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8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88화
CHAPTER10. 출생의 비밀이 남 얘기가 아닐 줄이야
사기꾼 소동은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가십거리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응당 그 가십은 나에 관련된 것이었다.
‘역시 가십 신문에 이름이 오르는 일은 피할 수 없겠지…….’
나는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가십 신문의 메인타이틀이 모조리 내 이름으로 도배되는 상상을 해봤다. 끔찍했다.
샐러브리티의 삶이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삶이지만, 나랑은 썩 맞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뭐……. 내가 장작을 넣지만 않으면 결국 한때의 관심으로 식지 않을까?
사교계는 그만큼 많은 일이 터지고, 항상 새로운 가십을 갈구하니까.
적당히 씹고 뜯고 즐겼다 싶으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어휴. 이번 신고식만 치르고 빈터발트로 돌아가고 나면, 한동안 수도 사교계에는 얼씬도 안 해야지.’
물론 쉽게 빈터발트 가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내 앞에 앉은 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선왕에게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그래. 결국 나는 왕궁에 머물게 되었다.
물론 뤼디거의 말대로 익숙한 빈터발트 가의 타운하우스에서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야 굴뚝같았다.
뤼디거와 루카에게 말해둘 것도 좀 있고.
게다가 어젯밤은 긴장해서 밤을 꼴딱 새우기도 했다.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불편하다, 내일 찾아오겠다 해도 선왕이 고집불통에 말을 듣질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왕궁에 머물게 되자, 루카 또한 왕궁에 머물겠다 주장했다.
아무리 왕궁이라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만큼, 나는 루카가 좀 더 익숙하고 안전한 타운하우스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돌아가라고 하면 나 여기서 드러눕는다? 데굴데굴 구르면서 패악을 부릴 거야. 빈터발트 후계자가 저런 꼴이라니 공작가 명예에 먹칠해도 유분수라는 소리를 잔뜩 듣게 해주겠어.’
루카는 그리 말하며 푸른 눈을 활활 불태웠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저걸 협박이라고 하는 거야? 참나. 제 평판이지, 내 평판이야?’
하지만 그 협박은 무척 잘 먹혔습니다…….
결국 나는 루카와 함께 왕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뤼디거 홀로 저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러서는 뤼디거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덤덤했다.
그 돌 같은 얼굴에 어렴풋이 못마땅함이 스쳤다.
예전이었다면 눈치 못 챘을 만큼 찰나로 사그라든 감정이었다.
‘나라 해서 이 결정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라고.’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 소란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왕과의 대면이라니. 그 누가 반기겠는가?
하지만 조금이라도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할머니 버프를 받아 나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할아버지인 척하고 있지만, 실상은 뤼디거조차 꺼리는 괴팍한 선왕이었으니까.
루카는 내 방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고, 나만 홀로 남아 응접실에서 선왕과 때 아닌 티타임 중이었다.
심지어 허브티도 아니고 홍차였다.
야밤에 카페인이라니……. 날 안 재울 생각인가, 이 할아버지.
나는 작게 혀를 찼다.
야밤에 카페인을 들이켜 쌩쌩해진 선왕은 잔뜩 흥분한 채 자신의 감격을 토로했다.
“네 눈동자를 보고 네가 그레타의 혈육이라는 걸 단숨에 눈치챘단다. 그래, 손수건에 자수는 직접 놓은 게냐?”
“손수건이요?”
“네가 그때 나에게 건넨 손수건 말이다. 아이리스가 수놓아져 있었지……. 그레타가 제일 좋아하던 자수 또한 아이리스였었지.”
“아……. 그건 받은 거예요. 저는 자수는 전혀 재능이 없거든요.”
“하하, 그것도 정말 그레타를 닮았구나. 그레타도 자수가 젬병이었거든!”
선왕은 껄껄 웃었다.
그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추억을 되짚는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디트의 기억 속에 있는 할머니는 자수 실력이 제법 좋았다.
유디트의 아버지가 도박으로 재산을 모두 날려먹기 전에도 마이바움 가는 형편이 썩 좋지 못했고, 할머니는 종종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노라 말씀하셨다.
그 사실을 부러 말해 선왕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마주 웃을 뿐이었다.
“그때 혼자 산책하고 계셔서 선왕 전하시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하하. 원래 그 시간은 내 산책 시간으로 정해져 있단다. 그래서 다른 놈들은 얼씬도 안 해. 나랑 마주치는 걸 질색하거든. 그래서 너와 그렇게 마주쳐서 정말 깜짝 놀랐단다.”
본인도 다른 이들에게 기피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구나…….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하지만 너무 불안한 거 아닌가.
그때 내가 없었더라면 큰일 났을 수도 있었다.
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보니까 주변에 지키는 이 하나 없던데, 혹시 암살 위협이라거나 지난번 같은 일이 또 있으면 큰일 아닌가요?”
“암살?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된 날 누가 암살하겠느냐? 물론 날 싫어하는 놈은 많지만, 왕궁의 보안을 힘겹게 뚫고 암살자를 보낼 정도로 리스크를 짊어질 놈들은 없어. 게다가 암살자들을 보내느니 마느니 하는 것보다 내가 늙어 죽는 게 더 먼저일 텐데, 의미 없는 일 아니냐.”
선왕은 코웃음을 쳤다.
선왕의 말이 다소 날카롭긴 했지만,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했다.
고집이 세서 아집이 강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자기 객관화가 잘되어 있고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정치적으로는 괜찮은 왕이었을 것 같긴 한데, 그 이상으로 성질머리가 어지간해야지…….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선왕의 평가 중에 좋은 말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없었던 것이 다시 한 번 생각났다.
“하여튼 널 만나서 무척 기쁘구나. 엠덴이라니, 그렇게 촌구석에 꼭꼭 숨어서 말이야. 그래……. 그레타는 어땠니. 행복했니?”
“네. 할머니는 항상 행복해하셨어요. 비록 일찍 돌아가셨지만…….”
선왕의 입술이 작게 꿈틀했다.
앗, 이 대답이 아닌가.
나는 선왕의 눈치를 보았다.
도대체 뭐 때문에 돌연 심기가 불편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선왕은 한숨과 함께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행복했다니 다행이로구나. 가족 모두 두 번 다시 안 볼 각오로 집을 떠나 촌부의 아내로 죽었으니, 그래, 행복하기라도 해야지.”
성격 파탄자인 선왕이 할머니의 손녀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이리 잘 대해주는 걸로 미루어, 할머니를 정말로 사랑하고 아꼈을 것이다.
그랬던 금지옥엽 여동생이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한답시고 집을 나갔다?
그 여동생을 그리는 심정을 감히 내가 어떻게 짐작하겠느냐마는…….
그 때문에 더욱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나는 선왕의 눈치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저희 할머니를…… 무척 아끼셨던 것 같은데, 왜 한 번도 찾지 않으셨어요?”
선왕 정도였다면 금방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만약 선왕과 우연히 정원에서 마주친 일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생을 마쳤을 것이다.
선왕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답했다.
“자존심 때문이지! 그러면 무엇 때문이었겠느냐?”
말하고도 꽤나 웃겼는지 그는 픽 웃었다.
그의 입가의 주름이 한참을 들썩이다 멈췄다.
그러고는 한숨 같은 고백을 흘려냈다.
“나중에는 용서받지 못할까 두려웠고……. 그 아이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했을 때, 내가 퍽 매몰차게 대했거든. 못된 말도 했고…….”
그의 눈가에 회한의 기색이 스쳤다.
자신이 그레타에게 했던 말을 한마디, 한마디 곱씹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바네사가 죽었지. 그제야 나는 그레타 또한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단다. 그래서 황급히 찾으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어. 내가 아는 그레타에 관한 정보로는 도통 그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지.”
하긴 할머니가 집을 나가고 거의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을 테니 찾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엠덴은 선왕의 말대로 촌구석이었다.
만약 라리사가 요나스에게 서신을 보낸 것으로 흔적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뤼디거 또한 우리를 찾아오진 못했을 것이다.
“결국은 그레타가 죽고 나서야 그 아이의 행적을 알게 되었으니, 참 우습지도 않구나. 용서받지 못하는 쪽이 훨씬 나았어.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게 된 지금보다야…….”
돌연 무거워진 분위기에, 나는 차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달싹였다.
오십여 년, 아니, 육십여 년 가까이 쌓아온 후회의 무게는 내가 차마 뭐라 입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때 왕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후회와 그리움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금방 감정을 추스른 그는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우연이 정말 놀랍구나. 네 언니가 빈터발트의 그 망나니 손자놈과 연을 맺었을 줄이야…….”
요나스를 안 좋아한다더니, 그건 정말인 모양이었다.
보통은 좋아하는 딸의 자식도 귀여워하지 않나?
하긴, 어떻게 보면 요나스를 낳다 바네사가 죽었으니, 마냥 귀여워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여튼 네 언니 그런 건 네 할머니를 똑 닮았던 모양이로구나. 물론 남자가 외모가 중요하지! 중요하기는 한데 왜 외모만 보느냔 말이다! 얼굴만 멀끔히 반반한 놈들에게 쉽게 쉽게 마음 줘서 그리 고생을 하고 말이야.”
선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라리사가 딱히 요나스를 마음을 준 건 아니었고……. 그저 시골 마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외모였던지라 냉큼 낚아챘다고 했었는데.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그런 남자랑 어울렸겠느냐며.
그랬던 언니에게 요나스의 성정 따위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겠지. 아니었고말고…….
“그래도 유디트 너는 그러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참 마음이 놓인다. 지금까지는 루카 그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빈터발트와 얽혔다지만, 이젠 그쪽과 상종도 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