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321
322화
“하아…진짜 간신히 살았다.”
이세린은 샤워를 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언럭키가 폭주한 덕분에 무려 나흘 동안이나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던전에 갇혀 있어야 했다.
물론 성황의 힘까지 얻은 언럭키는 괴물 그 자체였다.
파티원들에게 버프를 걸어주고 다치면 회복까지 시켜주는 그는 이제 전천후 만능 캐릭터라고 볼 수 있었다.
파티장이 그러다 보니 파티원들도 재미가 있고 힘이 났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어야지. 나흘은 선 넘었잖아.”
무려 나흘 동안이나 그러는 게 말이 되나 싶다.
그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너무 찝찝했는데, 잠을 안 자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철야로 달렸다.
언럭키를 불러준 판게아의 영주와 집사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NPC이지만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만했다.
기절하듯 몇 시간 정도 자고 씻으니 그제야 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언럭키님도 일정 끝내고 좀 쉬고 하면 하루 정도는 푹 쉴 수 있겠…”
-띠링!
“……?”
갑자기 문자가 오자 이세린은 흠칫 놀랐다.
발신인이 언럭키였던 것이다.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30분 뒤에 아까 던전 앞에서 뵙죠. 혹시 아직 주무시는 분 계시나요?] [-언럭키-]‘…나는 몰라. 못 본 거야. 이런 연락 받은 적 없어.’
이세린은 그냥 자는 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부려 먹었으면서 쉰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부른단 말인가.
중세 노예도 이런 식이었으면 바로 반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다행히 스마트폰의 미리보기 알림을 통해서 내용을 확인한 터라 자는 척할 수 있다.
이세린은 빠르게 무음으로 바꿔두고 침대에 누우려고 했다.
[연락 없으신 분들은 제가 지금 바로 깨우러 가겠습니다. 주소는 알고 있으니 일어나실 때까지 초인종 누를게요.] [-언럭키-]“…….”
이세린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 * *
다시 모인 파티원들은 확실히 이전보다 혈색이 좋았다.
집사가 좀비로 오해했을 만큼 힘들어 보였었는데 좀 자고 왔는지 괜찮아졌던 것이다.
‘마냥 철야보다는 적절한 휴식을 부여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군.’
언럭키는 효율을 위해 최소한의 휴식을 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다들 얼굴들이 괜찮아 보이네요. 푹 자고 오셨나 봐요.”
“…이게 괜찮아 보이는 얼굴 같으세요?”
아세린이 대표로 말했다.
그나마 좀 괜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다들 다크서클이 짙었다.
초췌한 얼굴에 갑작스레 호출당해 절망하는 표정까지.
이걸 보고 좋다고 하면 눈이 이상한 것이리라.
“아까 헤어질 때보단 훨씬 좋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하아. 언럭키님 가신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영주가 부른 것 같은데.”
“아 그것 말이죠. 일단 잘 됐습니다.”
언럭키는 퀘스트 2개를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리바 델 레이를 기습하라는 호르헤른의 퀘스트와, 악마들을 막으라는 영주들의 퀘스트.
둘 다 난이도 높지만 보상이 좋은 훌륭한 퀘스트들이었다.
“또 악마들을 막아야 해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려워도 해야 합니다. 영주들이 자기 도시 군비를 나눠준다고 했으니 보수가 어마어마할 거예요.”
“그렇군요. 그럼 바로 동부로 출발하나요?”
“아뇨. 일단 사냥부터 조금만 더 하고요.”
“?”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급한 퀘스트라면서요. 악마들이 움직이기 전에 설득 시도라도 하려면 빨리 동부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맞긴 한데, 요즘에 너무 레벨업을 뒷전으로 미뤄두지 않았습니까.”
레벨 300도 넘었고 하이 랭커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최근에 마지막 비기를 얻겠답시고 또 시간을 빼 다른 던전까지 가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동부로 가서 다시 제파르를 만나고 오면 또 한참은 걸릴 터.
“그러니까 딱 하루. 하루만 더 사냥하고 가죠. 설마 내일 간다고 갑자기 악마들이 전면전을 펼치며 진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저희를 이렇게 일찍 부르신 게…”
“예. 어쩔 수 없이 휴식은 이 이후에 갖도록 하고 우리 조금만 더 노력하죠.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미안하다는 언럭키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 역시 피곤했다. 그저 버티고 참을 뿐.
파티원들은 자신들의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언럭키에게 차마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그가 자기 혼자 쉬고 파티원들을 부려 먹는 인간이었다면 진작에 때려치웠겠지만,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지 않던가.
“…제발 그 퀘스트 끝난 다음에는 쉬게 해주세요.”
“물론이죠!”
* * *
시간이 없기에 짧고 굵게 던전을 돌았다.
판게아 영주에게 받은 던전들은 하나같이 동선이 좋고 몬스터 밀집도가 훌륭한 곳들뿐이었다.
언럭키 일행은 시간 대비 효율 면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하루를 보냈다.
그 후 워프 게이트를 타고 동부의 도시로 갔다.
제파르가 어디 머무르는지는 알고 있었다.
인간 진형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는 악마들에게 있어서 은인이다.
아무 때고 제파르와 독대할 수 있는 사이였다.
“오. 친우여. 왔나.”
제파르는 두 팔 벌려 언럭키를 환영해 주었다.
‘다행히 기분은 좋아 보이는군.’
언럭키는 슬쩍 제파르의 눈치를 살폈다.
지난번에 판게아에서 반쯤은 억지로 후퇴시킨 건데, 제파르는 그 전략이 나쁘지 않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니었으면 이렇게 반겨줄 리가 없었겠지.
‘문제는 이번에는 또 뭐라고 설득해야 하냐는 건데….’
지난번에는 동부의 남은 도시들을 점령해서 세력을 공고히 하라고 전했다.
그게 잘 통해서 악마들은 동부를 완전히 제패했다.
이미 대부분을 점령해 놓았었기에 남은 인간들로는 저항하는 게 불가능했다.
완전히 동부를 먹은 이후, 앞으로 악마들의 행보는 하나밖에 없었다.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
‘…그리고 나는 그걸 막아야 되는 거지.’
영주 연합이 리바 델 레이를 온전히 상대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악마들에게도 시선이 팔리면 큰일이다.
양측으로 분산된 병력은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문제는 설득 방법이었다.
‘동부에 계속 머무르면서 숨을 고르고 힘을 키우라고 하는 건… 안 통하겠네.’
악마는 싸우면서 강해지는 존재이다.
점령한 영토가 넓어질수록 힘이 커진다.
그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이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제파르. 혹시 이후의 계획이 있나?”
일단 언럭키는 제파르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혼자서 마냥 고민해 봐야 답이 없었다.
“또 조언을 해주려는 거냐?”
“그런 거지.”
“이거 참. 너무 고맙군. 네 조언 한마디 한마디가 황금 이상의 값어치를 지녔단 말이지.”
언럭키가 아니었다면 악마 군대는 진작에 패퇴하고 지옥으로 역 소환되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과거를 돌아보고 든 제파르의 생각이었다.
무작정 전진밖에 모르는 자신과 악마들의 미래는 뻔했다.
그걸 적절히 제동 걸어주고 방향성을 잡아준 게 언럭키였다.
“일단 우리는 북동부의 멸지로 가려고 한다.”
“그래 당연히 그렇겠… 어디? 멸지?”
“그래.”
당연히 대륙 중심부로 진출할 거라고 얘기할 줄 알았는데, 전혀 뜬금없는 대답이 나왔다.
월드 사가의 대륙은 커다란 타원형의 형태이다.
대부분의 지역에 인간들이 거주했는데, 바다와 맞닿은 가장자리 끝부분은 달랐다.
멸지(滅地)라고 불리며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으로 분류되었다.
험하고 거칠어 작물이 자라지 않는 땅, 강력한 몬스터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도저히 진입이 불가능한 곳.
점령해 봐야 아무 쓸모도 없는 곳이었는데, 제파르는 거길 간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유가 뭐지?”
“북동부 멸지에서 우연히 마기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마도 오래전에 나처럼 지옥에서 소환되었던 군주가 남긴 것 같더군.”
흥미로운 일이었다.
고대 지옥 군주의 마기가 지금까지 남아있을 정도면, 높은 확률로 거기에 무언가 대단한 게 잠자고 있을 것이다.
“당장 대륙 중심부로 가서 인간들과 싸우기보다는 그것부터 얻을까 싶은데…네 생각은 어떤가?”
“아주 좋은 생각 같다.”
“다행이군.”
제파르가 웃었다.
이미 결정은 내려놓았지만, 책사라고 할 수 있는 언럭키마저 좋다고 말해주니 자신감이 생겼다.
‘다행이군. 설득할 필요도 없었어.’
언럭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악마 군대라고 해도 멸지로 간다면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곳의 험난한 소문을 떠올려 보면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영주들의 퀘스트는 자연스레 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
“힘내라. 비록 같이 가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널 응원하겠다.”
“후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주 고맙군.”
* * *
판게아에서 모인 영주들은 며칠에 걸쳐서 회의를 했다.
동맹을 맺기로 했지만 세부적으로 조율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된 내용은 병력 증강과 군비를 어떻게 하느냐였다.
솔직히 다수의 영주는 언럭키를 그리 믿고 있지 않았다.
그가 악마들을 오지 못하게 막는다며 자신 있게 나갔지만, 어디 그게 쉽겠는가.
“그자만 믿고 곧장 군비를 아끼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오.”
“그러다가 실패해서 악마들이 밀고 들어온다면 큰일 아니겠소?”
군대는 하루 이틀 만에 양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큰돈을 오랫동안 투자해야 하기에,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저는 언럭키 공을 믿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오. 그를 믿고 군비를 아껴 다른 데에 더 투자해도 괜찮을 것이오.”
호르헤른과 판게아 영주를 비롯한 소수의 영주는 언럭키를 지지했지만, 주류 의견은 아니었다.
“급보입니다!”
그렇게 회의가 이어지는 도중에 집사가 다급히 들어왔다.
영주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지간한 일로는 영주들의 회의를 방해하지 않을 테니, 큰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영주님. 동쪽의 악마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첩보원들의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뭣…? 아…이런. 벌써 시작되었나.”
영주들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 빠르군. 군비 증감 회의를 굳이 할 필요도 없었겠어.”
설마 악마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악마들의 첫 목표가 어디인지는 알아냈나? 일단 거기로 병력을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멸지라고 합니다.”
“…멸지? 내가 아는 그 멸지?”
“맞습니다.”
“허어… 정확한 건가?”
멸지가 어떤 곳인지 잘 아는 만큼, 그런 곳으로 진격을 시작한 악마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저도 첫 보고 때는 잘못되었나 싶었지만 잇따라 다른 첩보원들도 같은 보고를 보내왔습니다. 악마 군대는 지금 북동부의 멸지로 향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
“…….”
집사가 그리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혼란스러워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유일하게 입을 연 건 호르헤른이었다.
“언럭키 공이 한 것이겠지요. 저는 그 분이 해낼 줄 알았습니다.”
호르헤른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는 듯 덤덤했다.
그가 그리 말하자 다른 영주들 역시 헷갈렸다.
정말로 그가 해냈단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신기묘산의 기책을 썼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언럭키 공께서 오셨습니다!
그때 시종의 외침과 함께 언럭키가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
“!!”
군공을 세우고 돌아온 장수처럼 위풍당당하게 어깨를 편 그의 머리 뒤로 후광이 비추는 것 같다고 영주들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