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311
312화
‘이런.’
언럭키는 급하게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도 제파르도, 서로를 알아봤다는 걸 알아챘다.
‘저기서 뭐 하는 거지?’
제파르는 첨탑 아래로 숨어버린 언럭키를 보며 의아해했다.
자신과 같은 지옥의 군주이자, 젖과 꿀이 흐르는 지상으로 안내해 준 친우.
그 친우 덕에 자신은 순조롭게 이 땅에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어떤 도시를 공격해야 할지, 인간들의 습성이나 약점 등은 무엇인지.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 주었기에 크게 신뢰를 갖게 되었다.
“잠깐 대기한다.”
제파르가 휘하 악마들에게 명령했다.
“바로 공격하지 않으십니까? 인간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준다면 공성전에서 피해가 커질 겁니다.”
휘하 부관인 상급 악마가 타당한 조언을 했다.
제파르는 이런 식으로 전투 전에 멈춘 적이 없었기에 의문을 가지면서 한 말이었다.
“저기에 내 친우가 있다.”
“아! 이해 됐습니다.”
“그래. 또 어떤 뛰어난 계책을 써서 성문을 열어줄지도 모르니, 일단 있어봐라.”
악마들 사이에서 혁혁한 공을 많이 세웠기에 언럭키의 이름은 유명했다.
공성전 초창기에 손짓만으로 성문을 열어버린 사건은 악마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화자되었다.
그렇기에 제파르가 인간들 사이에 언럭키가 있다고 말하자마자 군대를 멈춘 것도 이해된 것이다.
“조금 기다려보지. 저 친구가 이번에는 또 뭘 해줄지 기대가 되는군.”
* * *
악마들의 진군이 멈췄다.
그 덕에 도시 판게아의 인간들에게는 시간이 생겼다.
기습 공격을 당했다면 그냥 무작정 버티는 것뿐이었겠지만, 이제는 전략 전술이 필요할 때였다.
영주가 주최하는 회의가 열렸다.
참가자는 도시의 권력자들과 기사들, 일부 유저들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일부 유저란 판게아의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나 핵심 인재였다.
“다들 벙어리가 되었나? 평소에는 그렇게 어깨 펴고 당당하게 다니던 자들이 한 마디도 없군.”
영주가 원탁에 앉은 자들을 보고 이죽거렸다.
판게아의 영주는 권력욕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도시 상회의 주인, 명문가의 가주 등이 영주가 가졌을 권력을 야금야금 차지해갔다.
그건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도시에 유저들이 붐비게 되면 사냥터 통제를 영주측에서 하기 마련이다.
사냥터 입장비를 받으면서 세수를 채우고 질서를 확립하는 등의 일을 하는데, 판게아의 영주는 그런 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판게아의 몇몇 대형 길드들은 효율 좋은 던전과 사냥터를 자기들끼리 독점하며, 그 권리를 가지고 자기들끼리 전쟁도 벌였다.
“입을 열어보라니까? 도대체 저 악마들을 어떻게 하면 물리칠 수 있겠나?”
“…….”
“…….”
그러나 원탁에 앉은 권력자들은 영주의 말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면서 영주의 눈치만 조금씩 볼 뿐이다.
‘젠장. 저 놈들을 어떻게 물리쳐.’
‘기회 되면 짐 싸서 튀어야지. 하…얼마나 챙겨갈 수 있으려나.’
도시 유력자들과 길드장급 유저들의 생각은 거의 비슷했다.
악마들이 여러 도시들을 침공해 다닌 것은 널리 퍼진 사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침공을 방어해낸 도시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악마들의 강력한 힘에 밀려 항복했다.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도시 국가 단위로 쪼개진 인간들의 한계라고 할까.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친 영주가 주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봐라. 이 회의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 중 누구든 좋다. 발언권을 줄 테니 한번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얘기해보라.”
회의는 공개된 장소에서 열렸기에 거기에 끼지 못한 급 낮은 NPC나 유저들은 주변에서 회의를 지켜봤는데, 언럭키 파티도 그 쪽에 있었다.
300레벨을 찍긴 했지만 판게아는 레벨 300부터 들어올 수 있는 도시.
숫자가 많지는 않아도 여기 있는 모든 유저는 다 300레벨 이상이다.
여기서는 언럭키가 최하위권이라는 소리였다.
심지어 파티원이라서 함께 올 수 있었지, 언럭키의 일행들은 아직 290대. 300도 못 찍은 수준이니 회의에 참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영주가 갑자기 이 쪽을 향해 말을 한 것이다.
“…….”
“…….”
유저들은 앗 뜨거라 하면서 영주의 눈을 피했다.
혹시나 마주쳤다가 지목이라도 당하면 낭패다.
“쯧쯧. 이렇게 인재가 없어서야. 내가 도시 운영을 이런 자들에게 맡겨놨었다니. 한탄스럽다.”
한숨을 쉬며 혀를 찬 영주가 쿵 하고 원탁을 내리쳤다.
“좋다. 이제부터 본 영주의 권한을 도로 가져가겠다. 그걸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악마들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자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지. 너희 모험가들이 좋아하는 던전에 대한 권리도 마찬가지다. 공을 세우면 독점할 권리를 주겠다.”
“아, 아니…영주님!”
길드장급 유저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자기들이 관리하던 사냥터나 던전의 권리를 빼앗아 간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뭐 할 말 있나?”
“…….”
하지만 영주 주변의 수석 기사가 칼집에 손을 올리자 길드장은 입을 다물었다.
영주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권력에 손을 놓은 것뿐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기사와 병사들은 그들보다 숫자도 훨씬 많고 강력했다.
이어서 영주가 말했다.
“공을 세워라. 그러면 너희들이 누리던 권력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기사들은 일부 병사들을 데리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도록. 내가 방치한 권한으로부터 쌓은 재산이니 도로 거두겠다.”
폭정이었지만 이런 전쟁 상황에서는 권력이 더 강해지는 법.
도시의 유력자들과 길드장들은 울상을 지었지만 회의를 지켜보던 유저들은 달랐다.
‘저 놈들이 쌓은 재산까지 빼앗아서 공을 세운 자에게 나누어 준다면…그 중 일부만 얻어도 쏠쏠하겠는데?’
‘옆에 보니까 다들 욕심에 눈 돌아갔군. 도망칠 놈들은 많이 없겠어. 이러면 성벽 믿고 수성전 한 번 벌여봐도 가능성 있겟다.’
영주가 내건 보상에 욕심이 났다.
판게아의 길드장들이 자기 길드만 꿀 사냥터를 독점하던 행태에 얼마나 치를 떨었던가.
어쩌면 이번 기회에 영주의 보상을 받고 하이 랭커로 올라설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을 듯싶다.
“저, 영주님.”
그때 주변의 군웅들 사이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누군가? 아니. 소개는 되었다. 지금 손을 들었다는 건 좋은 의견이 있다는 거겠지. 바로 말해 보라.”
“예. 혹시 지금 제가 악마들을 후퇴하게 하면 말씀하신 보상들을 전부 저에게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영주는 어이없다는 듯 그 쪽을 쳐다봤다.
원탁의 권력자들과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영주와 말을 한 자 사이에서는 사람들이 비켜서며 길이 뻥 뚫렸다.
유저들은 미친놈 보듯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언럭키는 태연했다.
“공을 세운 자들에게 나눠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전쟁이 벌어지지 않고 저 혼자 저들을 물러나게 하면 전부 저한테 주는 게 맞는 거겠죠?”
“크…크하하핫. 아주 광오한 물음이구나. 하지만 타당하다. 당연하지. 전쟁 없이 저들을 물리친다면 아예 도시의 2인자로 대접해주겠다.”
정말 해낸다면 그쯤은 어려울 것도 없다.
“그 말씀. 잘 들었습니다. 꼭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언럭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길드들이 관리하던 던전 권리를 주겠다니. 이건 안 나서고는 못 참지.’
판게아에 오면서 걱정한 게, 지금까지처럼 사냥터나 던전을 독점해서 사냥하지 못할 거라는 점이었다.
특히나 판게아는 적폐 길드들이 많았기에 언럭키 혼자서는 부당한 일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니, 나서지 않을 수 있겠나.
말이 나온 직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언럭키는 곧장 악마들의 진형으로 넘어갔다.
성벽 위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언럭키의 뒷모습을 쳐다봤고, 곧 언럭키는 마중 나온 악마들에 포위되어 안쪽으로 사라졌다.
“저대로 악마들에게 찢겨 죽는 거 아닐까 걱정되는군.”
“설마 그러겠습니까. 걱정을 조금 내려놓으시지요 영주님. 아무리 악마들이 무식하다고 해도 혼자 온 사절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영주가 걱정했지만 옆의 측근이 애써 그를 위로했다.
사실 그의 생각도 영주와 비슷했다.
말 몇 마디로 악마들을 물러나게 하겠다니.
고금 제일의 책사도 그런 건 못 할 것이다.
그저 그가 보여준 용기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덕분에 기사와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벌벌 떨기만 하던 자기들의 모습이 창피한 모양이더군요.”
“그래야지. 연고도 없는 모험가가 저리 용기를 내는데 도망칠 준비나 하던 놈들이나 떨던 놈들이나. 거기서 거기야. 저 친구가 시간만 좀 더 벌어주면 좋겠군. 물자 확보는 어떻게 되어가나?”
“거의 다 끝났습니다.”
“좋아. 판게아의 힘이 어떤지 보여주자고.”
영주는 그렇게 말하더니 언럭키가 사라진 악마들 진형 쪽을 쳐다봤다.
안에 들어가서 어떤 모진 고초를 받고 힘든 시간을 격을 지는 감히 알 지 못하지만, 살아서 돌아오기만 해도 크게 포상을 내리리라 결심했다.
* * *
“친우여. 왔나?”
“어. 제파르. 오랜만이다.”
악마들의 호위(?)를 받으며 언럭키는 제파르가 쓰는 군용 천막으로 안내되었다.
제파르가 두 팔 벌려 그를 환영해주었고, 언럭키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편하게 앉았다.
제파르는 손수 와인 한 잔을 따라주었다.
“하하하. 널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신묘한 계책으로 판게아를 정복하게 도와줄 텐가?”
언럭키 덕분에 제파르의 힘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지옥 서열 16위의 군주.
원래도 강했지만, 그는 최상위권으로는 발돋움하지 못하는 군주였다.
하지만 언럭키가 도와줘 지상으로 올라온 후에는 달라졌다.
악마 군주는 통치하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강해진다.
비록 언럭키가 길드들에 몇 개 팔아먹어 점령한 도시 몇 개를 빼앗기긴 했지만, 제파르는 꽤 넓은 영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아마 지금 지옥으로 다시 돌아가면 10위권 초반대의 군주들과도 충분히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거다. 흐흐. 다 네 덕분이야.”
제파르는 깊은 감사를 담아 말했다.
물론, 여기서 만족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앞으로 더 많은 땅을 점령하여 최고 서열 군주가 될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다른 악마 군주들은 본신의 힘을 갖고 지상으로 넘어오는 게 어렵기 때문에, 생에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그래. 알면 됐네. 근데 왜 여기 온 거야?”
“그게 무슨 말인가? 당연히 영역을 넓히러 왔지.”
“하아….”
“?”
언럭키가 갑자기 한숨을 쉬자 제파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문제길래 저러는 거지?
“…내가 뭘 실수했나?”
하지만 제파르는 언럭키의 반응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여기까지 세력을 넓혀온 게 다 언럭키의 조언을 받아서 인 것 아닌가.
그는 강력한 무력을 지녔으면서 책사의 자질까지 가진 자였다.
언럭키가 양손을 깍지 끼며 테이블에 상체를 살짝 기댄 다음, 한 번도 지은 적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는 지금 위험하다. 당장 후퇴해야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