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17
218화
빛을 뿜어대던 악신의 성물은 서서히 잠잠해졌다.
언럭키는 방심하지 않았다.
언제든 검을 뽑아 휘두를 수 있도록 허리춤에 얹었다.
이건 악신의 성물이다.
무슨 사특한 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으리라.
-띠링!
[악신의 성물이 퀘스트를 내립니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물건이 퀘스트를 주기도 하는 거였나?’
항상 사람에게만 퀘스트를 받았기에 생각지도 못한 경우였다.
[퀘스트 : 믿음의 성물 반환.]-퀘스트 등급 : 신탁 퀘스트.
-퀘스트 설명 : 믿음의 성물은 배교자를 확인할 수 있는 신물이다. 오래전부터 리바 델 레이는 이 성물로 그들의 결속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성물은 이제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당신이 그 일을 도와준다면 악신은 결코 그 보답을 섭섭지 않게 할 것이다.
-퀘스트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리바 델 레이의 보물 1개.
언럭키는 퀘스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게 배교자를 확인하는 효과가 있는 물건이었군.’
리바 델 레이 놈들이 천공의 탑을 공략하려고 했던 이유가 이 성물을 얻기 위해서라는 추축은 예전에 했었다.
다만 얻고 난 후에도 딱히 특별한게 없어서 잊고 있었다.
그리고 잊고 있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배교자를 확인해준다니.
이런 걸 어디다 써먹는단 말인가.
무려 공격력 350짜리의 위대하신 유스티아의 성검과 비교하면 쓰레기나 다를 바 없었다.
‘성물 효과가 이런 거면 퀘스트를 하고 다른 보물과 바꾸는 게 훨씬 낫겠어.’
다른 보물이 얼마나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벤토리에 박혀있다가 까먹어버린 이런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퀘스트를 받겠다.”
-띠링!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 *
언럭키가 지금 있는 도시 주텐타는 여러 신들의 신전들이 많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자유롭게 포교 활동을 하고 신의 자비로움을 실천하는 도시.
그렇다 보니 영주의 힘은 타 도시들보다 조금 약한 편이었다.
영주부터도 독실한 신자였기에 신전들에 힘을 많이 실어준 것이다.
리바 델 레이의 주교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영주 살해라는 범죄를 저지른 언럭키였기에 이 도시만 한 곳이 없었다.
“…근데 많이 들어와 있다는 그 신전 중에 설마 리바 델 레이와 연관된 곳도 있을 줄이야.”
성물을 어떻게 돌려줘야 하나 고민했는데, 퀘스트는 성물을 받아 갈 주교가 찾아올 것이라 말해주었다.
그리고 주교는 대놓고 도시 한복판에서 언럭키를 찾아왔다.
새하얀 법복을 입은, 인자해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중심으로 묵묵히 나아가시길. 반갑습니다. 형제님. 티물스라고 합니다.”
“…….”
어지간해서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자본주의 미소를 띠는 언럭키였지만 지금은 조금 어려웠다.
성호를 그리며 인사한 중년인이 입고 있는 옷은 ‘중립의 신’의 법복이었다.
분명 주교급이 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대놓고 다른 신을 모시는 옷을 입고 있다니?
“어… 예. 티물스 사제님.”
“허허. 보아하니 제 사정을 얼추 아시는 모양이시군요. 의문이 가득한 눈빛이십니다.”
“조금 그렇습니다.”
“중립의 신께서는 자신의 신도들에게 별 관심이 없으십니다. 오직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설사 다른 의도가 있더라도 믿음을 허락해주시죠. 제가 리바 델 레이임에도 중립의 신을 모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다른 신을 같이 모시는 것도 되고, 위장으로 잠입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게 자기가 맞다고 믿는 길이라고 하면 말이다.
‘뭔 그딴 신이 다 있어?’
중립의 신 교단 내부는 보지 않아도 난장판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지금은 중립의 신도 같이 모시는 겁니까?”
“예. 그러면서 저희 신의 가르침도 조금씩 주변으로 전파하려고 애쓰고 있죠.”
“…….”
중립의 신 교단에 잠입해 악신에 대한 포교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신이 어질어질해져서 언럭키는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빨리 성물을 돌려주고 자리를 떠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인벤토리에서 성물을 꺼냈다.
“오오. 이것이 믿음의 성물이군요…. 본단의 대주교들께서 오랫동안 회수하길 바라셨는데….”
낡은 청동 거울이었지만 티물스 사제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그걸 바라봤다.
언럭키는 거울을 건네주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햇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티물스 사제를 비췄다.
-지이잉!
빛에 반사된 거울 안에 티물스 사제의 얼굴이 생겨났다.
믿음의 거울이 시뻘겋게 물들더니 그 위로 검붉은색의 글자들이 떠올랐다.
[주교 티물스] [상태 : 배교 중.] [속마음 : 굳이 내가 주교 자리에 만족할 필요 있나. 중립의 교단을 집어삼킨 다음 리바 델 레이 본단을 역으로 쳐서 지배해버리면 되지.]“……?”
“…….”
언럭키와 티물스 사제 둘 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무슨….”
-띠링!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퀘스트 : 배교자 처치.]-퀘스트 등급 : 신탁 퀘스트.
-퀘스트 설명 : 믿음의 성물이 배교자를 찾아내었다. 감히 악신을 배신한 자를 가만히 둘 수는 없는 법. 신의 분노를 느껴야 한다. 배교자를 처치하라.
-퀘스트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리바 델 레이의 보물 1개.
새롭게 발동한 퀘스트를 보고 언럭키가 정신을 차렸다.
그가 번개처럼 검을 뽑아 휘둘렀다.
“자, 잠깐만. 이건 분명 뭔가 오해가… 으헉!?”
티물스 사제는 기겁해서 옆으로 몸을 날려 왼팔을 버리고 목숨을 살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문을 외우더니 검은 연기에 휘감겨 사라졌다.
“쯧. 놓쳤군.”
언럭키가 혀를 찼다.
한 방에 처치했으면 바로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는 거였는데.
무슨 수를 쓴 건지 귀신처럼 빠르게 도망쳤다.
* * *
언럭키는 도시를 뛰어다녔다.
사라진 티물스 사제를 쫓기 위함이었다.
다만 검왕은 수색에는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니었다.
‘이럴 땐 사신만 한 직업이 없는데 진짜.’
혹시나 행운의 무지개 능력이 발동될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여기저기 쳐다봤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결국 한참 뛰어다니던 언럭키는 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다.
도시가 얼마나 넓은데, 그놈이 어디로 숨었을 줄 알고 무작정 돌아다니기만 한단 말인가.
언럭키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당신이 신탁에서 말한 그 자녀로군.”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기괴한 가면을 쓴 덩치가 나타났다.
“…누구지?”
“이단심판관이다. 배교자를 처리하라는 신탁을 받고 왔지.”
‘빠른데?’
자신에게 퀘스트가 나타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단심판관이 찾아왔단 말인가?
“마침 이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신탁에 의하면 배교자를 찾아낸 자가 있다던데. 너인가?”
“맞다. 정확히 신탁에서 뭐라고 했지?”
“신께서는 너를 도와 배교자를 처치하라고 하셨다.”
다행히 지휘권이 자신에게 있는 모양이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지금껏 자신이 리바 델 레이 놈들에게 꽤 피해를 입혔다는 점이다.
‘그래도 신탁 퀘스트 중이니 이놈이 미쳐서 날 공격할 리는 없겠지.’
“알겠다.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추적술과 힘. 배교자를 쫓고, 죽인다.”
이단심판관이 로브 사이로 쇠로 된 가시가 마구 나 있는 철퇴를 꺼내 보였다.
핏자국이 묻어있는 흉측한 메이스와, 그걸 잡고 있는 두꺼운 전완근이 인상적이었다.
“그럼 티물스 사제를 쫓아갈 수 있나?”
“물론. 따라와라.”
이단심판관은 덩치에 맞지 않게 민첩한 발놀림으로 움직였다.
도시 구석으로 요리조리 움직이는 그를 따라갔는데, 점점 빈민가 쪽으로 향했다.
피곤과 가난에 찌든 사람들.
덩치 큰 로브인과 무장이 잘 된 언럭키가 지나가니 그들은 문제가 생길까 재빨리 피했다.
다만 조금 더 들어가니 얌전히 피해주기만 하지는 않았다.
“어이. 형씨들. 어딜 그렇게 바삐 가시나?”
“가는 건 좋은데 우리도 좀 바쁜 사람들이거든? 줄 거 얼른 주면 빠르게 보내줄게.”
껄렁거리는 양아치들이 비릿한 웃음과 함께 나타났다.
-콰직!
“끄아아악!”
“심판을 막으려 하는 자들은 함께 심판당한다.”
어느새 이단심판관이 철퇴를 꺼내 휘둘렀다.
양아치들은 몸통을 두들겨 맞고 바닥에 쓰러졌는데,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는 놈들을 철퇴를 다시 휘둘러 마무리 지었다.
“계속 가지.”
‘잔인한 자식.’
언럭키는 혀를 한 번 찼지만 군말 없이 놈을 따라갔다.
한참을 빈민가를 요리조리 움직이다 보니 몇 번 더 양아치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이전의 놈들처럼 전부 철퇴로 뚝배기를 깨주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앞으로 가로막는 놈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여기다.”
무한 직진하던 놈이 멈춘 곳은 쓰러지기 직전의 낡은 집 앞이었다.
“이 안에 있는 건가?”
“음. 내 추적술에 의하면 여기서 지하로 더 들어가야 한다더군.”
“그럼 어서 들어가지.”
-끼익.
언럭키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파라라락!
-콰지직!
그 즉시 설치되어 있던 함정이 발동되어 수리검 세례가 쏟아졌는데, 언럭키의 주위로 얼음의 방패가 만들어져 전부 막아냈다.
“…능력이 대단하군?”
“꽤 괜찮은 검을 들고 있어서.”
언럭키가 빙혈용검을 툭 하고 건드렸다.
내장되어 있던 자동 냉기 방패가 발동되어 방금 전의 기습을 막았다.
‘다음에 벨라 님을 보면 꼭 한 번 더 감사 인사 해야겠군.’
그리고 감사 인사 하는 김에 케로베로스의 두개골도 좀 수리해달라고 부탁하고…
어쨌거나 방금 전에 보인 모습으로 이단심판관은 언럭키를 새삼 다르다는 듯 쳐다봤다.
‘괜히 신탁에서 가리킨 자가 아니었군. 쓸만한 능력이 있었어.’
이 정도면 자신을 도와줄 정도는 되겠다 생각하며, 이단심판관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수리검 함정들이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먼지 쌓인 가구들만 여럿 존재할 뿐.
여기저기 툭툭 건드리던 이단심판관은 옷장 앞으로 갔다.
그러더니 단숨에 철퇴를 꺼내 휘둘렀다.
-콰직!
-콰지직!
나무로 된 옷장이 박살 나고 그 뒤에 석벽이 드러났다.
“쥐새끼 같은 주교 놈. 심판관이 찾아올 줄 알고 여기로 도망갔군.”
석벽을 매만지던 이단심판관이 인상을 썼다.
몇 번 톡톡 두들기더니 다시 철퇴를 휘둘렀다.
-콰앙!
석벽은 약간의 흠집만 갔을 뿐 여전히 멀쩡했다.
“…크흠. 여기는 안 될 것 같다. 다른 방향을 찾아보는 게 좋겠군.”
이단심판관은 무안함을 숨기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언럭키가 석벽 쪽으로 다가갔다.
“이봐. 거긴 안 된다니까. 괜히 헛심 쓰지 말고 내 말 들어. 빠르게 다른 방향을 찾는 게 놈을 쫓아가는 좋은 방법…!?”
-콰지직!
-서걱!
양손에 하나씩 검을 뽑아 든 언럭키가 석벽을 두부 쪼개듯 잘라버렸다.
강화된 유스티아의 성검에서 염화 오러가, 빙혈용검에서 극빙 오러가 피어올랐다.
“…….”
이단심판관이 멍하니 그 모습을 봤다.
언럭키가 그를 흘긋 쳐다봤다.
“뭐 하고 있나. 추적은 네가 할 수 있는데. 먼저 출발해야지.”
“아, 네!”
아까보다 훨씬 빠릿해진 동작으로 이단심판관이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