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330
행운빨로 레벨업-330화(330/340)
#330화
“하….”
백현은 오랜만에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채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등받이를 뒤로 최대한 눕히고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의 눈앞으로 보이는 모니터에는 벌써 몇 번이나 확인한 사이트 하나가 떠 있었다.
[NEW!] [998위 : 언럭키]월드 사가에서 운용하는 하이 랭커 순위.
아직도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사실 그는 크게 바뀐 게 없었다.
지존칼과 미호가 데려가 준 던전에서 미친 듯이 사냥만 했을 뿐이다.
최상위권 하이 랭커답게 두 사람이 사냥하는 곳은 굉장히 위험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언럭키에게는 버거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집중하고 노력하다 보니 50일이라는 시간이 금방 흘렀고, 하이 랭커가 되었다.
“참….”
이게 공개된 시간이 새벽이었는데, 그 새벽에 파티원들이 케익을 사서 축하해주었다.
벨라, 아세린, 컵라면. 항상 같이 다니는 파티원 셋에 편집을 담당해 주는 이용승까지.
자신을 포함하면 다섯이어서 간단하게 파티하려고 했는데 위층에 있는 빅드래곤 길드에서도 사람들이 왔다.
-하하. 이런 좋은 경삿날에 저희를 안 부르시다니요. 같은 빌딩 입주자로서 서운하군요!
빅드래곤 길드는 전부터 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하고 있는지라 친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바쁜지도 알았는데, 이런 새벽에 축하해 주러 오다니.
그렇게 오랜만에 떠들썩한 휴식 시간을 보냈다.
‘이런 게 얼마 만이었나 싶다.’
사람들과 잔뜩 모여 먹고 마시고 놀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회사 회식 때 말고는 그런 적이 없으며 그때도 별로 즐겁지 않았다.
그나마 즐거웠던 기억은 고시원에서 박세훈, 이용승과 함께 먹던 아침 시간 정도.
‘아니면 자취방에서 친구랑 살던 때…정도였지.’
그 친구 놈이 거하게 뒤통수를 쳐서 문제였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과거는 미화된다고, 결과적으로 하이 랭커까지 되지 않았던가.
새벽 내내 파티를 벌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돌아갔다.
유현 혼자 즐거웠던 흔적이 남아있는 방 안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까지의 고생과 노력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파티원들에게는 푹 쉬고 내일 저녁에 다시 보자고 했다.
백현도 할 일이 있었다.
‘내일은…거기를 좀 가봐야겠군.’
* * *
성강호 팀장은 격세지감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고 있었다.
백현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당당하게 앉아서 말이다. 아니. 오히려 조금 오만하게 이쪽을 내려다보는 것도 같았다.
“백현씨. 오랜만이군요.”
“예. 사실 그동안 몇 번 왔었는데 얼굴 보기 힘드네요.”
백현은 마주 앉아 다리를 살짝 꼬았다.
“…….”
그럼에도 성 팀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옛날과 비교하자면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사실 그렇게 옛날도 아니다.
채 1년도 안 된 시간이다.
그때만 해도 백현은 빚에 허덕이다 못해 다 죽어가던 백수였다.
이 감옥 같은 곳으로 끌고 와서 평생을 가둬놓고 사육할 줄 알았던 존재.
처음 그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저 작업장에 사람 한 명이 추가되어 효율이 좋아지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데려와 보니 게임에 재능이 있었고, 그걸로 자기 먹고 살길을 찾으며 딜을 걸기까지 했다.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니 받아주긴 했는데…
‘그 후에 얼마 안 돼서 빚을 다 갚고 빠져나가고. 이제는 하이 랭커까지 되었군.’
하이 랭커.
오늘 아침에 새롭게 갱신된 순위를 확인하고는 자신답지 않게 굉장히 놀랐다.
새롭게 등재된 하이 랭커의 닉네임이 굉장히 익숙했던 탓이다.
“긴말 않겠습니다. 세훈씨는 이만 데려갈게요.”
“…그러십시오.”
뭔가 할 말이 많은지 입술을 달싹거렸던 성 팀장이지만 결국 무슨 말을 더 하지는 못했다.
사실 박세훈은 개인적으로 그의 투자 자문을 주고 있기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성 팀장이 계약서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지만, 그런 박세훈을 놓아주고 싶을 리가 없다.
‘눈빛 한번 살벌하군.’
하지만 백현은 예전에 그가 아는 백현이 아니었다.
거절한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듯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옛날처럼 납치해도 주변에서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고아가 아니었다.
당장 어제 축하 파티에 놀러 왔던 빅드래곤 길드장인 정신찬은 대룡 그룹의 후계자였고 함께 사냥하던 지존칼과 미호 역시 강력한 인맥들을 보유했다.
그들에게 부탁하면 불법의 영역에서 노는 (주)머니앤캐시 쯤은 바로 해체해 버릴 수 있을 터.
“그럼 더 얼굴 보고 있을 필요 없으니, 이만 가겠습니다.”
백현은 후련한 표정으로 성 팀장의 집무실을 떠났다.
* * *
“괜찮으세요?”
“괜찮냐고? 괜찮냐고!!”
박세훈은 하늘을 보고 소리치며 활짝 웃었다.
“당연히 괜찮지! 내가 그 빌어먹을 닭장을 탈출하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의 빚은 7억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언제 모을지 짐작하기도 힘들 만큼 큰돈.
박세훈은 증권가에서 일했기에 할만하다고 느껴지는 금액이기는 했으나, 작업장에 갇힌 후로는 그런 큰돈을 벌 가능성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피폐하게 살아오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오게 되니 기쁠 수밖에.
“아, 그리고 백현씨. 네 친구 거기 있는 거 맞더라.”
“거기라면…?”
“월드 사가 본사.”
“…….”
박세훈은 지나가듯 말했지만 백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성 팀장은 예전부터 계속 백현의 친구, 김성재를 찾고 있었다.
박세훈을 진작에 빼 올 수 있었지만 거기 내버려 둔 이유는 성재의 흔적을 몰래 공유받기 위해서였다.
성 팀장의 투자를 대신 해주기도 하는 박세훈이었기에 그의 휴대폰을 자주 쓸 수 있었고, 그때마다 조금씩 정보를 수집했다.
“왜 거기 있는지, 어째서 밖으로 안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월드 사가 본사에 있는 건 확실해. 하지만 성 팀장을 포함한 머니앤캐시 직원 그 누구도 그 안에 못 들어갔어.”
월드 사가 본사만큼 보안이 철저한 회사는 없다.
비상장회사이기에 대주주가 누구인지도 공개가 되어있지 않다.
그나마 꽤 많은 주식을 소유한 몇몇이 자기가 대주주라고 나선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미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잖아.”
“다음 달.”
“그렇지.”
월드 사가에서는 주기적으로 하이 랭커들을 초청해 내부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진행한다.
비밀 유지 서약을 쓰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걸어볼 만한 건 그거뿐이었다.
그 행사가 다음 달이었다.
“이제 저도 하이 랭커가 되었으니까요. 직접 가서 물어봐야겠습니다.”
* * *
“하이 랭커가 되셨다고 해도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바뀔 수 있는 거 아시죠?”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 게임 속에 접속하자마자 지존칼이 해준 말이었다.
“물론이죠.”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 랭커가 됐다고 그 뽕에 취해 놀기에는 몰락한 사람들의 케이스가 몇 개 있었다.
언럭키가 이번에 하이 랭커가 된 이유도 그런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줬기 때문 아니던가.
“그리고 같은 하이 랭커라지만 1,000등과 10등은 이름값 자체가 다르고.”
“그것도 맞죠.”
하이 랭커라고 묶여 부르지만 진짜 최상위권에 있는 유저들은 저 하늘의 별과 같았다.
인기만 봐도 말할 것도 없다.
언럭키의 미튜브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흥하고 있었지만, 지존칼과 미호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자릿수 단위가 달랐지.’
당연히 조회수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라이브 한 번 켜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후원으로 쏟아졌다.
그러면 그게 또 유명해지고 기사가 난다.
유명세가 유명세를 불러들이는 선순환의 구조였다.
“음. 근데 언럭키님이 이 이후에 갈만한 던전은 조금 애매하네요.”
언럭키의 레벨은 현재 339였다.
지존칼과 미호가 추천해 주는 던전들은 하나같이 적정 레벨 360 이상의 최상위권 던전들.
거기서 잠도 줄여가며 최대한 레벨링에 집중했기에 50일 만에 달성했다.
하지만 이제는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확실히 전보다 레벨업 속도가 줄어든 게 눈에 보였다.
“여기보다 좋은 곳들은 아직 미개척된 곳들입니다. 우리 길드나 미호네 길드에서 열심히 찾고 있기는 한데, 쉽지 않아요.”
하이 랭커쯤 되면 효율을 중시해야 한다.
아무 데서나 사냥하다가는 밑에서 똑똑하게 움직이는 자들에게 추월당한다.
언럭키 역시 앞으로는 그래야 하기에 던전 선택에 고민이 되었다.
“옵션은 몇 가지 있긴 한데 어디를 가야 할지가 고민이네요.”
“그렇게 같이 고민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언럭키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여기까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지존칼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
그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
“뭘 그럽니까. 이건 거래잖아요.”
지존칼이 빙긋 웃었다.
그의 말대로 거래였다.
언젠가 초월자 유디스가 언럭키를 만나러 오면, 그때 지존칼을 소개해 줘서 그의 퀘스트를 성공하도록 돕는 것.
그게 거래 조건이었지만 이건 상당히 불공정한 거래였다.
‘기약이 너무 없으니까 말이야.’
처음에는 유디스가 제발 나중에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래야 지존칼, 미호의 버스를 더 오래 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두 달 가까이가 된 지금은 마냥 받기만 하는 이 상황이 미안했다.
차라리 뭘 해주고 받는다면 마음이라도 떳떳하지. 일반인은 가기도 힘든 최상위급 독점 던전들을 계속 제공받고 있자니 눈치가 보였다.
“일단 하나씩 돌아봅시다. 가장 먼저는…”
그 순간이었다.
“자네. 전보다 더 강해졌군.”
“……? 헤탄님?”
도시에 있던 둘에게 말을 걸며 다가온 건 호르헤른의 정보원 헤탄이었다.
그는 꽤나 반가운 표정이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이는 헤탄이었기에 살짝 놀랐을망정 그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는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유, 유, 유디스님!!?”
찰라이는 백금발을 허리까지 기른 하이엘프가 옆에 서 있었다.
“두 분이… 일행이십니까?”
“아니. 이 앞에서 만났네.”
헤탄이 고개를 저었다.
유디스가 앞으로 나서더니 언럭키를 빤히 바라봤다.
“받아라. 이제 은혜는 다 갚았다.”
“네?”
유디스는 성스럽게 생긴 외견과 달리 흉측하게 걸 손에 들고 있었다.
금가루가 흩날리는 어느 마법사의 목이었다.
머리칼을 잡은 채 대롱대롱 붙잡고 있었는데 그게 은근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이건…?”
“전에 그놈.”
“아!”
자세히 보니 과거에 죽을 뻔했던 추기경 옥토스컬렛의 목이었다.
유디스에게 계속 쫓겨 다닌다고 하더니, 결국에는 도망치지 못하고 죽었던 모양이다.
“원래는 네가 직접 복수하게 둘까 싶었는데 엄청 귀찮은 능력을 갖추고 있었어. 이놈까지 내가 처리하는데 은혜를 갚는 거로 생각해서 잡았다.”
“감사합니다.”
뭐든 해줬다니 다행이다.
“그럼 이만 갈게.”
유디스는 목적을 다 이뤘으니 떠나겠다는 듯 움직이려 했다.
툭툭툭툭툭-!
그러자 옆에서 지존칼이 다급한 눈으로 언럭키의 옆구리를 쉴 새 없이 찔러댔다.