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57
258화
‘심봤다!!’
실제로 언럭키는 속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혈령초가 저렇게 군락을 모여 자라고 있다니.
여기서 얼핏 보이는 것만으로도 십수 뿌리가 넘는다.
심지어 안 보이는 안쪽에는 얼마나 더 많겠는가?
어쩌면 자신과 벨라, 아세린 세 사람의 분량을 여기서 한 번에 다 구할지도 모른다.
그때 칼리스먼이 툭툭 쳤다. 녀석은 계속해서 과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긴장 풀지 마라. 빈틈을 보이면 아무리 너라도 순식간에 죽을지도 모른다.”
따끔한 경고였지만 언럭키에게는 필요 없는 말이었다.
애초에 숲 전체에 악기(惡氣)가 이렇게 퍼져있는데, 긴장을 풀 리가 없지 않은가.
싸움과 투쟁에 미친 지옥 오크들이 왜 발을 들이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요즘 징수관은 군주에게 말을 막 놓는군. 내가 혈림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나?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느낌상 조금 더 목소리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언럭키가 칼리스먼을 툭 치며 속삭였다.
“들어보니 놈에 대해 아는 것 같은데. 곧 싸울 것 같으니 뭐라도 말해봐라.”
“대악마 벨키서스. 한 때 군주 바알의 친위대 소속의 충복이었으며, 그 힘은 군주급에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다.”
“군주급에 버금가?”
“그래. 악귀 검객을 상대로 무승부를 벌였으니 군주급이라고 할 만 하겠지.”
미친 악룡, 식탐 트롤.
언럭키가 지금껏 만나본 군주급에 버금가는 강자들이었다.
악귀 검객은 그 둘과 한 세트로 묶이는, 군주는 아니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홀로 다니는 악마였다.
대악마 벨키서스는 그런 악귀 검객과 지지 않고 맞선 것으로 유명했다.
“이런 거물이 그 전쟁에서 죽지 않고 혈림에 숨어들어와 있었다니….”
십수 년 전에 들어온 혈림 최강의 존재는 대악마 벨키서스였다.
칼리스먼은 왜 언럭키를 뜯어 말리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그가 아무리 괴물이어도 벨키서스를 상대로 이기는 건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언럭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망쳐야 되나?’
위대한 용 에오나루스는 물론이고 식탐 트롤 레그녹스 역시 지금은 이기지 못했다.
상대가 비슷한 수준의 강자라고 한다면 승산은 매우 낮았다.
-아까부터 혈령초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군. 여기에 관심이 있나?
“…그건 왜 묻는 거지?”
언럭키가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편견이긴 하겠지만 악마들은 어지간해서는 다 사악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노린다는 걸 알게 되면 짓밟으려고 할 수도 있다.
-혈령초를 원한다면 주겠다. 그 대신 거래를 하자.
“……?”
-일단 거기 있는 건 가져가도 좋다. 안쪽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이 있거든. 나와 거래를 한다면 그걸 넘겨주겠다.
“!!”
* * *
혹시 혈령초를 캐는 사이에 기습해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주의를 절대 놓지 않았다.
해골들을 방벽처럼 세우고 벨라와 아세린이 채집하는 언럭키를 호위했던 것이다.
방비가 무색하게, 기습 같은 건 없었다.
“이걸 정말 넘겨주네요?”
“저도 놀랍긴한데, 시간 없으니 일단 먹죠.”
언럭키가 혈령초를 공평하게 분배했다.
이번에 캐온 건 16개였기에, 본인 6개, 나머지 둘은 5개씩 준 것이다.
‘한 개 내가 더 갖는 걸로는 뭐라 안 하시겠지?’
슬쩍 눈치를 보니 벨라와 아세린 모두 불만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기쁨과 감사한 마음만 잔뜩 표현할 뿐.
-띠링!
[혈령초를 복용하셨습니다.] [민첩 수치가 +1 상승하셨습니다.] [마력 수치가 +1 상승하셨습니다.] [체력 수치가……
여섯 번의 알림이 오르며 언럭키가 활짝 웃었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알림음이다.
언럭키가 잠시 그 기분을 즐기며 가만히 있자 칼리스먼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지? 혹시 독초인가? 역시 벨키서스다. 오랜만에 들은 이름이라 이제야 기억났는데, 비열한 계책을 잘 짜는 걸로 유명했지. 심성이 그만큼 더럽고 잔인하고 사악하다는 뜻이다. 분명 이것도 무언가…”
-쾅!
“끄어억…?”
얻어맞아 땅을 뒹굴면서도 칼리스먼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러나 후려친 벨라는 물론이고 언럭키와 아세린마저 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악한 대악마라뇨.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악마에게 그렇게 말하는게 어디 있어요?”
“아세린님의 말씀이 맞다. 그런 차별주의자적 발언이 사회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 모르겠나?”
-끄덕 끄덕
세 사람이 쏘아보는 통에 칼리스먼은 저도 모르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 미안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억울했다.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데!
그러나 이번만큼은 세 사람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인정했다.
* * *
혈령초 16뿌리로 대악마 벨키서스의 제안을 들어볼 의향이 생겼다.
다시 악기가 흘러나오는 숲 속으로 들어간 언럭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선물이 마음에 든 모양이군.
언럭키가 공손한 태도를 취해오자 목소리는 마음에 들었다는 듯 대답해왔다.
반말과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에서, 존댓말이 나오는 걸로 바뀌었다.
-그 전에 하나 묻지. 이름 모를 군주여. 혹시 다른 군주들처럼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것인가?
“그렇진 않습니다. 우연히 들어온 것뿐입니다.”
목소리는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함인지 한동안 조용했다.
-…진짜로군. 거짓을 말하는 기색이 아니야.
잠시 후,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숲 안에서 악마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로는 인간 노인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생김새였다.
마른 몸매, 자글자글한 주름, 빛바랜 머리카락.
다만 그 와중에도 자세가 꼿꼿하며 눈에서는 정광이 가득했다.
특이하게 금테 두른 외알 안경을 쓰고 있었기에, 겉보기로는 자상하게 느껴졌다.
악마라고 볼 수 있는 유일한 점이라면, 그의 관자놀이로 한 쌍의 뿔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대악마 벨키서스!!”
칼리스먼이 탄성을 내뱉었다.
“애송이 악마야. 이제야 네 이름이 기억나는구나. 레라지에 휘하의 징수관. 칼리스먼이었지?”
“…….”
대화도 함부로 못하겠는지 칼리스먼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언럭키는 한심하다는 듯 녀석을 쳐다보더니 앞으로 나섰다.
“이 놈한테 듣기는 했습니다만 정식으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벨키서스라고 한다.”
대악마, 바알의 오른팔, 무법의 현자 등.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여럿 있었지만 벨키서스는 모든 걸 다 빼고 담백하게 소개했다.
“저는 언럭키라고 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군주인지 말해줄 수 있나?”
“불사의 군주입니다만.”
“불사….”
벨키서스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아까 거래를 하자고 하셨는데,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저 애송이 악마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예전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고 회복에 전념하고 있는 중일세.”
서열 1위 군주 바알과, 그를 시기한 다른 군주들의 대전쟁.
기습적인 전쟁으로 바알은 죽고 그 세력은 무너졌다.
벨키서스 역시 그 때 다친 후로 혈림으로 피신, 깊숙한 이 곳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다행히 여기가 혈령초 군락지여서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먹고 있있지.”
유저들에게는 천고의 영약인 혈령초였지만, 악마에게는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효과 좋은 영양제 정도랄까.
그렇기에 벨키서스는 주기적으로 혈령초를 섭취하며 몸을 회복해왔다.
‘그러면 나한테 못 주는 거 아닌가?’
언럭키의 낯빛이 순간 곤란으로 물들었다.
한두 개도 아니고 최소 70개는 얻어야 자신을 비롯한 파티원들 전원이 한계치까지 스탯을 올릴 수 있다.
벨키서스가 그만한 양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나를 자네의 수하로 받아들여준다면 여기 있는 혈령초는 전부 넘겨줄 수 있네. 내가 말한 거래가 그것일세.”
“…수하로요?”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던 언럭키의 머릿속에 군주의 증표에 붙어있던 내장 스킬들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군주의 권능’이라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군주의 권능 : 군주는 자신의 밑으로 들어온 휘하 수하들의 능력을 강화시켜준다. 군주가 보유한 영역의 넓이와 수하의 숫자, 본인의 힘에 비례해 강화되는 폭은 커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하의 능력을 강화시켜준다’ 라는 부분이었다.
군주의 휘하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악마의 전체적인 능력치가 강해진다.
영양제 느낌의 혈령초를 먹는 것보다, 이런 식의 강화를 받고 자연회복력을 늘리는 게 훨씬 도움 된다는 뜻!
그때 칼리스먼이 속삭여왔다.
“받아들이면 안 된다.”
“왜? 배신할 수도 있어서?”
“아니…군주의 휘하에 들어가면 그건 불가능하지.”
군주의 증표는 무려 에픽 아이템이다.
그 아이템으로 묶이는 주종 관계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한 번 밑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가 원래 무슨 마음을 품었건 간에, 절대 언럭키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는 못한다.
칼리스먼이 말한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아직도 벨키서스를 두려워하는 악마와 군주들이 많다. 악마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하고 똑똑했지.”
“그런 자가 부하로 들어온다는데 좋은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적대하는 군주들이 많아질 거다.”
과거 바알과 싸웠던 군주들은 벨키서스를 부리는 언럭키를 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칼리스먼의 충고였다.
그러나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 군주들이 내게 호의적일 것 같지는 않은데.’
지옥의 몬스터들부터가 다짜고짜 공격해대기 일수였는데, 군주라고 다를까 싶다.
그렇게 따지면 에오나루스와 친하게 지내는 지금 상황도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걸 걱정해서 놓치기에는, 벨키서스는 쓸모가 많아 보이는 악마였다.
언럭키가 고민하고 있는걸 알았는지 벨키서스가 말을 걸어왔다.
“안에 내가 키우고 있는 혈령초가 꽤 많네. 대충…50~60뿌리는 되겠군.”
혹 하는 기분이었다.
언럭키가 얻어야 하는 대부분의 혈령초를 여기서 다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보내야 할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을 터.
“그리고 세 뿌리이지만 특별한 개량에 성공한 혈령초도 있네. 유통 기한이 없어서 어디든지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지.”
“!!”
거기까지 들었을 때, 언럭키는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일단 휘하로 받아들이고,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때 가서 주종 관계를 물리던가 하자.
군주의 증표를 통해 맺는 계약은 갑을관계에 가까워서 주인인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정녕 내 충고는…후우. 어쩔 수 없지.”
칼리스먼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그가 어깨를 펴고는 벨키서스에게 다가갔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진작부터 불사의 군주와 함께해왔던 칼리스먼이라고 한다.”
그러니 선배 대접을 해달라고 하려 했던 칼리스먼은 벨키서스가 빤히 바라보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주변을 잠식하던 악기가 이제는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며, 명성이 있고 실력도 훌륭하신 대악마님과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씀을…드리고 싶습니다.”
“…….”
칼리스먼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