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9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95화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데요?
내 입이 바싹 말랐다.
뤼디거가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올 때마다 가슴이 쿵덕쿵덕 뛰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지금이 바로 홀로 전전긍긍했던 것들을 물어볼 절호의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왜 나를 좋아한 건지, 뭐 때문인지, 언제부터인지…….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뤼디거 씨한테 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뭡니까? 언제든지 물어보십시오.”
뤼디거는 태연히 답했다.
내가 물어보는 것이 무엇이든 당황하지 않을 거라는 확고부동함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그러니 오히려 주춤하게 되었다.
날 좋아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물어보는 내가 너무 쪼잔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난 애초에 쿨한 연애는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지금 묻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혀 밑에 숨겨진 가시처럼 남아 껄끄러울 게 분명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물었다.
“절…… 왜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 절 좋아하시는 건 아주 잘 알겠는데, 어떤 점 때문에 좋아하시는지는 좀…….”
“음…….”
뤼디거가 입을 벌렸지만, 이내 다시 닫혔다.
그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파이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그, 그렇게 고민해야 할 정도로 내 매력을 쥐어 짜내야 하는 걸까.
나는 마음을 졸이며 그의 답을 기다렸다.
듣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태연자약하게 줄줄 읊을 거란 생각과 달리, 뤼디거는 좀처럼 말문을 열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돌연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좀, 이런 게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저도 제가 답을 선뜻 드리지 못하는 것이 무척 당황스럽습니다만……. 이게 정말 어렵네요. 실례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좋, 좋아요.”
한 번도 말을 더듬어본 적 없는 남자가 횡설수설하는 꼴에 나 또한 당황했다.
고개를 돌려 비스듬히 보이는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심호흡하며 한참 동안 마음을 진정하던 그가 오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제가……. 제가 유디트 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다고 하면 믿지 않으시겠죠.”
“처음 봤을 때요?”
“그, 길에서 부딪혔을 때 말입니다. 당신에게 손을 뻗었는데, 당신은 절 쳐다보지도 않은 채 벌떡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아, 그때.”
나는 뤼디거에게 그보다 더 일찍 우리가 맞닥트렸다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때 당신 마차 때문에 옷을 버렸다고도.
하지만 괜히 말했다가 뤼디거가 어떻게 반응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나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런 정황을 전혀 모르는 뤼디거는 조금 흥분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때의 저는 당신 옆모습밖에 보지 못했죠. 그 순간 당신 얼굴이 어떻게 생겼나 무척 궁금한 겁니다.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 싶었죠.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걸.”
잠깐. 너무 성급한 게 아닐까요.
물론 나도 뤼디거를 처음 보자마자 잘생겼다, 목소리도 좋다, 몸도 좋다며 호감의 저울을 MAX까지 찍어놓기는 했다.
하지만 그거야 내가 본 남자 중에 뤼디거가 제일 잘생겨서 그런 거고.
뤼디거가 본 여자 중에 내가 제일 예쁘진 않을 것 같은데……. 의심스러웠던 나는 나도 모르게 물었다.
“……고작 그걸로요?”
“유디트 씨께서는 고작이라 말씀하시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타인에게 흥미를 느껴본 적은 그 일이 처음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 그러면 처음 가진 흥미를 사랑이라 착각하시는 걸 수도…….
나에게 관심 없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같은 종류의 패턴이라든가.
그런 내 생각을 훤히 읽었는지, 뤼디거가 바로 말을 이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에게 관심 없는 척하여 환심을 사려는 분들은 많이 계셨습니다. 애석하게도 환심은커녕 관심으로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만…….”
뤼디거는 그리 말했지만 정말 애석하지 않은 어투였다.
건조하고, 삭막하고…….
그랬던 그의 목소리와 표정이 나에 관한 이야기에 들어가자 돌연 바뀌었다.
“그랬던 만큼 당신을 봤을 때, 난생처음 움직이는 감정에 직감적으로 깨달은 겁니다. 아, 당신을 놓치면 안 되겠다. 어떻게든 붙잡아야겠다…….”
뤼디거는 그리 말하며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계속해서 시선을 비스듬히 흘리고 있었다. 마치 내 반응을 보는 것이 두렵다는 듯이.
“일단 급한 일부터 해결하고 당신을 다시 찾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이바움 저택 앞에서 당신을 마주했을 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당신과 악수하던 순간 뒤에서 종이 울리더군요. 마치 계시처럼.”
뤼디거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낯으로 종이 울리는 듯한 손짓을 해 보였다.
그 동작이 그에게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아, 나도 모르게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당신을 빈터발트로 같이 모셔가고 싶었습니다. 루카 덕분에 일이 수월히 잘 풀려서 다행이었지요.”
“하하…….”
어쩐지.
루카가 엄마라 부르며 달라붙을 때 묘하게 루카에게 협조적이더라니.
그게 루카를 데려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날 데려가기 위해서였을 줄이야…….
내가 거기서 어떤 변명을 했어도, 뤼디거가 그리 다짐한 이상 결국 빈터발트에 같이 오게 될 운명이란 말이었다.
빈터발트에 오게 된 걸 후회하진 않지만, 왠지 모를 허무함이 치솟았다.
“그 뒤로 유디트 씨가 루카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를 곁에서 보며 감탄했습니다. 루카도 당신을 무척 잘 따랐고 말입니다.”
“그거야 뤼디거 씨도…….”
“아뇨. 형의 자식이니 책임감으로, 훌륭한 빈터발트의 후계자로 키워낼 생각은 있었습니다만 유디트 씨를 보고 나니……. 솔직히 자신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키운 루카가 유디트 씨가 키운 루카보다 행복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요.”
그리 말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루카를 그리 키운 것만큼은 정말 내가 한 게 아니다 보니 양심의 가책이 콕콕 나를 쑤셨다.
마음만 같아선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뭐라 말한단 말인가?
사실 유디트는 루카를 싫어했고, 저는 이 몸에 빙의된 사람이라 루카랑 지낸 경력은 당신보다 고작 한 달 더 많을 뿐이에요, 라고?
“그리고 거침없이 행동하시면서도 주변을 살피시는 살뜰한 태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다소 섬세한 면이 부족한지라…….”
잠깐. 날 너, 너무 구구절절 올려 쳐주는 거 아냐?
뤼디거가 말하는 나 자신과 실제 나 자신 사이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는 초조함에 치마만 그러쥐었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다.
뤼디거는 계속해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암살자가 나타났을 때도, 유디트 씨께선 그런 상황이 처음이셨을 텐데 무척이나 이성적으로 행동하셨고……. 게다가 루카를 지키기 위해 하신 행동에서 저는 정말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건 사명감이 있었다거나 이성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아니라 그냥 몸이 움직였을 뿐인 충동의 결과였다.
설마 죽겠어,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하녀들을 챙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녀들이 유디트 씨 일이 되면 유난히 적극적으로 나서더군요. 그런 건 역시 유디트 씨가 평소에 하녀 같은 이들에게도 잘 대해주기 때문이겠죠.”
아뇨. 당신이 이상한 소문을 퍼트려서인데요.
물론 로라가 유난히 나를 잘 챙겨주기는 하지만, 다른 하녀들이 내 눈치를 보는 건 전적으로 당신 때문이잖아!
“방계 사람들 앞에서 의연한 당신을 보며…….”
뤼디거는 그 뒤로도 내 어떤 점에서 감탄했고 좋아하는 감정을 느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왜. 아주 내가 걷는 모습도, 먹는 모습도 전부 보기 좋았다 하지그래.
날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라곤 했지만, 이렇게까지 프레젠테이션 식으로 발표하란 뜻은 아니었는데…….
대학교 강의도 이보다는 덜 설명적이었을 것 같았다.
처음엔 당황함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변했다.
“당신이 던져준 공을 처음 받았을 때, 제가 인생에 있어 지금껏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나와의 일을 하나하나 다 읊었다.
혹여나 놓치는 것이 있기라도 할까 되짚어가며, 그는 나와 만난 이후의 타임라인을 차근히 훑어갔다.
이대로라면 끝이 안 나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차마 그의 말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요히 나와의 만남을 되짚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은은히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넘겼던 일들이 그에겐 대단한 추억이라도 되는 것만 같았다.
귓가를 달아오르게 한 열기가 퍼졌는지, 손끝이 간질간질했다.
아니, 그걸 넘어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너무 벅차오르다 못해 한계 초과였다.
“저는 그런 당신을 존경하고, 그와 동시에 당신을 챙겨주고 아끼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입 맞추고 싶고, 평생 당신의 눈웃음을 제 눈에 담고 싶습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전 아마 평생 사랑을 모를 겁니다.”
그렇게 모든 고백을 토해낸 뤼디거는 절박할 정도로 나에게 매달렸다.
돌 같은 사내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단단한 절벽이 지진에 무너져 내리듯, 그의 감정이 내 손등 위로 흘러넘쳤다.
그의 생애 처음일 순간을 마주하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금 있던 여유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모조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표정 관리는 물론이거니와 그에게 어찌 답해야 할지 알지도 못했다.
정말로 내가 그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이렇게까지…….
무거운 감정을?
내가 뤼디거를 좋아하는 감정은 뤼디거의 감정과 비교하면 티끌만치 가벼웠다.
그를 좋아한다며 베갯잇을 적시던 눈물 정도의 무게. 딱 그 정도였을 것이다.
“당신이 형님의 여자였든 뭐든 정말로 상관없었습니다. 저로서는 그저, 당신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 말한 뤼디거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말을 부정했다.
“아뇨. 사실 거짓말입니다. 어차피 당신에게는 진실해지기로 했으니까. 그래요. 솔직히 당신이 형의 여자가 아니라서 안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