하게 사랑받은 저를 질투해서……!”
하지만 이사벨라는 끝까지 사실을 부정했다. 순순히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애초에 그런 근성이 있는 여자이니 이 연회장에 발걸음 했을 테고, 요나스의 애를 갖고 있다 외칠 만한 배짱 또한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호락호락한 여인은 아니란 말이지.
어떻게 해야 그녀의 입에서 사실을 뱉어내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요나스의 성격에 유추한 추론 같은 게 아니라, 좀 더 명쾌한 증거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녀를 좀 더 확실히 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지금껏 가만히 듣고 있던 루카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회중시계, 이야기 들은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그 회중시계를 ‘누군가에게 도둑맞았다’라고.”
요나스를 아버지라 부르는 루카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고 보니 루카가 요나스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처음이다.
나나 뤼디거와 있을 때는 그 인간, 그놈 정도로 불렀고, 소피아나 다른 이들 앞에서는 뷜로 백작 정도로 불렀다.
소피아가 내심 서운해했지만,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 정도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루카에게 강요한 적은 없었다.
그런 루카가 자발적으로 아버지라 부르다니!
내가 뜻밖의 호칭에 놀라고 있는 와중, 이사벨라는 흘러가는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아까보다도 더 격렬히 부정했다.
“거, 거짓말. 인제 보니 다 한통속이로군요. 애나 엄마나! 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빈터발트 가에 발도 못 디디게 하려고……!”
“그러면 한 번 확인해 보든가요.”
이사벨라의 서릿발 같은 기세에도 루카는 심드렁했다.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한 건 할머니니까.”
“하, 할머니?”
“빈터발트 공작 부인 말이에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 시계가 있었다면 저에게 물려줬을 거라고 하셨거든요. 아버지가 도둑맞았다고 말한 이후로 계속 장물을 뒤지고 있는데, 영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여기 이렇게 나타나다니. 할머니께서 참 기뻐하시겠네요.”
비아냥거리는 루카의 말이 쐐기처럼 박혔다.
소피아가 바네사의 이름을 두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소피아가 그리 말했다니…….
적당한 시기에 지원된 루카의 발언 덕에 지지부진하던 공방전의 끝이 드디어 보였다.
이사벨라의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 갈피를 잡고 있던 사람들의 저울이 점점 내 쪽으로 기울어졌다.
“소피아가 그리 말했다면, 더 들을 것도 없지.”
말리나 왕녀가 단언하고 나섰다. 실질적인 왕가의 판결이었다.
지금껏 철옹성처럼 이성을 붙들고 나의 공격을 막아내던 이사벨라의 얼굴이 명백한 혼란으로 뒤덮였다
“거, 거짓말. 요나스가 거짓말한 걸 거예요. 공작 부인께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한 소리 듣는 게 싫어서…….”
“요나스는 거짓말을 안 해요. 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씁쓸히 중얼거렸다.
내가 보고서를 숱하게 훑으며 얻게 된 결론을 이리 입에 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다.
소피아가 회중시계를 도둑맞은 걸 알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해서, 하나하나 다 보고하고 다닌다는 뜻은 아니었다.
원작에서 소피아는 회중시계의 행방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러니 회중시계의 주인이라고 나선 이사벨라를 요나스의 여자로 인정한 것이 아니던가.
설마…….
나는 루카를 흘끔 보았다.
천사 같은 외모를 한 루카는 이사벨라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일단 그 일에 관한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려도 된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사벨라는 프란츠에게 들은 요나스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라도 끄집어내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면 그저 거짓말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여운 여자일 뿐이다.
나는 물끄러미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짓말쟁이는 아무래도 앤더슨 양, 당신인가 보네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했다.
손바닥 뒤집는 듯한 태도에 되레 내가 다 움츠러들 정도였다.
“거짓말로 전하의 귀중한 시간을 붙들다니!”
“뻔뻔스러워라! 그럼 뷜로 백작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빈터발트 가에 밀어 넣으려 한 거예요? 탁란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
“뻐꾸기 같은 여자!”
“사생아를 낳아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연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그녀를 비난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사벨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그녀는 공황에 빠져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이제 그녀를 어르고 달래, 프란츠로 이어지는 끈을 낚아챌 계획이었다.
여기서 프란츠가 사주한 일이라는 것만 밝히면, 정말 모든 일이 명쾌하게 끝이 난다.
나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이사벨라를 향해 다가가 위로하려 했다
그녀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당신에게 이 회중시계를 준 사람이 누구냐고.
하지만 그때, 한 남자가 쩌렁쩌렁 소리쳤다.
“저 여자가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면, 유디트 마이바움 당신도 사기꾼입니다!”
사기꾼이라는 말에 내 심장이 철렁였다.
실제로 찔리는 게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설마 내가 루카의 친모가 아니라는 걸 눈치챈 걸까?
하지만 십여 년 전의 일이고, 요나스를 스쳐 지나간 여자는 많고 많았다.
내가 그 여자 중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사벨라야 요나스의 애인이 아닌 프란츠의 내연녀였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프란츠가 요나스의 내연녀였던 이를 데려왔더라면 나 또한 지금처럼 쉽게 해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여튼…….
나는 이사벨라와 다르다.
나에겐 내 결백을 증명해 줄 라리사의 알리바이가 있고, 누가 보아도 요나스의 자식인 루카가 바로 내 편이었다.
그러니 내가 꿀릴 것은 없다.
나는 발끈하려는 뤼디거와 루카를 진정시키며, 애써 태연한 척하며 되물었다.
“제가 사기꾼이라 주장하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전 그린할텐 백작가의 둘째, 로이텐입니다. 세상을 뜬 뷜로 백작의 절친한 친구였죠. 전하, 제가 유디트 마이바움의 죄를 증명할 기회를 주시겠나이까?”
그린할텐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였다.
그린할텐은 엠덴 마을이 속해 있는 영지이며, 라리사가 요나스와 만난 연회를 주최한 가문이었다.
정말 뭔가를 알고 있는 걸까. 내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왕은 점점 첩첩산중으로 흘러가는 듯 복잡해지는 일에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한 번 내 개입을 허락했던 만큼, 로이텐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왕은 고심 끝에 대답했다.
“허하노라.”
이사벨라에서 로이텐으로 상대가 바뀌었다.
단단히 각오한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첫수를 두었다.
“좋아요, 그린할텐 경. 당신은 왜 절 사기꾼이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당신에 대한 소문이 블루옌에 자자한 걸 알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인지, 어디 출신인지, 신분은 무엇인지…….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 엠덴 출신이라면서요?”
쿵쿵, 심장이 뛰었다.
혹시 영지에 사람을 보내 뒷조사를 한 건 아닐까. 가능성 있다.
누군가가 날 뒷조사할 거란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만약 뒷조사한다면 그건 빈터발트 가일 거라 생각했고, 그 정도는 뤼디거가 막아내 줄 거로 생각하고 가벼이 넘겼다.
하지만 타인이 이렇게, 단순한 흥미 본위로 내 뒤를 캘 줄이야.
어리석고 안이했다. 나부터가 이사벨라의 뒷조사를 하지 않았던가.
아니나 다를까, 상황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엠덴은 저희 영지 아닙니까. 그래서 당신이 엠덴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주변 이들이 저에게 당신에 관해 묻곤 했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있고 해서 엠덴에 사람을 보내보았죠.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들은 이야기가 뭔 줄 압니까?”
로이텐은 잠시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분히 시선을 의식한 태도였다.
제가 희곡 배우라도 된 것처럼 상황에 도취한 그는 연회장에 폭탄 발언을 던졌다.
“저기 있는 유디트 마이바움 양은 애를 낳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연회장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문이 번져 나갔다.
예상하던 말이었음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루카의 손을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내 뒤에 비스듬히 있던 뤼디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무척이나 작은 목소리는 못마땅함과 불쾌함으로 그득 차 있었다.
“분명 내가 다 처리해 놓으라 했을 텐데.”
잠깐, 도대체 뭘 처리했다는 거야?
설마 엠덴 마을 사람 입단속을 했다는 건가?
보아하니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놓친 걸 뤼디거가 다 해결해 놓은 모양이었다. 비록 일이 이렇게 되기는 했지만…….
로이텐의 의도대로 선동된 사람들이 소란스레 웅성거렸다.
“루카 빈터발트가 뷜로 백작의 혈육이 아니란 말입니까?”
“하지만 루카 빈터발트는 뷜로 백작을 쏙 빼 닮았는 걸요.”
로이텐은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던진 파문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당하는 나로서는 피가 싸늘하게 식을 뿐이었지만.
내가 초조해하는 걸 눈치챈 것일까.
그는 거들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뇨. 저는 분명 유디트 양이 애를 낳은 적이 없다 하였지, 루카 빈터발트가 뷜로 백작의 혈육이 아니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루카 빈터발트를 낳은 것은 바로 유디트 마이바움의 언니인 라리사 마이바움입니다. 전염병으로 사망했지요. 유디트 마이바움은 제 언니인 척하며 모두를 기만하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