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8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85화
연회장이 술렁였다.
사기꾼이라며 나를 조롱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나는 그런 소리에는 귀를 딱 닫은 채, 나의 사정에 대해 항변했다.
“하지만 저로선 루카가 홀로 빈터발트에 가는 게 걱정되었고, 그저 보호자로서 따라온 거예요.”
“굳이 엄마인 척할 필요가 있었나요?”
“이모로서는 루카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물론 속인 것은 잘못되었지만, 언니인 라리사도 제가 그렇게 하길 바랐을 거예요.”
“그게 아니겠죠. 유디트 마이바움 양. 좋은 사람인 척하지 마십시오. 모두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공작가 후계자의 이모보다는 공작가 후계자의 엄마가 더욱 큰 권력을 쥘 수 있으니까!”
그는 내가 얻게 될 이득만을 반복적으로 말했다.
애초에 내 상황을 이해해 줄 생각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빈터발트 대령이 당신을 데리러 온 것으로 아는데, 대령은 당신이 루카 빈터발트의 친모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아뇨. 그는 모르고 있었어요.”
함께 사기극에 올랐다 하여, 다 같이 내려올 필요는 없다.
이 모든 걸 내가 짊어지면 끝나는 문제니까.
나는 혹여나 뤼디거가 끼어들어 엉뚱한 말을 할까 봐 그의 눈치를 보며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그도 이성은 있는지,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로이텐을 빤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작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로이텐은 뤼디거의 침묵을 나에게 배신당한 분노 때문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기가 산 그는 의기양양하게 더 목소리를 높였다.
“하, 그러면 빈터발트 대령께서도 저 탕녀에게 지금껏 속고 계셨던 것이로군요.”
그때였다.
내가 말리기도 전, 뤼디거가 장갑을 벗어 로이텐의 뺨으로 내던진 것은.
가죽장갑은 제법 묵직했다.
철썩 소리가 날 정도로 두터운 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모두가 경악에 찬 시선으로 뤼디거와 로이텐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뤼디거는 아까와 마찬가지인 평온한 낯으로 덤덤히 말을 이었다.
“로이텐 그린할텐. 자네는 과한 추측성 발언으로 숙녀를 모욕했다. 그에 대해 내 결투를 신청한다.”
“무, 무슨! 대령, 왜 이러십니까. 저는 그저 저 사기꾼을……!”
로이텐은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이리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한 것 같았다. 당황한 로이텐이 저도 모르게 프란츠를 돌아보았다.
눈빛에서 어떻게든 해달라는 바람이 뚝뚝 떨어졌다.
“빈터발트 경, 전하께서 계신 곳에서 결투 신청이라니, 예법에 어긋납니다!”
지금껏 침묵한 채 상황을 보고 있던 죠세핀이 뤼디거를 만류했다.
하지만 뤼디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뻔뻔스레 되물었다.
“전하께서 계시니, 때마침 잘되었습니다. 전하, 이 결투의 공증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태연자약한 뤼디거의 제안에 왕은 신음과 함께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전하! 제발 빈터발트 대령에게 결투를 취소하라 명해주십시오. 저는 그저 사실을 읊은 죄밖에 없습니다! 정의를 위해 나선 것에 대한 대가가 죽음이라니요!”
로이텐은 자지러지듯 외치며 왕에게 다가가 발을 잡았다.
뤼디거가 결투를 하자고 했지, 그를 사형대로 보내겠다고 한 건 아닌데…….
그는 결투했다가는 정말 뤼디거에게 죽을 것처럼 굴었다.
“진정하라, 그린할텐 경. 이리 바닥을 구를 용기로 결투를 거절하면 되는 일이야.”
“하, 하지만 전하!”
결투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만큼, 본디 결투를 신청한다 해서 누구나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을 때는 예외였다.
결투 신청을 거절하는 행동은 신사로서의 명예에 종말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모두의 앞에서 결투를 거절하는 것이나, 왕 앞에서 오체투지를 한 채 데굴데굴 구르며 취소해 달라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명예에 누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 결투에 의사도 입회하지 않나? 물론 결투에서 죽을 수도 있다지만 결투를 한다고 전부 죽는 건 아닌데. 엄살떨기는.
나는 떨떠름히 로이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주변 분위기가 엄숙한 것이 왠지 모르게 로이텐의 죽음을 확실시하는 분위기였다.
아니, 원래는 내 부도덕성에 대해 지탄하던 분위기 아니었어? 왜 갑자기 분위기가 이렇게 된 거야?
연회장의 분위기를 따라잡지 못한 나만이 얼떨떨하게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로이텐이 저렇게도 결투를 물러 달라 원하는데 로이텐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걸 보아하니 왕도 이어지는 사건에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조금 무관심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루카의 엄마든 이모든 별로 상관없는 것처럼…….
그렇게 로이텐이 소란을 피우는 사이, 계단 위로부터 들려온 쩌렁쩌렁한 노호성이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참으로 소란스럽구나. 이것이 어딜 봐서 왕실의 연회이더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했다.
한 노인이 연회장의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왕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한 양장을 차려입은 노인의 등장에 모두가 깜짝 놀라 외쳤다.
“서, 선왕 폐하……!”
“아바마마!”
노인은 바로 칩거하고 있던 선왕이었다.
선왕은 아무도 데리고 있지 않은 채 혼자였다.
선왕의 나이가 나이다 보니 당황한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선왕을 부축하기 위해 다가섰다.
“됐다! 노친네 취급하기는. 썩 꺼져!”
선왕은 성을 내며 제 주위의 귀족들을 내쳤다.
괴팍하고 성질이 더럽다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왕이 황급히 선왕에게 다가갔다.
제 아들까지 거절하지는 않는지, 선왕은 왕의 부축을 받으며 불퉁히 말했다.
“이럴 거면 연회가 아니라 재판을 열지 그러느냐? 어찌나 소란스럽던지, 내 방까지 소리가 들리더구나!”
선왕의 질책에 로이텐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불퉁한 목소리 하나하나에 날이 서 있었고, 비꼬는 말투는 비수가 따로 없었다.
선왕을 감당할 만한 이는 친자식인 왕밖에 없었다.
왕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 다 하는 뤼디거도 선왕만큼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 진절머리 내지 않았던가.
왕이 애써 웃는 낯으로 넌지시 물었다.
“여긴 어쩐 연유로……. 시간이 늦었는데요.”
“왜. 내가 못 올 곳에 왔더냐? 젊은 애들 노는데, 내가 난장 벌이는 것처럼 보여?”
“그게 아닙니다, 아바마마.”
왕은 쩔쩔매며 선왕을 달랬다.
이양한 지금도 저러하니, 이양하기 전에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왕과 선왕은 자연스레 왕이 원래 있던 곳으로 발걸음 했다. 내가 있는 쪽이었다.
나는 그제야 선왕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꼬장꼬장하게 생겼나 보자 싶은 궁금증도 있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라?”
지난번, 왕성에 왔을 때 정원에서 마주친 그 노신사 아냐?
그러고 보니 선왕의 눈동자 또한 호박색이었다.
지금껏 만난 왕실 사람들이 바네사 왕녀를 제외하고 전부 호박색 눈동자였을 때 눈치챘었어야 했는데.
왜 몰라 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당황한 내가 나도 모르게 움찔한 순간, 선왕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알아본 걸까?
아니다.
그때의 만남은 무척 짧았고, 별것도 아니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 잊었을 터였다.
선왕이 돌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마 내 옆의 루카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까탈스럽고 괴팍한 노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때 마주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인간미 없어 뵈진 않았다.
처음으로 생긴 증손자가 궁금했겠지.
그래서 시끄럽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오늘 연회에 참석한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상상에 상상을 거듭했다.
“선왕을 뵙습니다.”
나는 다가오는 선왕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당연히 그가 나를 스쳐 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루카가 아니라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돌연 나를 끌어안았다.
“오, 유디트!”
잠깐, 연회에 참석한 게 루카가 아니라 나 때문이었어?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우리 이렇게 이름 부르고 끌어안고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잖아요?
단지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남들이 보면 무척 친한 사이라고 착각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도 입을 떡 벌린 채 선왕의 기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은 위엄을 내팽개쳤고, 항상 무표정이었던 뤼디거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루카 또한 당연지사였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해명을 촉구하듯 눈을 빛내며 바라봤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요?
증손자인 루카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 나는 눈만 데록 굴렸다.
다른 이들이 당혹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선왕은 나를 계속해서 끌어안은 채였다.
아무리 노인이라 해도 나처럼 젊은 여인을 대뜸 끌어안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가족도 아니고…….
불편해진 내가 품속에서 바르작거렸지만, 선왕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되레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네가 바로 그레타의 손녀로구나!”
네?
지금 왜 우리 할머니 이름이 나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