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8
028화
지하 수로 던전은 더 이상 언럭키에게 어렵지 않았다.
처음부터도 할만했지만, 이제는 놈들의 징그러운 외관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하도 많이 봐서 적응한 것이다.
-촤악!
던전을 끝까지 돌파하는 데는 이전에 비해 시간이 거의 반으로 단축됐다.
다만 보스룸은 들어가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리젠 되기 때문에, 입장 자체가 불가능했다.
보스몹이 주는 막대한 경험치를 얻지 못하는 건 상당히 아쉬웠다.
-콰직!
-서걱!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머드칵들은 이제 눈 감고도 처치할 수 있었지만 경험치 수급은 쉽지 않았다.
이미 언럭키의 레벨은 일반 머드칵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다.
거기에 던전 최초 발견 혜택인 경험치 1.5배 상승 효과도 끝나버려 경험치 오르는 속도가 확 줄어들었다.
필요 경험치는 많아졌는데, 획득 경험치는 감소하니 역체감이 심할 수밖에 없다.
하루 만에 두세 개의 레벨을 올렸던 처음과는 굉장히 달라졌다.
이틀 동안 하루 종일 지하 수로 던전에서 사냥했는데도 간신히 하나의 레벨을 더 올렸을 뿐이었다.
“왜 사람들이 월드사가 초반부를 그렇게 욕하는지 알겠네.”
월벤에 올라오는 게시글을 보면 가관이다.
-운영진은 게임 관리 안하냐? 게임사는 돈 그렇게 받아먹고 하는 일이 뭐임?
-시작의 도시부터 유저들 미어 터지려고 하는데 사냥터 증설도 없고. 툭하면 PK 일어나는데 관리는 하나도 안 되면서 말이야.
월드사가의 운영진은 게임 내부에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
이미 완성도를 다 갖추고 출시했다며 지켜만 볼 뿐이었다.
지난 1년 6개월간 자잘한 버그도 없었던 걸 보면 그게 맞는 말 같기는 하다.
다만 유저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방치가 정책이라니. 진짜 망하고 싶어 환장한 게임사네.
물론 당연히 망하지 않는다.
지금도 유저 수, 동시접속자 수, 매출액 등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고속 성장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보며 배짱 장사라고 욕한다.
허나 배짱 장사면 어쩌겠는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데, 월드 사가를 맛본 유저들은 절대 떠날 수 없었다.
그러니 그저 더 힘차게 욕만 할 뿐.
그렇기에 월드 사가 초보들의 성장 속도는 극악이었다.
원래도 레벨업이 어려운 게임인데, 사냥터까지 줄 서서 플레이해야 하다니.
레벨 50까지 찍는데 몇 달씩 걸리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런 점에서 언럭키는 운이 좋았다.
적절한 타이밍에 던전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이런 걸 보면 마냥 언럭키한 것도 아니라니까.’
요즘은 닉네임과 반대로 럭키할 때도 종종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된다.
한순간에 인생 난이도가 헬지옥이 될 뻔 했었지 않나.
언제 또 그런 불운이 찾아올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했다.
언럭키는 그렇게 열흘 가까이 지하 수로 던전에서 사냥에 빠져 살았다.
그동안 15였던 레벨은 18까지 올릴 수 있었다.
나중에 가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후. 진짜 힘들었지.’
후반쯤 가서는 레벨 하나 올리는 게 말도 안 되게 힘들었다.
머드칵들과 점점 차이가 벌어지니 경험치는 쥐콩만큼 오르고.
머신건 머드칵이 한 번 리젠되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직도 레벨 17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언럭키는 틈틈이 오크의 숲의 정황을 살폈다.
지금 레벨업을 하는 이유는 오크의 숲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혹시 몰래 들어갈 틈이 있나 싶어 꾸준히 한 번씩 찾아가 확인했다.
아쉽게도 성과는 없었다.
줄은 항상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길었고 레벨 18이 안되는 유저는 파티로 받아주지 않았다.
물론 언럭키의 스펙을 자세히 설명하면 받아주긴 할 것이다.
실력을 증명할 방법은 많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더러워서라도 레벨 18을 달성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언럭키는 당당하게 오크의 숲으로 향했다.
“같이 오크의 숲 파티하실 유저분 구합니다. 줄은 저희가 기다리고 있고, 스펙 봅니다.”
“탱커 직군 환영. 2시간 후에 사냥터 입장 가능합니다.”
“레어 검 가지고 있는 전사입니다. 1시간 이내 입장 가능한 사냥터 들어가고 싶습니다.”
여전히 파티를 구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언럭키는 보무도 당당하게 그들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어?”
그때,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발견했다.
사냥터 줄을 서는 곳에, 전에 한 번 봤었던 남자가 있던 것이다.
언럭키가 조용히 그의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저기요. 대머리 덩치 아저씨.”
“뭐? 대머리? 눈깔이 삐었나 어떤 놈이 나보고 대머리…!”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뒤돌았다가 언럭키를 보고 흠칫 놀랐다.
남자는 (주)머니앤캐시의 직원이었다.
빌리프펜 작업장을 감독하던, 성 팀장의 부하 중 한 명.
현실에서는 대머리 덩치 거한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풍성하고 샤프한 외관을 가진 남자. 김덕현이다.
김덕현은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언럭키를 쳐다봤다.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그러는 당신은요? 한가롭게 여기 있어도 됩니까?”
(주)머니앤캐시는 빚쟁이들을 하루에 14시간 이상 작업장에 가둬두고 일 시킨다.
관리 감독하는 직원도 빡센 건 당연했다.
“농땡이 피운다고 성 팀장한테 일러도 됩니까?”
“농땡이는 무슨. 업무의 일환으로 있는 거야.”
“무슨 업무요?”
“그걸 내가 너한테 알려 줘야 할 필요가 있나?”
직원이 으르렁거렸다.
그는 언럭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성 팀장이 직접 챙겨주라고 하지 않았으면 현실에서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괴롭혔을 것이다.
그리고 언럭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요 뭐. 성 팀장님한테 물어볼게요.”
언럭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관계이기도 하니, 이 정도 질문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자 김덕현의 표정이 변했다.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던 그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말했다.
“…하아. 내가 여기 왜 있겠냐. 당연히 사냥터 예약하려고 서 있는 거지.”
“사냥터는 왜요? 레벨 올리게요?”
“내 레벨 말고. 작업장 사람들 키워야지.”
“?”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업장 사람들의 레벨을 뭐하러 올리는가.
그들이 하는 건 게임 내의 중요한 재료 아이템들을 채집하거나 포션을 제조하는 등의 단순 반복 업무이다.
레벨이 높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작업장이 여기만 있냐? 여기 이후의 도시에도 작업장이 있거나 건설 중이라서, 거기서 일할 사람이 필요해. 빌리프펜은 새로 충원되는 인력이 많으니 위로 올려보내야지.”
그런 이유가 있었군.
언럭키가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머…아니, 험악하게 생긴 것과 달리 꽤 똑똑하시네요?”
“대머리라고 하지 마, 이 자식아.”
그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자꾸 대머리 대머리 하다 보니 화가 난 모양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말실수였건만.
“그래요. 그나저나 현실 이름은 덕현이라고 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게임 속 닉네임은 뭔데요?”
“…테드. 이유 설명해 줬으니까 됐지? 볼 일 다 봤으면 꺼져.”
테드는 어서 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허나 언럭키는 순순히 물러날 수 없었다.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아니. 안 돼.”
테드는 불안함을 느꼈는지 일단 고개부터 저었다.
언럭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성 팀장한테 연락을…”
“하아. 그 말 할 줄 알았다. 뭔데? 얘기나 먼저 들어보자.”
“사냥터. 얼마나 빌린 거예요?”
“9시간 정도.”
“오호.”
언럭키의 눈이 더욱 번뜩였다.
사냥터 입장료에다가 대신해서 줄 서줄 사람도 구해야 하는 등, 9시간이나 빌리려면 돈이 꽤 들 수밖에 없다.
워낙 수요가 높은 곳이고 한 번 들어갈 때 파티원들이 나눠서 낼 수 있기에 시세가 높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내가 파티에 들어가서 돈을 나눠서 내고 입장하려 했는데…그럴 필요가 없겠어.’
솔직히 모르는 파티에 들어가서 퀘스트를 위해 몰래 어떻게 움직일지도 고민이었는데.
좋은 해결책이 생겼다.
언럭키가 테드의 어깨를 짚었다.
“그 사냥터. 제가 쓰게 해 주세요.”
“뭐, 뭐?”
“작업장 사람들을 키우기 위해 예약한 거라면서요. 저도 대충 비슷한 입장이니 써도 괜찮잖아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소리였다.
테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웃기는 소리!”
“위에다 한 번 물어봐 줘요. 성 팀장이 저 잘 챙겨주라고 얘기 안 하던가요?”
“…….”
테드의 입이 다물렸다.
분명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다.
성 팀장님의 성격상 빈말은 하지 않는다.
잘 챙겨주라는건 정말로 ‘잘’ 챙기라는 뜻.
이런 요청이 있을 때 함부로 묵살할 수 없다.
언럭키도 그걸 아는지 손을 까딱였다.
“윗사람 판단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꼭 한 번 물어봐 주세요.”
“…으득. 기다리고 있어.”
테드가 게임 속에서 로그아웃했다.
***
-…그래. 허락하지.
“혀, 형님!”
테드, 김덕현은 깜짝 놀랐다.
언럭키의 말대로 형님께 연락을 해서 자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칼같이 거절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즉답이 나오다니.
“형님도 아시잖습니까. 이거 빌리는데 들어간 돈도 돈인데, 작업장 빚쟁이들 레벨 올리기 위해서라는 걸요. 근데 이걸 한 놈한테 독점시켜준다는 게…”
-덕현아.
“…네 형님.”
성 팀장이 무뚝뚝한 어조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김덕현은 긴장했다.
-네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허가해 줘라. 그 놈…좀 지켜보고 싶거든.
김덕현은 그 말에 내심 놀랐다.
‘형님이 지켜보고 싶어하신다고?’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타고난 게 성 팀장이다.
대표 역시 그걸 알아서 아직 젊은 그에게 전권을 맡기지 않았던가.
한데 그런 형님이 한번에 파악하지 못하고 더 지켜보고 싶어하시다니.
“…알겠습니다.”
김덕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형님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설령 대표가 와서 다시 지시를 내려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맞설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래. 앞으로는 아예 그 놈이 더 필요한 게 있다고 하면 먼저 조치해주고 나에게 나중에 보고만 해.
“예,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
뚝.
통화를 끊고 성강호 팀장은 의자에 깊숙히 몸을 뉘였다.
“첫 요청이 사냥터를 이용해달라는 거라니. 뜬금없군.”
백현.
그와는 정당하게 계약을 맺었다.
단순히 부업을 해줄 수 있게 한 다른 빚쟁이들과는 달랐다.
당돌하게도 수입을 떼어주는 대신에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시간에 원하는걸 할 수 있게 해준 건 큰 양보였다.
솔직히 놈이 빛을 보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레드 오션인 미튜브 시장에서 빨리 크는 건 그만큼 어려우니까.’
(한데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다.
이제 영상 3개. 4번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기다리는 팬이 생겼다.
아직 자기 채널도 제대로 없는데 팬이 있다니.
나중에 가면 이 화력이 얼마나 커질 것인가?
그렇기에 그의 요청을 허락해줬다.
오크의 숲 예약은 작업장의 성장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상식적으로는 작업장 빚쟁이들의 레벨부터 먼저 올리는 게 맞았다.
그러나 성 팀장은 이번만큼은 자신의 직감대로 해볼 생각이었다.
‘어디. 네가 할 수 있는 대로 해봐라.’
오크의 숲을 달라고 했다.
덕현이에게 듣기로는 혼자서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결판이 날 것이다.
놈이 바닥에서 열심히 꿈틀거리는 지렁이인지.
아니면 하늘 높이 날아갈 수 있는 용인지.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