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97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97화
나는 깜짝 놀라 뤼디거를 보았다.
뤼디거의 말이 당혹스러운 건 루카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
“내가 왜 그렇게 불러요?”
“삼촌이니까.”
뤼디거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문 것이, 그가 절대 이 일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고집이 느껴졌다.
뤼디거의 고집은 루카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한참 끝에 결국, 루카가 한숨과 함께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좋아. 내가 이런 거로 유치하게 실랑이할 줄 알고? 삼촌. 이제 됐죠?”
“좋아. 뭘 원하니?”
삼촌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뤼디거는 흔쾌히 물었다.
뺨이 미약하게 씰룩이는 것이, 조금 감동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루카는 뤼디거가 감동하거나 말거나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루카는 이를 갈며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프란츠. 프란츠 버켄레이스. 그 후레자식을 좀 감시해 주세요.”
걔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게다가 후레자식으로 호칭이 아주 고착화냐?!
그건 그렇고……. 루카는 왜 대뜸 프란츠를 거론한 것일까?
프란츠는 왕실 연회에서 무척이나 교묘히 행동했다.
그렇기에 연회에서의 소동과 프란츠를 연결 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마음만 같아서는 보고서도 받아보고 싶지만, 아저씨…….”
“삼촌.”
“……삼촌은 지금 왕궁 출입 금지 상태니까. 일단 감시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보고서까지 운운할 정도면 그냥 경계 정도가 아니었다. 의심스러웠던 나는 슬며시 루카를 떠보았다.
“왜 프란츠를 감시해 달라고 하는 거야?”
“수상쩍으니까 그렇지. 이번 연회에서의 소란에 분명 그놈이 연관되어 있어.”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그거야……. 잠깐.”
내가 슬쩍 떠보기가 무섭게 루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야, 벌써 눈치챈 거야?
“이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설마.”
루카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곤 설마 하며 물었다.
“이모도?”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여튼 눈치는 백 단이라니까.
그런 우리를 보며 뤼디거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같은 부탁을 두 번 받은 적은 인생에서 처음인데. 오늘은 무척이나 감명 깊은 날이로군요.”
같은 부탁을 두 번 받은 적이 없으려면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트집 잡고 싶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중복된 부탁을 했다는 걸 확신한 루카가 성을 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 내가 삼촌이란 소리까지 해가면서 부탁할 필요가 없었잖아!”
뭐가 그리도 억울한지 루카는 길길이 날뛰었다.
고작 호칭 하나뿐인데, 마치 신념을 배신한 것 같았다.
지난번에 뤼디거 주머니를 털어갈 때는 잘도 말하더니?
루카의 심정을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루카가 씩씩거리는 동안, 루카를 그리 만든 원흉인 뤼디거는 우울한 낯으로 중얼거렸다.
“프란츠에 대해 루카도 알고 있는 걸 보니, 제가 눈치가 없어도 어지간히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하…….”
아니, 보통은 잘 모르지. 프란츠가 그만큼 로이텐과 거리를 잘 뒀기도 했고……. 마지막에 좀 위험할 뻔했지만.
나야 프란츠가 위험인물인 걸 알고 계속해서 주시했으니 그의 쎄함을 알게 된 거지, 만약 아니었다면 전혀 눈치 못 챘을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루카는 정말 어떻게 눈치챈 거지? 아무리 눈치가 좋아도 그렇지…….
의심스러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태도며 행동, 사고방식 등…….
계속해서 나중으로 미뤄왔던 것들이 쌓여 이제는 확고부동한 확신이 섰다
‘원작의 열 살 루카는 아냐, 확실히.’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루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속에 있는 것이 내가 아는 원작의 루카가 아니지만, 과연 내가 그걸 캐물을 자격이 있는가?
‘속에 든 게 누구든, 루카가 나를 이모라고 생각해 주는 한 루카는 내 조카야. 물론 루카가 날 이모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프란츠를 처리하기 위해 변수는 없는 쪽이 좋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역시 왕궁에 돌아가서 단둘이 있을 때 묻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됐어, 그럼. 내 볼일은 끝. 이모 볼일은 다 끝난 거야?”
루카는 어깨를 으쓱이며 천연덕스레 물었다.
그제야 나는 루카에 대한 상념을 접고, 오늘 빈터발트로 빠져 나온 목적을 다시 점검했다.
로이텐 때문에 나온 거지만 일단 그건 글렀고. 프란츠에 관한 감시도 부탁했고.
역시 프란츠가 제일 큰 문제였다. 이번에 확실히 옭아맨 줄 알았는데 도마뱀이 꼬리 자르듯 빠져나갔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추장스럽다니까…….’
프란츠가 로이텐을 죽일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설 줄이야.
뤼디거에게 감시를 부탁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일단 이사벨라에게도 증인으로 나서 달라 제안해 보긴 할까.
제안이 안 먹히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고. 제안하는 것에 리스크는 없으니까.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나는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이사벨라의 일까지 신경을 쏟았다가, 나는 뒤늦게 토마스를 떠올렸다.
“아, 맞아!”
“……무슨 일입니까?”
“토마스! 토마스는 어떻게 됐어요?”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래도 내 편을 들어주려고 노력한 감자인데.
혹시……. 걔도 죽은 건 아니겠지.
로이텐이 죽은 거랑은 차원이 다른 죄책감이 쏟아졌다.
나는 불안스레 뤼디거의 대답을 기다렸다.
“토마스…… 말입니까?”
뤼디거의 이맛살이 찡그려졌다.
뭔가 굉장히 못마땅해 보였다. 마치 토마스에 대해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그게 누굽니까?”
아니나 다를까, 뤼디거는 토마스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한숨과 함께 차근히 답하려는 찰나, 루카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 로이텐이라는 작자가 데려온 엠덴 마을 사람 말이에요. 감자같이 생긴.”
“루카!”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사람한테 감자가 뭐야, 감자가!”
“왜! 이모가 맨날 토마스한테 감자라고 그랬잖아. 난 들은 걸 말한 죄밖에 없어.”
“그……땐 그때고! 지금은 그래도 우리 때문에 고생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이래서 애 앞에서 숭늉도 못 마신다니까.
농담 삼아 투덜댔던 걸 고새 기억하고 말이야.
그렇게 루카와 투닥거리고 있는 사이, 뤼디거의 기세가 심상치 않게 일렁였다.
“혹시…… 걱정되십니까?”
삐죽이 솟은 눈길이 못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선연했다.
이거 설마……. 질투야?
뤼디거가? 토마스한테?
저 얼굴이 그 얼굴을?
설마 나랑 토마스 사이를 오해하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내 심미안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다.
말도 안 된다며 뤼디거와 프란츠의 외모 차에 대한 강력한 주장을 펼치기 위해 목청을 높이려는 찰나, 옆에 있는 루카가 보였다.
뒤늦게 정신 차린 나는 큼큼, 헛기침하고는 점잖은 척 말했다.
“지금껏 정신없었던지라 이제야 기억났는걸요. 제 일에 휘말려서 고생하기도 했고, 저를 편 들어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으니까 마을로는 무사히 돌려보내고 싶은데……. 설마, 토마스도 죽은 건 아니겠죠?”
그렇게 내가 입에 발린 말을 덕지덕지 붙인 덕일까, 뤼디거의 뾰족한 기세가 서서히 누그러졌다.
그는 아까보다 훨씬 온화해진 낯으로 담담히 답했다.
“로이텐 외에 별다른 사망자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확인해 보고 후처리까지 잘 해두겠습니다.”
후처리라고 하니까 좀 살벌하게 들리는데…….
뭐,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알아 들었을 테니 별일은 없겠지.
뤼디거를 믿는 만큼, 나는 바로 마음을 놓았다.
“더 신경 쓰이시는 건 없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프란츠 조심하시고요. 아셨죠?”
“네. 걱정되는 게 있으시면 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해결해 두겠습니다.”
정말 믿음직스러운데?
그는 나와 루카가 왜 프란츠를 의심하는지 따지지도 않고 내 말대로 하겠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뤼디거에게 상담할 걸 그랬다.
뤼디거가 내 말을 의심할 거라 생각해서 이사벨라의 뒷조사라든가 이것저것 숨겼는데…….
그때의 노력이 좀 부질없이 느껴졌다.
뭐, 지나간 문제에 대해 투덜거려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여튼 지금부터라도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마음을 내려놓은 나는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뤼디거 씨만 믿을게요.”
“그럼 이제 정말 볼일 끝난 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루카가 불쑥 물었다.
마치 쇼핑에 따라 나온 애가 지루함에 몸부림치며 언제 집에 가느냐 묻는 것 같았다.
“왜. 볼일 다 끝났으면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가서 뭐 하게?”
“뭐, 그냥 쉬는 거지 뭐.”
루카는 어물어물 대답했다.
변명이 곤궁한 것이, 제가 생각해도 어깃장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쉬라고 돗자리를 깔아줘도 안 쉬는 애가 거짓말하기는. 게다가 너야 가서 네 할 일 하면 되지만, 난 가자마자 선왕 전하 말상대 해줘야 한다고. 최대한 늦게 갈 거야.”
나는 그리 말하며 시위하듯 루카의 무릎 위로 풀썩 엎어졌다. 깜짝 놀란 루카가 화들짝 뛰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안 갈 거야.”
나는 그리 말하며 버텼다.
아무리 버둥거려 봐야 열 살짜리다. 스물일곱 살의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루카가 애처럼 굴지 않다 보니 되레 내가 더 유치해지는 것 같았다.
머리 위로 한숨 푹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명백한 포기의 한숨에 나는 빙긋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