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9화
CHAPTER2. 미래를 알고 있지만 전혀 내가 아는 대로 흘러 가지 않는다.
나는 그저 루카가 안쓰러웠을 뿐이었는데…….
그 별것 아닌 보살핌에 루카가 이렇게까지 돌변할 줄은 몰랐다.
루카에게 잘 해준 것이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원작을 조금이라도 바꾸려 했던 인과응보인 건가요?
하…….
빙의 소설에는 인과율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무슨 인과율이냐면, 원작대로 진행하려고 하면 원작과는 전혀 관계없는 루트로 향하게 되고, 원작과 전혀 관계없는 루트를 택하면 원작 그대로 진행된다는 무시무시한 강제력이었다.
한마디로 내 입맛대로 쪼금 바꾸고 이런 거 안 돼, 불가능해, 저리가 들어줄 수 없어, 이 말이었다.
나는 허탈함에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내 머리 위로 우울한 구름이 드리웠다.
물론 구름은 내 머리 위에만 끼어 있었다.
내가 우울해하거나 말거나, 다른 두 사람은 빈터발트로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나도 같이 가는 것으로 확정되고 나서야 루카는 얼굴을 풀었다.
듣기만 해도 소름 돋던 엄마 소리도 그만두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바로 뤼디거가 의심을 거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루카는 희희낙락하며 짐을 꾸렸다. 원체 짐이 없다 보니 금방이었다.
얼마 없는 짐을 마차에 실었다.
우리 집 앞에 우뚝 선 휘황찬란한 검은 마차가 눈에 익었다. 어제 새벽에 나를 치고 지나간 그 마차였다.
어쩐지 처음 엮였을 때부터 단단히 악연이었다니까.
나는 괜스레 마차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루카와 나의 빈터발트 행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마을을 찾아온 귀족 나으리에 적응할 새도 없이 바로 그와 우리가 함께 떠난다니 깜짝 놀랐다.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다들 내가 뤼디거를 꼬셔서 귀족가의 마나님이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귀족 나으리가 배포가 커서, 루카까지 데려가서 양육해 준다는 요지의 소문이었다.
사실은 내가 루카에게 딸려가는 거지만…….
도통 해명할 만한 여유가 생기질 않았다.
레아는 소문을 듣기가 무섭게 날 찾아왔다.
꽉 쥔 주먹과 앙다문 입술이 분한 듯 바르르 떨고 있었다.
“유디트, 너……. 돈 많은 귀족 남자 잡고 싶다고 그렇게 입에 달고 살더니 기어코 소원 성취 하는구나…….”
아뇨, 아닌데요.
우리 그런 사이 아닙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지금 내 옆에 있는 뤼디거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날!
나는 재빨리 뤼디거를 살폈다.
때마침 그는 마부와 대화하던 중이었다.
제발 우리 대화를 못 들었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하며,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 부채질을 했다.
마부와의 대화를 마친 뤼디거가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비가 끝난 모양입니다. 이제 출발해야 하니 마차에 타시지요, 마이바움 양.”
그러면서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가 몸에 밴 듯 별것 아닌 사소한 동작도 무척 자연스럽고 우아했다.
레아는 그 모습을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돌연 도전장이라도 던지듯 결연히 외쳤다.
“좋아. 나도 앞으론 꿈을 크게 갖겠어! 너에게 지지 않을 신랑감을 찾아올 테니, 먼저 귀족 사회에 가서 기다리라고!”
“잠깐, 레아! 레아!”
내가 레아를 불렀지만, 레아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꿋꿋이 걸어 나갔다.
쟤도 은근 포인트 이상하게 잡는다니까…….
딱히 레아에게 유감이 있는 건 아니니만큼, 레아의 착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되기를 빌었다.
“친구분과 뭔가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뤼디거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키 차이 때문인지, 그의 숨결이 바로 내 귓가에 닿았다.
코오롱 향이 섞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저기, 뤼디거 씨. 우리 좀 거리를 두면 안 될까요…….
급격히 줄어든 거리에 당황한 나는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다.
“아, 아뇨. 문제없어요. 가면 됩니다. 우리 얼른 가죠.”
그러고는 뤼디거에게서 도망치듯 후다닥 마차에 올랐다.
마차에 타고 나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하, 후하.
뤼디거는 마차 밖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는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내가 뤼디거의 에스코트 제안을 완벽하게 무시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고의는 아니었는데.
나는 조금 머쓱히 목덜미를 긁적였다.
뤼디거가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오해하면 어쩌지?
뤼디거와의 사이를 좋게 유지하고 싶었던 나는 그에 대해 해명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 전, 마차에 먼저 타고 있던 루카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저씨, 빨리 안 들어오고 뭐 해요.”
툴툴대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적개심이 서려 있었다.
루카의 불손한 호칭에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정정했다.
“루카, 아저씨가 아니라 삼촌.”
“…….”
루카는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채, 다리만 까닥이는 꼴이 참으로 불손하다.
원작에선 참 착한 애였는데…….
애정에 굶주렸던 루카는 새로 생긴 가족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필사적으로 눈치를 본다. 어떻게든 귀여움을 받고 싶어서.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아, 안 돼.
자식 교육 어떻게 시켰냐는 소릴 듣게 되어버릴 거야……!
애초에 자식 교육 같은 건 시킨 적도 없지만…….
하여튼 호칭이라도 어떻게 해 보자.
언제까지 아저씨라고 부르게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건 내 해석이랑 완전 다르잖아! 캐릭터 붕괴라고!’
헌신적인 인생의 스승 뤼디거와 그를 다소 맹목적으로 따르는 루카의 유사부자 관계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원작 스토리대로 흘러가면 곤란한 건 나지만……. 그래도 이런 소소한 인간관계 정도는 원작다워도 좋잖아, 흑흑.’
그렇게 나는 루카의 불손한 태도를 어떻게든 얌전하고 예의 바르게 바꿔보고자 노력했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뤼디거에게 에스코트를 무시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는 걸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마차는 엠덴 마을을 빠져나갔다.
마차를 타고 광장을 지나가는 도중에 토마스와 창문 틈으로 눈이 마주쳤다.
토마스는 배신감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오래된 연인 대신 돈과 권력을 택한 속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가 무슨 사이였다고, 참 나. 웃기지도 않아.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기가 찼다.
나는 피식 비웃고는 마차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마차의 내부는 생각보다 컸다. 내가 발을 쭉 뻗어도 될 정도였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이나 우등버스 좌석보다도 훨씬 나은걸.’
이 정도면 마차 여행도 할 만할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생각은 5분도 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여행에는 승차감이 중요하죠, 승차감이…….
여행이라는 것이 좌석의 넓이만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달구지에 대자로 뻗어서 가는 여행이 제일 편했겠지…….
시골 마을의 정비되지 않은 도로 사정에 마차가 덜커덩덜커덩 거칠게 움직였다.
마차 좌석에 푹신한 쿠션이 덧대어 있지 않았더라면 엉덩이에 멍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튀어 오를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윽, 윽 소리를 애써 참아 눌렀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가다가 기차로 갈아탈 테니까, 괜찮겠지.
나는 소설에 나왔던 기차 신만을 간절히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린 채 엉덩이의 고통을 참았다.
그런 나를 빈터발트에 가는 게 꺼려져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루카가 내 눈치를 보며 슬쩍 물었다.
“그렇게 가기 싫어?”
“그렇게 가기 싫은 건 아니고…….”
“진짜? 이모 얼굴은 영 아닌 것 같은데…….”
“내 얼굴이 어떤데?”
“죽상이야.”
“하하. 엠덴과의 추억을 곱씹고 있었단다. 너무 주옥같은 추억들이 많아서.”
나는 되지도 않는 변명을 주워 담았다.
하지만 내 변명이 그럴싸했는지, 루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안 되어 루카가 여행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어린애라니까.
나는 고개를 까닥거리는 루카를 보며 픽 웃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뤼디거는 루카가 완전히 잠에 곯아떨어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피곤한가 보네요.”
“회복이 덜 된 모양이에요. 원래는 체력이 좋은 아이인데.”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루카의 고개를 내 무릎 위에 얹었다.
루카는 내 무릎을 베개로 삼은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새근새근 잘도 잤다.
“정말 형님 어릴 때와 똑 닮았네요.”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