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91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91화
그래. 지금 제일 큰 문제는 바로 그 출입금지령이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출입금지령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가요?”
“할바마마의 변덕이 풀릴 때쯤? 아마 당분간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곤란했다.
나는 난처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나야 할바마마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라 모르지만, 할바마마께선 좋아하는 것들을 통제하려 하는 강박적인 성향이 있다 들었거든. 그 때문에 바네사 이모도 꽤나 속 썩었다 하고……. 그대도 마음 준비 단단히 해두게.”
“그게…… 마음 준비로 되는 건가요?”
“음……. 안 해두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힘내게.”
한마디로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옆에서 보기에도 내가 퍽 불쌍했는지, 빅토리아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대와 빈터발트 대령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응원하네. 솔직히 그대 아니면 빈터발트 대령이 결혼을 생각할 것 같지도 않고…….”
빅토리아는 뤼디거의 결혼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 생각의 근거가 궁금할 정도로 단호한 확신이었다.
내심 그 말이 기쁘면서도, 그렇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뭐,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요.”
“아냐. 빈터발트가 원래 좀 그래. 한 여자에 꽂히면 답이 없지. 요나스처럼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게 무척 특이한 예외고 말이야.”
확실히…….
막시밀리안에게서 요나스 같은 자식이 나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뭐, 따지고 보면 요나스에게서 루카 같은 자식이 나온 것도 믿기 어려우니까.
역시 인간 성격을 결정짓는 데에는 환경의 영향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되도록 빨리 루카를 사교계에서 격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여튼 그대도 빈터발트 대령을 좋아한다니, 그럼 이 기회에 클럽의 내기에 빈터발트 대령 쪽으로 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내기요?”
“요즘 클럽에서 그대의 결혼 상대가 누가 될까로 내기가 한창이거든.”
그 전엔 뤼디거의 에스코트더니, 이번엔 내 결혼처야??
왕국의 신사라는 작자들이 정말 할 일도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한심함에 혀를 찼다.
“하하. 이제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왕가 사람들의 숙명이나 다름없지. 그대 기사가 올라간 신문이 간행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동났다는 이야기는 들었나?”
순간 숨이 턱 하니 막혔다.
나는 갑갑함에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도리질 쳤다.
“아뇨……. 맙소사. 도대체 뭐라고 기사가 난 거예요?”
“『하룻밤의 기적, 몰락 귀족의 신분 역전』 뭐, 이런 제목이었었나.”
되게 익숙한 기사 제목인데…….
기시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최대한 관심을 피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모두의 관심 앞에 내동댕이쳐진 걸까.
물론 당분간 이목이 쏠릴 거라곤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지 않는가!
“그래도 그렇지, 결혼이라니……. 너무 성급한 거 아녜요?”
“성급? 지금은 눈치 싸움 중이지만, 곧 그대에게 구혼서가 산더미처럼 쌓일 거야. 그대는 지금 럼가트에서 제일가는 신붓감이거든.”
“설마요.”
“자네는 자네 가치를 잘 모르나 보군.”
빅토리아는 눈을 휘어 웃었다.
마치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물론 사교계에서 군림하며 왕좌를 노리는 빅토리아가 보기에 시골에서 올라온 내가 어리숙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 상식적으로 미혼인 직계 왕녀가 둘이나 있는데 며칠 전 막 왕족이 된 내가 어떻게 럼가트 제일가는 신붓감이 되겠는가.
혹시 모를 왕위 계승 서열을 생각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빅토리아가 과장하는 거라 생각한 나는 손을 내저었다.
“죠세핀 왕녀님과 빅토리아 왕녀님이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럼가트 제일이 되겠어요.”
“하하, 순진한 소리를. 그대는 루카 빈터발트의 유일한 외 혈육 아닌가.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루카를 키워왔고. 훗날 루카가 빈터발트를 물려받게 될 때를 생각하면 자네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야.”
한마디로 날 이용해 루카를 좌지우지해 보려는 이들이 많다 이 말이었다.
“실제로 연회장에서 루카가 그대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를 직접 보았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게다가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할바마마께서 그대를 아끼는 모습을 만천하에 가감 없이 보여주시지 않았던가.”
“단지 그 때문에요?”
“단지라니! 그대 하나만 잡으면 빈터발트 가와 선왕의 비호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다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로 구혼서를 들이밀 게 틀림없지.”
별로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프란츠가 청혼했을 때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왔다.
빅토리아 또한 내 상황에 공감하는지, 뒤늦게 위로하듯 덧붙였다.
“물론 할바마마가 호락호락한 분은 아니니 제일 처음 구혼하는 이는 분명 두들겨 맞을 게 틀림없지. 그러니 한동안은 눈치를 볼 거야.”
“하지만 물꼬가 터지면…….”
“물밀 듯이 밀려오겠지.”
“하지만 왕녀님 말씀대로 루카를 휘두르기 위해 저와 결혼하려는 거라면, 빈터발트에서 그 꼴을 두 눈 뜨고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뭐……. 빈터발트 쪽에서 그렇다 해서 왕실의 혼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기껏해야 그럴듯한 신랑감 후보를 내세우는 것 정도? 원래라면 빈터발트 대령이 이런 일엔 절대 나서지 않으니 발등에 불 떨어졌겠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하하…….”
나는 머쓱히 웃었다.
그러는 내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뤼디거가 날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프란츠가 빈터발트를 대표해서 청혼한다고 나설 모습이 눈에 선했다.
뤼디거가 날 좋아해 줘서 다행이다, 여러모로…….
“자타공인, 럼가트 최고의 신랑감이 나서면 대부분은 상대도 못 되지.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야…….”
빅토리아가 말을 흐렸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금방 눈치챈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선왕 전하겠죠.”
“그렇지. 할바마마께서 하도 빈터발트 가라면 질색을 하니까. 그래서 다들 서러브레드인 빈터발트 대령에게 섣불리 내깃돈을 못 걸고 있는 거야. 다른 다크호스가 출현할 수도 있으니까.”
“아…….”
“물론 빈터발트 대령이 지금껏 결혼과는 담쌓은 태도를 보인 영향도 없지 않고. 그래서 대령이 자네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판도는 또 뒤바뀔 거야. 나는 그 전에 한몫 잡는 거고.”
빅토리아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설마 이 세계 귀족들의 비자금 조성 방식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사기 내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
뤼디거에 이어 빅토리아까지 이러니 매우 그럴싸한 생각 같았다.
그나저나 빅토리아는 뤼디거와 내가 잘될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생각보다 나에게 큰 의지가 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빅토리아 왕녀님께서는 뤼디거 씨가 선왕 전하의 고집을 꺾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아니? 할바마마와 대령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고지식하고, 고집 세고, 독선적이기로는 순위를 매길 수 없지. 주변 사람들만 죽어 나가지 둘이선 절대 결론 안 나.”
그것만큼은 동감이다.
하지만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선왕의 고집을 꺾는단 말인가?
빅토리아는 내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내가 기대를 걸고 있는 건 바로 그대야. 둘 다 그대에게는 약하니까. 알았지, 유디트? 미남을 쟁취하는 건 그대 손에 달렸어. 힘내야 해.”
빅토리아는 그리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는 딱딱한 호칭 대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모습에 유디트의 기억 속 라리사의 모습이 투영 되었다.
무척 오래전……. 라리사가 건강했을 때, 유디트, 하고 부르던 그 순간의 모습이.
유디트가 라리사에게 품은 것은 열등감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라리사를 미워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애증에 가까운, 자매로서의 추억이 기억 속에 켜켜이 스며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 심정을 황급히 추슬렀다.
빅토리아는 내가 선왕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에 회의적이었다.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선왕 전하께서는 저를 아낀다기보다는…… 마가렛 왕녀의 대체품으로서 절 아낄 뿐인걸요. 과연 제 말을 들어 주실까요?”
“유일한 대체품이지.”
빅토리아는 더 말할 거리도 없다는 듯 단호히 말했다.
“그러니 당당해지려무나, 유디트.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왕 전하에게도. 아쉬운 건 선왕 전하니까.”
그녀의 목소리에 확고히 서린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빅토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호박색 눈동자는 이유 모를 호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 저것이 제일 큰 의문이었다.
말리나와 소피아는 내가 바네사를 닮아 호의를 내비치고, 선왕은 내가 그레타를 닮아 호의를 비친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궁금했던 나는 참지 못하고 기어코 물음을 입에 담았다.
“……왕녀님께선 저에게 왜 이리 친절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