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97
298화
“네가 선봉장이라며. 여기서 널 처리하면 일단 그쪽 사기를 크게 꺾고 시작할 수 있지 않겠어?”
“……허, 참.”
에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이중 첩자라는걸 잊었나?”
에토의 말에 언럭키가 쩝 하고 혀를 찼다.
사실, 잘 알고 있었다.
“알지. 그냥 한 번 해본 거야.”
언럭키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혹시 에토가 못 본 사이에 무언가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가 떠봤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쪽은 리바 델 레이에서 이중첩자 역할을 하고 있는 에토. 대주교로 승급했다고 하네.”
언럭키가 제파르를 보며 에토를 소개 시켜주었다.
“보아하니 이미 둘이 한 판 붙은 것 같은데. 맞아?”
“아마도.”
제파르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에토를 쳐다봤다.
리바 델 레이와의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있던 사내와 싸운 적이 있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안면 가리개를 쓴 덕에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위기만 봐서는 눈앞에 있는 상대와 흡사하다.
에토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군주님은 내 얼굴을 처음 보겠지만, 맞다. 사실 그때 싸웠을 땐 정말 무서웠다고. 자칫 잘못하다간 리바 델 레이를 멸망시키기 전에 그 큰 대검에 반으로 갈려 죽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면서 에토는 품속의 안면 가리개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다.
“…정말이군.”
거기까지 본 제파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 참. 이 자가 사실 우리 편이라고?”
“그래.”
정말이냐며 묻는 제파르에게 언럭키는 다시 한번 확답을 주었다.
제파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넌 뭘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거였나…. 그러면 왜 저들이 그렇게 이상하게 행동했는지도 이해가 가는군. 전투에서 이겼으면서 마무리를 안 짓거나, 도시를 내버려 두고 떠난 것 등…”
“아, 그건 내가 이중첩자인 것과는 상관없다.”
제파르의 말에 대답한 건 에토였다.
“우리는 일부러 너희들과 끝장내지 않고 비켜주었다. 그건 위에서 바라는 게 아니었어.”
“그럼 뭘 바라는데?”
“혼란.”
에토가 말했다.
“악마 군대가 올라오면서 지하에 있던 본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그런 악마들을 왜 몰살시키나? 적당히 상대하다가 지나쳐가라는 게 윗선의 명령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교황이었어도 악마 군대는 그냥 내버려 뒀겠지. 아니, 오히려 고맙다고 선물이라도 잡아줬을 거야.’
언럭키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부터 리바 델 레이 본단은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여러 도시들을 공격할 거다. 고대 교단의 유산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아마 남들 눈엔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보일거야.”
“이런. 그거 참 큰일…”
…인가?
큰일이라고 말하려 했던 언럭키는 순간 멈칫했다.
그야 물론 전쟁통이 되면 자신에게도 피해가 있겠지만, 그닥 큰 문제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에토 역시 동의한다는 듯 히죽 웃었다.
“큰일이 아니지. 내가 선봉장인데. 어느 도시를 공격할지, 루트가 어떻게 될지 등. 전부 다 미리 알려 주마.”
군대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다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에토는 선봉장이기에 군대와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그에 맞춰 언럭키가 대응한다면 충분히 리바 델 레이에 엿을 먹여줄 수 있을 터.
그때 언럭키가 물었다.
“아. 에토. 혹시 내가 말하는 도시들 쪽으로 군대를 데리고 가줄 수 있나?”
“싫어하는 도시가 있나 보지?”
“싫어하는 건 아니고, 일종의 비즈니스랄까.”
지금도 메일함을 열어보면 어느 도시를 공격해주는 대가로 돈을 주겠다, 아이템을 주겠다, 길드의 지분을 주겠다 등.
온갖 제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혈맹 길드에게서 10억을 받은 건 좋았지만 다른 길드들의 제안을 거절한 게 아쉬웠는데.
‘잘하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겠는데?’
리바 델 레이 놈들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가끔가다 든 생각이었지만, 악신의 교단이라고 무조건 나쁜 놈들은 아닌 것 같다.
* * *
도시 사마라가 악마들에게 점령되었다.
이 소식이 속보를 타고 전해지기도 전에, 혈맹 길드는 움직였다.
“빨리! 더 빨리 달려서 점령한다! 다른데서 눈치 까고 달려들기 전에 우리가 먹어야 해!”
혈맹 길드장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외쳤다.
“과연 조만간 하이 랭커가 될 초신성이라 그런가. 일 처리 하나는 정말 깔끔합니다.”
옆에서 간부 한 명이 그렇게 말했는데, 혈맹 길드장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입금을 받았다지만 하루 만에 도시를 점령해놓다니. 참 대단한 남자란 말이야.”
상대의 명성이 있으니 믿고 10억을 먼저 입금했지만, 일말의 불안한 요소는 있었다.
금액대가 있는데 혹시 상대가 먹튀 하면 어쩌지?
그러나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제안이었다.
도시 재침공으로 도시를 점령한 길드들은 현재 5개.
5대 길드라고 불리며 자기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었다.
혈맹 길드장은 절대 그 시대의 흐름에 뒤처질 수 없기에, 믿고 진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 세상은 믿고 봐야 했다.
언럭키는 성공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었고, 곧 도시가 그들 손에 떨어질 터였다.
“저기 사마라가 보입니다!”
“방심하지 마라! 악마들한테 오히려 패배하고 재점령 못 해서 망해버린 길드들이 한둘이 아니다!”
혈맹 길드장이 그렇게 경고했다.
실제로 악마들이 점령한 도시에 공성전을 시도했다가 패배하고 공중분해 된 1티어 길드들이 여럿 있었다.
아무리 게임 속이라도 공성전에 들어가는 돈은 한두 푼이 아니다.
성공한다면 막대한 보상이 있지만, 실패하면 돈은 돈대로 쓰고 길드 전력은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후 재기에 실패하기까지 했다.
오히려 게임이기에 길드에 돈이 떨어지니 유저들이 미련 없이 탈퇴하기도 쉬웠다.
그렇기에 혈맹 길드장은 잔뜩 긴장한 채 사마라에 도착했다.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그러나 성이 꽤 잘 보이는 위치까지 왔음에도, 성벽 위에는 병사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함정인가?”
“악마가 함정을 팔까요?”
“혹시 모르지. 무시하지 마. NPC들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다친 사람이 한둘이 아냐.”
“그건 그렇죠.”
무언가 이상했지만, 혈맹 길드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수상하다고 해서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
그러나 아예 성문 근처까지 도착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설사 이게 함정이라고 해도, 여기서 후퇴하는 것보다는 돌진하고 전멸하는 게 낫다.
“전원!! 공격!!!!”
길드장이 거세게 외치고는 성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름 공성전을 위해 여러 장비들을 꼼꼼하게 준비해놓았다.
성문을 부수는 충차가 등장하고 그걸 호위하기 위한 탱커들이 중갑을 입은 채 주변을 둘러쌌다.
-드르르륵
-쾅!
충차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성문을 후려쳤다.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도 적들의 저항은 없었다.
-콰직!
-쾅!
결국 성문이 열렸고, 혈맹 길드원들이 안으로 돌입했다.
“헛!?”
가장 먼저 들어간 혈맹 길드장은 깜짝 놀랐다.
극소수의 적병들이 성문 뒤쪽에 있긴 했지만, 겨우 십여 명 정도였다.
심지어 그들은 두려움에 잔뜩 질려 있었으며,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낡은 창을 든 채 이쪽을 보며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도시에 있는 병력은 너희가 끝이냐?”
“으, 으으….”
“대답해!”
혈맹 길드장이 윽박지르자 병사들이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소. 우리뿐이오.”
“기사들은? 영주의 친위대나 뭐 그런 자들 없나?”
“전에 찾아온 악마들에게…다 죽었소.”
병사는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끔찍하다는 듯 눈을 꼭 감고 말했다.
전에 찾아온 악마.
여기서 그가 말한 악마는, 악마 같은 존재들을 뜻했다.
도시 사바라 지하에 있던 리바 델 레이의 본단은 밖으로 나오면서 영주와 기사들, 수비 병사들까지 전부 전멸시켰다.
남은 소수의 병사는 멘탈이 나가서, 아무런 저항도 못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혈맹 길드장의 귀에는 그게 진짜 ‘악마 군대’가 한 짓인 줄 알았다.
‘언럭키님 일처리가 대단히 뛰어나군. 우리가 나중에 재점령할 것까지 예상해서 미리 내부 병력을 싹 처리해놓고 악마들도 다른 데로 빼내어 놓은 건가?’
아무런 피해 없이 도시를 점령한 건 굉장히 큰일이었다.
먼저 점령에 성공하여 5대 길드로 분류되는 곳들도 피해를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그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빚을 졌어.’
10억이란 돈이 아깝지 않다.
아니. 오히려 모자란다고 느낄 정도였다.
* * *
한동안 언럭키는 정신없이 지냈다.
물론 그의 월드 사가 인생은 항상 바빴지만, 바쁜 것과 정신없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이번엔 로베르타? 오케이. 알려줘서 고맙다.”
에토로부터 리바 델 레이의 본단이 어느 도시로 가고 있는지 전해 들으면, 잽싸게 로그아웃하고 로베르타의 점령을 원하는 길드에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언럭키입니다. 지난번에 로베르타 점령에 관하여 문의 주셨는데요. 해당 제안에 수락하겠습니다. 아이템 먼저 보내 주시면 정확한 공격 날짜가 나오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이 길드에서 내건 조건은 검사 전용 레전더리 아이템 3개와 네크로맨서 전용 레전더리 아이템 1개.
언럭키를 저격했다고 볼 수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옵션은 그렇게까지 탐 나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스펙업을 할 수 있을 만한 물건들.
어쩌면 현금 10억보다 더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
레전더리 이상의 아이템은 돈이 있다고 다 구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메일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이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상대 길드에서는 바로 수락했다.
혹시나 백현이 말을 바꿀까 봐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템도 보냈다.
‘혈맹 길드장이 참 신의 있고 사람이 괜찮네.’
이런 비싼 아이템들을 무턱대고 턱턱 보내는 게 참 신기했는데, 듣자하니 혈맹 길드장은 바쁜 와중에도 친한 몇몇 길드장들에게 언럭키와의 거래가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이야기했다 한다.
유명 길드의 길드장들 사이에서는 자신들만의 네트워크가 있는 모양인지,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다.
때문에 언럭키와의 거래는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리바 델 레이 놈들의 공격 루트랑 제파르 군대 공격 루트. 이 두 개 알고 있으니까 아주 그냥 돈이 복사가 되는구나.’
마냥 오래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서, 언럭키는 최대한 뽕을 뽑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나 모든 시간을 여기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토가 연락해왔다.
-시간이 됐다.
교단의 선봉장으로 움직이면서도 그는 날카롭게 타이밍을 살피고 있었다.
언제 교단에 가장 큰 비수를 박을 수 있을까.
그 타이밍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리바 델 레이 본진으로 들어갈 때다. 지금이 가장 비었어. 지금이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샅샅이 확인하고, 필요한 건 훔쳐올 수 있을 거야.
에토의 연락을 받고 언럭키가 활짝 웃었다.
잽싸게 접속한 그가 파티원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빨리 움직입시다. 일할 시간 됐어요!”
빈집털이 할 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