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68
269화
‘면식 있는 기사가 와서 다행이군.’
사실 방금 전 상황은 상당히 위험했다.
괜히 어둠 속성 직업을 얻은 유저들이 욕하면서 돈 주고 캐릭터를 다시 만드는 게 아니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어둠 속성에 불친절했다.
갈 수 있는 도시도 한정되어있고 일반 도시에서는 힘을 잘못 썼다가는 잡혀가고…
그건 고레벨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타격이 더 크다.
저레벨 때는 죽어봤자 그래 뭐. 하루 접속 안 하고 말지 라는 생각이라면, 지금은 한 번 죽는 것만으로도 손해가 어마어마하다.
잘못해서 레전더리 아이템이라도 떨어트린다면?
‘한 달은 제대로 잠 못자는 거지.’
그리고 만약 에픽 아이템을 떨어트렸다면, 그날부로 진지하게 게임사에 쳐들어가는 걸 고민해야 했다.
어쨌거나, 이 둘에게는 에토가 영주로 있는 도시에서 이딴 짓을 벌인 게 큰 실수였다.
다른 도시였으면 그 간악한 계획의 성공 확률이 꽤 높았을 터.
붙잡히지는 않았어도, 언럭키가 강제로 도시에서 도망치게 만들 수는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네크로맨서일 때는 조심해야겠어.’
저런 개념 없는 유저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잘못 걸린다면 피곤하다.
유명인이 되면 단점이랄까.
일반 도시에서는 좋은 취급을 못 받는다는 네크로맨서의 단점도 명확했고.
‘…아니면 빨리 올마스터의 비기를 얻는 거지.’
지금도 비기 하나를 얻어놔서, 검왕 직업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사신 직업도 적용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 경우처럼, 새로운 비기를 얻는다면 네크로맨서 직업과 무언가를 합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둠 속성의 한계를 벗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갈 터.
“함께 영주님을 보러 가시겠습니까?”
“그래요. 같이 가죠.”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언럭키는 영주성으로 향했다.
로랑과 루카는 포박되어 끌려가면서도 억울해하며 계속 소리쳤다.
“쟤가 네크로맨서인데 왜 우리를 잡아가냐고!”
“버그냐! 버그야!!??”
* * *
“미안하다.”
에토는 만나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
“……!?”
근처에 호위하고 있던 기사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자신들에게는 하늘 같은 영주가 고개 숙여 사과하다니.
월드 사가는 커다란 나라가 없고 도시 국가 개념이었기에, 각 도시의 영주는 국왕급의 위치였다.
쉽게 말해 한 나라의 주인이 사죄를 한 것이다.
언럭키와 에토의 관계는 예전부터 지속되어 왔기에 둘 다 이런 모습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변 신하들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내가 영주가 된 지 얼마 안 되서 도시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
“여, 영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신하들이 안절부절할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언럭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 뭐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으음. 그래도 영 체면이 안 사는군.”
에토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중첩자 역할을 잘 하는 것도, 주교가 되어 지금 영주 자리를 해먹고 있는 것도 언럭키의 도움이 컸지 않은가.
그런데 자신의 도시에서 습격이나 받다니.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혹시 뭐 필요한 거 없나? 전대 영주가 죽고 도시 혼란을 수습하느라 재정이 엉망이긴 하지만 보답을 하고 싶다.”
“…사족을 너무 심하게 붙이는군.”
저러면 뭘 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그리고 사실 별로 받을 생각도 없었다.
네크로맨서인 자신이 잡혀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않나.
대신 꼭 짚고 넘어갈 것은 있었다.
“그 놈들 처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볼 게 뭐 있나. 사형이지.”
에토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도시에서 유저끼리 분쟁을 벌인다고 사형까지 당할 리는 없지 않은가.
보통은 죄목에 따라 차등을 두지만, 자유가 제한된다.
영주성의 감옥에 수감되는데, 이러면 접속을 해제해도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다.
무조건 접속한 상태로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야 수감 시간이 흘러간다.
거래도 막히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어떤 유저는 60일간 수감되었는데 지옥같았다고 말했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접속해서 형벌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할 건 없고 시간은 흘러가고…왜 자신이 이러고 있나 싶은 것이다.
게다가 고레벨이 되면 시간은 금과 마찬가지.
감옥에서 헛되이 보내는 시간에 경쟁자들보다 뒤처져 버린다.
심지어 더 중요한 건, 형벌의 범위가 감옥 수감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사형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형을 당하면 페널티가 어마무시했다.
‘캐릭터 삭제. 유저들이 영주에게 벌벌 떠는 이유지.’
돈 내고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바보라서 NPC들에게 잘 해주는 게 아니다.
NPC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영주에게 읍소하고, 사건의 경중을 따져 운 나쁘면 경비대가 출동한다.
유저가 순순히 붙잡히지 않는다면 기사가 움직인다.
영원히 그 도시를 떠나는 게 아니라면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이다.
유저들이 함부로 깽판을 부릴 수 없으니 도시는 평화롭고 살기 좋았지만…모든 유저들이 만족하지는 않았다.
-자유도 높은 가상 현실이잖아. 근데 왜 NPC들이 저렇게 사사건건 가로막는데?
-아니 NPC랑 말싸움하다가 빡쳐서 살짝 미쳤는데 감옥 3일 수감 판결 나왔음. 이게 말이 됨??
-게임사는 망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패치해라. 확 접어버릴 수 있으니까.
당연히 유저들은 지속적으로 항의를 해왔다.
당연히 게임사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걸 들어먹을 리가 있나.’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된 지 오래인데.
그런 말을 들어줄 거였으면 진작에 고객의 소리에 열심히 귀 기울였겠지.
지금껏 망겜이다, 이렇게 운영하면 유저 다 떠난다 등등. 온갖 공갈 섞인 말들이 많았지만, 결과만 보면 대성공이었다.
월드 사가는 이제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언럭키가 물었다.
“사형이면…그건 내가 집행해도 되나?”
“집행? 복수 때문인가?”
“그건 아니야.”
언럭키가 고개를 저었지만 에토는 믿지 않았다.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군.’
“으음…. 그래. 원래 규정이라면 안 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치지. 사형 집행 권한을 줄 테니 직접 해도 좋다.”
“고맙군.”
그러나 정말 언럭키는 그들에게 원망 같은 건 없었다.
캐릭터 삭제 엔딩을 맞게 된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차피 사형되면 캐릭터가 삭제될 텐데 뽕은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형 집행을 내가 하면, 드랍되는 아이템도 내가 가져갈 수 있으려나?’
어차피 사라질 캐릭터.
이왕 없어질 거 유종의 미로 아이템이나 좀 주고 가라.
랭커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쓸만한 레전더리 템들 좀 가지고 있겠지!
* * *
“운이…더럽게 없군.”
사형 집행 후 언럭키가 중얼거린 말이었다.
말을 뱉고 난 후에 본능적으로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가 뗐다.
‘아, 참. 지금 라이브 안 하고 있지.’
요즘엔 이런 말을 잘못하면 기만이라고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는다.
본인도 알고 있기에 조심하고 있었는데, 저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놈 다 레어 아이템이라니. 장난치냐 진짜.”
유저가 죽었을 때는 본인이 많이 쓰던 장비들 중에서 랜덤으로 하나를 떨어트린다.
아무리 랭커라도 자신처럼 레전더리로만 둘둘 두르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적어도 유니크는 줘야지. 레어라니!
‘무슨 랭커씩이나 되서 레어템을 쓰고 있어…. 아니면 이게 현실인가?’
좋은 아이템은 가격이 최소 수천만 원을 호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파츠는 수준 낮은 장비를 쓰기도 한다.
당장 언럭키 역시 예전에 얻은 네크로 엠페러용 장비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래도 레어는 선 넘었지만.
“속이 후련한가?”
“뭐….”
“찝찝한 표정이로군. 정말 미안하다. 내 도시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걸 다시 한번 사과하겠다.”
영 안 좋아 보이는 언럭키에게 에토가 다시 사과했다.
그럴 필요 없었기에 언럭키가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다른 이유 때문에 기분이 안좋은 거였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연회라도 열어 줄 테니 즐기고 갈 텐가?”
“미안하지만 바빠서.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
언럭키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일정이 촉박했다.
사형 집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도중, 현실에서 컵라면이 연락이 왔었다.
-저…언럭키님.
-네?
-저 데리고 지옥으로 가겠다는 거요. 혹시 다음에 제가 자력으로 여길 탈출한 뒤에 따로 찾아가면 안 될까요?
-…저랑 함께 다니기 싫으신 겁니까?
이때 언럭키의 머릿속으로 온갖 고민들이 떠올랐다.
왜 마음을 바꿨지? 사악한 흑심을 들켰나?
하루에 21시간만 일 시키는 걸로 줄여볼 테니 부디 와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납치를…
다행히 그런 고민을 더 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는…아마 언럭키님이 오셔도 탈출하기 힘들 거예요. 아니. 오히려 오시면 안 돼요. 같이 갇힐 가능성이 농후해요.
컵라면은 현재 던전 하나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하고 갇혀있는 상황이었다.
언럭키가 직접 가서 구해준 다음 지옥으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걸 막고 있는 것이다.
-왜죠? 뭐가 있습니까?
-예…여기는…언럭키님과 상성이 최악이에요.
그 후로 컵라면은 이곳이 어떤 던전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분명 예전이었다면 언럭키 본인도 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문제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갈 테니.
언럭키가 단호하게 말했다.
* * *
도시를 벗어난 뒤, 언럭키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컵라면이 들어갔다는 던전은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지켜보는 사람은 없고….’
던전은 나중에 위치를 갖다 팔기만 해도 굉장히 쏠쏠하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최대한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일부러 로브 하나를 구입해 얼굴까지 전부 가린 상태였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을 보니 폐허 더미와 같은 유적지였다.
한때는 신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기둥과 바닥의 터가 있는 장소.
안으로 들어가니 부서진 석상들이 수십 개가 넘게 전시되어 있었다.
월드 사가에는 도시 바깥에 이런 폐허들이 많았다.
보통은 그냥 웅장한 광경을 봤구나 하고 돌아갈 테지만, 언럭키는 구석에 있는 부서진 천사상으로 다가갔다.
‘날갯죽지 부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열두 번 쓰다듬으랬지.’
컵라면이 알려 준 방법이었다.
그대로 하자 눈앞에 빛이 일렁거리며 포탈이 등장했다.
-띠링!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죽은 천사의 신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컵라면이 먼저 들어간 곳이기에 아쉽게도 최초 발견 보너스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언럭키는 실망하지 않았다.
황금알보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훨씬 좋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내가 뭘 몰라서 눈앞에서 놓쳐버린 던전도 분명 있었겠지.’
컵라면과 함께한다면 앞으로 던전 발견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질 터!
언럭키가 성큼 던전 안으로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