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43
244화
악룡의 눈동자에서 붉은빛이 사라지고 맑은 눈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언럭키는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든지 다시 싸울 수 있도록 해골들을 회복시키고 자리잡게 했다.
‘악룡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겠지.’
미친 악룡. ‘미친’을 빼더라도 ‘악룡’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놈이 제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착하기를 기대하는 건 큰 실수다.
오히려 이성을 찾아 더 교활하고 강력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지.
그럼에도 놈에게 역린을 꽂은 건, 미친 상태로 두는 것도 답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좀 더 가능성 높은 쪽에 걸어보는 거지.’
악룡은 눈을 몇 번 껌뻑거렸다.
“내가…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혼자 중얼거렸음에도 주변이 울릴 만큼 목소리가 컸다.
용의 성대에서 사람의 말이 튀어나왔지만, 워낙 중후했기에 이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대화가 될 것 같긴 하다.
언럭키가 한 걸음 나섰다.
“기억이 안 나십니까? 방금 전까지 저희와 싸우고 계셨습니다.”
“싸웠다고? 너희랑?”
“예.”
악룡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이상하군. 싸운 기억도 없을뿐더러 나와 싸웠다면 고작 그 수준으로 살아있는데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거지?”
“…예?”
“10초도 못 버틸 것 같은 놈들인데…”
악룡의 시선이 벨라, 아세린, 칼리스먼에게 차례대로 향하다가, 마지막으로 언럭키에게 머물렀다.
“…너는 그래도 몇 분은 버틸 것 같은 놈이로군.”
“…….”
“그래도 이상해. 왜 싸우고 있는…아!? 바알!!!”
그제서야 기억이 돌아왔는지 악룡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바알에게…패하고…그리고 역린을 빼앗겼다…?”
놈은 자신의 역린을 더듬거리다가 멀쩡히 붙어있는 걸 보고 놀랐다.
언럭키가 칼리스먼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보아하니
“악룡이여. 나는 위대하신 군주 레라지에님의 징수관이오. 칼리스먼이라 하는데…”
“징수관? 그런 쓰레기 이름은 안 궁금하다. 레라지에 놈의 밑에 있다면 보나마나 비열하고 약한 주제에 성격만 더러운 놈이겠군.”
“…….”
칼리스먼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반대로 언럭키는 놀랐다.
‘악룡도 용은 용이군. 눈썰미가 뛰어나.’
칼리스먼이 속으로 도망치거나 배신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진작에 눈치챘다.
그래봤자 쉽게 제안할 자신이 있고 안내원으로 도움이 되기도 하니 놔둔 것뿐이다.
아니. 애초에 시청자들의 요구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처리했겠지.
“그래도 궁금한 걸 좀 물어볼 수는 있겠구나. 그래. 징수관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라.”
그러면서 악룡은 슬쩍 살기를 일으켜 쏘아 보냈다.
칼리스먼은 전신을 가득 채우는 압박감에 덜덜 떨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당신은 바알에게 패하고…”
악룡이 미친 건 십수 년이 지난 일이었다.
칼리스먼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었다.
자세한 행적은 당연히 모르지만, 워낙 지옥 여기저기를 떠돌며 파괴와 기행을 일삼았기에 유명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도시 하나를 파괴한 일, 그에 열받은 군주가 보낸 친위대를 전멸시키고, 군주 한 명까지 겁먹고 도망친 일.
뜬금없이 나타나 학살할 때도 많아서 자연재해 취급을 받기까지 했다.
칼리스먼은 한참을 더 말해주었다.
다 듣고 난 뒤 악룡은 한숨을 쉬었다.
“…하. 이 몸이 그런 짓을 했다니…. 추잡하구나.”
자신이 한 일들에 대해 후회하는 듯해 보였다.
이걸 보면 악룡이라는 이름만큼 사악한 건 아닌 것 같…
“힘을 쓰고 버러지들을 처리했음에도 기억조차 없다니.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버러지를 처리할 땐 한 마리씩 어떻게 죽어가는지 기억해야 하는 법이거늘….”
‘…지옥의 용이라 비정상인가? 아니면 용들은 원래 이런가?’
그때 악룡이 언럭키를 쳐다봤다.
“그래서. 네가 바알이 숨겨둔 역린을 찾아 내 정신을 되찾아줬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조심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언럭키는 더욱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언제 갑자기 공격해올지 모른다.
할 수 있는 반항은 다 해보고 죽을 것이다.
“원하는데 무엇이냐. 용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 무조건 그대로 갚아줄 것이니 편하게 말하라.”
“정말이십니까?”
“그래. 원한도 은혜도 무조건 갚아주는 게 우리 용족이다. 특히 역린을 찾아준 것은 말로 다 하지 못할 일이지. 그러니 무엇이든 말해보라.”
“음….”
막상 뭐든지 말해보라고 하니 뭘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고민하던 언럭키는 원래부터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칼리스먼은 빈털터리였지만 이놈은 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가지고 계신 마석이 좀 있으십니까?”
말하면서도 큰 기대는 안 했다.
가능성을 낮게 봤다.
오랫동안 미쳐서 떠돌아다닌 놈이 재산이 뭐 얼마나 많겠는가.
칼리스먼은 욕심 많은 용이니 많을 거라고 말했었지만, 그놈의 말을 다 신뢰할 수는 없다.
“있지. 이만큼이면 되나?”
악룡이 발톱을 까딱이자 눈앞에 마석들이 한가득 쌓였다.
소환 마법의 일종인 듯한데, 옆에 있는 칼리스먼의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양이었다.
-띠링!
[데스나이트를 완벽하게 소환하기 위해서는 마석이 필요합니다.] [필요 마석 : 10000/10000] [마석을 소모해 소환수의 제한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상급 방랑 기사 – 데스나이트 제임스가 소환가능합니다.]한 번에 또 하나의 데스나이트를 완벽하게 소환하기 위한 조건이 갖춰졌다.
데스나이트 한 기의 위력이 어떤지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감탄하고 있는 언럭키의 머리 위로 악룡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흠. 고작 마석 따위로는 은혜를 갚았다고 볼 수 없지. 다른 원하는 것 없느냐?”
언럭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뭘 말해야 잘 말했다는 소리를 들을지 고민이 되었다.
* * *
악룡의 이름은 에오나루스였다.
악룡 에오나루스.
미친 악룡 소리를 듣기 전까지 악마들은 놈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왜 악룡이라고 불리십니까?”
언럭키가 궁금해서 물었다.
정말 사악한 존재였다면 은혜를 입었다고 순순히 갚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점을 볼 때, 나름대로 인성 좋은 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는 갚지만 원한도 갚아서 그렇다. 이 몸은 원한을 갚을 땐 크게 갚거든.”
“…얼마나 크게 갚으십니까?”
“글쎄. 때에 따라 다르지만 원한 같은 경우는 최소 일만 배로 받아줘야지.”
“…….”
용에게 은혜를 입히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반대로 원한을 사기는 쉬울 터.
그 원한들을 일만 배로 갚고 다녔다면 사악한 용 소리를 듣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 이쯤 되면 왜 진작부터 미친 악룡 소리를 안 들었는지 궁금해질 지경.
물론 언럭키가 굳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그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따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나중에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나중에?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 좋다. 편한 대로 하라.”
언럭키의 부탁을 놈은 흔쾌히 들어주었다.
언럭키는 올마스터의 비기에 관해 물을 생각이었다.
그가 지옥에 왔던 이유는 새로운 지역과 콘텐츠라는 것 때문도 있지만, 올마스터의 비기를 찾기 위함이었다.
신이 직접 보증한, 지옥 어딘가에 있는 비기.
악룡 정도의 강자라면 아는 것도 많으니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다만 지금은 라이브가 켜져 있기에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악룡과의 전투 이후 놈과의 대화는 라이브 시청자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용과의 전투, 아세린의 활약으로 용을 제정신 찾게 만들고, 그 후에 자연스레 이어지는 협상과 보상 타임.
그 어떤 유저도. 심지어 하이랭커들도 보여주지 못하는 일들을 언럭키가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컨텐츠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흥분을 추구한다.
최상위권의 유저들이 계속 새로운 지역을 밝히고 도시를 탐사하고 레이드 몬스터와 던전을 탐사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최초 발견, 그걸 콘텐츠화 시켜서 방송.
그게 반복되다 보면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지금 언럭키의 시청자들은 3.5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최초 발견 던전 탐사가 끝났음에도 용의 출현에 오히려 시청자들은 증가하고 있는 상황!
그때 에오나루스가 말했다.
“흠. 그러고 보니 너희 중에 야금술에 재능이 있는 자도 있구나.”
놈의 시선이 벨라에게 향했다.
잠시 생각하던 놈은 두툼한 옆구리 쪽을 발톱으로 벅벅 긁었다.
그러자 단단한 비늘이 무슨 각질 떨어지듯 떨어졌는데, 그것들을 내밀었다.
“야금술 다루던 놈들은 내 비늘을 그렇게 욕심내던데. 받아라.”
“!!!”
벨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언럭키는 맹세코 그녀가 지금과 같은 감정 표현을 하는걸 처음 봤다.
그 조용하던 벨라가 비명 지르기 직전의 모습이라니.
“가, 가, 가, 감사…”
몇 번이고 말을 더듬으며 비늘을 받아든 그녀는, 잃어버릴까 무서워 잽싸게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예상외의 보상이고 자신도 아닌 벨라에게 넘겨진 보상.
그럼에도 언럭키는 그걸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역린은 처음에 그녀가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이지 않나.
그만큼 드래곤의 비늘은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소중한 물건일 텐데, 저런 식으로 좋아하는걸 보니 언럭키마저 기뻤다.
심지어 에오나루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령술을 다루고 있는 인간아. 그러고 보니 네게 도움이 될만한 게 생각났다.”
“무엇입니까?”
“바알의 친위대 중에 데빌 키메라 라는 놈들을 알고 있나?”
“예.”
알기만 할 뿐일까.
바로 직전에 독안개를 뿌려대며 잡기까지 했는데.
“그놈의 위치를 알고있다. 슬슬 내가 미쳐있던 시절의 기억도 떠오르는구나. 그 중엔 떠돌이 데빌 키메라를 본 적도 있었어.”
“음. 그러시군요.”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의아해했다.
저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물론 잡으면 큰 경험치도 얻고 괜찮은 아이템도 드랍하겠지만, 용이 은혜를 갚겠다며 말해줄 만한 정보인지는 모르겠다.
“이해가 덜 됐나 보구나. 데빌 키메라다. 너희 사령술을 익힌 족속들이 조종해 다룰 수 있는 놈 아니냐. 내가 본 놈들은 바알의 종속도 풀렸으니 가서 잡아채면 될 거다.”
키메라도 분명 네크로맨서가 다룰 수 있는 분야이긴 하다.
NPC 네크로맨서라면 방금 전의 제안에 환호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나한테는 영 쓸모가 없고.’
만나면 냅다 싸우는 것 말고 뭘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말했다.
“제 사령술의 공부가 덜 되어 아직 키메라를 종속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 그럼 이걸 주마.”
에오나루스는 대수롭지 않게 책 한 권을 소환하더니 휙 하고 던졌다.
[스킬북 : 키메라 사령술]-스킬 등급 : 유니크.
-스킬 효과 : 키메라를 언데드화 시켜 다룰 수 있게 된다.
“!!?”
언럭키는 에오나루스야말로 위대한 드래곤임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